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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정의 사진 속으로'에 해당되는 글 187건

  1. 2017.05.19 바바라 클렘
  2. 2017.05.12 타임 리프
  3. 2017.05.08 수박과 가짜뉴스
  4. 2017.04.28 요시다 기숙사
  5. 2017.04.21 장화
  6. 2017.04.17 자크 앙리 라르티그
  7. 2017.03.31 예카테리나
  8. 2017.03.24 특이한 점
  9. 2017.03.17 공항 가는 길
  10. 2017.03.10 청동 6각 너트
  11. 2017.03.03 꽃 시절
  12. 2017.02.24 빈방
  13. 2017.02.17 디지털 검은 사각형
  14. 2017.02.10 존재와 무, 그 양면성
  15. 2017.02.06 상하이로 간 디즈니
  16. 2017.01.20 쿠델카의 집시
  17. 2017.01.13 무명
  18. 2017.01.06 아트스쿨 프로젝트
  19. 2016.12.23 탈 혹은 지하왕국
  20. 2016.12.16 좀녜

East Berlin, 1979 ⓒ Barbara Klemm, Institut fur Auslandsbeziehungen e. V.


대선 당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안희정의 볼 뽀뽀는 애교 있는 돌발 상황이었지만, 1979년의 이 장면은 정치인들 키스신의 대표 격이라 할 만하다. 당시 동독 정권 30주년을 기념한 자리에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은 진한 입맞춤으로 동맹국의 우정을 과시했다. 일명 형제들의 키스라 불리는 이런 입맞춤은 서구권 사회주의자들이 연대를 드러내는 상징적 방식이다. 프리랜서 사진가 레지스 보수의 클로즈업 사진과 함께 바바라 클렘의 이 사진은 당시 분위기를 전하는 역사적인 아이콘으로 꼽힌다.

 

바바라 클렘은 중도 우파 성향의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자이퉁’의 사진기자였다. 1959년 입사해 처음에는 사진 제판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바바라 클렘은 1970년 사진기자로 활동을 전환한 뒤 2004년 은퇴할 때까지 문화, 예술, 정치부를 누비며 굵직한 세계사를 기록했다. 특히 브레즈네프와 호네커의 뜨거운 동맹 키스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10년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그녀의 걸작으로 꼽힌다. 장비의 진화에 민감한 사진기자임에도 평생 흑백 필름 사진만을 고집한 그녀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덕분에 흑백 사진의 특유의 명암 대비는 물론이고, 긴박한 상화에서도 완결성 있는 구도를 추구한 사진가로 꼽힌다. 고은사진미술관이 회고전을 통해 포토저널리즘의 경계를 넘어서려 한 그녀의 궤적을 소개한다. 의욕이 넘치는 사진기자들은 많지만, 그들의 개성은 좀체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언론 풍토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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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나, Time Leap Vol. 1-6, 2014

 

공간291은 사진인들이 꾸려가는 협동조합으로 전시장이자 책방으로 쓰인다. 건물 주소가 29-1번지여서 붙인 이름인데, 이건 꽤 놀랄 만한 우연이기도 하다. 미국 사진계의 거장이자 조지아 오키프의 남편이기도 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1905년 뉴욕 맨해튼가에 열었던 갤러리의 주소도 291이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의 갤러리 291은 뉴욕 최초의 사진 전시장이자, 유럽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미국에 소개하는 진원지였다. 대신 서울의 공간291은 해마다 신인 작가를 발굴해 전시를 지원해 주는데, 지금은 상반기 지원 작가 중 한 명인 김레나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화두는 시간. 신인이라는 수식이 붙은 작가는 이토록 익숙한 불멸의 주제를 어떻게 신선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

 

횡단보도가 놓인 길 위에 무늬처럼 박힌 인물들의 덧없는 어떤 순간이 있다. 아이들 셋은 뛰어놀기에 여념이 없다. 각자의 방향이 달라 어디론가 흩어져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가운데 여자는 상복을 입고 있다. 조문객이 마지막으로 위로를 전하는 헤어짐의 순간이기도 하다. 담배라도 태우려는지 화면 맨 위 두 남자 또한 어디론가 사라질 태세다. 장례식장 높은 곳에서 훔쳐보듯 무심하게 기록한 6장의 일련의 사진 속에서 이들은 갑자기 등장하기도 하고, 또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홀연히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죽음과 탄생의 반복처럼. 작품 제목은 ‘타임 리프’. 원래는 시간을 거슬러 이동하는 것을 뜻하지만, 작가에는 불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무한 반복하는 시간의 운동성 자체를 의미한다. 김레나의 관찰력은 그 시간을 거친 입자의 또렷하지 않은 이미지로 붙들어 둔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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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5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미쓰코 사노의 본래 직업은 영화 연구가였다. 중동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이슬람 영화를 소개하는 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문화가 이질적인 탓인지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일본에서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대신 이미지에 대한 관심은 각 문화권이 가지는 제멋대로식 편견과 그것을 사진으로 다루는 일에도 흥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아시아인들은 찢어진 눈매를 하고 있다든지, 온갖 종류의 카메라를 걸친 채 어딜 가든 사진 촬영에 몰두하는 식으로 묘사되는 중년의 일본 아저씨는 전형적인 사례다. 미쓰코는 이런 인종적 고정 관념을 사진으로 재현한다. 스스로가 모델로 분한 모든 장면들은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과장되어 있다.

 

다이소부터 미국 아마존 사이트까지를 들락거리며 힘들게 마련한 소품으로 남자, 여자, 아시아인, 무슬림 등으로 변신하는 그녀가 이번에는 큼지막한 수박을 든 흑인 소녀로 탈바꿈했다.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한 뒤 그들의 문화를 조롱하는 쇼는 미국 극장에서 성행하던 오랜 관행이었다.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과 함께 사라지기까지 무려 한 세기를 지속했다. 비록 이런 극장 쇼는 사라졌어도, 게으른 흑인이 한 번에 먹기에는 지저분한 수박을 좋아한다는 식의 문화적 편견은 남북 전쟁 이후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노예 제도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수월하게 키우거나 팔았던 과일이 수박이었다는 사실에서 연유했다는데, 심지어는 버락 오바마의 대선 운동 당시에도 그를 공격하기 위해 등장할 정도였다. 조잡한 소품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미쓰코가 진짜 흑인일 수 없는 것처럼 억지스러운 선입견들은 가짜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이야말로 중독성이 강해서 쉽게 제거할 수 없는 덫이 되고는 한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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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최초로 배출한 건 폐망 직후 폐허 속에서였다. 이들은 교토대학교 출신이었다. 1897년 개교 이래 여전히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 4차 산업을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아마 이 대학 또한 미래 지향적인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교토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이색적인 방문 장소로 꼽히는 요시다 기숙사에 들어서면 이 학교의 저력이 전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1913년 처음 운영을 시작한 이 기숙사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기숙사이자, 유일한 목조 건물 기숙사이다. 120개의 다다미방을 갖춘 내부에는 200명 정도의 학생이 살고 있고, 학교 당국의 간섭 없이 기숙사 자치회를 통해서만 운영이 이뤄진다.

 

그러나 간타 노무라가 함께 살다시피 하며 촬영한 사진을 보면 내부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철거에 임박한 숙소처럼 이불과 쓰레기는 방방마다 뒹굴고, 공연장으로 바뀐 식당을 대신해 취사는 편한 곳에서 아무렇게나 이뤄진다. 건물 일부는 관리 소홀로 무너지기 일보직전이고, 그런 틈에서 학생들이 키우는 염소나 공작 등이 함께 살아간다. 1년 회비가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보니 유학생이나 고학생에게는 여기만 한 곳이 없고, 심지어는 이곳을 떠날 준비가 안돼서 10년째 학교를 다니는 학생도 있다는 풍문이다. 물론 학교 당국이 이런 상황을 반길 것 같지는 않다. 1960~1970년대 좌파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와 1995년 한신대지진을 거치며 학교 당국은 안전과 시설 관리상의 문제로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이제 이곳은 젊은 지성의 거처라기보다는 셰어 하우스의 원조 혹은 시대를 거스르는 보헤미안들의 안식처 같은 인상도 풍긴다. 그럼에도 취업과 학점에 찌든 우리에게는 여전히 꿈꿀, 아니 최소한 도피할 자유가 있는 해방구처럼 보인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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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amichi Kagaya, Autoradiograph 연작 중 Boot, 2013


장화 한 켤레. 아담한 크기에 영롱한 빛을 발산한다. 제각기 굵기가 다른 빛 알갱이들은 단순한 신발에 신비감마저 감돌게 한다. 이런 걸 어쩌면 사진의 눈속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진은 사소한 것들도 비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시각 놀이에 길들여지다 보면, 점점 사진이 객관적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장화 사진은 정반대로서의 눈속임이자 반전이다. 평범했을 이 장화는 이제는 예사롭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지대에서 주워온 이 신발이 발산하는 빛의 정체는 모두 방사능이다. 방사능에 많이 노출될수록 빛은 훨씬 굵고 찬란하다.

 

사진가 마사미치 가가야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능 누출의 영향을 추적하는 도쿄대 생물학자 사토시 모리 교수팀에 합류해 사진 기록을 맡고 있다. 이들은 이미 대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 방사능이 생태계, 특히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지에 대해 추적하고 연구한다. 놀랍게도 사고가 난 수년 후 후쿠시마에서 아주 먼 주택가에서 찍은 공기 청정기 필터 사진에서도 굵은 빛 알갱이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무색무취의 방사능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연구팀이 사용하는 사진기법은 자동방사선사진. 방사성물질이 사진 건판 위에 검정 흔적을 남기는 데에서 착안한 이 기술은 본래 연구와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다. 마사미치는 촬영 후 이 검정 알갱이들을 흰색으로 반전시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이 사진들은 사고 지역 정상화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사실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재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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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그는 직업은 화가였고 신분은 귀족이었으며, 사진은 취미였을 뿐이다. 일곱 살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나 69세에서야 사진가로 알려졌다. 다만 데뷔 장소가 남달랐다. 뉴욕 현대미술관. 그곳의 사진부장 존 사코우스키가 그의 사진에 반해 첫 전시를 기획한 뒤로, 누구도 사진가로서의 그를 흉내낼 수 없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 19세기 말에 태어나 피카소와 장 콕토 등을 친구 삼아 20세기를 즐겼던 인물. 프랑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서 그가 유년 시절부터 일기처럼 찍은 사진에는 상류 사회의 일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그 모습들은 한결같이 유쾌하고 즐거운 사건사고들로 가득해 그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으며 심지어는 군인으로 참전했다는 사실마저도 잊게 만든다. KT&G 상상마당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사진을 선보인다.

 

사진으로만 보자면 라르티그의 가족과 친척, 연인, 친구들의 매일에는 노동이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여가 활동이 차지하는데, 일 삼아 놀던 사람들답게 얼리어답터로서의 실험에도 적극적이다. 예를 들면 1910년에 찍은 이 사진은 ‘피루’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형의 우스꽝스럽고도 진지한 도전을 보여준다. ‘ZYX24’라는 이름을 가진 이 탈것은 피루의 22번째 글라이더였다. 7년 전 라이트 형제가 성공한 최초의 동력 비행이 당시 얼마나 유행이었나를 짐작하게 하는 이날의 실험에서 비루는 최장 1분을 날았다고 라르티그는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상류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없이 그들만의 신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솔직하고 유머 넘치는 시선 덕분이다. 그는 빛과 구도에도 탁월해서 그가 연인을 찍은 어떤 장면들은 그 순간을 훔치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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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Bientot(Soon), from the series Ekaterina, 2012 ⓒ Romain Mader / ECAL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우크라이나. 이로 인해 섹스 관광에 대한 오명도 적지 않은 이 나라에는 예카테리나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는 오직 여성들만이 산다. 늘씬하고 지적이기까지 하며, 신부 수업까지 마친 이 여성들의 이름은 모두 예카테리나. 사진가 로멩 마데르는 이 이상한 도시에서 신붓감을 찾아 즐기고 방황하다 마침내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난다. 젊은 남자의 욕망에 충실한 이 설정은 물론 가짜다. 그러나 허무맹랑하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다. 예카테리나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로멩 마데르는 진짜 사진가이자 작품 속 주인공이고, 그가 찍은 모든 사진 또한 우크라이나의 현실 세계에서 채집되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35세 미만의 젊은 사진가를 선발해 지원을 해 주는 네덜란드의 사진미술관 폼(Foam)이 올해는 가볍고 기발하게 사진 이야기를 꾸며낸 스위스의 이 젊은 사진가를 수상자로 꼽았다. 대다수가 연출 없이 찍은 사진이지만, 그가 설정해 놓은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처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 있는 혼란을 맛본다. 그 미궁 속에는 성과 결혼의 상품화,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그 틈새에 놓은 개인들의 관계 등 꽤 진지한 질문이 숨겨져 있다. 그의 이야기는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예카테리나를 스위스 마테호른 산으로 초대해 청혼을 하고, 결혼에 이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작가의 시치미는 대단해서 이 결혼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진짜였으면 좋겠고, 혹시 가짜라 해도 진짜처럼 거짓말을 계속 해줬으면 하는 야릇한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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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청와대 본관, 2016


파랑 바탕에 노란 점이 박힌 스티커. 이것의 조달이 수월하지 않을 때는 비슷한 모양으로 대체 가능하다. 특이점이 없는 점 하나. 그러나 이 기호의 의미를 아는 순간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특이한 점으로 급부상한다.

 

이 점 위에는 단 한 사람, 흔히 VIP라 부르는 대통령만이 선다. 완벽한 경호를 위해, 차질 없는 예행연습을 위해, 절도를 갖춘 의전을 위해 이 점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점은 대한민국 최고 통치권자의 압축된 권력이다.

 

사진기자 김성룡은 해마다 스스로 오답노트를 작성해 왔다. 맞다고 여겼으나 답으로 채택되지 못한 것은 다름 아닌 B컷 사진. 그가 정말 찍고 싶었던 사진은 늘 지면에 실리지 못한 채 오답처리 되었다. 지난해 그의 오답노트 제목은 ‘특이한 점’. 청와대를 출입하거나 대통령 순방에 동행하면서 기록한 스티커들의 흔적을 모았다. 이 빨간 카펫에 스티커가 붙던 날, 언론사의 정답 문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등 6개국의 주한 대사들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았다’였고, 사진 또한 당연히 등장인물의 얼굴이 나온 것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정말 대사들을 임명했던 것인지, 스티커 위에 서지 않은 보이지 않은 실세의 개입이 있었던 것인지 정답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탄핵이 인용된 지금 와서 보면, 수많은 정답이 오답이었다. 김성룡의 오답 사진들은 권력이 바닥에 붙은 종이 스티커 한 장만큼이나 무상하다는 사실을 넘어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은 틀리 수 있는 정답의 배신까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므로 B컷 사진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B급 정치가 오답이라고 알려줄 뿐.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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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경계 밖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먼 거리에서는 당연히 여기와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멀리 날아갈수록 낯섦은 깊어진다. 공항 가는 길은 그곳만의 기후, 자연,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러나 정작 공항 자체는 경계에 머문다. 넓은 활주로를 위해 도심에 들어서지 못하고, 엄청난 소음은 주변으로 정착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도 못한다. 공항에 근무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만 있을 뿐, 일상이 축적되지 못하는 곳. 여기와 저기를 잇는 허브이면서도 스스로는 외따로 존재하는 이방인 같은 존재일 뿐이다.

 

김신욱, Airport Way, 2015

런던에 살고 있는 김신욱은 히스로공항을 이용할 일이 잦아지면서 점점 공항을 둘러싼 주변부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오래전 히스꽃이 만발하던 농지의 대다수는 공항 부지로 편입되었고, 일부는 산업 시설이나 목장으로 변신했다. 서커스나 노천 술집이 들어서 더 멀리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유혹하는 한철 장사가 성행하기도 한다. 드문드문 주택가가 있지만 대개는 비행기의 굉음을 감내해야 할 만큼 변방에 몰린 이들이 머문다. 모두가 제 갈 길만이 바쁜 이곳에서 상주하는 직원처럼 공항을 찾는 단골이 등장하기도 한다. 카메라나 망원경을 들고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을 기록하는 이들은 전 세계 비행기의 기종과 항로를 꿰찬 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낙으로 삼는다. 그들은 오직 공항만이 선물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취미의 세계에 몰입한 자들이다. 김신욱의 ‘공항’ 연작은 이용객의 입장이 아니라 공항 자체가 지닌 장소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들은 꽤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굳이 따지자면 이곳보다는 저곳에 더 가까운 것처럼 생경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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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보통 어른의 키를 훌쩍 넘는 180×225㎝ 크기로 전시장에 걸린다.

대형 프린트의 위압감은 본능적으로 이 대상을 육중한 금속성 물질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패너로 조이는 6각 너트란 구경이 밀리미터 단위이거나 커봤자 엄지손가락 마디 정도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물과 그 사물을 확대시킨 사진의 간극은 생각보다 커서, 시각적 긴장감과 함께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찰을 유도한다. 이렇듯 EH(김경태)가 사진가로서 갖고 있는 관심은 어떤 사물이 품고 있는 본연의 물성이다. 대신 사진을 통해 특정 장소나 시간에 얽힌 기억을 얘기하는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서사가 없는 그의 사진은 차갑고 중립적이면서도, 대상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작가에게 사진은 카메라라는 광학 기계와 분리시킬 수 없는 쌍의 개념이기도 하다. 렌즈는 우리 눈이 미처 놓치고 있던 혹은 능력 밖이어서 볼 수 없던 차원까지를 가시화시켜 준다.

그는 처음에는 죽어 있는 작은 곤충을 가까이에서 찍으며 접사의 세계와 마주했다. 그 뒤로는 취미로 모으던 작은 돌들의 입자와 색감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만의 방법론을 터득해갔다.

 

아주 미세하게 카메라의 위치나 렌즈의 초점을 조정해가면서 때로는 수백 장의 이미지를 촬영한 뒤, 한 장으로 재구성해낸다. 그 결과 실제와는 다른 원근감을 얻은 대상은 강렬한 디테일과 입체감을 드러내면서도 깊이를 잃어버린 2차원의 도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극사실의 정점이자 광학 세계가 탄생시킨 비현실적인 이미지 같기도 한 양극성은 계속해서 긴장감을 발산시킨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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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세상은 어지러웠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59년, 나라 밖에서는 쿠바가 혁명을 완수했고 바비 인형이 태어났다. 미국 우주선 익스플로러 6호가 우주에서 찍은 최초의 지구 사진을 인류에게 선물하던 그해, 그들 또한 역사적이고 의미심장한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꽃 시절에 친우를 부여잡고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실제 꽃 시절에 주름살 없이 단아한 꽃다운 나이의 인생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이른 봄, 배경 속 흙바닥은 아직 버석거리는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사진 한 장 속에서 설레는 봄기운을 맡는다.

 

전순자씨와 번암 친구들, 1959년

 

사진가이면서 지역의 시각 자료 수집에도 공을 들여온 전북 전주 서학동사진관의 김지연 관장이 그동안 모은 옛 사진들로 ‘꽃 시절’이라는 전시를 연다. 전시를 위해 사진에 글귀가 남아 있는 것들만을 추려내니 오히려 보는 재미가 쏠쏠해졌다. 사진은 한때를 붙들어 두기 위한 방편이지만, 흐릿해지는 기억과 함께 사진에 얽힌 이야기도 각색되기 마련이다. 얼굴 가득 생기가 가득한 그날이 단기 4292년 3월5일이었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은 선연하게 남아 있는 글의 힘이다. 대개는 사진을 찍은 이들이 찍힌 이들을 위해 새겨 넣었던 말들은 한 장의 사진을 또 다른 분위기로 이끌고 간다. 예쁘게 쓰려 한 흔적이 역력하나 글씨체가 못나서 안타깝기도 하고, 푸근하고 정감 있는 장면과 달리 써놓은 문구가 너무 비장해서 우습기도 하다. 이 글들은 기억과 기념을 위한 정보이면서 동시에 사진 속으로 들어온 또 하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사진 속에 들어와 그림이 된 문장들로 인해 전라도 번암 아가씨들의 한때는 모두의 그리움으로 남는 꽃 시절이 되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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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택, 빈방 0번방 금계동 57, 2015


카메라 옵스큐라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미술에서는 어둡게 만든 공간이나 상자 안에 구멍을 낸 뒤 밖에서 새들어오는 빛을 따라 맞은편 면에 거꾸로 상이 맺히는 장치를 의미한다. 오래전 화가들이 초벌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한데, 오늘날의 카메라는 이 장치를 간단히 만들기 위한 노력을 거듭한 끝에 태어났다. 

 

조현택은 빈방을 찾아다니며 방 자체를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었다. 천을 둘러 암실로 만들고 구멍을 내자 바깥 풍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0번방’이라 이름 붙인 이 방에서 첫 작업의 아이디어와 맞닥뜨렸다. 정작 결과는 성에 차지 않아서, 이미지는 다른 빈방을 전전하며 다시 봄이 오기를 기다린 1년 뒤에야 얻어냈다.

 

생이 머물렀던 흔적은 남아 있으되 그마저도 자취를 감출 것 같은 소멸의 공간. 빈방은 기억마저도 망각을 향해가는 어둠의 장소다. 그러나 쇠락 또한 시간이 필요한 법. 방의 축축한 기운을 타고 이끼가 번식하는 그 시간 동안 방문 밖에서는 유채꽃이 피고지고, 바람이 불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정지한 공간과 흐르는 시간, 흩어지는 기억과 다시 솟아나는 생명은 조현택이 빈집에서 목격한 존재의 부조리함이자 이중성이다. 집 앞 유채꽃이 뒤집어진 채로 방 안을 찾아오는 전복은 이런 모순에 동조하는 자연스러운 사건일 뿐이다. 

 

사진은 이 모든 덧없음을 붙들어 그 순간에 영원을 부여한다.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는 모든 존재가 상으로만 맺힌다. 빛이 없다면 사라져버릴 허상처럼. 그 잡히지 않는 이미지 혹은 허무한 세계를 붙들어 두는 일이 사진이라고 조현택의 빈방은 일러준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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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디지털 검은 사각형, 2016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검정 사각형 하나.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가 1915년 ‘검은 사각형’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은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형태와 색채를 사라지게 만든 이 사각의 절대성을 넘어설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과 인간 세계에 대한 재현의 강박으로부터 도망치던 서양 회화가 점선면으로 응축되더니, ‘검은 사각형’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회화의 모두 구성 요소를 삼켜버렸다.

 

그 순간 말레비치의 표현대로 예술은 대상의 멍에로부터 해방되었고, 평면의 캔버스는 한없이 깊은 비가시의 세계로 들어섰다. 덕분에 회화는 존재의 심연까지를 건드리는 숭고한 매체로 변신했다.

 

여기 또 다른 검은 사각형. 말레비치의 작품 제목 앞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을 덧보탰다. 공들여 촬영한 휴대폰의 검은색 액정 화면. 이 사각형들은 공학적인 비례와 지능성까지를 겸비한다. 이 검정 화면이 열리는 순간 세상이 서로에게 연결되면서 삼라만상이 펼쳐진다. 추상 회화가 떨쳐내려 했던 구체적 대상이면서 심지어 세속적이기까지 한 사물의 표면. 그러나 이 매끈한 사각형의 존재 가치가 말레비치의 사각형보다 가볍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진이론가 박상우가 룩스에서 열고 있는 첫 개인전 ‘뉴 모노크롬-회화에서 사진으로’는 사진의 매체성을 고민한 이론가의 실천 무대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 정신적인 것이 더 고상하다는 압묵적 강박을 깨고 휴대폰은 물론 금은이나 화폐 속에서 아름다운 모노크롬의 세계를 구현한다. 그 시도는 인간 시각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사진 매체의 절대성에 관한 신선한 실험이기도 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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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무, Lifeless Portrait-Laurel, 2012

사진 발명 초기, 혹은 사진을 처음 받아들인 사회에서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의심한 일화가 많다.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인 내 모습을 복제했다면 그 몸을 따라 영혼도 옮겨간다고 믿었다. 신체는 혼을 담은 껍데기일 뿐이었다.

 

이제 사진에 대한 태도는 양 갈래다. 눈에 보이는 물성만을 정확하게 재현해낸 차갑고 기계적인 이미지를 두고 생명성을 운운하는 것은 구식이라는 축이 하나.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고유한 분위기와 태도로 인해 사진을 통해서도 탁월한 심리 묘사가 가능하다는 축이 다른 하나. 이현무는 이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조금 비껴간 질문을 던진다. 사진을 찍을 때 생명이 빠져나간다면, 그 분리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까.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세상과 작별할 때 눈을 감는다고 말하는 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서의 신체 기관이 기능을 멈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감긴 눈은 자신의 내부로 침잠한다. 작가는 눈을 감은 지 15~30분 사이, 얼굴에 드러나는 미묘한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몰입도가 가장 높은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엑스레이 필름을 사용한 것은 상이 앞뒤로 맺히는 특성 때문이었지만, 비가시의 영역이라 여겼던 신체 내부를 투시한다는 상징성이 마음에 들기도 해서였다. 현상 과정에서 필름 한쪽 면에 무작위로 그은 선들은 생명을 담지 못한 혹은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는 신체가 경험하는 일종의 거친 소용돌이다.

 

작가는 영혼을 배제한 껍데기로서의 신체를 다루고 싶었다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사진에서는 인물들이 지니는 저마다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눈을 감고 있는 그 순간이 가장 예민하게 존재를 고민하는 정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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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가 실재보다도 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세계로 디즈니랜드를 꼽은 지 오래다. 이미지의 시대에, 이 가상의 공원으로 들어가면 동화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직원들은 모두가 친절하고 어느 구석진 곳을 돌더라도 마치 나의 출현을 기다렸다는 듯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만화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곳은 깨어나기 싫은 꿈속 공간이다. 보드리야르는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이런 허구의 소비 사회인데도, 디즈니랜드로 인해 오히려 나머지 세상은 사실적이라고 믿게 된다고 꼬집는다.

 

고천봉, Once upon a time in Disney, 2016

 

이 가상 세계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중국 상하이에 상륙한 지 반년이 지났다. 700명의 디자이너가 설계하고 6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했다는 자랑에 힘입어 이미 560만명이 다녀갔다. 하루 평균 3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셈이다. 미국과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던 중국마저도 자본을 따라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락국가로의 전철을 밟아가는 것일까.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고천봉은 상하이의 디즈니랜드에서 미국 경제가 호황이던 1900년대 초중반의 향수를 읽는다. 판타지에 매료된 들뜸의 공간. 그것은 과거 미국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경제 발전이 어느 지점쯤 이르렀을 때 자본이 만들어내는 소비의 유형이다.

 

사진 속, 유니폼을 입고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직원들 옆으로는 비눗방울이 짧은 환상의 순간을 장식한다. 혹여 저 쓰레기통이 호박마차로 변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가상의 세계를 움직이는 건 실제의 노동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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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소련이 탱크를 몰고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진입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꿈꾸며 개혁을 펼치던 체코 지도자 둡체크의 노력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탱크에 맞서 싸웠지만, 그들 손에 들린 화염병과 돌멩이로는 역부족이었다. 당시의 절망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담은 이는 요세프 쿠델카였다. 그 스스로가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있다’라고 말했듯,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사진가의 사진은 위태로운 상황을 몹시도 시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가족을 향한 보복이 두려워 서방 세계에 그 사진들을 공개할 때, 체코 사진가라는 의미의 이니셜 CP를 써야 했을 만큼.

 

Slovakia, 1967 ⓒJosef Koudelka/Magnum Photos

 

그해는 마침 그가 자신의 첫 대표작 ‘집시’를 전시로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전업 작가를 선언한 때였다. 비행기를 좋아하던 엔지니어는 공대 재학 시절부터 체코와 루마니아, 프랑스 등지의 집시를 찍으러 다녔다. 배낭을 메고 떠돌며 잠은 노숙으로 해결했다. 프라하의 봄 이후, 그 자신 또한 망명길에 올라 집시처럼 떠돌며 살았다. 프랑스 국적을 얻은 건 오래전이지만 여전히 습관처럼 석 달 이상을 같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한미사진미술관에서의 ‘집시’ 전시를 위해 서울에도 들렀다. 까다로운 성미로 유명한 그가 국내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자 그의 첫 작업. 화각이 넓게 나오는 25밀리 렌즈를 사용하고, 강한 명암 대비를 둔 그의 집시 사진은 프라하 침공 사진보다 구도가 불안정하고 질감도 거칠지만, 그 특유의 끈적거림이 있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분위기가 집시의 삶의 조건 때문인지 아니면 20대의 쿠델카가 품은 첫 작업의 뜨거운 순도 때문인지 분리하기 어렵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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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요동치는 중국에서도 길거리의 전광판이나 광고판 사용료는 비싸다. 영세한 사업자나 불법 자영업자에게는 당연히 그림의 떡. 대신 그들은 전봇대나 벽에다 낙서처럼 광고를 남긴다. 임대 안내는 얌전한 편이고 성매매나 무기 거래, 불법 시술처럼 은밀한 거래를 알리는 광고도 적지 않다. 당연히 공무원들은 이 광고를 지우는 데 혈안이다. 다만 어떻게 지울지에 대해서는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물걸레나 긁개를 사용해 말끔히 제거도 하지만, 그렇게 공들이면 품이 많이 드니 페인트로 아예 낙서를 덮어버리는 식이다. 정보는 사라졌지만, 벽 위에는 더 요란하게 흔적이 남는다. 채 지워지지 못한 전화번호와 몇몇 단어들이 페인트 아래에서 오히려 시선을 끌기도 한다. 벽 색깔과 맞추기 위해 흰색이나 회색을 주로 쓰지만, 페인트칠의 톤과 크기는 불법 광고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Wang Ningde, No Name no. 25, 2015

 

왕닝더는 이 페인트 흔적을 사진으로 일일이 채집한 뒤, 자신이 촬영해 둔 도시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얼굴 위에 포토샵으로 덧입힌다. 첫눈에 보면 캔버스 위로 붓질이 거칠게 난 그림 같기도 하고, 길거리의 그라피티를 촬영한 사진 같기도 하다. 불법 광고로나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 그 익명의 개개인 얼굴과 그들이 벌이는 사건을 왕닝더는 아예 은폐해 버리려는 것일까. 오히려 왕닝더는 존재감을 지우려 할수록 어떤 식으로든 잉여의 흔적을 남기는 무명씨들이야말로 일상의 주체임을 강하게 피력한다. 공권력과 개인의 생존 게임의 결과에서 얻어진 그의 작업은 좀 거창하게는 인민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호명해낸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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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자는 교환 학생으로 체코의 예술학교에 머물렀다. 또 다른 경험을 택해 떠나왔지만 적응은 쉽지 않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생기 넘치는 표면적인 관계를 거둬내고 나면 두렵고 무기력한 자신이 있다. 낯선 환경, 처음 접하는 수업은 그것들에 익숙해 보이는 학생들과 스스로를 더욱 구분 짓게 만든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것들은 도대체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예술이란 도대체 무얼까.

 

작업에 대한 부담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일상에서 예술을 둘러싼 현란한 수사나 비장한 결심은 덧없을 뿐이다. 그래서 박희자는 예술 자체가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박희자, 아트스쿨 프로젝트, 2015

 

미대의 작업실. 학교라는 공적 공간 안에 놓인 창작자들의 사적 공간의 경계는 예술만큼이나 모호하고, 쉽게 교란된다. 누군가의 전시작 혹은 습작이었을 토르소의 무릎은 깨지고 좌대에는 먼지가 가득하다. 목재 소품이 막아선 지 꽤 된 것으로 보아 사실상의 방치를 짐작하게 한다. 장식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쓸모없다 말할 수도 없는 이 토르소 곁에서 머물던 어떤 이가 무심코 놓고 간 빈 병 하나. 우연히 생겨난 야릇한 포즈와 함께 빨간색 뚜껑의 산뜻함은 존재감을 상실하던 조각상에마저 다시금 시선을 머물게 한다.

 

심혈을 기울였으나 무심하게 잊혀지던 작품과 무심하게 흔적을 남겼으나 의외로 시선을 끄는 사소한 사물의 엇박자와 긴장감이야말로 정직하고 소박하게 창조적 영감을 부추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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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의 사진 집단 땅당스 플루(Tendance Floue)는 프랑스어로 ‘흐릿한 경향’을 뜻한다. 흐릿하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의 불확실성일 수도 있고, 그 세계를 담아낸 자신들의 사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망설임은 세상의 이면과 사진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서 오히려 진솔하다. 그런 땅당스 플루 사진가들이 한국을 드나들며 촬영한 작업을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서구 사진가들이 바라본 한국에서는 당연히 분단과 샤머니즘과 음주와 성형 등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사진가 12명은 자기만의 변주와 해석을 가미해 소재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있다.

 

Alain Willaume, 위/아래, 탈 혹은 지하왕국, 지하, 2015

 

알랭 빌롬이 한국에 왔을 때는 메르스가 빠르게 번지던 시기였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는 질병과 불안으로 점철된 세계의 폭력성과 그에 대처하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목격했다. 알랭은 마스크의 우리말인 탈이 가면이자 병을 뜻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얼굴에 쓴 탈은 과연 탈이 난 사회 속에서 나를 격리시켜낼 수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안전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위약 효과일지도 모른다. 지하철 안 마스크를 쓴 승객은 지상의 세계를 방황하다 지하의 세계로 숨어들어간 미래 세계의 시민처럼 보인다. 그러나 탈 아래 얼굴을 감춘다고 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니듯, 지하의 세계 또한 지상의 도피처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한국인의 현대판 탈을 통해 알랭이 감지한 경향은 흐릿하다 못해 전 지구적 불길함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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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오로지 맨몸으로 바닷속을 터전 삼는 흔치 않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문화재가 그렇듯 무형의 문화유산들은 경이롭되 현실에서는 점점 시들해져 간다. 실제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많은 문화들이 사라질 위기에 있어 유네스코는 보존이 필요한 문화들의 목록을 별도로 관리할 정도다. 유네스코의 이번 지정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해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면서도 혹시 화석화될지 모를 그네들의 미래를 보는 듯해서 두려운 건 이 때문이다.

 

김흥구, 우도 비양동, 2010

 

다행히 김흥구의 ‘좀녜’는 이런 조급함과 불안감을 조금은 누그러뜨려 준다. 좀녜는 해녀의 제주도 방언인데, 최근 갤러리 류가헌에서 김흥구의 좀녜에 관한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만들고 전시로도 선보이고 있다. 김흥구가 해녀들을 촬영한답시고 무작정 제주를 드나들기 시작한 건 20년 전, 여비도 배짱도 넉넉지 않던 대학 시절이었다. 당시 숫기 없는 젊은이의 눈에 비친 해녀들은 다부진 생활력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늙어가는 해녀, 사라질 운명 등의 수식이 붙은 판에 박힌 사진이 찍히지 않은 건 실제 해녀들의 삶이 청승맞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책 없는 자신을 수양아들 삼아 끼니와 잠자리를 챙겨줄 만큼 정이 많은 해녀도 만났고, 제주 바다가 좁다며 원정 물질을 나서는 상군 해녀도 만났다. 그사이 청년이었던 사진가는 가장이 되었고, 해녀를 넘어 4·3항쟁의 흔적을 좇는 강단을 갖춰갔다. 김흥구의 ‘좀녜’는 해녀들의 일상에 관한 진득한 보고서이지만 뭍에서 온 젊은이를 사진가로 길러낸 해녀들의 넉넉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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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