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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43:38 별 눈 아가씨
  2. 10:41:23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3. 2017.06.16 고요
  4. 2017.06.16 상큼함
  5. 2017.06.15 운현궁 양관
  6. 2017.06.09 즐거운 일기
  7. 2017.06.09 우주 꿈
  8. 2017.06.05 오래된 잠수
  9. 2017.06.05 이름을 갖지 못한 기억
  10. 2017.06.05 정복
  11. 2017.06.05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12. 2017.06.02 관계도
  13. 2017.06.02 거리의 타임캡슐
  14. 2017.06.01 운현궁
  15. 2017.05.26 빈 공간
  16. 2017.05.26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17. 2017.05.19 바바라 클렘
  18. 2017.05.19 몬드리안풍
  19. 2017.05.18 경희대의 벚꽃 풍경
  20. 2017.05.12 물 위의 집

캔버스에 아크릴(61×72㎝)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 우주가 보입니다. 은하수도 보이고 반짝이는 샛별도 있고, 이름 모를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별들 가운데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의 눈 속에도 우주가 있고 그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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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Rodchenko, 비상 사다리, 1925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소비에트 혁명과 함께 등장한 예술 경향이다. 사회주의를 실천해 낼 수 있는 독자적인 예술 철학으로 등장해 독일의 바우하우스, 네덜란드의 추상미술주의인 데스틸 운동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무렵 아방가르드를 추구한 서구의 문화, 예술 장르가 모두 구성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으나, 특히 건축과 디자인 못지않게 사진은 구성주의의 중심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사진이 소비에트 사회에서 맡았던 임무는 단순한 시각 무기 이상이었다. 당시 사진은 가장 혁신적인 기계적 산물이었고, 부르주아 예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전위적인 실험 양식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식의 변화는 눈을 대신한 카메라를 통해 지각될 수 있었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아트스페이스 제이에서 구성주의의 핵심 인물 알렉산더 로드첸코의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예술을 통한 혁명을 꿈꿨던 전방위적 예술가로서 로드첸코는 사진에서도 파격적인 시도를 아끼지 않았다. 아래쪽에서 위를 향해 찍는 로 앵글이나 그 반대의 하이 앵글 또는 과감한 클로즈업을 통해 역동성을 강조하고 대상의 실존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걸리는 고상한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포스터, 잡지, 신문 등 다양한 수단과 만나기 위해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꿈꿨던 것은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그 형식이 담아내야 할 시대상이었다. 관념이 아닌 사실, 가상이 아닌 실재를 통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묻는 해묵은 질문이 존재하지만, 사진은 이미 100년 전 차원이 다른 이미지 생산의 수단으로서 예술 전반에 혁명을 일으키며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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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 고요 연작 중 충청북도 단양, 1998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정식의 ‘고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팔순을 맞이한 그의 사진 세계는 추상 사진을 향한 질문과 답 찾기의 연작이었다. 어떤 대상이 지닌 구체적 지시성을 걷어낸 채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려는 사진적 시도는 꽤 골칫거리다. 대상에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기계 이미지가 어떻게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의 초기 연작 ‘나무’와 ‘발’은 각 대상이 지닌 구체적 형상에서 전혀 다른 형태를 발견하려는 시도였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댄 식물이 아니라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에로틱한 신체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신체로서의 발은 피부의 질감과 다양한 곡선을 통해 또 다른 신체 기관을 연상시키며 지시성을 탈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형상을 찾아내는 것이었을 뿐 완벽한 추상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은 아니었다. 작가가 훗날 ‘쓸모없는 짓이자 헛된 짓’이라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철학이 집약된 ‘고요’ 연작은 이 일련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다. 대상에게서 다른 조형성을 발견하려는 시도 또한 추상이 아닌 또 다른 의미를 덧입히는 과정이라 판단한 그는 대상 자체를 관조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는 점에서 초기의 작업보다 훨씬 주관적이기도 하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은 대상에 ‘고요’를 발견하고자 했던 한정식의 작업에서 시각이 아닌 청각과 미각의 세계를 접목한다. 고요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자 맑고 순한 담(淡)의 경지다. 모든 자극적인 요소들을 걷어낸 그 단계에서 이르러 비로소 대상의 본질이 보이는 추상의 미학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유독 리얼리즘 사진의 경향이 강했던 우리나라 사진 풍토를 감안하면, 한정식이 추구해온 사진의 형식에 대한 집요한 실험은 대상의 본질뿐만 아니라 사진의 본질을 향한 확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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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수채(30×20㎝)


칙칙한 도시에서 갑자기 상큼함이 느껴집니다. 저 멀리서 꽃밭이 보입니다. 무채색 건물과 칙칙한 사람들 속에서 상큼한 꽃무늬가 눈을 맑게 만들어 줍니다. 바람이 부니 바스락거리며 꽃잎이 날아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상큼한 꽃향기가 더운 여름 쉰 땀 냄새 속에서 코를 맑게 만들어 줍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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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국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상가 방향으로 내려오면 왼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운현궁 담장을 만나게 된다. 흥선대원군의 집이었던 이 운현궁 뒤편에는 한옥과는 대별되는 밝은 색의 서양 르네상스풍의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운현궁 양관(洋館·양옥집)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최근 TV 드라마 <도깨비>의 주요 무대로 활용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드라마에서 공유와 이동욱이 함께 살고 있는 도깨비의 집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운현궁 양관이니 운현궁에서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운현궁 안마당에서 노락당 뒤쪽을 바라보면 측면 상부만 나무에 가려진 채 살짝 보이는 정도이다. 게다가 운현궁 뒤쪽의 후정은 높은 담으로 막혀 있어서 운현궁에서 양관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이 건물을 만나기 위해서는 운현궁 아래쪽 덕성여대 운니동 캠퍼스의 정문을 이용해야만 한다.

 

 

운현궁 양관은 1912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의 왕족을 회유하고 감시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에게 지어준 것이다. 아들이 없었던 이준용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차남 이우를 양자로 삼는다. 이후 이준용이 죽자 양자인 이우가 양관을 물려받게 되고 이우는 이 양관에 살면서 일본군 장교로 태평양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일제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며 조선의 왕족을 군에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11세에 볼모가 된 이우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사망 직전 일본군 고위 장교의 위치까지 올랐다. 이 건물은 1946년경 김구 선생이 2층 사무실을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다. 해방 이후에 생활이 어려워진 이우의 후손은 1948년 이 건물을 덕성학원에 팔게 된다. 운현궁이 아닌 덕성여대를 통해야 이 건물을 볼 수 있게 된 이유이다. 덕성여대에서는 이 양관을 법인 사무국으로 사용해 오고 있었는데 요즘은 1층 실내를 교육 목적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 주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포함한 특수대학원이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배너의 글귀는 애써 이 건물을 찾아온 방문객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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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해피투게더 연작 중, 옥선&랄프, 2002

시인 최승자는 ‘즐거운 일기’라는 시를 썼다. ‘오늘 나는 기쁘다. 어머니는 건강하심이 증명되었고 밀린 번역료를 받았고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받았으므로.’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무사함, 말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망감을 그녀의 시에서 읽어낸다. 그것도 처음으로 여자가 자기 현실을 여자의 목소리로 쏟아냈다는 커다란 의미 부여와 함께. 1980년대 초가 처한 시대의 우울을 내세우는 대신 스스로의 일상을 조목조목 고백하는 최승자의 목소리는 담담해서 더 오래도록 아리다. 시인의 그 독백 이후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우리의 일기는 얼마만큼 즐거움에 다가섰을까.

 

최승자의 시에서 제목을 빌려온 서학동사진관의 ‘즐거운 일기’는 5명의 여성 사진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다. 그것은 최승자의 시만큼이나 어떤 수사도 없이 담백하다. 여성 작가라는 단서 외에 최근 뜨거운 페미니즘 논의에 대한 특별한 입장도 밝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1세대 여성주의 사진가로 꼽히는 박영숙의 강렬하고 선언적인 작품과 일상을 파편처럼 기록한 20대 황예지의 대비만큼이나 다섯 작가의 결은 개성 있다. 외국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가족의 정체성, 그 사적 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까지를 냉정하게 주목하려 했던 김옥선의 ‘해피투게더’는 여성이 카메라를 스스로에게 돌렸던 시발점으로서의 공감대와 상징성을 가진다. 반면 영화배우 봉태규와의 결혼 생활을 일기처럼 소개함으로써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패션사진가 하시시 박의 일상 사진들은 어쩌면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묘한 설렘과 동경을 유발한다. 주제를 강요하지 않은 전시는 오히려 사진을 삶의 언어로 삼은 주체로서의 여성을 훨씬 주목하게 만든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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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재미있는 SF소설책을 읽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바닷속과 우주를 누비고, 미래와 과거, 다른 차원의 평행 우주를 여행하며 수많은 모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꿈을 꾼 탓인지 잠을 잔 거 같지도 않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현실에서 잠든 시간은 6시간이지만, 꿈속 시간은 무한대이니 그 시차 때문에 이렇게 피곤한 것일까요? 오늘 밤에도 다시 우주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요? 아직 해결할 일이 남아 있는데….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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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애, 오래된 잠수, 2016, 장지에 아크릴릭, 116.7×85㎝


세상에 나오면, 그 다음에는 늙어가는 일만 남는다. 어린 것과 젊은 것과 늙은 것이 공존하는 시간 속에서 세상 모든 것들은 태어난 뒤 줄곧 처음을 경험한다. 이 땅의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간다. 여기 머물고 있는 존재라면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유사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하면서 늙고 병들고 사라진다. 두꺼비에게 헌집을 주고 새집을 받듯, 늙은 것은 새것에게 자리를 내주고 흐릿해진다.

 

박주애는 과거를 품고 있는 현재의 공간을 서성이면서 ‘폐지를 줍듯’ 늙어가는 것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관찰하는 중이다. 살펴보니, 사람이든 집이든 돌이든 바람이든 사는 것은 다 비슷한 것 같다. 관계는 관계로 이어져 있고, 이것은 저것으로 대치되며, 새것은 그을려졌다. 사라지는 것은 어쩐지 애틋했다. 그것이 나를 둘러싼 보통의 삶이었다.

작가는 추억으로 그을린 풍경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만 품고 사는 침묵하는 노인의 회색 눈빛을 보았다. 그들이 늙어가는 동안 도시에는 젊음이 늙음의 자리에 들어섰다. 할머니의 늙은 집이 어느 순간 담장만 남겨둔 채 지워졌을 때, 작가는 자신의 추억이 절단되는 기분이었다. 기억을 수채 구멍에 콸콸 버리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상실감은 흐릿해졌지만 할머니 집이 있던 동네를 지날 때면 잠겨 있던 추억이 떠올랐다.

 

작가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바다 위로 오래된 지붕을 둥실 띄웠다. 인간과 비인간, 문명과 본능의 구분에서 자유로울 것만 같은 반인반수 생명체에게 그 바다를 내주었다. 녹색 식물은 지붕만 남은 오래된 집 주변에 생명의 기운을 채워나갔고 반인반수는 오르락내리락 잠수했다. 

 

그 시간의 바다에는 아직 오래된 것들이 머물고 있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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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풍경-노근리, 2016, 피그먼트 프린트, 110×150㎝


사슴이 숨어 있다고 전해지던 한 부락 마을을 사람들은 ‘녹은(鹿隱)’이라 불렀다. 신화 속에서 지상과 천상을 매개하는 신령스러운 영매이자 영생, 재생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사슴이 숨어 사는 곳이니, 그 마을의 기운은 상상 가능하다. 마을이 이름을 잃은 것은 일제강점기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노근(老斤)으로 개명당했다. ‘녹은’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름을 빼앗긴 마을에도 일상은 흘렀다. 앞으로는 서송원천이 흐르고 주변을 산들이 둘러싼 전형적인 농촌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터였다.

 

일상이 어그러진 것은 전쟁의 폭력성 때문이었다. 1950년 전쟁을 피해 길 떠나던 이들, 굴 속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을 향해 미군은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았다. 300여명이 살해당했다. 당시 미군은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한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단다. 사람이 죽었으나, 그 죽음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양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권력은 입을 꼭 닫았다. 집집마다 매년 떼제사가 벌어졌으나 진실을 만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해방 이후 정치적 혼란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공동체 붕괴라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업해온 고승욱은 노근리 쌍굴다리를 바라보았다. 벽 곳곳에 동그라미와 세모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유족들이 학살의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총알 흔적에는 ○, 총알이 박힌 흔적에는 △ 표시를 해나간 결과 완성된 기묘한 벽화였다. 전쟁 이후 공동체적 규범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공동체가 제공하던 사회적 안전망까지 무너져 내렸던 마을에서, 제대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지워질 것을 강요당한 이들이 남긴 학살의 흔적, 죽음에 대한 소리없는 증언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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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복에 대한 이야기, 정복욕에 대한 이야기다. 김웅현은 해마다 새해 결심을 하듯 산에 다녀왔다. 등산을 즐기는 그가 관련 서적에서 발견한 일종의 기념화 ‘체르마트 클럽룸’에는 알피니즘의 황금기에 활약한 산

 

김웅현, 안자일렌, 2011, 혼합재료, 가변설치


악인 18명이 그려져 있었다. 한 장의 이미지 속에서 그는 숭고한 도전정신을 발휘해 목숨 건 사투 끝에 산을 정복한 이들의 쾌감을 마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위험하다고 해도 오늘의 산행은 레포츠 정도의 무게감을 가질 뿐이다.

작가는 정복에 대한 역사적 위상과 대상이 변한 것을 알았다. 그는 등반뿐 아니라 세계대전, 산업개발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흔적들을 조사하면서 ‘정복’이라는 행위를 시대에 따라 다른 형식을 갖추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각적 클리셰라고 보았다. 거기에는 ‘신체’가 있었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오늘의 환경에서도 여전히 사건의 중심에는 신체가 있다. 원시시대처럼 수렵 채집에 육체를 사용하는 대신, 우리는 가상의 세계와 접속하기 위해 몸을 쓴다. 그 과정에서 신체는 어깨 결림, 체중 증가, 시력 저하를 경험한다. 몸이 마주하는 자극은 어떤 활동의 명확한 증거가 된다. 다만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우리 앞에 작가는 과장되게 클리셰를 반복하는 몸을 제시한다.

 

그는 1865년 난공불락의 마터호른산에 처음 오른 에드워드 휨퍼와 마터호른산 등반을 계획했다. 등반 코스를 구성하고 자금을 모았으며 클라이밍 강습을 받았다. ‘정복’ 행위에 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공부도 했다. 이후 그는 마터호른을 ‘휨퍼’로 분한 지인과 함께 등반했다. 힘겹게 절벽을 오르고 길을 걷는 여정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았다. 그들은 정상에 오를 때까지 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정복의 쾌감을 누렸다. 영상에는 모종의 성취감도 담겼다. 험난한 등반이 이루어진 장소는 대한민국 어디의 운동장, 가상의 마터호른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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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모든 인간은 늘 아주 단순한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 두려움을 무대에 올린다. 1974년 그는 미술관 중앙에 섰다. 옆에는 72개의 사물을 올려놓은 탁자가 있었다. 작가는 관객이 마음껏 그 사물 가운데 무엇이든 선택하여 작가에게 어떤 행위든 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 관객은 물을 선택하고, 꽃을 선택해 작가에게 전해주었지만 이내 가위로 옷을 자르고, 가시로 몸을 찌르고, 칼로 목을 베고, 피를 마시는 가혹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울라이, 연인들. 만리장성 걷기, 1988


고향인 베오그라드를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간 그는 울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우베 라이지펜을 만났다. 곧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함께 ‘관계의 에너지’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했다. 울라이가 아브라모비치의 가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아브라모비치가 활을 잡은 퍼포먼스 ‘정지에너지’는 상대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전제로 한 작업이었다. 둘 사이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화살은 곧바로 아브라모비치의 심장을 관통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공포의 감정은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사랑으로 바뀌었고, 작가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12년간 이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이별을 맞이했다. 이들은 3개월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만리장성 중간으로 걸어갔고 그 길에 만난 두 사람은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우리는 항상 삶 속에서 좋아하는 것만 합니다. 그래서 변하지 못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살다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해결책은 제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혹은 제가 모르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거나 그래서 실패를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신의 육체가 다다를 수 있는 한계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가가 단 한번 경험할 수 있는 퍼포먼스 끝에 만나는 것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다.

 

김지연|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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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45×53㎝)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을까요? 내가 아는 여자의 아는 남자, 엄마 친구 딸의 아들, 회사 선배 부인의 남동생 등. 소셜미디어에서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다가 전혀 다른 곳에서 아는 사람을 찾았을 때 반가움보다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정말 좁고, 조금만 건너 연결하다 보면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여주기 싫은 사람에게까지 내가 보이는 게 좀 꺼림칙하기도 합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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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 A Barnett, ‘Not In Your Face’ 연작 중


티셔츠의 계절인 여름이 오고 있다. 올해 예순일곱의 수전 바넷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뒷모습만 촬영한다. 사진가이면서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녀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낡은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선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아프리카 가면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여인의 뒷모습이 강렬해 셔터를 눌렀는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얼굴보다도 훨씬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표정이 제거된 그녀의 뒤태에서는 신체적 특징은 물론 취향과 감각, 시대의 유행까지 모두 드러나 있었다. 티셔츠는 그야말로 거리를 활보하는 변화무쌍한 메시지였던 셈이다. 그 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25개국에서 수천명을 촬영했다. 마치 관광객처럼 보이는 할머니로서의 연륜과 친근함은 어느 거리에서든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촬영을 거듭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라 여겼던 티셔츠에도 유행과 시대상이 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그녀가 살고 있는 뉴욕 거리에서 이 변화는 훨씬 뚜렷하다. 버락 오바마 시절에는 희망이라는 말들이 많이 등장했다면, 이제 그런 티셔츠를 찾기 힘들어졌다며 수전은 안타까워한다. 반전을 주장하는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 입던 자신의 젊은 시절에 비한다면, 지금은 무슬림이나 성소수자의 자유에 관한 메시지가 더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회색 티셔츠를 입은 채 ‘가난하고 못생겼어도 행복한’ 사내는 히피족의 해방감을 여전히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전유죄의 시대를 향한 이 소심한 저항이 길거리에서 더 많은 연대를 끌어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이 티셔츠는 인터넷에서 꽤 잘 팔리는 아이템이다. 불변의 철학이어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더디 변하는 탓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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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상가 방향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도로에 면해 기와지붕이 얹힌 담장이 도로를 따라 길게 드리워져 있다. 운현궁 기획전시실의 뒷면이기도 한 이 담장은 정문인 솟을대문으로 나를 인도한다.

 

운현궁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의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운현(雲峴)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천문을 맡아보던 관청인 서운관(書雲觀) 앞에 있는 고개(峴)라는 의미에서 따 왔다고 한다.

 

고종이 임금에 오르자 대원군은 자신의 집을 크게 확장하면서 궁이라 부르게 하였고 이후 이 집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다. 운현궁은 원래 지금의 교동초등학교와 삼환기업, 그리고 일본대사관까지 달하는 큰 규모였으나 권불십년 대원군의 몰락과 함께 점차 지금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현재는 입구의 앞마당과 대원군을 지키던 경비들의 처소인 수직사와 노락당, 노안당 그리고 뒤쪽의 이로당만 남아 있다.

 

매표소를 들어서면 남북으로 길다란 앞마당이 놓여 있다. 방금 무슨 공연이 있었는지 무대세트 제거작업이 한창이다. 마당을 지나 또 하나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을 만난다. 높다란 기단 위에 앉힌 사랑채에서 세상을 호령하던 세도가의 한옥 모습을 면면히 살펴볼 수가 있다.

 

노안당 안쪽의 중문은 뒤쪽의 노락당(老樂堂)으로 연결된다. 안채에 해당하는 노락당은 고종이 민비와 가례를 치렀던 곳이고 이후 고종이 운현궁을 들를 때 거처로 사용하였다. 안채가 고종의 처소로 사용되다보니 또 하나의 안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노락당 뒤쪽으로 실질적인 안채 역할을 하는 이로당(二老堂)이 지어졌다.

 

남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ㅁ자 형태로 되어 있는 이로당은 복도를 통하여 노락당과 이어진다. 이러한 복도는 일반 사대부 가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궁궐의 복도를 사대부 가옥에 적용한 것이니 당대의 흥선대원군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 중심가 큰 도로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도가의 위풍당당한 한옥 저택의 모습, 서울의 또 한가지 자랑거리가 아닐까?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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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펜 혼합재료 21×31㎝


캔버스, 나무상자, 나무패널, 하얀 종이, 모니터, 스케치북. 주변에 널려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려달라고 외쳐대는 거 같은데 무엇을 그려야 할지? 나무판에 하얀색 물감으로 배경만 칠해놓고 멍하니 보고만 있습니다. 아무거나 그려볼까 붓을 들다가도 하얀 배경에 압도당해 멈춰 버립니다. 잘못 시작했다가 망쳐 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그리고 싶어 한 그림인가? 잘 그릴 수 있을까? 나의 그림일까?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오늘도 제 주변의 빈 공간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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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블루하와이 리조트 제주도, 2016


홍진훤은 그날 이후 늘 이렇게 물었다. 그 많은 이들을 허망하게 바다에서 잃어버렸는데 국가도 사람도 침묵하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통음하듯 속으로 물었고, 4·16 기억저장소의 일을 거들면서도 물었다. 출판사 사월의눈이 그 질문을 이어받아 책을 만들었다.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도 함께 실은 사진소설집. 두 개의 제목을 합쳐놓다 보니 책 이름이 꽤 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서문에서 홍진훤은 아직도 질문을 멈추지 못했다고 밝힌다. 애초에 대답이 불가능한 사건이기에 그것은 영원한 질문만을 남길 뿐이다. 세월호가 뭍 위로 올랐지만 대답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그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없다.

 

홍진훤의 사진은 그들이 가려 했던 제주도의 수학여행길을 추적한다. 그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사진 속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없는 한에는 모두가 주변인이므로 남아 있는 자들 또한 등장하지 못한다. 진분홍 꽃이 생명으로 피어난 한림공원, 청와대 미니어처가 무기력해 보이는 소인국테마파크, 까마귀 한 마리만이 깃든 산굼부리까지 그곳은 모두 비어 있다. 흐린 날의 그 장소는 마치 연극 무대처럼 자꾸만 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식물원 안으로 왁자지껄한 수다가 떠다니고 멈춘 놀이기구가 정신없이 움직이곤 한다. 그 여정 끝에 도착한 숙소. 이름조차도 설렘 가득한 블루하와이 리조트. 가지런하게 개켜진 정갈한 침구는 여전히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 방은 그들이 그날 아침 떠나왔던 또 다른 빈방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제주도에서 출발한다 해도 원점으로 돌아오는 되돌이표. 그들의 부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멈출 수 없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홍진훤은 아직도 그 대답을 찾고 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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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Berlin, 1979 ⓒ Barbara Klemm, Institut fur Auslandsbeziehungen e. V.


대선 당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안희정의 볼 뽀뽀는 애교 있는 돌발 상황이었지만, 1979년의 이 장면은 정치인들 키스신의 대표 격이라 할 만하다. 당시 동독 정권 30주년을 기념한 자리에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은 진한 입맞춤으로 동맹국의 우정을 과시했다. 일명 형제들의 키스라 불리는 이런 입맞춤은 서구권 사회주의자들이 연대를 드러내는 상징적 방식이다. 프리랜서 사진가 레지스 보수의 클로즈업 사진과 함께 바바라 클렘의 이 사진은 당시 분위기를 전하는 역사적인 아이콘으로 꼽힌다.

 

바바라 클렘은 중도 우파 성향의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자이퉁’의 사진기자였다. 1959년 입사해 처음에는 사진 제판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바바라 클렘은 1970년 사진기자로 활동을 전환한 뒤 2004년 은퇴할 때까지 문화, 예술, 정치부를 누비며 굵직한 세계사를 기록했다. 특히 브레즈네프와 호네커의 뜨거운 동맹 키스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10년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그녀의 걸작으로 꼽힌다. 장비의 진화에 민감한 사진기자임에도 평생 흑백 필름 사진만을 고집한 그녀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덕분에 흑백 사진의 특유의 명암 대비는 물론이고, 긴박한 상화에서도 완결성 있는 구도를 추구한 사진가로 꼽힌다. 고은사진미술관이 회고전을 통해 포토저널리즘의 경계를 넘어서려 한 그녀의 궤적을 소개한다. 의욕이 넘치는 사진기자들은 많지만, 그들의 개성은 좀체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언론 풍토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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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 45×53㎝


몬드리안 그림이 갖고 싶어서 한번 흉내 내어 그려 보았습니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이것저것 다양한 색깔과 크기를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그림으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역시 대가의 그림은 쉬워 보이지만 그냥 그려지는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단순한 가로 세로 선과 몇 가지 색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또는 긴장하게 만들 수 있다니 참 부러운 재능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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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신문에 게재해 왔던 서울의 원고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신문에 싣지는 못하였지만 책의 분량을 보충하기 위해 얼마간 더 작성해 둔 원고도 있다. 대학 캠퍼스는 앞서 게재하였던 원고들로 마감하려 하였다. 그런데 지난 5월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화제가 된 대학이 있어 다시금 책 원고에서 끄집어내게 되었다.

경희대가 바로 그 대학이다. 문재인 대통령(법학 72학번)과 김정숙 여사(성악 74학번)를 동시에 배출한 대학이어서 요즘 이 대학은 큰 경사를 맞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는 벚꽃이 만발할 때면 벚꽃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그림은 벚꽃이 한창일 때의 캠퍼스 모습이다. 벚꽃이 만발한 캠퍼스 중앙의 본관과 그 옆의 중앙도서관, 그리고 뒤쪽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평화의 전당이 한데 어울려 멋진 4월의 풍광을 만들어낸다. 캠퍼스 중앙에 있는 본관은 장대한 스케일의 코린트 양식의 열주 위로 삼각형의 페디먼트(박공 모양)를 하고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고전주의의 엄격함을 상아탑에 적용하여 올바르게 교육하고자 하는 정신이 노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도서관과 언덕 위에 있는 평화의 전당은 첨두아치로 상징되는 네오고딕 양식으로 되어 있다.

 

캠퍼스의 주요 건물에 고딕 양식을 적용하여 중세시대의 도덕적이고 순수한 정신을 학문과 교육으로 이어보려는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고딕성당의 모양을 한 평화의 전당은 1999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개관한 4500석의 대규모 공연장이다. ‘문화 세계의 창조’라는 경희대의 창학이념은 경희대의 랜드마크이자 사립대학으로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연장을 탄생시켰다. 이들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을 한 많은 건물들이 서로 어울려 다양하면서도 통일감을 이루는 멋진 캠퍼스를 만들어낸다.

 

이런 멋진 대학에서 배출된 대통령 내외이니만큼 그동안 쌓인 국민 갈등과 산적한 대내외 문제들을 잘 풀어내 대한민국 전체에 멋진 벚꽃 풍경을 만들어내어 주길 기대한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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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펜, 아크릴 30×20㎝


미세먼지로 창문도 못 열어 덥고 답답한 집 안에 있으니 시원한 집이 생각납니다. 물 위에 지은 집은 좀 시원할까요? 집 앞 테라스에서 물에 발 담그고 낚시도 하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낮잠도 잘 수 있는 시원한 집. 모기와 벌레들만 없다면 정말 멋진 집이 될 거 같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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