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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18 평범함의 격조
  2. 2017.09.15 토마토와 손가락
  3. 2017.09.15 숲속 산책
  4. 2017.09.11 파벨라
  5. 2017.09.08 일식
  6. 2017.09.08 얇지만 깊은
  7. 2017.09.08 예쁜 꽃 별 그림
  8. 2017.09.07 포천 산정호수
  9. 2017.09.01 짓궂은 운명
  10. 2017.09.01 희망사항
  11. 2017.08.28 낮잠
  12. 2017.08.25 동물농장
  13. 2017.08.25 키스의 뒷면
  14. 2017.08.24 비둘기낭 폭포
  15. 2017.08.21 마음의 준비
  16. 2017.08.21 지속가능성이라는 과제
  17. 2017.08.14 무릎 꿇은 남자
  18. 2017.08.11 인생을 바꿀 만한 경험
  19. 2017.08.11 안 귀여운 소녀
  20. 2017.08.11 85번의 절망

사석원, 수탉, 2017, 한지에 수묵, 129×167㎝


사석원은 치바이스를 동양화의 ‘넘사벽’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동양화를 막 시작했을 때 그의 화집을 본 사석원은, 따뜻한 시선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생동감을 포착한 표현력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치바이스를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그 역시 살아있는 것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시, 서, 화, 각 모두를 아우른 치바이스는 일상의 소소한 대상,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주목했다. 당대 문인화가들은 대상으로 삼지 않던 ‘미물’이었다. 고전과 자연을 스승 삼아 그림을 그렸던 작가에게 대지 위의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 있었으니 다른 잣대를 내세우며 소재를 고를 일이 아니었다. 세상을 대하는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선인의 틀에서 벗어난 화면을 구상하기 위해 그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먹색을 제대로 내는 데만 40년이 걸린다고 하는 수묵화의 매력을 붓질에서 찾는 사석원은 치바이스의 수탉 그림에 주목했다. 치바이스가 그린 닭 그림에서는 잘 그리고자 하는 교만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교를 떨쳐낸 그림이 주는 평화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사물의 본질만을 묘사하면서, 내적 생명력과 유머를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내공은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무수히 묘사를 반복한 끝에 대상의 본질과 미의 질서를 굵고 단순명료한 필획으로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형상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형상을 꿰뚫고 있는 치바이스의 작업을 보며 사석원은 현대적인 추상미를 통해 수탉의 에너지를 표현해보고자 했다. 대상을 눈앞에 두고 그 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보며 마음에 새겨 놓은 모습을 화면 위로 끄집어낸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수탉의 몸짓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역동적인 붓질과, 그 안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눈동자에서 닭의 생명력을 대면한다. 대상을 향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은 그렇게 세상 모든 평범한 것들이 품고 있는 생명 에너지의 찬란함을 펼쳐 보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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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sible Vision, 2016-17 ⓒ한경은


한동안 토마토를 먹지 못했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토마토의 살을 베려던 부엌칼은 미끄러져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토마토보다 붉은 액체가 하얀 도마를 흥건히 적셨다. 신발 끈으로 동여매도 멈추지 않던 피는 기억에도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몸에 새겨진 고통보다 기억력이 강한 것은 드물다. 의식적으로 망각하려고 해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게 토마토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이 시리고 아렸다. 고백하자면 토마토가 무서웠다. K와 M이 서로의 벗은 몸을 촬영한 한경은의 ‘비가시적인 전망(Invisible Vision)’을 바라보면서 토마토와 아린 손가락이 떠올랐다. K와 M은 고통이 새겨진 몸을 서로 바라보며 아렸을까. 또 무서웠을까.

 

K와 M은 버디무비 <델마와 루이스>처럼 여행을 떠났다. 둘은 얘기하며 울고 웃다가 말하기를 멈추고, 옷을 벗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아리고 무서운 기억을 마주하며 더욱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땀이 나고 숨이 차고 심장이 요동치는 몸을 통해 시린 기억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었을까. 그렇게 서로의 몸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토마토를 똑바로 쳐다보려 노력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건, 그 칼이 결국 내 손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행복한 기억보다 고통을 더 많이 지니고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 몸의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몸인 저주, 그 고통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일은 아린 손 맞은편에 칼을 쥔 손마저도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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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50×70㎝)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숲속 친구들이 사는 마을로 산책을 가 봅니다.

그곳에서 발랄한 늑대, 새침한 고양이, 잘 먹는 토끼, 꾀 많은 여우, 착하게 생긴 북극곰, 장난꾸러기 아기 곰, 구름을 좋아하는 물고기, 명상하는 오리 등 다양한 숲속 동물 친구들을 만나 봅니다. 그동안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같이 숲속을 산책해 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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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시오 곤살레스, 파벨라 시리즈, 2004~2007


유토피아는 잊어라. 미래 도시는 방대한 슬럼이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봤다. 많은 것이 도시로 집중되는 가운데, 도시 인구의 절반은 슬럼 거주자일 것이라는 예측이 덧붙었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면 슬럼 또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던 과거의 예언은 부의 불평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를 봤을 때, 안일한 믿음에 불과하다.

 

디오니시오 곤살레스는 10여년 전부터 대도시의 슬럼 지구를 살피며 도시 빈민들의 터전을 촬영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곳곳에 퍼져 있는 빈민촌 파벨라의 건축 구조는 시선을 끌었다. 계획이라고는 전혀 없는 불규칙적이고 불안한 오두막이 산자락부터 산등성이를 타고 퍼져나가 있다. 거주지이긴 하지만, 범죄와 마약의 온상이기도 한 이곳은 폭력과 살해가 공존하는 기피 장소였고, 지역 사람들 내면에는 증오와 절망이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대면한 작가는 작업을 통해 갈등의 중간 위치에 서보기로 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예술가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 역시 이들의 독립성과 자율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독립자인 그들은 의견을 제시할 뿐이지만, 그 의견이 경우에 따라서는 중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개개인의 취향과 삶의 모습에 따라 다른 형태로 번식한 파벨라의 유기적 구조를 물리적인 철거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고민해볼 수 없을지 들여다본 작가는 파벨라를 컴퓨터 합성으로 재건축하기로 한다. 그렇게 현실 이미지 위에 디지털로 조작한 가건물을 앉힌 이미지가 탄생했다. 이 가상의 이미지가 슬럼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지만, 해결을 위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갈등 사이에서 완충지가 되었다. 작품은 작가가 희망한 바로 그 정도의 존재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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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원, 1913, 캔버스에 유채, 105×105㎝


얼마 전 미국에서는 1918년 이후 99년 만에 대륙 전체를 관통하는 개기일식이 있었다. 평생 한 번 보기 힘든 장관이라고 하여, 원정단을 꾸려 미국으로 가는 이들도 있었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순간, 사람들은 태양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단다.

 

지구의 생태계에 가장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태양을 연구하는 것은 천문학계의 오랜 과제이지만, 태양은 그 빛이 너무 강해 제대로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과학계는 태양이 가려지는 이 순간, 태양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태양의 강렬한 빛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혁명과 개혁의 시기에 살았던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1913년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의 무대장식과 의상을 맡아 흰색 배경에 검은 사각형 콘셉트의 커튼을 제작했다. 이 작업은 그가 ‘절대주의’라고 명명한, 철저하게 비재현적인 회화, ‘검은 그림’의 단초가 되었다.    

   

새로운 질서로 개편되는 세계의 흐름을 체감한 그는, 세상의 형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색과 형태에 집중하는 작업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의 세상에 닿고자 했다. 현존하는 세계와 다른 질서를 가진 세계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간 그는 그런 생각을 검은 그림에 반영했다.

 

그는 관객이 작품 속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전하는 감정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작품에서 현실과 연관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오로지 검은 색면만 있는 화면이 전하는 감정, 그 긴장감을 마주하면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 다른 무엇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작가는 형태를 지운 세상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세계의 문을 열어주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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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과 팽창, <허니 앤 팁> 전시 전경(아카이브봄).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는 자신의 감방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화가 난 교도소장 노튼은 손에 잡힌 돌멩이 하나를 벽에 던진다. 그 돌멩이는 여배우 리타 헤이워스가 나온 핀업걸 포스터를 향해 날아가다가, ‘툭’ 종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노튼 소장이 포스터를 걷어내자 앤디가 교도소 탈출을 위해 오랜 시간 팠던 구멍이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리타 헤이워스의 사진은 의미심장하다. 얇은 종이로 감춰진 어떤 구멍의 깊이감이 묘하고, 어두운 현실(감방)과 밝은 이상(탈출)의 간극에 사진 한 장만 존재하는 것이 흥미롭다. 모두를 속이기 위해 얇은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한 것이다. 얼마 전 ‘압축과 팽창’(안초롱과 김주원)의 사진전 <허니 앤 팁>을 보면서 영화 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전시장 2층에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거나 한 대상에 천착한 작품들이 있다. 주제나 형식 등 기존에 중요시되는 사진 문법을 따른 것이다. 반대로 3층에는 기존의 형식에서 이탈한 사진들이 있다. 다채롭게 출력되고, 설치된 사진들은 모두 이미지 라이브러리에서 구매한 것이다. 이 사진들이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벽과 바닥에 마감재처럼 덧씌워진 3층 전시장은 이케아 쇼룸을 연상시킨다. 어떤 집에 살든 당신에게 맞는 인테리어 팁을 제시하는 이케아처럼, <허니 앤 팁>은 그동안 전시장에선 경험할 수 없던 사진의 모양새를 제공한다. 이처럼 다양한 사진적 확장은 익숙했던 사진의 얇은 깊이감에 구멍을 낸다. 노튼 소장이 던진 돌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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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61×72㎝)

 

예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쁜 꽃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반짝이는 예쁜 별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쁜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쁜 꽃과 별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겠지요? 가을맞이 예쁜 꽃과 별 그림을 그려 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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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북단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였다. 이 저수지는 명성산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에 에워싸여 ‘산속의 우물과 같은 맑은 호수’라는 뜻의 산정호수(山井湖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이 호수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명성산은 후고구려를 건립한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이 산에 은거지를 만들어 생활하다 피살되었던 산으로 유명하다. 한때의 영화를 누리던 왕에서 반란군에게 쫓겨 숨어 지내는 처지가 된 궁예는 이 산에서 한동안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한다. 그래서 이 산을 울음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명성산(鳴聲山·923m)은 ‘울음산’의 한자 표기이다.

 

호수 옆에 위치한 망무봉(446m)과 망봉산(384m)은 궁예가 왕건 군사의 동태를 망보았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호수 근처에 있는 ‘파주골’의 본래 이름은 ‘패주골’인데 이는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도망쳤던 골짜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산정호수 주변에는 궁예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산정호수는 김일성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6·25 이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북한 땅이었다. 김일성은 구 유고 티토 대통령의 초청으로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에 위치한 티토의 별장에 머무른 적이 있다. 티토의 별장은 알프스에 둘러싸인 호숫가에 위치해 있었다. 김일성은 이 티토의 별장에 감동하여 블레드 호수와 비슷한 풍광을 지닌 산정호수에 자신의 별장을 건립하였다. 별장터만 남아 있는 위치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뒤쪽의 명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림은 그 위치에서 바라본 산정호수의 모습이다. 그는 산정호수가 아름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이 호수를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구체화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여겼다 한다. 산정호수의 모양이 우리나라 지도를 좌우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별장터가 한반도의 최남단 부산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별장 건설을 부산까지 점령하려던 그의 야망을 실현하는 상징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산정호수는 수려한 풍광과 함께 곳곳마다 역사의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월에 펼쳐지는 ‘명성산 억새꽃 축제’ 때에는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가을을 느껴보고 싶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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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승무원들. NASA 아카이브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은은한 자신감이 스며 있다. 부드러운 미소에는 단단한 자부심이 머문다. 7명 모두 완벽한 표정이 나올 때까지 공을 들여 수차례 촬영했을 것이다. 우주를 탐사하는 막중한 임무와 우주비행사라는 영광스러운 명예에 걸맞게 말이다. 곧 다가올 성공을 대비해 촬영됐을 이 사진이 훗날 비극적인 실패를 상징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2003년 2월3일, 사진 속의 그들을 태운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는 폭발해 산산조각이 된다. 이 사건은 최악의 참사로도 꼽힌다. 비행사들의 죽음이 예견됐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NASA의 발사책임자들은 컬럼비아호의 발사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관찰하다가 우주왕복선 방열판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무사히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정작 당사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비행책임자 존 하폴드는 말한다. “공기가 떨어질 때까지 비행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승무원들이 즐겁게 비행하다가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죽는 것이 낫지 않겠어?”

 

도대체 뭐가 더 낫다는 걸까. 다만 성공에서 비극의 상징으로 곤두박질친 이 사진처럼 우리의 삶과 죽음도 순식간에 교차된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증명사진이 영정이 되는 걸 상상하지 못하듯이 눈앞에 놓인 죽음을 몰랐던 비행사의 운명 앞에서 과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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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61×72㎝)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림 속에 희망사항을 그려봅니다. 세계 일주하기, 악기 하나 배워보기, 별 사진 찍어보기 등 희망사항을 하나씩 그려 넣어 봅니다. 언젠간 다 해볼 수 있길 바라면서….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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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석, 오후의 뜰, 1968, 캔버스에 유채, 97×145.5㎝


분주하다. 세상의 속도는 빠르고, 그 속도를 부정할 용기가 없다면 따르는 게 당연한 세상.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낙오자가 되는 건 순식간일 테니, 초조한 마음이 조급증을 부채질한다. 그래서 바빠지고, 더 바빠지고 새벽부터 밤까지 쉼 없이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휴식을 꿈꾸고, 일탈을 소원하는 건, 그런 바람 자체가 일상의 바퀴를 계속 돌릴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다.

 

한때는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즐기는 일이 당연하던 시절도 있었단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나른한 오후에 낮잠을 즐긴다. 낮잠 권하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과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나, 매일 자는 낮잠이 마음을 깨끗하게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은, 다만 꿈꿀 수 있을 뿐 쉽게 내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운 낮잠에 대한 환상을 키워준다. 혹은, 편하게 낮잠에 빠져들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실향민으로서, 망향의 정서를 화폭에 담아온 장리석은 한 소년이 평상에 누워 단잠에 빠진 풍경을 그렸다. 마당 한쪽에는 정성스럽게 가꾸었을 화단이 보이고 그 앞에는 장독이 보인다. 아파트가 표준 주택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시골집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마당의 풍경이다. 러닝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잠든 소년의 손에는 어디선가 꺾어왔을 열매가지가 쥐어져 있다. 소년은 친구들과 동네 곳곳을 뛰어놀다 돌아온 나른한 오후, 잠시 달콤한 낮잠에 빠졌을 것 같다. 소년의 잠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풍경은 시간마저 멈춘 것처럼 한없이 고요해 보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후의 뜰’은 1968년 어느 여름의 한가로운 공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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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4×50㎝)


아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키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동물 인형만 갖고 놀던 아이가 어느 날 달팽이를 가져와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곤 굼벵이도 데려옵니다. 물고기 2마리도 얻어왔습니다. 그 물고기가 새끼를 낳아 수십마리가 되었습니다. 달팽이도 곧 알을 낳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집이 어찌 될지 걱정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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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파리 시청 앞 거리에서 젊은 남녀가 키스를 나눈다. 지나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절묘하게 포착된 순간은 파리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전 세계에 수십만 장의 포스터와 엽서로 팔려나간 ‘시청 앞의 키스’는 모델을 구해 연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을 산다.

 

최근 이 사진을 찍은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그 비난은 온당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물론 이 사진의 감동은 상당 부분 ‘실제 연인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연출됐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이 촬영된 때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떠올리면 복잡한 심사가 된다. 1950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상흔이 완연한 시절이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유태인 학살과 드레스덴 폭격 그리고 나치 부역자를 처단하기 위한 길거리에서의 조리돌림 등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젊은 연인의 낭만적인 키스로 기억되기에는 석연치 않은 시절인 것이다. 그러니 이 사진에서 배신감을 느낄 부분은 ‘키스의 연출’이 아니라 키스로 가려진 현실이 아닐까?

 

“내가 볼 때 현실은 없다.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면만 보여줄 뿐.” 영화 속에서 두아노는 말한다. 연출 논란 이후에도 여전히 이 사진이 인기를 끄는 건, 두아노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진에서 ‘좋아하는 면만’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는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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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43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도로는 산정호수 진입로 부근에서 크게 왼쪽으로 휘어진다. 휘어진 이 도로의 첫 교차로에서 왼쪽에 있는 2차선 도로로 핸들을 튼다. 고갯길을 넘어 잠시 주변 풍경에 눈을 돌리다 보면 차는 곧 넓은 주차장에 다다른다.

 

주차를 하고 표지판을 따라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우렁찬 폭포소리가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멋진 풍경이 나를 맞이한다.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둘기낭’이다.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이루어진 한탄강은 크고 작은 하식동과 주상절리, 판상절리 등으로 곳곳마다 절경을 만들어낸다.

 

비둘기낭은 그 절경 중 하나로 현무암 지질구조가 만들어낸 폭포와 폭포 뒤쪽에 반달모양으로 움푹 파인 동굴을 지칭한다. 매년 겨울이면 수백마리의 산비둘기가 이 동굴에 서식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폭포 아래에는 에메랄드 빛깔의 영롱한 소(沼)가 형성되어 뒤쪽의 동굴과 어우러져 멋진 비경을 만들어낸다. 동굴을 뒤덮고 있는 천장과 주변의 바위들은 주상절리의 단편들로 군집되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으로 이곳은 한탄강이 만들어 낸 8경 가운데 제6경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큰비가 내린 후면 풍부한 수량으로 만들어지는 폭포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선덕여왕> <추노> <늑대소년> <괜찮아 사랑이야> 등과 같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 아름다운 폭포를 배경으로 하는 인기 촬영지이기도 하다.

 

포천시에서는 비둘기낭을 비롯하여 한탄강이 만들어내는 절경들을 배경으로 한 관광지개발사업이 한창이다. 한탄강 둘레길 조성, 생태공원, 테마파크 등 수도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개발사업이 대부분 2019년이면 완공이 된다. 한탄강의 비경에 흠뻑 심취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최근 개통된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비둘기낭까지 1시간이면 도착하는 근거리가 되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비둘기낭 폭포소리를 들으러 고속도로에 몸을 실어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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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Series, 2015 ⓒ양동민


환자복을 입은 중년 여인의 몸 위에 사진들이 올려져 있다. 오른쪽 어깨 위의 사진에서 여인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다. 가슴 위의 사진에선 딸과 함께 장난을 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산소 호스를 연결한 채 힘겹게 눈감은 여인의 얼굴에서 더 이상 사진 속의 눈웃음을 볼 수는 없다. 힘겨운 여인의 얼굴과 한때 즐거웠던 순간의 사진들 사이에 놓인 산소 호스는 가느다랗게 삶과 죽음의 간격을 잇는다.

 

사진가 양동민은 악성 뇌종양을 진단받은 엄마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엄마의 몸에 사진을 올려놓고 편지를 읽었다고 한다. 병실에 종일 누워 있는 엄마가 행여 외로울까 봐 곁을 지키며 사진과 편지로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려는 요량이었다. 작가는 그로부터 2주를 더 버텨낸 어머니를 지켜보았고,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삶과 죽음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훔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제 사진은 너무 흔하디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담긴다는 점은 여전히 특별한 것이다. 사진이 귀했던 시절, 시골집 대청마루에는 결혼·출산·성장·졸업 등 가족의 대소사가 알뜰하게 모인 사진 액자를 걸곤 했다. 엄마의 몸에 모여 있는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시골집 대청마루의 사진 액자가 떠올랐다. 부디, 엄마의 명복을 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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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 그랜비 워크숍, 2015 @어셈블


어쩌면 과제는 ‘시작’이 아니라 시작한 일을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제에는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왜 지속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 따르긴 하겠지만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지역공동체의 일상에 개입하는 프로젝트인 경우 지속가능성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그랜비 포 스트리츠’로 영국의 권위 넘치는 미술상인 터너상의 수상자가 되면서 주목받았던 건축가 디자이너 그룹 어셈블의 작업은 지역사회의 공간과 공동체를 생산적으로 연결하는 바람직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2011년 마을 주민들의 의뢰로 그랜비 프로젝트에 착수한 어셈블이 처음 가졌던 문제의식은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였다. 마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프로젝트 이후에도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은 바로 그 지역공동체라는 정답에 도달한 이들은 주민과 상생하는 예술프로젝트를 지향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외부에서 들어온 주체에게 주민이 소외당하지 않도록 했다.

 

이들이 먼저 착수한 것은 슬럼화된 공공주택단지를 쓸 만하게 재건하는 일이었지만 더 깊이 고민한 것은 프로젝트 이후에도 지역공동체가 재건한 사회기반시설을 적극 활용하면서 생산성을 가지고 유지할 수 있는 장치였다. 그 장치의 하나로 어셈블 멤버들은 주민들과 핸드메이드 생활용품을 만드는 워크숍을 운영했다. 주민들은 건축 폐기물, 공사 잔해물들을 재활용해 손잡이, 테이블, 타일 같은 수공예품을 만들었다. 이후 지역 소싱을 통해 설계·조립한 재활용 핸드메이드 생활용품을 온·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쇼룸을 운영하면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창업의 동력을 확보했다.

 

그렇게 쇠락한 지역의 공간을 재생하는 그랜비 프로젝트는 지속가능성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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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민, 관계의 감각 2017, 리넨에 유채, 38×46㎝


화가가 그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한 가지를 흔들리지 않고 실천할 수 있기를 오랫동안 원해왔다’고 기술한 문영민은 무릎 꿇고 엎드린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왔다. 작가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담으며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한 부분을 회화라는 반복 행위로 옮기는 실천을 수행 중이다. 반복은 시간을 살아내는 일이자 경험을 축적하는 일, 성찰의 도구, 혹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특정할 수 없는 어떤 공간 안에서 한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다. 남자는 절을 하는 중이다. 한국사회에서 절은 익숙한 동작이다. 제사상 앞에서, 장례식장에서 죽은 자를 애도하며, 남겨진 자를 위로하며 사람들은 몸을 숙인다. 크고 작은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에서 절을 하는 행위 역시 익숙하게 일상 안에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절하는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몸을 낮추는 동작’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돌이켜 보았다. 유년 시절 경험한 제사의 과정, 엄숙하게 절하는 행위에서 어떤 무거움과 염원의 마음을 보았던 작가에게 절을 하는 모습은 애도의 보편적 표현이었다.

 

작가의 질문은 한 영혼을 향해 절을 하면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면, 절하는 사람의 마음이 영혼에게 가 닿을 것인지로 이어졌다. 작가에게 절을 한다는 일은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문득 낯설어지고, 의미를 포착할 수 없는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행위로 다가왔다. 그의 작업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 되었고, 알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작업이 되었다. 동일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시간을 가진 작가는, 절하는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인간의 뒷모습을 타고 남은 재와도 같은 회색빛에 담았다. 흥분과 격정이 가라앉은 회색으로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는 그렇게 담담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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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여행이 아니었다, 2005, 영상, 22분 @피에르 위그


미지의 대상을 향한 동경과 호기심은 여행의 동기가 되곤 한다. 여행을 떠나는 또 다른 이유는 도시 속 일상에 정주하는 삶이 지겹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에르 위그가 남극 여행을 결심한 데는 쥘 베른의 소설 영향이 컸다. <해저 2만리>를 비롯한 과학소설은 생명체와 그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현실과 가상을 기묘하게 섞어 작업하는 위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은 섬들이 드러났고, 섬에는 흰 동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작가와 동료들은 알비노 펭귄으로 추정되는 생명체를 찾아 좌표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섬을 향했다. 2005년 2월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한 그들은 미지의 존재와 교신하기 위한 도구도 챙겼다.

 

그의 동료가 ‘인생을 바꿀 만한 체험’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그들의 탐험은 험난했다. ‘계획’에 없던 태풍을 만나고, 빙산에 갇히는 공포를 꼼짝없이 함께한 그들은 익숙한 줄만 알았던 관계 속에서 낯선 ‘사회’를 만났다. 예측을 우습게 뒤집어버리며 죽음을 눈앞까지 데려오는 환경 앞에 그들은 예전에 알던 그들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고, 마치 신의 은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알비노 펭귄이 눈앞에 나타났다. 귀환한 작가는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는 스케이트장 울만 링크에 남극을 불러들였다. 링크에는 인공 빙산이 솟아올랐고, 그 주변에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았다. 오케스트라는 조슈아 코디가 남극의 지형을 모티브로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관객이 공연에 집중하고 있을 때, 펭귄의 환영이 빙산의 꼭대기에 등장했다. 관객은 앉은 자리에서 가상의 남극 혹은 그 어딘가의 풍경 속을 탐험했을 터였다.

 

작가는 이후 남극의 영상 작업과 센트럴파크 퍼포먼스 영상을 편집하여 실제와 가상이 더 복잡하게 섞여 들어간 작업 ‘그것은 여행이 아니었다’를 완성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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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 (61x72cm)


귀여운 소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예쁜 물감도 사고 인터넷에서 사진도 검색해 보았습니다. 시작은 좋았으나 그림을 그릴수록 점점 이상해져 갑니다. 뭔가 약간 무섭고 칙칙하고 우울하고…. 역시나 또 이렇게 안 귀여운 소녀 그림이 탄생했습니다. 제 마음이 문제일까요? 좀 더 아름답고 밝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그려보아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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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겹친, 85명 열사의 영정들 #01, 2011 ⓒ홍진훤 강경대 강상철 고정자 권미경 김경숙 김기설 김동윤 김병구 김상진 김성애 김성윤 김수배 김순조 김영균 김용갑 김윤기 김의기 김종수 김종하 김진수 김철수 김태환 김학수 남태현 노수석 도예종 류재을 민병일 박래전 박봉규 박상윤 박성호 박승희 박일수 박종철 박태순 배달호 서도원 석광수 송광영 송석창 신건수 신연숙 심광보 안동근 양용찬 여정남 오원택 오한섭 원태조 유재관 윤창녕 이경환 이길상 이덕인 이병렬 이상남 이석구 이성도 이영일 이원기 이정순 이한열 이현중 임종호 장이기 장현구 전응재 정경식 정상국 정상순 정태수 조경천 조정식 천덕명 최대림 최동 최성묵 최윤범 최태욱 하재완 한상근 허세욱 홍덕표 황보영국


한 명씩 호명하며, 각자의 얼굴을 더듬기 위해 눈에 힘준다.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다. 85명의 열사를 한 장에 합쳤다는 사진가의 속내가, 또 영정이 될 줄 몰랐을 사진의 운명이 얄궂다.

 

2011년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의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보다 8년 전 같은 크레인에 올랐던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농성 129일째 되는 날, 스스로 목을 맸다. 같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죽음이 겹쳐질지 모른다는 절망이 김진숙과 연대하려는 ‘희망버스’의 연료가 되었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 숫자 ‘85’와 연관된 작품을 모으는 ‘85프로젝트’에서 사진가 홍진훤은 85명 열사의 영정으로 사진을 만들었다.

 

작가는 대학생 시절, 학회방에서 김주익의 추도사를 영상으로 보며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 추도사를 읽은 김진숙이 김주익을 이어 85호 크레인에 올랐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용산에서 허공에 매달린 망루가 불타며 사람이 죽는 걸 목격했던 사진가가 바라본 85호 크레인은 아득한 높이의 절망은 아니었을까.

 

모니터 창에 85개의 죽음을, 그렇게 85번의 절망을 불어오는 클릭 소리를 상상하면 아득한 기분이 된다. 하지만 85개의 죽음이, 85번의 절망이 쌓인 이미지는 묘하게도 ‘살아달라’ 온몸으로 외친다. 이제, 아무도 그들처럼 죽지 말라고.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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