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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14 꿈속에서
  2. 2018.12.10 뮤트
  3. 2018.12.07 남은 것은 사랑뿐
  4. 2018.12.07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5. 2018.12.06 의정부제일교회
  6. 2018.12.03 타협하지 않는 자
  7. 2018.11.30 가장 멀리 간 사진
  8. 2018.11.30 각양각색
  9. 2018.11.26 여섯 개의 기도문
  10. 2018.11.23 남산 사진사
  11. 2018.11.23 토끼 인형
  12. 2018.11.19 지금
  13. 2018.11.16 .jpg
  14. 2018.11.16 장난꾸러기
  15. 2018.11.12 원 모어 타임
  16. 2018.11.09 공주병
  17. 2018.11.09 하얀 원피스, 검은 다리털
  18. 2018.11.08 도봉산의 가을 끝자락
  19. 2018.11.05 시간을 지배하는 자
  20. 2018.11.02 여기, 그를 보라

캔버스에 아크릴(61×72㎝)

 

무서운 꿈에 잠이 깹니다. 책과 만화 그리고 영화에서 보았던 무서운 괴물들이 더 크고 강력해져서 꿈속에 나타납니다. 상상 속의 괴물들이 내가 알고 있는 공간에 나타나니 더더욱 무서워집니다. 괴물들한테 쫓기다가 잡아먹힐 순간에 잠이 깹니다. 그러곤 무서운 꿈 꿨다며, 눈 비비며 걸어와 아빠 손 꼭 잡고 다시 잠이 듭니다. 씩씩한 딸은 다시 꿈속에서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지 연신 아빠를 발로 차며 잠 못 들게 합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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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삼손영, 소리죽인 상황 #22: 소리죽인 차이콥스키의 5번, 2018, 12채널 사운드 설치, 단채널 비디오 ⓒ삼손영

 

“이 작품은 실패다.” 차이콥스키는 1888년 5번 교향곡의 초연을 마친 후, 자신의 음악에 대해 스스로 혹평을 던졌다. 그 자신도 느낀 것처럼, 이 곡은 “조악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그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나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중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이 곡을 사랑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대포의 포격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아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들을 위로한 곡으로 더 유명해졌다.

 

홍콩 출신으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작가 삼손영은 독일 쾰른의 플로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전곡 연주를 요청했다. 이때 그가 덧붙인 하나의 조건은 연주는 하되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연주자들은 바이올린의 활을 켜고, 클라리넷을 불지만 ‘선율’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악보를 넘기는 소리, 현을 긁는 소리, 연주자의 숨소리만이 12채널의 스피커를 통해 공간을 가득 채울 뿐이다.

 

그렇게 오케스트라는 ‘영혼을 담아서’ 연주를 시작해 ‘노래하듯 자유롭게’, ‘달콤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전개하다가 왈츠를 연주한다. 이어서 팀파니와 현악기, 금관악기가 강렬하게 질주하며 알레그로로 장엄하고 위풍당당하게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연주 안에 ‘음’은 없다. 숨죽인 상황 안에서 관객들은 문득, 정말 억압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의 화려함이 은폐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린다. 그래서 삼손영의 ‘음악없음’은 역설적으로 그 ‘음악’의 감정에 더 집중시킨다. 청각을 다시 상상하고 구성하는 이 시간 속에서 ‘소리없음’은 ‘침묵’일 수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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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나무틀에 아크릴 펜 (36 x44cm)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돈이 없으면 사랑도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뜨거운 사랑을 해도 돈이 없으면 시간만 보내다가 사랑은 식어버립니다. 돈이 없으니 사랑이 없어지고, 결혼을 못하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출산율은 점점 최악으로 내려가고 사회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젊음과 노력과 사랑만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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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그런 밤들이 있다. 라디오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의 목소리가 연이어 흐르는 밤. 짙은 어둠 속에 퍼지는 죽은 자의 노래가 산 자의 입으로 옮아가는 밤. 입술이 더듬은 노랫말에서 오래된 이미지가 쏟아지는 밤. 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편집 1, 2018, 사진과 텍스트 프로젝션 ⓒ김주원

 

330장의 사진과 67페이지의 문장 그리고 60분의 음악으로 구성된 김주원의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은 죽은 자와 산 자, 말과 이미지, 기억과 과거가 끝말잇기처럼 이어지고 ‘수신되지 않는 신호’처럼 끊어진다. 가령, 첫 조카의 생일축하를 위해 풍선을 매달던 아버지가 다음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조카의 생일을 기념하는 사진은 돌연 죽음을 환기하는 이미지가 된다. 아버지가 숨을 거둔 후에도 풍선에는 그의 숨이 남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풍경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안겨준다.

 

가까운 이들의 추억부터 뭘 먹고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시시콜콜한 일상, 촛불집회를 비롯한 사회적 풍경까지 다양한 사진과 글이 연속되지만, 이는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의 완성보다 데이터를 수집하듯 낱장의 사진마다 최대치의 기억과 검색을 링크시키는 데 관심을 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꿔 놓음으로써 타인에게 뭔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소설 속 주인공이 연상되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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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에서 축석고개를 넘어 의정부로 넘어가다 보면 대로변 우측으로 현대식 교회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몇 가지 형태의 박스들이 중앙에 삽입된 원추형의 매스와 어우러진 절제되고 세련된 감각이 발길을 멈춰 세운다.

 

도로변에서 바라보이는 원추형 매스에 ‘의정부제일교회’라 씌어 있는 이 교회는 설립 72주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2009년 지금의 자리로 신축 이전하여 자리 잡고 있다. 신축 당시 교회 구성원들은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 등 미래의 비전을 품은 교회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교회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몇몇 건축가들을 초청해 설계안을 모집하고 선정하는 이른바 지명현상 설계경기를 실시했다. 최종안으로 올라 온 두 개의 안에 대하여 전 교인들이 참여하는 투표를 거쳐 결국 이충기 서울시립대 교수의 안을 선택하게 된다.

 

 

이 교수는 많은 교인들이  본당을 출입할 때 동선을 짧게 만들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인 본당 입구와 강단의 세로 길이가 긴 평면이 아닌 가로폭이 넓은 타원형 평면을 제안했다. 그 결과 어느 자리에서건 강단과 회중석 간의 거리는 가깝고 교인들이 퇴장할 때 신속하게 본당에서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2층 본당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넓은 진입 계단은 건물의 정면을 구성하는 주된 입면 요소가 되고 있다. 

 

본당과 교육공간의 기능 분리는 서로 다른 매스의 형태로 표출되어 있다. 다양한 교육시설이 몰려 있는 교육공간은 왼쪽의 직사각형 박스 매스에 집적되어 있고 원추형의 본당 매스는 매개공간인 홀을 통해 분리된다. 기능의 분리라는 모더니즘 건축의 원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본당의 지붕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운동장이 되고 있다. 우측 종탑의 수직매스는 직사각형의 교육공간 매스와 원추형의 본당 매스를 적절하게 어울리게 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

본당 성가대석에서는 성가대의 성탄절 칸타타 연습이 한창이다. 성가대의 아름다운 칸타타 음악과 더불어 온 세상이 사랑으로 따뜻해지는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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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2003년 어느 날, 함부르크시 관계자가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오래된 코코아 보관 창고 사진을 들고 스위스의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와 드 뫼롱을 찾았다.

 

사진 속 벽돌 건물을 들여다보던 그들은 이내 건물 위에 파도처럼 바람처럼 일렁이는 드로잉을 하나 얹었다. 그 드로잉은 14년 후에 함부르크의 랜드마크 엘브필하모니로 탄생한다.

 

헤르조그와 드 뫼롱, 엘브필하모니 드로잉, 2003 ⓒ헤르조그와 드 뫼롱

 

새로운 랜드마크의 등장은 순조롭지 않았다. 2010년으로 약속한 개관은 2017년에야 이루어졌고, 1억8600만유로로 책정했던 건축비는 7억8900만유로까지 늘어났다. 공사가 중단되고, 책임자가 교체되고, 공사기간이 늘어지고, 예산이 증가할 때마다 정치적 공방이 줄을 이었고, 시민사회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콘서트홀은 그저 “상류계층의 퇴폐적 기념비” 아니냐는 비판, 다른 프로젝트들이 예산 절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엘브필하모니 프로젝트만이 끝없이 예산을 지출하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사회 안에서 갈등과 분노를 키워나갔다.

 

그 사이 건축가들은 그들이 디자인한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쓰고 있었다.

 

흡족한 빛의 굴절률을 가진 전구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전 세계를 뒤져 찾아낸 유리공방에서 홀 천장용 전구 1000개를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완벽한 소리를 위해서 이미 시공을 마친 1만개의 음향 패널 틈새를 모두 메웠다.

 

엘브필하모니를 통해 이곳이 그저 유서 깊은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 그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건축물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자 했다. “이 건물이 우리의 모든 경력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현혹했으니 이 총체적 난국을 책임져야 했다.” 책임을 지기 위해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타협하지 않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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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듀크가 달에 남긴 가족사진, 1972년 4월20일 ⓒNASA

 

1972년 4월16일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열 번째 유인우주선 아폴로 16호를 발사했다. 우주선에는 선장인 존 영, 사령선 조종사 켄 매팅리, 달 착륙선 조종사 찰스 듀크까지 모두 세 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 우주선 추진계의 수평유지 장치에 문제가 생겨 달 착륙이 중단될 뻔했지만, 무사히 발사 4일 후 달에 안착했다.

 

승무원들은 달의 데카르트 고지를 3일간 탐사했고, 월면차량의 성능 테스트를 했다. 이때 월면차량이 도달한 시속 18㎞는 달 표면에서 바퀴 달린 탈것이 낸 최고속도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월면활동은 20시간14분으로 최장시간을 기록했고, 95㎏의 월석도 채취했다. 그러나 아폴로 16호는 화려한 기록보다 소박한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된다.

 

승무원 중 찰스 듀크는 가족사진을 비닐백에 담아 달 표면에 남겨두었다. 사진 뒤에 메모도 적었다. ‘지구에서 온 우주비행사 듀크의 가족, 1972년 4월 달에 착륙함.’ 지구로 돌아온 그는 “달에 남긴 건 발자국만이 아니다. 가족사진도 함께 남겨뒀다”고 말했다. 2013년 이 사진이 처음 공개될 때, NASA는 “많은 우주비행사가 달에 개인적인 기념품을 남기고 온다”며 “듀크는 가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광대한 우주에 남아 강한 태양빛을 맞는 가족사진을 떠올린다. 비록 사진은 새하얗게 바래도,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가장 멀리, 가장 오래 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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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캔버스에 아크릴(62×71㎝)

 

각양각색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키 큰 사람, 뚱뚱한 사람, 바쁜 사람, 눈 큰 사람, 피곤한 사람, 외로운 사람, 화난 사람 등등…. 모두들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추운 겨울거리의 모습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검은색 코트나 검은색 롱패딩으로 자기를 숨기고 바삐 걸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모두들 자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사람들 속에 파묻혀 거대한 검은색 덩어리로 무채색 도시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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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알버스, 여섯 개의 기도문, 1966~1967, The Jewish Museum, New York, Gift of the Albert A. List Family, JM, 테이트 모던 제공

 

세상은 조금씩 살기 좋아지고 있는 걸까. 지금 여기에서 그 믿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조금 앞서’ 기념하면서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애니 알버스(1899~1994)의 개인전을 열었다. 직물을 ‘공예’에서 ‘예술 형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그는, 바우하우스의 학생이자 선생이었다.

 

공식적인 교육제도 안에서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여성들의 입학을 허용한 바우하우스는 진보적 교육기관이었다. 공예와 순수예술 간에는 경계가 없고, 성차별도 없다고 강조하며 자유와 혁신을 이야기하던 바우하우스였지만, 여성이 남성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은 교묘한 명분을 들어 완곡하게 막았다. 이곳을 졸업한 후 ‘전문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대다수의 여학생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라고 언급되는 ‘직조 공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애니 알버스 역시 바라던 회화 대신 직조를 전공한다. 그는 평면회화와 직조를 연결시킨 ‘회화적 직조’라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직조를 사용해 짜임새 있는 딱딱한 패턴의 시각적 어휘를 개발하여 독자적인 기하추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회화’를 놓지 않기 위한 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회화적 직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여섯 개의 기도문’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내용을 담아 베이지색, 검은색, 흰색, 은색의 수직 태피스트리 6점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수직과 수평으로 중첩되는 선들은 그 무엇도 선명하게 발언하지 않지만, 작가는 그 선들의 매듭과 엉킴 사이사이에 언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언어가 쉽게 왜곡할 수 있는 감정들을 직조해 나갔다. 그 사이에는 여성의 ‘창의성’을 외면하던 바우하우스를 향한 ‘어떤’ 감정의 실타래도 꼬여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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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사진사 소송윤씨와 김한식씨의 모습, 1987년 5월14일, 경향신문사

 

두 남자가 똑같은 모자를 쓰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다. 소송윤씨와 김한식씨, 두 사람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남산 사진사이다. 80년대 초 팔각정, 분수대, 야외음악당 등 구역을 나눠 남산에서 영업했던 사진사는 90여명이었다. 당시 서울 관광의 필수 코스인 남산은 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남산 사진사가 되려면 ‘남산사진협회’에 가입하고, 자릿세를 내야 할 정도였다.

 

남산뿐만 아니라 경복궁과 창경궁, 어린이대공원 등 전국의 유원지마다 사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입학식, 졸업식, 소풍, 운동회 등 한 가정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곳에도 등장했다. ‘사진’ 또는 ‘촬영’이라고 쓴 완장을 팔에 차고, 필름 사진과 즉석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차려’ 자세를 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 카메라와 사진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손에 카메라(스마트폰)를 들고, 수시로 손쉽게 사진을 찍고 올리고 보내는 시대가 되면서 남산의 사진사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의 완장처럼, 그 시절의 ‘차려’ 자세처럼 무언가 특별했던 사진은 이제 흔하고 흔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든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진을 남긴다. 입학사진에서 결혼사진까지, 증명사진에서 영정까지, 우리의 생애주기마다 깃드는 사진의 특별한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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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캔버스에 아크릴(60×72㎝)

 

쓰레기장에 귀여운 토끼 인형 하나가 버려져 있습니다. 왜 버려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더러워지거나 찢어져서 그럴까요? 아니면 이젠 커서 인형이 필요 없어졌을까요? 인형을 선물한 사람이 싫어졌을까요? 새로운 인형이 생긴 걸까요? 이유를 알 수 없는 토끼 인형은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으며 외롭게 찬바람을 맞으며 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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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언제인가. ‘당신이 가진 것은 시간뿐’이라고 말했던 작가 샹탈 애커만은 ‘지금’의 이름으로 사막의 풍경을 소환한다. 허공에 V자 형태로 매달린 다섯 개의 스크린에서는 마치 달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처럼, 각각 다른 속도와 시점으로 덜컹거리는 사막이 흘러가는 중이다. 그 안에서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전시장은 간간이 암전에 가까운 어둠에 휩싸였다가, 곧이어 붉은 모래, 바위 절벽이 펼쳐지는 예의 그 사막 풍경을 거칠게 흘려 보낸다.

 

샹탈 애커만, 지금, 2015, 멀티플 채널 HD 비디오 설치, ⓒ샹탈 애커만

 

다섯 개의 스크린 사이로 시선이 겹치고 흔들리는 가운데, 문득 파란 하늘이 화면을 채울 때면, 사막의 바위와 모래는 더 건조하고 거칠게만 보인다. 텅 빈 사막에 시선을 준 사이, 전시장 안에는 두려움 가득한 울부짖음, 엔진 소음, 동물의 괴성이 만드는 불협화음이 차오른다.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영상 사이를 뚫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성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전쟁과 죽음의 장면이 떠오른다. 애커만은 하늘과 모래가 끝없이 출렁이는 빈 사막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가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은 늘, 야만과 유혈의 신호다”라는 말을 보탰다.

 

“영상 앞에서 관객은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또한 시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저항감을 느끼는 이유다.” 그는 관객이 그의 영상 앞에서 온몸으로 흘러가는 매 시간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공허한 사막에서 샹탈 애커만이 보았을 ‘지금’은 반성 없는 인류의 과거가 무한 반복되는 ‘지금’일까, 그 결과 어쩌면 땅 위의 생명이 소멸한 ‘지금’은 아닐까. 스치는 풍경들의 스산함이 암시하는 ‘지금’은 어둡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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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영화 <서치>는 실종된 딸의 행적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줄거리만 들어도 몇몇 영화들이 떠오를 만큼 익숙한 장면이 예상된다. 그러나 영화는 신선한 형식과 참신한 화면 구성으로 스토리 라인을 풀어낸다.

 

영화 <서치>의 한 장면.

 

영화 내내 전지적 시점으로, 장면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가 없다. 모든 장면이 액자 구성처럼 PC 모니터와 모바일 액정, CCTV 등의 또 다른 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진과 동영상은 구글부터 인스타그램, 텀블러,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해 생산되고 재생된다. 가족사진 또한 카메라로 촬영되지 않고 모니터 캠을 통해 캡처된다. 그리고 인화해 가족앨범에 보관하지 않고, 컴퓨터 바탕화면이 되거나 폴더에 저장된다. 보기 힘든 망자의 사진은 검색 제한을 걸거나 온라인 메모리얼 사이트에 업로드한다. 이처럼 영화는 윈도 XP 화면으로 시작해 시종일관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 환경을 현실감 있게 제시한다.

 

특히, 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얻은 단서들이 쌓여가는 바탕화면이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사진은 다른 문서들(PDF, HTML, RTF)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전송되거나 삭제될 수 있는 파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찍히기보다 캡처되고, 간직하기보다 전송되며, 기념하기보다 인증되는 하나의 데이터. 예기치 않게 영화에서 지금 여기, 사진의 정체성을 실감하게 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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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 펜(95×18㎝)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다녀간 흔적은 잔뜩 남겨놓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꼼지락꼼지락, 걷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뛰어다닙니다. 두두두두…. 조금만 지루해도 심심해, 놀아줘, 재밌는 거, 계속 떼를 씁니다. 해 뜨자마자 밤에 잠들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고, 움직이며 뭘 합니다. 밤에 겨우겨우 잠이 들어도 가만있지 않고 온 방을 굴러다니며 잠을 잡니다. 저런 아이들의 강철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천사 같은 얼굴로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겨우 나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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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면 무엇이 시간을 가릴 수 있을까?” 코넬리아 파커는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 기차역을 운영하는 회사 HS1과 로열 아카데미가 협력·기획한 아트프로젝트 ‘테라스 와이어즈’ 시리즈 출품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 주최 측이 유로스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기차역의 철제 천장을 올려다볼 수 있는 작품을 부탁했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던 그는 역의 벽시계가 다른 작업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장면을 목격한다.

 

코넬리아 파커, 원 모어 타임, 2015,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기차역 설치, 지름 5.44m ⓒ코넬리아 파커, RA

 

기차 출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바심 내며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기차역에서 시계가 사라지는 순간은 작가에게 시간의 의미를 환기시켰다. 그는 기차역의 ‘세속적’인 시간으로부터 초연한 시간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이 아이디어는 시계로 시계를 가린다는 구상으로 이어진다. 그는 기존 벽에 걸려 있던 하얀 벽시계의 도플갱어 같은 시계를 제작해 천장에 설치했다. 크기도 모양도 같지만 색깔만 다른 검은 시계였다.

 

직경 5.44m에 무게 1.6t의 이 시계는, 기존 벽시계에서 약 16m 떨어진 천장, 역내를 걷는 사람들 머리 위에 매달렸다. 두 시계는 마치 시간의 빛과 어둠처럼 시각을 지시했다. 관객이 어느 위치에서 두 시계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둘은 30초 정도의 시간차를 보이기도 했고, 흰 시계가 검은 시계에 완전히 가려져 사라지기도 했다. 작가는 검은 시계를 런던 표준시보다 1시간 앞선 프랑스 시간에 맞추고 싶었지만, 승객을 혼란에 빠뜨릴 것 같아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했다.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위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너무 큰 혼란에 빠뜨리지는 않겠다는 작가의 작은 ‘배려’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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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5×22㎝)

 

예쁜 공주를 그리고 싶었는데 그려놓고 보니 병에 걸려 아픈 공주가 되어 버렸습니다. 불치병인 공주병에 걸린 걸까요? 아니면 혈색이 안 좋은 거 보니 빈혈이 심한 걸까요? 약간 미소를 짓는 것 같긴 한데 힘없는 미소가 슬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려놓고도 그림은 제 의도대로 되지 않고, 그림 마음대로 되어 버립니다. 언제쯤 제가 원하는 예쁜 공주를 그릴 수 있을지….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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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장식이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고, 벨벳 소재의 폴라넥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립스틱 색까지 핑크빛으로 맞췄다. 가지런한 단발머리에 화려한 귀고리까지 여성스럽다. 손목에는 투박한 쇠팔찌를 차고, 팔뚝에는 엉성한 문신이 있다. 다리를 벌리고 쭈그려 앉은 자세에 거뭇한 다리털까지 전혀 여성스럽지 않다. ‘여성스러움’과 ‘여성스럽지 않음’ 상반된 특징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그런데 둘 사이를 나눴던 나의 기준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가.

 

아르비다 비스트룀이 출연한 아디다스 광고. 인스타그램 캡처

 

스웨덴의 사진작가 겸 모델인 아르비다 비스트룀이 출연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광고 사진이다. 비스트룀은 인스타그램에서 다리,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의 털을 드러낸 셀피로 유명하다. 신체 부위와 체모의 노출, 생리혈 등 인스타그램에서 필터링하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올리며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그의 예술 작업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이미지를 검열하고 규제하는 사회적 통념에 의심을 던진다.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 젖꼭지가 있고, 털이 나고, 피를 흘리는데, 왜 여성의 경우만 필터링되는가. 어쩌면 ‘여성스러움’과 ‘여성스럽지 않음’ 둘을 나눴던 나의 기준 또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검열과 규제에 공조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해 비스트룀은 이 광고 사진을 찍은 후 성폭행 위협을 받았다. 여성이 ‘여성스럽지 않음’을 선택할 때 가해지는 검열과 규제는 21세기에도 이렇게 흉포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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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에서 서울로 나갈 때 의정부의 초입인 축석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 저 멀리 바라보이는 도봉산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뾰족한 바위들이 중첩되어 만들어내는 정상부의 측면 모습은 마치 중국 계림의 한 면을 보는 듯하다. 의정부의 끝자락인 장암고개로 다가가면서 점점 가까이 앞으로 나타나는 도봉산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간혹 일산 쪽으로 가느라고 외곽순환도로 의정부IC 진입 램프를 올라설 때면 옆으로 스쳐지나가며 바라보이는 도봉산의 근경이 장엄함으로 내게 다가온다. 특히 요즘 같은 단풍 가득한 가을에는 그 감동의 깊이가 더해진다.

 

 

숱한 나날들을 서울을 오가면서 전면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도봉산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봤으면 늘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도봉산 가까이 가도록 내가 달리는 도로에는 갓길이 없어 차를 대고 지금까지 사진 한 장 찍어보질 못했다. 지난 원고에서 박세당 고택에서 발견한 도봉산의 전경을 그림으로 잠깐 소개하긴 했다. 하지만 내게 강한 인상을 준 도봉산의 측면 모습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10월 말. 서울에 일이 있어 차를 몰고 장암고개를 넘어 도봉산역으로 가던 참이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도봉산은 아름다운 단풍에 젖어 있기는 했으나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곧 이 가을을 모두 앗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야 할 때 잠시라도 더 붙들고 싶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도봉산역으로 가던 차의 방향을 틀어 의정부 끝자락에 위치한 롯데아파트로 무작정 들어섰다. 무턱대고 경비실에 들어가서 도봉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옥상에 잠시 올라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경비 아저씨는 내게 맨 앞쪽 동의 옥상 열쇠를 건네줬다.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애써 얻은 옥상 열쇠는 왜 이리 안 열리는지? 이 아파트의 주민들은 늘 보는 풍경이겠지만 내게는 정말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귀한 풍경이었기에 도봉산은 내게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가보다.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기에 경비실로 가서 열쇠 여는 방법을 터득한 후 다시 열기를 시도,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문이 열렸다. 몸을 가누기가 힘든 세찬 바람이 도봉산의 모습을 담으려는 나를 방해한다. 저 멀리 북한산의 산자락과 가까운 도시의 모습이 겹쳐진 도봉산의 가을 끝자락을 그렇게 몇 장의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폭 넓은 도봉산 파노라마의 한 부분을 이렇게 그림으로 남겨 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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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이자, 예술가인 루스 이언은, 캠든아트센터 안으로 360개의 나무, 풀, 물건들을 들여놓았다. 양상추, 장바구니, 물뿌리개, 왁스, 꿀, 전나무, 수은, 도끼는 각자 자리를 잡았다. 30개씩 열두 그룹으로 배치된 이 사물들은 각자 특정 날짜를 지시하며 그대로 ‘달력’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군들이 만든 새로운 달력 ‘공화력’이었다. 혁명군에는 바스티유 감옥뿐 아니라 종교, 정치, 경제,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권력인 그레고리력 역시 변혁의 대상이었다.

 

루스 이언, 백투더필드(Back to the Field), 2015, 캠든아트센터 설치장면 ⓒ 루스 이언 (사진촬영:Hydar Dwach)

 

1주일을 10일, 1개월을 30일, 1년을 360일로 정하고, 1년에서 부족한 5일이나 6일은 선행의날, 재능의날, 노동의날, 이성의날, 보상의날, 혁명의날로 명명하여 축제일로 삼았다. 이 달력에서 기존에 있던 종교 축제의날과 성인의날은 삭제되었다. 10일마다 1일씩 쉬자, ‘안식일’은 줄어들고 노동시간이 늘어났다. 프랑스를 생산성이 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던 혁명군은 달력 안에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새로운 질서를 담았다.

 

이들은 예술가, 시인, 원예사와 협력하여 날짜의 이름을 새롭게 정리했다. 그 이름들은 자연의 변화, 농경의 규칙을 담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5일째에는 말, 소 같은 가축의 이름이 등장하고, 10일째에는 술통, 와인 압착기, 도끼, 칼 같은 도구의 이름이 등장한다. 달력을 따르자면, 사람들은 열흘에 한 번 마을에 모여 나라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법규를 소리 내어 읽으며 함께 식사를 한다. 그리고 곡괭이 사용법을 배운다.

 

혼란에 빠진 국가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혁명군의 의지를 담은 ‘혁명력’은 브뤼메르(안개달) 18일 쿠데타로 혁명을 종결시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명령에 따라, 1806년 1월1일 이후 사라졌다. 탄생 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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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레임 안에 여러 얼굴이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다. 다중노출과 장노출로 얼굴의 윤곽이 뒤섞이고, 이목구비가 허물어진 형상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화를 닮았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형상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존재가 분열하거나 해체되는 고통의 순간이 가시화된다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The Portrait 2, Archival Pigment Print, 110x90cm, 2018 ⓒ권순관

 

일반적으로 선명한 얼굴이 담긴 초상 사진을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연동된다. ‘그는 누구인가?’ 사진 속의 그가 어떤 존재인지 식별하려는 인식 능력이 발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뼈와 살이 마구 뒤엉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얼굴을 분별하기 어려운 권순관의 초상 사진은 우리의 인식 능력을 무력화시킨다. 이 사진을 바라볼수록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원초적인 질문에 집중하게 된다. ‘그 얼굴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또는 ‘그는 과연 볼 수 있는 존재인가?’ 대답은 뭉뚱그려진 얼굴처럼 불확실하다. 다만 확연한 게 있다면, 사진 속 존재의 고통이기에 베이컨의 그림을 볼 때처럼 또다시 마음이 서늘해진다.

 

사진 속의 그는 장기 복역한 양심수이다. 이념의 논리에 따라 반대쪽 체제에는 존재하면 안되는 사람인 셈이다. 국가에 의해 투명 인간 취급되는 그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 사진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여기, 그를 보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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