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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죄인


권지현, 죄인 07 수엔, 2009



작가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작업이 안된다며 친구 만나 푸념도 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전시장을 기웃거리며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자유로운가.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러나 내 자식이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수입은 불규칙적이고 몸은 고되며 작업을 알리기 위해 부산을 떨어야 하는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직업일 뿐이다. 어떤 연유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건 둘 다 틀린 이야기는 아닐 터, 그 괴리 사이에서 작가의 괴로움이 싹튼다.

다음주부터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소개하는 권지현의 ‘죄인’ 연작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신처럼, 사람들이 늘 짊어지고 다니는 죄책감은 무엇일까. 작업의 진정성을 위해 길거리에서 무턱대고 촬영을 부탁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늘 부분에 불과한 삶을 살고 있다는 실존적 고민에서부터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슬픔까지, 국적도 경험도 다양한 이들의 죄책감은 그 가벼움과 무거움을 떠나 의외로 깊은 공감대를 선사한다.

특히 역사학을 전공한 중국인 수엔은 자신의 죄책감을 ‘우리는 모두 한 세대입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동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늘 인터넷에 한 줄 댓글을 다는 정도로 만족하는 무관심한 전후 세대라는 사실이 자신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수엔처럼, 우리도 속절없이 인터넷을 통해 바다만 바라보면서 오늘 또다시 죄인이 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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