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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1:31:33 승자의 손
  2. 11:16:03 자유
  3. 2017.07.27 롯데월드타워
  4. 2017.07.21 도마 위 생선
  5. 2017.07.21 내가 모르는 내 사진
  6. 2017.07.14 표정들
  7. 2017.07.14 스피릿, 오퍼튜니티
  8. 2017.07.14 리움
  9. 2017.07.10 예술이라는 보철기구
  10. 2017.07.10 시계를 의식하는 일
  11. 2017.07.10 그 모든 가능성의 불안함
  12. 2017.07.10 걷기
  13. 2017.07.10 기억의 잡초
  14. 2017.07.07 앙드레 케르테츠
  15. 2017.07.07 양귀비꽃
  16. 2017.06.30 별 눈 아저씨
  17. 2017.06.29 서초구 명물 ‘아쿠아 육교’
  18. 2017.06.23 별 눈 아가씨
  19. 2017.06.23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20. 2017.06.16 고요

“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평론가 수전 손택의 말이 떠오른 건 최근 열리고 있는 ‘라이프 사진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이다.

 

Photo by Hugo Jaeger/Timepix/The LIFE Picture Collection/Getty Images ⓒ The Picture Collection Inc. All Rights Reserved.

 

나치의 상징 아래에서 모든 사람들이 오른손을 뻗어 경례한다. 좌측 아래 책상 끝에 아돌프 히틀러가 보인다. 옆에는 히틀러의 심복으로,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받아 적었다는 루돌프 헤스도 서 있다. 같은 줄의 양복을 입은 사람 옆에는 ‘나치당의 브레인’으로 불린 요제프 괴벨스도 있다. 1939년 4월28일, 베를린 크롬 오페라 극장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이날 회의에서 히틀러는 폴란드와의 불가침 조약 철폐를 선언하는 기조연설을 한다. 전쟁에 관한 독일의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홀로코스트를 비롯해 5000만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한다.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그 숫자를 헤아리면서 사진 속의 저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으리라 예상했을지 궁금해진다. 만일 조금이라도 상상했다면 저렇게 맹목적으로 오른손을 뻗을 수 있을까?

 

그 집단적 광기만큼 오싹하고 서늘한 것은 그마저도 미화하는 사진 ‘본연의 역할’이다. 히틀러의 전속사진가 휴고 예거가 촬영한 사진은 다분히 나치의 승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오른손을 뻗을 때마다 함께 오른손을 뻗어 카메라를 들었던 전속사진가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승리의 그날을 장식하기 위해 촬영된 사진들은 결국, 승자의 손에 들어간다. 독일 패전 후 사진을 숨겨왔던 예거는 승전국 미국의 대표적인 잡지 ‘라이프’에 그 사진들을 판매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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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61×72㎝)


오늘같이 더운 날 모든 것을 훌훌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뛰어놀고 싶습니다.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아무것도 고민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며 푹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현실에 묶여 꼼짝할 수 없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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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크게 바뀌었다.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 때문이다. 지난 4월2일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롯데월드타워가 강남 스카이라인의 중심에 우뚝 섰다. 2010년에 착공하여 6년 만에 완공된 123층, 높이 555m로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이다.

 

아래쪽은 퉁퉁하다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로 한국의 전통 도자기와 붓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높이에 있어서나 형태에 있어서 서울 어디에서든 쉽게 눈에 띄는 서울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저층부 포디엄에는 쇼핑몰, 콘서트홀, 영화관 등이 구성되어 있고 중층부에는 오피스와 주거시설, 특급 호텔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층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전망대가 위치해 있다. 특히 저층부에는 7층에 미술관과 8~10층에 2000석 규모의 클래식 전문 연주홀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다른 대규모 복합시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전문적인 문화예술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콘서트홀에는 5000여개의 파이프를 가진 파이프 오르간이 무대 뒤쪽을 장식하고 있다.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아레나(arena) 형식으로 청중들이 사방에서 무대를 관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음향설계에 힘입어 벌써부터 많은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상층의 전망대는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다. 더블 데크(double deck)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지 1분. 내부에서 보여주는 건물관련 영상에 몰입해 있을 즈음 몸은 어느새 높이 500m의 전망대에 다다른다. 사방 끝없이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은 전망대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는 시원한 청량제이리라. 아래가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데크의 투명바닥 체험은 이곳을 찾은 이들의 오랜 무용담이 될 듯하다.

 

1년 반에 걸친 서울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에 대한 소개를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다음 원고부터는 경기도 일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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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마에 아크릴(42×22㎝)

 

길 가다 횟집 뒷골목에 버려진 나무도마를 주웠습니다. 도마 가운데는 수많은 칼자국으로 움푹 파여 있었고 끝은 갈라져 있어 도마의 나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도마 손잡이는 사람이 많이 만져서 그런지 반짝반짝 새것처럼 윤기가 났습니다. 이 오래된 도마 위에서 수많은 생선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맛있는 요리들이 탄생했겠지요? 이젠 움푹 파여서 쓸모없어진 나무도마 위에 그림을 그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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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의 한 장면.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1995)은 아버지와의 불화를 그린다. 영화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폴은 자신의 오르가슴 순간을 촬영할 만큼 에고가 강하다. 그런 그에게 오랜 시간 연이 끊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누나에게 이끌려 억지로 병원을 찾지만 아버지와 마주한 그는 도망친다. 그리고 몰래 다시 병실을 찾아 혼수상태의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복수라도 하듯이 죽어가는 얼굴과 몸을 마구 찍어댄다.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하던 그는 아버지가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사진에서 자신에게 향했던 아버지의 눈을 도려낸 뒤 그 사진을 마스크처럼 쓴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포개진 자신을 거울 앞에 비춘다. 얼마 후 장례식에조차 나타나지 않은 폴에게 누나가 아버지의 유품인 작은 상자를 건넨다. 그 안에서 아버지가 어린 폴을 안고 다정하게 입맞춤하는 사진이 나온다.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폴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내가 모르는 내 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는 당신이 나오지만, 정작 ‘언제-어디서-왜’ 찍혔는지 모를 것이다. 당신의 기억이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유년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주로 앨범 앞부분에 꽂힌 그 사진들을 당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건 누군가 대신 기억하고 이야기해줬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 카메라를 향하며 조금씩 알게 되었듯이, 폴 또한 아버지를 원망하던 카메라가 아이에게 향할 때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해피엔딩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모르는 내 사진’ 속 장면과 순간을 나 대신 기억하는 누군가 있다는 걸 무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에 남은 사진이 나를 살뜰히 기억했다는 표시로 반짝인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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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나무박스에 아크릴펜(35×47㎝)

 

폭염에 습도도 높아 불쾌지수가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중교통에서 다른 사람과 살짝만 닿아도 짜증이 납니다. 다른 사람의 체온, 냄새, 축축함이 짜증 나게 합니다. 마음속으론 막말을 하고 밀쳐버리지만, 현실에선 최대한 다른 사람과 몸이 안 닿게 웅크리고 땀을 닦으며 흔들흔들 목적지로 향합니다. 이제야 여름이 시작인데 벌써부터 더위에 지쳐 힘을 못 쓰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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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튜니티가 바라본 자신의 궤적 (C)NASA/JPL-Caltech/Cornell University

누군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을 빌리면 그곳엔 아무도 없고, 사방엔 온통 모래뿐이다. 막막한 지평선을 바라보면 그의 고된 모험이 뚜렷한 궤적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상상이지만, 온당치 않은 일이다. 화성탐사 로봇이 찍은 사진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2003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화성탐사 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우주로 보냈다. 화성에서 물과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그들에겐 4쌍의 입체 카메라, 광각/어안 카메라가 장착됐다. 당초 3개월 정도 작동하리라 예상했지만, 스피릿은 무려 2011년 5월까지 작동됐고, 놀랍게도 오퍼튜니티는 현재까지 임무 수행 중이다. 두 로봇이 지구로 전송한 수십만 장의 사진 중에는 자신의 궤적을 바라보는 장면도 있다. 일교차가 100도를 넘는 화성의 겨울을 견디고, 모래폭풍과 사구에 빠진 위기에서 탈출한 일화를 떠올리면 그 사진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스스로 재부팅해 시스템을 연장한 일화까지 더해지면 그 궤적은 적막하게 눈물겹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그 사진이란 결국, 기계의 프로그램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구에서 입력한 명령어를 수행한 것 이상의 의미는 과하지 않을까. 어쩌면 사진마다 그 둘레에는 아름다움이나 눈물겨움을 장전시키는 크고 작은 신화들이 에워싸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그 모든 걸 걷어내고 맨눈으로 바라본 사진은 그저 납작한 표면일 뿐이다. 그 서늘함과 적막함은 가공된 신화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지금도 오퍼튜니티는 매일 아침 태양이 전지판을 비추면 잠에서 깬다. 그리고 누가 응답하지 않더라도 지구로 신호를 보낸다. 이를 아름답고 눈물겹게 여기는 건 내 생각과 감정이 단지 신경세포와 호르몬에서 비롯되지 않으리라는 투박한 믿음과 통한다. 스피릿, 오퍼튜니티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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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를 나와 이태원 방향을 바라보면 도로를 가로지르는 아치 조형물이 나를 맞이한다. 아치 옆으로 나 있는 우측의 사잇길로 방향을 틀어본다. 자연스레 형성된 나지막한 경사로를 따라가면 잠시 후 리움에 다다른다. 주출입구 우측으로 목재 데크의 넓은 열린 공간이 눈길을 끈다.     

 

중앙에 위치한 인도 출신의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작품 ‘큰 나무와 눈’은 방문객의 발길을 열린 공간으로 안내한다. 자신이 애독하던 릴케의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였다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자신들의 형상에 다른 구체의 형상이 반사되어 수많은 구체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다.

 

2004년에 개관한 리움은 설립자의 성인 Lee와 미술관을 뜻하는 영어의 어미 -um을 합성한 용어란다. 이 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작품들이지만 세계적인 건축가 3인의 건축 작품이 한 장소에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그들이다.

 

중앙에 있는 라운드 형태의 벽돌조 건물이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마리오 보타는 벽돌이나 석재를 외장재로 주로 사용한다. 강남대로에 있는 교보타워나 노원역에 있는 교보생명 빌딩이 그의 작품이다. 리움에서는 직육면체와 역원추형이 결합한 형태로 디자인하였다. 역원추형은 도자기 등 고미술품 전시공간이 연상되는 도자기 형상의 이미지다.

 

오른쪽의 현대미술관은 장 누벨의 작품이다. 두꺼운 판을 여러 개의 큐빅들이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검은색의 녹슨 스테인리스와 유리의 마감은 뒤쪽 마리오 보타의 연붉은 테라코타의 색과 질감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큐빅의 형상은 실내공간들을 여러 개의 작은 공간들로 나누어 놓는다. 대부분 추상작품들인 실내 작품들은 유리창 너머의 넝쿨 식물이나 나무 등의 사실적인 자연과 대비되면서 멋진 대조를 이룬다.

 

왼쪽 길가에 위치한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렘 쿨하스의 작품이다. 실내 중앙에 모서리를 경사지게 깎아 올린 블랙 콘크리트 매스는 강한 역동성을 연출한다.

 

리움은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3인의 건축언어를 동시에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곳이어서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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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외국인 지팡이, 1993(1994년 스톡홀름에서 작품을 시연 중인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방인의 기분을 느껴보지 않는다면, 이방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1943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규범 사이 긴장감, 그 긴장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했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고민하며 작업하던 그는 1977년 캐나다로 이주한 후 이방인으로 살면서 사회 안에서 상처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외국인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분위기, 이방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억압하는 현실을 본 작가는 이방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구를 만들어 ‘문화적 보철기구’라고 명명했다.

 

‘외국인 지팡이’는 이방인이 사용하는 일종의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의사소통 기구다. 작가는 이 지팡이 안에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주민들은 지팡이 속에 넣은 자신의 물건들을 매개로 자신을 소개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보디츠코에게 말하기는 공동체 일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지만, 이방인들은 공공의 장소에서 자신들만의 목소리나 이미지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투표권도 가질 수 없는 이방인들은 발언권을 박탈당한 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지만, 침묵하기에 길들여져 있었다. ‘외국인 지팡이’는 이방인들에게 ‘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그들이 침묵의 늪에서 한 발짝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렇게 보디츠코의 작업은 이주민들이 그들 스스로 가장 강력한 억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각성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적 보철기구가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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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마클레이, 시계, 2010, 비디오 설치, 24시간 상영


“우주는 신성한 존재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시계와 비슷하다.” 르네상스 시대 천문학자이자 점성학자였던 케플러는 우주의 질서에서 시계의 시스템을 보았다. 이 시기, 시계태엽 장치와도 같은 우주에서 신은 뛰어난 시계공이 아니겠느냐는 발언도 등장했다. 해시계, 물시계처럼 기존에 시간을 알려주던 장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계 시계의 등장은 유럽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근대산업을 견인하는 중요한 동력으로서 과학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기계 시계가 내는 소음은 사람들이 시간을 물리적으로 인식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계산하고 계량화하기 시작했다.

 

보는 것을 들을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바탕에 두고 작업을 풀어온 크리스찬 마클레이는 인류 문명사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합리성의 개념을 개인에게 탑재하는 데 일조한 시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멜로, 액션, 스릴러, 공상과학 영화 및 유럽 예술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5000여편의 영화 중 시계 또는 시간을 언급하는 대화가 등장하는 클립과 컷을 찾아 24시간을 연결했다.

 

작품 ‘시계’는 실제 24시간 동안 상영하며, 장면이 지시하는 시각과 실제 관객이 만나는 시각이 일치하여 흐른다. 극장에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서로 다른 서사 구조에서 역할을 수행하던 장면이 ‘시계’를 매개로 완전히 다른 맥락에 놓이면서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시간을 편집하여 서사를 구축하는 영화가 예술가 시계공의 손을 거쳐 새로운 시계태엽 장치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 동참하는 이들은 새로운 시계가 지시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둘러싼 물리적 시간의 소리에 집중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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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매퀸, 애시, 2002~2015, 투채널 비디오, 포스터, 20분31초 @스티브 매퀸


늘 당연하게 흘러갈 것이라 믿고 몸을 맡기는 일상은, 문득 당연한 듯 믿음을 배반한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생이 의미를 갖는다는 말은 기대를 빗나가는 삶을 납득하기 위한 주문일지도 모른다. 배신의 가능성을 품은 일상은 다른 이야기를 숨긴 채 표표히 지나간다.

 

2002년 스티브 매퀸은 카리브해 그레나다에서 비디오 작품 ‘카리브 리프’를 촬영했다. 1651년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싸우던 카리브인들이 ‘카리브 리프’라고 불리는 소튜 마을 절벽에서 몸을 던졌던 역사와 이곳의 현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10여년이 흐른 뒤 다시 그 지역을 찾은 매퀸은 당시 촬영을 위해 섭외했던 청년 애시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작업에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필름에 담은 지 두 달 뒤, 애시가 마약 문제에 연루되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는 청년의 짧은 생을 애도하며 10여년간 묻어두었던 장면을 꺼내 ‘애시’를 제작했다.

 

공중에 매단 스크린 양쪽으로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주는 이 작업의 한쪽 화면에서는 건강미 넘치는 젊은이가 바다 위 보트 끝에 앉아 미소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와 녹색 섬, 싱그러운 청년의 미소로 가득한 이 영상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홈비디오 카메라로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리운 공기와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관객은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동료들의 음성과 함께 애시의 묘비명을 새기고 무덤을 조성하는 지난한 과정을 대면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삶과 죽음의 장면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단면을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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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카디프, 조지 뷔레스 밀러, 갈림길의 도시, 2014, 영상설치


걷기는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건만, 인간이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걷기는 일상에서 멀어졌고, 세계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 닿고 싶다면, 자동차의 속도에서 내려와 걷기가 만들어주는 리듬에 몸을 맡길 필요가 있다. 인간 신체에 최적화된 속도로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걷기는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철학이기도 했다. 재닛 카디프는 캐나다 앨버타의 밴프 센터에 머물던 1991년, 처음 걷기 작업을 시작했다. 출발은 느슨했다. 관객은 12분간 흘러나오는 작가의 내레이션에 귀를 기울인 채 숲을 거닐면 된다.

 

걷기 시리즈는 회를 거듭하면서 공간 탐색의 방법을 확장시켜 나갔다. 특히 2013년 카셀도큐멘타와 2014년 시드니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업은 아이팟을 이용하여 가상과 현실 세계를 절묘하게 혼합시켜 주목을 받았다. 시드니비엔날레 출품작이었던 ‘갈림길의 도시’는 보르헤스의 소설 <갈림길의 정원>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실시간 도시를 배경으로 카디프와 조지 뷔레스 밀러는 거리가 기록하고 있는 역사를 떠올리면서 걸었을 때 발견할 법한 가상의 사건, 공연 및 음악, 경험 등을 시나리오에 배치했다.

 

영상이 담겨 있는 아이팟과 헤드셋을 빌린 관객은 내레이션이 인도하는 동선을 따라 항구, 분주한 거리, 계단을 올라가며 외로운 골목길을 만난다. 그곳에서는 문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퍼포먼스는 지금 현재 이곳 내 눈앞이 아니라, 과거 언제 이곳에서 있었던 퍼포먼스로, 화면 속에만 있다. 비디오의 가상성과 현실 세계의 구체성이라는 두 가지 현실이 혼합된 상황에서 혼돈을 느끼는 관람자는 자신이 걷고 있는 공간, 걷는 행위, 내가 머무는 시간의 의미를 돌이켜본다. 걷기가 선사하는 낯선 순간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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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 기억의 잡초, 2016, 혼합재료, 가변설치


‘기억의 궁전’은 장소에 기억을 심는 기술이었다. 사람들이 장소에 관한 특별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기대고 있는 이 기억술은 책이 없던 시절, 구두로 정보를 전달해야 했던 사람들이 애용했다. 방법은 이렇다. 내가 생생히 떠올릴 수 있는 장소와 동선을 생각한 후 동선에 따라 기억해야 할 정보를 이미지화해서 배치한다. 기억을 꺼내고 싶다면 이 궁전에 발을 들인 뒤 동선을 따라 걸으면 된다. 궁전에 들어서지 않으면 그 기억은 다시 만날 수 없다. 기억하기 위해 본인이 만든 공간 안으로 반드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 이 기억술의 치명적인 단점이긴 하지만, 기억을 오래 묶어 두기에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이 기술을 익힌단다.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사용했고, 셜록 홈스도 기억의 궁전을 여러 채 지었다 했다.

 

기억의 주인이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궁전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공간 곳곳에 새겨 넣었어도 쓸모를 다한 기억이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공간에서 파생된 기억, 경험, 감정을 표상하는 작업에 집중해 온 홍범에게 기억은, 한때 다른 이의 인생이 흘렀을 곳, 어떤 생명이 성장하고 소멸했을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 공간을 가득 메워버리는 잡초 같다.

 

아주 선명하게 떠올릴 수는 없을지라도 특정 공간에서 시간을 담고 남아 있는 기억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이미지들과 연결되고 증식하면서 유기체처럼 자라 공간을 뒤덮는 것 같다. 홍범은 이런 가정 아래, 공간과 그것을 인식하는 관찰자 사이 어디에선가 자생하고 있을 알 수 없는 기억들을 잡초의 형태로 표현했다. 그렇게 원주인의 기억망을 벗어난 이 잡초들은 공간에 영롱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새로운 기억의 표상을 새기는 중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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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Kertesz, 깨진 유리 원판, 1929 성곡미술관 제공


그도 예술가가 되기 전 고갱처럼 증권 거래소에서 일했다. 시련을 피해 파리에 정착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이라는 점에서는 로버트 카파와 같은 운명을 지녔다. 다만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로버트 카파처럼 참상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늘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산보했지만 결정적 순간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이 두 명의 사진가보다 덜 주목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로버트 카파와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를 문제적 작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조용히 그러나 깊게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던 앙드레 케르테츠의 작품을 성곡미술관에서 소개하고 있다.

 

케르테츠가 파리에 도착하던 1925년은 최초의 소형 카메라인 라이카가 출현한 해이기도 하다. 케르테츠는 이 소형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임으로써 공간을 재구성하고 사물의 이면을 발견하고자 했다. 가벼운 카메라는 그의 눈을 대신해 파격적인 구도를 만들어 내고, 무심한 일상도 손쉽게 포착해 냈다. 뉴욕 모마의 사진부장 존 사코우스키가 그를 소형 카메라의 미학을 탐색했던 사나이라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치 깨진 유리창을 통해본 것 같은 이 몽마르트 풍경은 소형 카메라가 아닌 유리 원판으로 얻어낸 사진이다.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그가 몇 년 후 파리로 돌아와 자신의 이 깨진 원판을 발견했다.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을 바꿔 인화를 하니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실제로 그의 다른 대표작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오히려 그래서 우연과 일탈을 두려워하지 않은 케르테츠의 면모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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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72×60㎝)

거실에 걸어두고 싶은 예쁜 그림 하나 그려달라 합니다. 꽃그림 같은. 그래서 봄에 양귀비 꽃밭에서 찍어둔 사진으로 꽃 그림을 그려 봅니다. 멀리서 볼 땐 초록 들판에 하늘거리는 빨간 양귀비꽃이 너무 예뻤는데, 확대해서 보니 의외로 징그럽습니다. 그런데 그림도 비슷합니다. 멀리서 보면 멋진 거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붓 자국, 물감 얼룩, 먼지 티끌 등 지저분합니다. 그래도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사진보다 그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런 어설픈 붓 자국과 얼룩들이 모여서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그림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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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61×72㎝)


별 눈 아가씨를 그리고 난 뒤 시선 방향이 허전해서 별 눈 아저씨도 그려 보았습니다. 그림을 나란히 놓으니 서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한 쌍이 되었습니다. 혼자보단 둘이 좋고, 둘보단 셋, 셋보단 넷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렇게 혼자였다가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제 항상 서로를 바라보며 예쁜 사랑 이어 가기를….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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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앞 도로에는 2004년 완공된 멋진 아쿠아 육교가 있다.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란 프랑스 건축가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 예술원 건축대상을 수상한 후 한국의 고속철도 설계에 참여하면서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에 정착하면서 이 아쿠아 육교를 비롯하여 대명비발디파크 소노펠리체, 서래마을 프랑스 학교, 여수세계박람회 프랑스관 등 한국에서도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현재 주한 프랑스상공회의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 육교를 디자인하기에 앞서 2002년 완공된 고속터미널 후면에 위치한 ‘센트럴 포인트 육교’를 디자인하였다.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타워를 이용하여 케이블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사장교(斜張橋)였다. 독특한 형태뿐 아니라 밤이 되면 주변의 교통상황에 따라 조명을 달리하는 디자인으로 육교를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 육교가 크게 인기를 얻게 되자 예술의전당 앞 육교 디자인도 맡게 된다. 그는 예술의전당 앞 남부순환도로에 커다란 원반 모양의 구조체를 만들고 여기에서도 건너편 계단에 이르기까지 기둥 없이 케이블을 이용한 사장교를 설계하였다. 큰 원반의 아래쪽에는 작은 원형의 통행로가 마련되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큰 원반에서는 겨울을 제외한 3계절에는 시원한 폭포가 유리면을 타고 쏟아져 내려온다. 야간에는 멋진 조명으로 육교의 예술미가 극적으로 표현된다. 예산이 일반 육교보다 많이 들기는 하였지만 그 예술적 가치로 서초구의 명물이 되었고 국내에서는 육교가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귀중한 선례가 되었다. 이후 국내의 많은 곳에서 독특한 미를 과시하는 육교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는데 이 아쿠아 육교의 역할이 컸음은 물론이다. 육교를 비롯한 가로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로서의 건축가의 역할이 세인들에게 크게 알려진 사례이기도 하다.

 

날이 점차로 더위의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원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이 아쿠아 육교 유리 원판 밑으로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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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61×72㎝)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 우주가 보입니다. 은하수도 보이고 반짝이는 샛별도 있고, 이름 모를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별들 가운데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의 눈 속에도 우주가 있고 그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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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Rodchenko, 비상 사다리, 1925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소비에트 혁명과 함께 등장한 예술 경향이다. 사회주의를 실천해 낼 수 있는 독자적인 예술 철학으로 등장해 독일의 바우하우스, 네덜란드의 추상미술주의인 데스틸 운동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무렵 아방가르드를 추구한 서구의 문화, 예술 장르가 모두 구성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으나, 특히 건축과 디자인 못지않게 사진은 구성주의의 중심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사진이 소비에트 사회에서 맡았던 임무는 단순한 시각 무기 이상이었다. 당시 사진은 가장 혁신적인 기계적 산물이었고, 부르주아 예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전위적인 실험 양식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식의 변화는 눈을 대신한 카메라를 통해 지각될 수 있었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아트스페이스 제이에서 구성주의의 핵심 인물 알렉산더 로드첸코의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예술을 통한 혁명을 꿈꿨던 전방위적 예술가로서 로드첸코는 사진에서도 파격적인 시도를 아끼지 않았다. 아래쪽에서 위를 향해 찍는 로 앵글이나 그 반대의 하이 앵글 또는 과감한 클로즈업을 통해 역동성을 강조하고 대상의 실존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걸리는 고상한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포스터, 잡지, 신문 등 다양한 수단과 만나기 위해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꿈꿨던 것은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그 형식이 담아내야 할 시대상이었다. 관념이 아닌 사실, 가상이 아닌 실재를 통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묻는 해묵은 질문이 존재하지만, 사진은 이미 100년 전 차원이 다른 이미지 생산의 수단으로서 예술 전반에 혁명을 일으키며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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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 고요 연작 중 충청북도 단양, 1998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정식의 ‘고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팔순을 맞이한 그의 사진 세계는 추상 사진을 향한 질문과 답 찾기의 연작이었다. 어떤 대상이 지닌 구체적 지시성을 걷어낸 채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려는 사진적 시도는 꽤 골칫거리다. 대상에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기계 이미지가 어떻게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의 초기 연작 ‘나무’와 ‘발’은 각 대상이 지닌 구체적 형상에서 전혀 다른 형태를 발견하려는 시도였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댄 식물이 아니라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에로틱한 신체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신체로서의 발은 피부의 질감과 다양한 곡선을 통해 또 다른 신체 기관을 연상시키며 지시성을 탈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형상을 찾아내는 것이었을 뿐 완벽한 추상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은 아니었다. 작가가 훗날 ‘쓸모없는 짓이자 헛된 짓’이라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철학이 집약된 ‘고요’ 연작은 이 일련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다. 대상에게서 다른 조형성을 발견하려는 시도 또한 추상이 아닌 또 다른 의미를 덧입히는 과정이라 판단한 그는 대상 자체를 관조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는 점에서 초기의 작업보다 훨씬 주관적이기도 하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은 대상에 ‘고요’를 발견하고자 했던 한정식의 작업에서 시각이 아닌 청각과 미각의 세계를 접목한다. 고요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자 맑고 순한 담(淡)의 경지다. 모든 자극적인 요소들을 걷어낸 그 단계에서 이르러 비로소 대상의 본질이 보이는 추상의 미학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유독 리얼리즘 사진의 경향이 강했던 우리나라 사진 풍토를 감안하면, 한정식이 추구해온 사진의 형식에 대한 집요한 실험은 대상의 본질뿐만 아니라 사진의 본질을 향한 확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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