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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19 탁구채
  2. 2018.10.19 강력한 열망
  3. 2018.10.15 버려진 신의 껍데기들
  4. 2018.10.12 순한 양아저씨
  5. 2018.10.12 80년생 아파트
  6. 2018.10.11 박세당 고택
  7. 2018.10.08 익숙함과 낯섦 사이
  8. 2018.10.05 아는 얼굴
  9. 2018.10.05 가을 전어
  10. 2018.10.01 초속 5센티미터
  11. 2018.09.28 동물원과 권총
  12. 2018.09.28 목마
  13. 2018.09.27 우저서원
  14. 2018.09.27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
  15. 2018.09.21 마주 앉기
  16. 2018.09.21 서울의 목욕탕
  17. 2018.09.17 다바왈라의 점심
  18. 2018.09.14 광대
  19. 2018.09.14 검은 장갑
  20. 2018.09.13 김포성당

탁구채에 아크릴(26×14㎝)

 

버려진 탁구채 한 쌍을 주웠습니다. 손때 가득 묻어있는 두 개의 탁구채. 한창때는 서로 땀을 뻘뻘 흘리며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경기를 했을 탁구채. 그러나 이제는 둘 다 흥미를 잃었는지, 아니면 한 사람이 흥미를 잃었는지 같이할 사람이 없어져 버린 손때 묻은 탁구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탁구처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사랑처럼 서로 주고받으며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그렇게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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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1899년 8월 어느 달 없는 밤, 해양생물학자 루이 부탕은 프랑스 남부 바뉼쉬르메르 지역의 바닷가에서 배에 짐을 싣고 있었다. 산소를 채운 커다란 나무통과 수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램프 등 온갖 장비를 싣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 대단한 해양탐사가 시작되는 낌새를 풍겼던 루이 부탕의 목표는 당연히 미지의 해양생물일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바닷속에서 연구한 대상은 바로 ‘사진’이었다.

 

에밀 라코비차, 1899년 ⓒ루이 부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중사진’이 바로 그날의 연구 결과다. 루이 부탕은 수심 50m에서 루마니아의 해양학자 에밀 라코비차를 촬영했다. “Photographie Sous Marine(수중사진)”이라고 쓰인 팻말을 든 모델과 촬영자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수심 50m에서 30분 동안 질소마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최신식 장비를 갖춘 현대의 스쿠버다이빙이라도 수심 50m에서는 3분 이내로 잠수 시간을 제한한다. 이를 감안하면 루이 부탕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그 무모함은 강력한 열망의 방증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낯설어서, 그 장면을 그대로 스케치하고 싶었다. 늘 바닷속에서 본 풍경을 수면 밖으로 건져내기를 갈망했다.” 루이 부탕이 했던 말에서 어떤 힌트를 얻는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달라져도 계속 사진을 찍는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말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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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어떤 연유로 신내림을 받고, 또 어쩌다 신과 소원해지는지 무당마다 다른 사연이 넘쳐나겠지만, 신기를 잃은 무당은 그간 당집에 애지중지 모셨던 ‘신상’을 내다 버린단다. 관상학에서 말하는 호상, 당대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얼굴을 담아 만들었다는 불상 등 세상의 좋다는 형상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짜깁기해 자신의 신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굿을 해 신령을 모셨을 테지만, 끝이 오면 의미와 정성, 시간을 쏟아부었던 형상들과 가차 없이 이별한다.

 

김형관, 눈부신 그늘, 2018, 혼합재료, 가변설치 경기도미술관 제공

 

그들이 버린 신의 껍데기가 현대인들의 그림자에 주목해온 작가 김형관의 손에 들어왔다. 영험함을 상실한 최영 장군, 산신, 벅수동자, 선재동자 상은 2012년 그의 개인전 전시장에 등장한 이후 창고에 잠들어 있다가 2018년 ‘경기천년 도큐페스타’의 전시, ‘경기 아카이브_지금,’에 다시 나타났다. 경기라는 이름이 탄생한 지 천년이 된 것을 기념하며 과거와 현재를 기억, 기록하고 미래 천년을 내다보는 이 행사는 경기상상캠퍼스 내 (구)임학임산학관에서 열리는 중이다.

 

참된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 극락정토로 가기 위해서는 반야용선을 타야 한단다. 기획자는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는 이 건물을 ‘반야용선’이라 명명하면서, 이 전시가 경기인의 꿈을 싣고 미래 천년 경기의 바다를 항해하는 하나의 용선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사물이며 공간이 의미를 입고, 버리고, 또 다른 의미를 얻는 일은 되풀이된다.

 

기획자는 작가와 협의하여 1층 입구에 설치하기로 했던 신상을 옥상 위, ‘반야용선’의 꼭대기로 올렸다. 한때 사람들의 지독한 기도를 받아야 했던 신상이라면, 여전히 ‘영물’일지도 모를 일. 공기를 떠돌던 신들이 문득 발견한 이 신상에 잠시 머물다, 기도의 목소리를 듣고, 또 홀연 떠날지 누가 알까.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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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0×43㎝)

 

주인 말 잘 듣는 순한 양아저씨가 있습니다. 이거 내일 아침까지 해라. 저거 네가 대신해라. 바쁘니 야근해라. 불만 있니 웃어라. 순한 양아저씨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 주인이 양아저씨 털을 다 깎아버리고선 이제 필요 없으니 그만 나가라 합니다. 순한 양아저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늑대들이 숨어 있는 찬바람 부는 허허벌판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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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나무들은 녹색 파도처럼, 아파트는 떠다니는 하얀 배처럼 보인다. 녹색 바다를 이루는 나무들은 아파트의 나이테 역할을 한다. 몸집의 크기로 아파트 연령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흔을 앞둔, 1980년생 둔촌주공아파트는 철거를 진행 중이다.

 

둔촌주공아파트, 2016년 ⓒCDAPT

 

오래된 아파트가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도시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변화해야만 도시는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 생애주기를 아파트 단지와 동기화한 이들에겐, 그저 ‘흔한 일’로만 단념할 수 없다. 이곳이 고향이자 기억의 뿌리인 80년대생 아파트 키드를 중심으로 둔촌주공아파트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사진을 찍은 최종언 또한 아파트 키드이자 아파트 덕후다. 트위터에서 ‘CDAPT’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찍은 아파트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CD’는 그가 살고 있는 창동의 약자이며, 우연한 계기로 아파트 단지를 순례하면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공통적으로 또는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와 풍경을 수집하고, 이를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분류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철거 예정일에 맞춰 사라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를 확인하는 그의 사진은 사적인 애호로 출발했지만, 국내 아파트 생활과 문화의 공적인 기록·기억으로 자리 잡기에도 손색이 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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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장암역 주차장 맞은편에는 하나의 판에 4개나 되는 문화재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서계 박세당 사랑채와 박세당 묘역, 노강서원, 석림사 등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판이다. 수락산 등산로이기도 한 계곡변 좁은 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노라면 계곡 건너편에서 고즈넉하게 계곡 쪽으로 긴 처마를 드리우고 있는 오래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박세당 고택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계곡 쪽에 위치한 출입구는 문이 잠겨 있어 고택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여 계곡과 고택의 지붕이 어우러지는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오르던 길을 잠시 멈춰서 본다. 도로가 등산로이다 보니 연변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간판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있어 고풍스러운 한옥의 풍광이 제 맛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등산객이 많지 않던 시절 이런 계곡에 접해 있는 한옥의 누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멋진 시 한 수가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이 고택의 주인이었던 서계(西溪) 박세당(1629~1703)은 32세 때 문과에 장원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맡아 일을 하다가 결국 학문적 신념 때문에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낙향하여 집필과 제자를 가르치던 그는 이곳 사랑채에서 농사 관련 저술인 &lt;색경(穡經)&gt;을 집필하여 실사구시의 사상을 피력하였다. 그의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저서 &lt;사변록(思辨綠)&gt;은 당대의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결국 ‘사문난적(斯文亂賊:못된 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몰리고 유배되는 등 힘든 말년을 보내게 된다.

 

서계 고택은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바깥사랑채만 남게 되었다. 관어정(觀魚亭)이라고 현판이 씌어있는 바깥사랑채 뒤쪽에는 전쟁 때 타고 남은 안채의 자재들을 모아 건립한 영진각(影眞閣)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서계와 부친 박정(朴炡)의 영정 2점이 모셔져 있다. 사랑채 앞쪽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이 장소의 세월과 품격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서 서쪽을 바라보노라니 도봉산의 위용이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종부 김인순씨(65)와 사학을 전공했다는 며느리의 손길이 부산하다. 영진각에 모신 두 분의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준비하느라. 정2품 이상의 선조를 모신 가문에서나 가능하며 4대가 지나도 영구히 위패를 사당에 두면서 지내는 제사라 한다. 문중이 모여들 마당에 설치된 많은 행사용 천막의 숫자에서 이 가문의 기풍이 느껴진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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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주, T.P.A(트리거, 펄스, 앰플리피케이션),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 안정주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다. 그 새롭고 낯선 것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일은 순간, 곧 익숙해진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쩌다 낯선 상황을 만난다 해도 “이 정도 낯섦쯤이야!” 하고는 과거의 경험을 응용하여 적용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능숙하게 패턴을 발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세상에 새로울 것은 별로 없다.

 

익숙해서 편안하거나 지루하거나. 그 쳇바퀴 안에서 평범한 일생은 흘러갈 것이다. 소소한 개인사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처럼 많은 이들의 삶이 얽혀 있는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점차 무감각해진다. 한번 자리 잡은 ‘익숙함’을 흔드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 안정주는 그 익숙함이라는 표피를 전혀 다른 감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또 다른 질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현실을 재발견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이러했던 작가에게, 굳이 한글을 만들고 굳이 중국과 다른 음의 기준 ‘황종’을 만든 세종대왕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안정주는 세종의 음악적 업적 안에서 음악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선을 다스리고자 했던 한 행정가의 도전을 보았다. 작가는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에서 모티브를 얻어, 비디오 안에서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정간보의 소리기호를 오디오 신시사이저에 입력하면, 소리는 트리거(방아쇠)가 되어 진동을 일으키고, 증폭·변형되면서 자연발생적인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이 음악이 또 하나의 신호가 되어 ‘트리거, 펄스, 앰플리피케이션’의 과정을 거쳐 이미지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소리와 이미지의 익숙하고도 낯선 조응과 변주가 관객을 감싼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역사 속 정간보가 작동하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시스템의 탄생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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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로버트 코닐리어스, 셀프 포트레이트, 미국회도서관 소장

 

한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1839년에 촬영된 낡은 사진은 비록 유령처럼 희미하지만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오뚝한 콧날, 진지한 눈빛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코닐리어스, 미국 사진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럼, 이 사진의 촬영자는 누굴까? 바로 코닐리어스 자신이다. 프랑스에서 사진의 발명을 공표한 1839년과 같은 해에 벌써 셀카 사진이 등장한 셈이다. 코닐리어스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버지의 램프 가게 뒤편에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10분가량 꼼짝 않고 있다가 자신의 얼굴을 얻었다. 최초의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로 촬영된 이 사진은 세계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간주된다.

 

170여년 전 코닐리어스의 첫 장 이후, 오늘날 셀카 사진은 하루에 3억5000장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이미지라 그런지 별의별 사건도 발생한다. 위험천만한 곳에서 셀카를 찍다가 사망하거나, 한 10대 소년은 셀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셀카 중독 등의 부작용이 언급되는 요즘이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의 역사를 움직인 중요한 욕망이다. 사진이론가 존 택은 “사진이란 그저 자신들이 아는 이들의 얼굴 사진을 획득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는 얼굴, 또는 알고 싶은 얼굴이라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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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종이에 펜 아크릴 (36x26cm)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구이의 냄새. 그런데 정말 시어머니는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전어를 구웠을까요? 홀아비로 지낼 불쌍한 아들과 엄마를 찾는 가여운 손주, 그리고 이 둘을 다 보살펴야 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집 나간 몹쓸 며느리지만 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또 그렇다고 무능한 남편과 힘든 시집살이에 지쳐 집 나간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을 전어를 구우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대뜸 집으로 돌아갈까요? 며느리는 엄마 찾아 울고 있을 불쌍한 아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려 그 집을 기웃거리다 가을 전어를 굽고 있는 시어머니 옆에 있는 아이를 보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건 아닐까요?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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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초속 5센티미터, 2007, 애니메이션, 62분 ⓒ 신카이 마코토, 코믹웨이브 필름

 

빛이 1초에 30만㎞를 가고, 소리가 1초에 340m를 갈 때, 벚꽃은 5㎝를 갔다. 사실은 떨어졌다. 데뷔 초 1인 창작자로 주목받던 작가 신카이 마코토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벚꽃잎의 ‘느린’ 속도에 기대, 사랑과 상실, 그리움, 그리고 무기력의 감정을 소환했다.

 

‘초속 5센티미터’에 등장하는, 한때 어렸던 두 주인공은 같은 학교라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의 속도를 높인다. 이후, 여자주인공이 1500㎞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간 뒤, 물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가 조금씩 어긋나면서 이들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길을 떠난 어린 그는, 마침 쏟아져 내린 폭설 때문에 역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 정차하고 느리게 달리는 기차의 속도에 반비례하여 달아오르는 마음에 고통을 받았다.

 

서로를 향한 마음의 속도는 느림과 빠름 사이를 오가다가 서서히 멈추었다.

성장한 남자 주인공은 주변 다른 이들이 다 그렇듯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고, 생존해야 했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 무엇인가를 향해 남들처럼 손을 뻗고, 세상의 속도가 운행 중인 궤도 위에 발을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걷는 삶의 속도는 자꾸 어긋나, 궤도 위에 안착하지 못했다. 세상의 속도가 어지러운 그는 자꾸 머뭇거리고, 사람과의 거리, 사회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데 실패한다.

 

여자 친구와 마음의 거리를 1㎝ 좁히는데 1000통의 문자와 3년의 시간을 쓴 그는 이별을 맞이했다.

 

세상의 속도에 길들여지지 못하는 이가 세상 앞으로 다가가는 속도는 여전히 중력과 바람에 휘청이는 초속 5㎝다. 그사이 세상은 저만치 멀어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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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브롱크스 동물원의 오타 벵가, 1906년, 미의회도서관 소장

 

1906년 이색적인 구경거리를 준비한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은 흥행 중이었다. 나이 23세, 키 150㎝, 몸무게 45㎏, 난생처음 본 동물 앞에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던져주며 환호했다. 몇몇 구경꾼들은 내심 기대했던 눈요깃거리가 못 되자 야유와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격렬한 환호와 야유를 한몸에 받은 새로운 구경거리는 바로 인간이었다.

 

아프리카 콩고의 피그미족 오타 벵가(Ota Benga)는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에 전시됐다. 그는 1904년 콩고를 침략한 벨기에군의 학살로 가족을 잃은 후 생포되어 노예 상인에게 팔렸고,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만국박람회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됐다. 동물원에 온 이후, 처음에는 사육사를 도와 침팬지에게 먹이를 주며 동물들을 돌보기도 했지만, 차츰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구경거리이자 동물원에 갇힌 신세라는 것을. 1910년 인권운동가들의 항의로 풀려난 벵가는 교육을 받고 담배공장에 취직하는 등 평범한 삶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1916년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타향에서 비극적인 생을 살다간 오타 벵가가 처음 전시됐던 박람회의 전시명은 ‘진화가 덜 된 사람들’. 사진 속의 청년 벵가가 우리를 응시하며 묻는다.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인가?” 그는 자살하기 전, 홀로 피그미족 전통 의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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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3.5×21.5㎝)

 

먼 길을 달려서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갑니다. 아무리 차가 막히고, 잠이 쏟아져도 부모님이 계신 그곳을 향해 달려갑니다. 주름진 아버지의 미소와 어머니의 투박한 음식은 먼 길 달려온 피곤함을 날려 버립니다. 부모님 앞에 앉은 나이 많은 아들은 철없는 아이로 돌아가 행복한 잔소리를 듣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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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대로 북변 사거리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이어진 중봉로로 접어든다. 직선의 도로가 크게 왼쪽으로 선회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로 내비게이션이 나를 안내한다. 좁은 길로 300m가량 직진하니 왼쪽으로 연잎이 무성한 연못 뒤쪽으로 우저서원의 단아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저(牛渚)서원은 중봉 조헌(重峯 趙憲, 1544~1592)의 생가 터인 김포시 감정동에 인조시대인 1648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중봉 조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도끼를 지고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청하는 도끼상소로 유명하다. 이듬해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게 점령되었던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10배가 넘는 왜군과 맞서 싸우다 700의사와 함께 전사한 의병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671년에 ‘우저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는데 서원 주변에 소들이 물을 먹는 늪지가 있어서 ‘우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이 우저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은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김포평야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솟을대문으로 된 외삼문을 들어서면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놓여 있고 중앙에는 강학 공간인 여택당(麗澤堂)이 있다. 팔작지붕의 여택당 뒤쪽으로 놓여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향 공간이 자리한다. 그 안쪽 중앙에 조헌의 위패가 있는 사당이 위치해 있는데 조헌의 시호인 ‘문열(文烈)’을 따라 ‘문열사(文烈祠)’로 불리고 있다. 보통 사당 앞에는 제향의식에 필요한 공간인 동무, 서무가 있는데 이 서원은 내삼문과 사당과의 간격이 좁아 우측에 조헌선생유허추모비를 모신 비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좌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우측에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서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서원 주변에는 도로명과 공원명, 마을명이 모두 ‘중봉’으로 되어 있다.

추석도 지났으니 이제 우저서원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단풍으로 곱게 물들 것이다. 단풍 가득한 우저서원의 가을 운치가 눈앞에 그려진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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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 퍼포먼스, 1984, 퍼포먼스, 사진 ⓒ박이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4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박이소(당시 이름 박모)는 교회 자선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인 가정의 추수감사절 만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신께 감사하며 다른 인종, 타 문화인에게까지 ‘은혜’를 베푸는 이날, 미국인들은 칠면조, 옥수수, 으깬 감자, 호박파이, 크랜베리 소스를 비롯하여 새 곡물로 만든 푸짐한 음식을 저녁식탁에 올리고, 미소로 동양인을 맞이했을 거다.

 

요새는 인간의 ‘은혜로움’이 더 멀리 뻗어나간 덕분에, ‘사면식’을 치른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동물원이나 농장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트럼프도 이 사면식에 동참했다 하니, 칠면조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은혜의 상징이다.

그날 이후 박모는 사흘간 밥을 굶었다. 단식은 그에게서 쓸모없는 기력을 빼앗는 대신 맑은 머리를 주지 않았을까. 단식을 마치고 그는 플라스틱으로 가마솥을 만들어 목줄에 매달아 끌면서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당시 가까이 지내던 작가 강익중이 곁에서 그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추수감사절이 나에게는 행복한 날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나는 이상한 퍼포먼스를 해서 아방가르드 미술가가 되는 제스처를 해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일종의 정치적 미술가라는 걸 보이고 싶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나 핑계가 필요해서 예술을 한다던 그의 ‘터무니없는 정직함’이 아궁이에 올라가는 순간 그대로 녹아 일그러질 플라스틱 가마솥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추수감사절이 가면 블랙프라이데이가 온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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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아크릴(30×42㎝)

 

밤하늘의 별도 따준다던 그 사람, 꽃보다 더 예쁘다던 그 사람,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던 그 사람. 말 안 해도 다 알 수 있다던 그 사람. 이제는 시간이 흘러 더 가까이 오랜 시간 같이 있게 되었지만, 그때의 그 감정은 점점 희미해지고 익숙함만이 남았습니다. 오늘 다시 예전처럼 따뜻한 커피 한잔 놓고 마주 앉아 눈을 보며 이야기해봐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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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낡은 목욕탕 안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물함과 텔레비전, 냉장고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손님이 줄었거나 혹은 자판기라도 들여와서 퇴역했을 냉장고는 본연의 임무 대신 텔레비전 받침대로 사용된다. 플러그가 꽂혔던 왕년에는, 목욕을 마친 꼬마들이 저 냉장고에 뽀얀 얼굴을 들이밀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바나나 우유와 딸기 우유 사이에서.

 

서울의 목욕탕, 산호탕 ⓒ박현성

 

사진책 <서울의 목욕탕>(6699프레스, 2018)에 담긴 장면 중의 하나다. 책은 서울에 위치한 30년 이상 된 목욕탕 10곳의 일상적인 풍경과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해 전달한다. 시간의 무게에 부서지고 허물어지는 목욕탕의 외관에서, 대야와 앉은뱅이 의자 등 더 이상 새것으로 바뀌지 않을 목욕탕 기물에 묻은 손때까지 모두 사진에 살뜰하게 담겼다. 그 이미지들은 이곳이 내일 사라질 것이다, 현실을 일러주는 동시에 이곳이 어제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 환상을 부풀린다.

 

그러나 내일의 현실이든 어제의 환상이든, 개의치 않을 서울의 목욕탕은 오늘도 ‘목욕합니다’와 ‘매주 수요일 정기휴무’ 사이에서 변함없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러한 목욕탕의 일상을 가만히 멈춰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사진책에는 특별한 일화도 없고,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바람 잘 날 없는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홀가분하게 들어서는 목욕탕의 미덕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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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바왈라는 인도 뭄바이의 도시락 배달부다. 그들은 고객의 점심을 가정에서 받아와, 기차로, 수레로, 자전거로 오후 1시 전까지 사무실 책상에 배달한다. 고객이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빈 도시락통 ‘다바’를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비로소 일이 마무리된다. 여름에도 격식을 갖춰 하얀 긴팔 셔츠를 입는 인도 남성들에게 점심 도시락통과 함께하는 출퇴근이란 안될 말이다. 한 명의 다바왈라가 50명의 도시락을 책임지고 배달하는 시스템 덕분에 평균 2시간 안팎의 출근길이 가볍다. 다바왈라의 활약은 어느새 100년이 넘었다.

 

천경우, 다바왈라의 점심, 2017, 퍼포먼스와 50개의 인도 도시락통 ⓒ천경우

 

첨단 기술도, 전문 지식도 없이, 심지어 문맹자들까지도 능숙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인간노동력 중심’ 다바왈라 배달 시스템은 8000만건 가운데 사고는 300~400건에 머물 정도로 정확하다. 페덱스 같은 운송업체를 포함한 일류 기업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천경우는 배달이 직업인 그들 손에 그들을 위한 ‘다바’를 배달해주기로 했다. 작가는 50명의 ‘다바왈라’에게 원하는 점심 메뉴를 물었다. 매일, 매 끼니, ‘뭐 먹을까?’ 이야기하는 우리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이 질문이 그들에게는 생소했다.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사는 왈라들은 메뉴를 선택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피자’가 그나마 독특한 주문이었고 대부분은 작가가 준비하는 데 무리가 없는 인도의 평범한 식사를 이야기했다. 작가는 스태프와 함께 그들이 원하는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서 점심시간에 맞춰 그들 손에 배달했다. 새로운 ‘점심 문화’가 점점 퍼져나가는 뭄바이에서,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직업군에 종사하며 살아가는 왈라들은, 그렇게 단 한번, 자신이 선택한 ‘점심’을 서비스받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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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2×41㎝)

 

알록달록 옷을 입고 광대짓을 합니다. 구르고 넘어지고 마술도 하며 사람들을 웃깁니다. 넘어져 아프고, 힘들어 짜증 나도 언제나 웃고 있습니다. 나에게 화를 내고 비웃고 욕을 해도 언제나 웃고 있습니다. 내 감정은 그게 아닌데 언제나 그렇게 웃고만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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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17일 멕시코 올림픽에서 육상 남자 200m 시상식이 열렸다. 미국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영광스러운 자리인 시상식에는 기쁨과 환호 대신 한숨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시상식 장면. AP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시상대에 맨발로 올랐다. 미국 국가가 나올 때 고개를 푹 숙이고 검은 장감을 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른바, 흑인 저항운동 ‘블랙파워’에 지지를 표시하는 ‘블랙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였다. 스미스의 목에 두른 검은 스카프는 흑인의 자존심을 상징하며, 카를로스가 지녔던 묵주는 희생당한 흑인들을 기리는 것이었다. 이후 두 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고 선수촌에서 추방됐다.

 

50년 전의 그들을 닮은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이 최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광고에 등장하면서 미국이 시끄럽다. 2016년 그는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기립 대신 무릎 꿇는 행동을 했다. 이듬해 자유계약 선수가 된 캐퍼닉은 괘씸죄로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해 선수 활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그가 광고에 나오자 뜨거운 지지와 함께 나이키 매출이 증가했다. 그러나 한편에는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도 SNS에 올라온다. 아직도 백인 중심의 세상에는 여전히 ‘검은 장감’이 불편한 이들이 있다.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용기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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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114년 만의 기록적 폭염이었다니. 그런데 계절의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9월이 되자마자 갑자기 이렇게 가을 날씨로 확 바뀌는지.

 

가을과 함께 개강을 했다. 몇 편의 김포 원고를 쓰다 보니 알고 있는 김포의 이야기 소재가 동이 났다. 그런데 개강하는 날 같은 건물에 있는 미대 교수를 건물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김포 출신의 교수였다. 혹시나 하고 김포에 소재한 흥미있는 건축물의 존재 여부를 물었더니 대뜸 김포성당을 소개한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자신의 학창시절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란다. 그래서 김포성당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소나무숲 언덕을 배경으로 구 성당과 새 성당이 함께 놓인 사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차를 몰아 김포로 향했다. 낮의 해는 여전히 따가웠지만 늦은 오후가 되니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 냄새가 코밑을 간지럽힌다. 일산대교를 건너 김포시청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측으로 난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좁은 길을 들어서자마자 우측 경사로 위의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를 하고 성당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인터넷에서 보던 이미지가 눈앞에 다가섰다. 1999년에 붉은 벽돌 마감으로 지어진 새 성당은 단차가 있는 맛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 전면에는 고딕성당의 요소인 장미창(rose window)이 현대적으로 디자인되어 좌측의 높다란 종탑과 어우러져 건축적 완성도를 높여준다. 우측으로 완만한 돌계단이 길게 이어진 정점에 석조로 지어진 구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커다란 소나무숲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구 성당은 1956년에 건립되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건축된 석조 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어 2013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평면은 고딕건축에서 주로 사용되던, 앞뒤로 길쭉한 실내의 안쪽 좌우로 날개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세로로 긴 십자형(라틴크로스,†)으로 되어 있다. 전면 종탑 아래쪽을 둘러싼 첨두(뾰족) 아치의 창이나 아래로 내려올수록 두꺼워지는 지지벽은 고딕건축의 요소이다. 그런데 주출입구 원형의 아치와 종탑 위의 뾰족 돔은 르네상스 요소에 가깝다. 또한 건물 측면에 뚫린 박스형의 세로창들은 모더니즘의 요소이니 결국 구 성당의 건축양식은 여러 양식이 혼합된 절충주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우측으로 울창한 소나무숲이 발길을 이끈다. ‘십자가의 길’로 조성된 오솔길이 구 성당과 새 성당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랜 세월 이 언덕을 지켜왔을 수많은 소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늘어뜨려 낯선 방문객을 붙잡는다. 소나무들 사이로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구 성당과 새 성당이 서로 병치되어 멋진 풍경화 한 점을 만들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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