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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들꽃과 마주하면 생기는 일 위로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이름 모를 들꽃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대부분 화려하지도 않은 색깔에 시선을 끌 만한 자태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주하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다. 어떨 때는 아예 세월아 하고 시간을 보내는 날도 꽤 있다. 좋으니까 그렇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일 없이 진득하게 서 있는 그 순간이 참으로 기쁘다. 어지러운 일상도 내려놓고 입도 지그시 다문 채 그저 지금 그 순간을 즐긴다. 평화에 젖어드는 느낌이랄까. 내 성정이 평화로워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들꽃 자체의 기운으로 내가 평온을 얻기에 더욱 그러하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존재로 당당히 서 있지 않은가. 눈에 띄지 않는 그 평범함이 오히려 진득한 아름다움으.. 더보기
내 삶의 쓰임새 나의 사진이 가진 쓰임새는 과연 무엇일까. 한 해가 저무는 날에 이르러 숙연한 마음으로 지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허허로운 생각이 커지면서 이내 삼고초려의 심정을 벗 삼아 스스로 맘을 달래본다. 그나마 얼마 전에 있었던 가슴 뿌듯한 기억 하나가 크게 위로가 되었다. 무척 바라긴 했으나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이 내 눈앞에 떡하니 펼쳐졌다. 민망함에 손사래를 쳤지만 말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두 눈가가 벌게지기까지 했다. 그것은 세상에 내놓은 지 너무 오래되어 절판까지 된 나의 책 을 읽은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믿고 따르는 한 인생 선배가 주선한 모임 자리에 참석했다가 내 이름을 알아본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암투병을 하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그녀는 이 책을 읽고 크게 위로를 받.. 더보기
오랜 사이 햇살 가득 품은 얼굴이 내게로 왔다.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눈인사에는 오랜 인연으로 빚은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꾼’. 내가 이 나라를 찾아 NGO활동가로 머물던 2009년에 처음 만났으니 벌써 10년을 꽉 채운 인연이다. 바늘과 실을 처음 눈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녀는 지금 꽤 능숙한 솜씨를 지닌 전문 재봉사가 되어 있다. 2년 전쯤 왔을 때와는 달리 눈가에 살짝 잔주름이 얹히는 걸 보면서 세월을 함께 나눈 인연이란 생각에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캄보디아에 이런 친구들이 꽤 많다. 2004년에 처음 이 나라를 찾은 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빠져들어 아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달려와 몸과 맘을 들여 살았던 때문이다. 그 시절에 맺어진 친구들과의 인연들을 생각하.. 더보기
친구 사이 그는 나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었다. 폭격이 시작되면 혹시나 내가 화를 입게 될까 하는 마음에 진심을 다해 당장 떠나주기를 원했다. 2003년 3월18일 저녁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한 거리. “지금 떠난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이대로 남는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친구로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달라는 그를 바라보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카심’. 전쟁취재를 해보겠다는 욕심으로 이라크를 찾은 나에게 그는 현지 안내인이면서 길동무였다. 멋지게 기른 턱수염에 희끗거리는 반백의 머릿결이 잘 어울리던 카심은 머무는 기간 내내 마치 아버지처럼 사려 깊은 성정으로 내 동선을.. 더보기
두 사람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의 밀착감이 한몸으로 느껴질 만큼 보기에 좋았다. 요동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엄마가 아이와 눈빛을 맞추는 정도의 움직임이 잠깐 있기는 했으나 몸짓의 변화가 크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요함에 거의 가까웠다. 그 고요 속에 나는 없지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간간이 뒤를 돌아 내 눈빛에 섞이기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두 사람은 파도 건너 저 먼바다 끝을 향해 오래도록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두 사람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는 내내 나는 두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무엇을 그리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말을 걸 .. 더보기
장막이 걷히고 나면 바람 시린 날이 점점 늘고 있다. 11월이 아직 며칠 남아 있는데 목을 타고 스미는 기운이 한겨울처럼 제법 차다. 굳이 연결지을 일은 아니겠지만 가슴에도 시린 바람이 자꾸 타고 든다. 최근 들어 가까이 여기는 지인들의 전화나 만남의 시간들이 연이어 그리고 긴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화내용은 모두 자신의 현실에서 빚어지고 있는 슬프거나 마음 아픈 일들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를 찾을까 싶어 두말없이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그들을 대하려 애를 쓴다. 며칠 전에도 귀히 여기는 한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주 볼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늘 함께하는 후배이자 인생친구라 여기는 사이였다. 웃을 일이 없는 구닥다리 농담으로 늘 쾌활하게 말을 건네던 그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가라앉아 있기에 금방 무슨 일이 있구나 싶.. 더보기
나의 질문을 바꾼 사람들 굶주리는 이들 앞에 서서 배가 얼마나 고프냐고 이제 묻지 않는다. 절망과 고통에 쌓인 이들 앞에 서서 얼마나 살기 힘드냐는 질문도 하고 싶지 않다. 병들어 누워 있는 이들 앞에 서서 어느 정도 아프냐고 물을 생각 또한 없다. 장애를 지닌 이들 앞에 서서, 그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묻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의 시선을 어떻게 견디어 내느냐는 질문은 정말이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한때 그런 질문과 염려에만 거의 100% 기대고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답을 들은 뒤 마치 세상을 다 바꾸어줄 듯 섣부른 약속으로 그들을 탐해왔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나의 시간들이 몹시 부끄럽고 안타까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은 질문의 내용과 방식이 바뀌었다. 고단.. 더보기
땅의 눈물 땅이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요동 하나 없이 가만히 ‘서서’ 분명 울고 있었다(라고 느껴졌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모른 척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시선을 고정한 채 나 또한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허허벌판에 내쳐진 듯 보이는 몰골을 보며 이 땅이 토해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 한라산 아래 중산간을 이루는 조금 솟은 평지였거나 작은 둔덕이었으나, 최근 개발업자들에 의해 사정없이 파헤쳐지다가 어인 일이지 살아남은 자연 원형의 일부였다. 생긴 모습은 언뜻 소박하게 솟은 작은 봉우리 같았다. 대략 2~3m의 높이로 둘레는 양팔을 벌려 두어 번 돌면 가늠할 만했다. 굉음 속에 마구 깎이고 갉혀나갔을 순간들이 고스란히 눈에 보여서일까. 참으로 처연.. 더보기
사람꽃을 틔우는 사람 한 사람이 그가 속한 노동조합 집회에 참석해 아스팔트에 앉아 있었다. 또 한 사람인 사진가가 그의 곁에 머물며 서성거렸다. 잠시 숨을 고르던 노동자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딸의 얼굴을 한동안 살펴보았다. 바로 이 순간을 사진가는 놓치지 않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 거친 음성과 구호가 떠다니는 현장에서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 ‘사람’임을 이루는 시간을 꽃처럼 틔워냈다. 둘 중 하나인 사진가 ‘정기훈’은 늘 남다른 솜씨로 꽃을 틔운다. 머문 자리 자체가 척박하고 처절한 토양일 뿐인데도 탁월하게 틔워낸 그의 꽃들은 예외 없이 경탄스러울 만한 자태를 품는다. 콜텍, KTX, 쌍용차 등 해고노동자의 단식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천막, 일본대사관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쉼터가 된 .. 더보기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아 충남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 칠갑산 자락 아래 예스러운 정취가 가득했던 이 마을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아낙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로 빨래를 하고 종종 냄비며 밥솥을 씻던 풍경도, 갈 데 없는 동네 꼬마들이 ‘니캉내캉’ 멱을 감고 숨바꼭질 놀이로 시간을 때우던 그 풍경도 전부 마찬가지다. 산 좋고 물 좋기로는 어디 빠질 데가 없다는 이 동네를 처음 찾아간 때가 대략 25년 전쯤이나 되었을까. 가뭇해진 기억을 더듬으니 떠오르는 그 아름답던 정경들이 꽤 된다. 큰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광대리가 물에 잠긴다는 소식을 어찌어찌 듣게 되어 아마도 마지막 추석이 될 그해 가을을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마을을 찾아갔던 기억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했지만 동네 주민들의 아쉬움은 너무나 컸었다. .. 더보기
거울 속에 있는 나 한 늙은 사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부인을 찾아온 길. 적막이 흐르는 납골당 안에서 그는 자신을 주목했다.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 그대로 셔터를 눌렀다. 과거 군사정권의 대표적 조작사건인 1974년 울릉도 간첩사건 피해자 이사영씨. 무자비한 고문과 15년에 이르는 수감생활로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두려움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거울 속 자신의 형상에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법원의 무죄판결로도 깊게 파인 내면의 상처가 아물지 않더라는 그였다. “더 이상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홀로 벽 속에 갇혀 있었던 기억 때문일까. 팔순을 넘긴 초로의 그는 몇 해 전부터 카메라를 들고 몸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세상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더보기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걸음 이 자리에 다시 서기까지 35년이나 걸렸다. 무려 일만삼천 날이 넘는 긴 세월을 떠나보낸 뒤에야 이 작은 둔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 근처에는 절대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그 긴 시간을 견뎌냈다는 올해 나이 여든의 최양준씨. 두려워서 올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 자리를 찾아 한 장의 사진까지 찍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82년 간첩 혐의로 부산보안대에 끌려간 그는 무자비한 고문수사를 견디다 못해 틈을 타 탈출을 시도했다. 철망과 창살로 둘러쳐진 3m 높이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일을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그가 가능케 했다. 온몸이 찢겨나간 채 피가 철철 흐르는 몸으로 그가 섰던 자리. 막 내려선 담벼락 앞에 서서 이제 살 수 있지 않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 더보기
자기와의 동행 노인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표정 너머 잔잔한 실웃음이 퍼져 있었다. 그가 사유하듯 가만히 바라보는 곳은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었다. 끊임없이 철퍼덕거리는 파도의 울림을 등 뒤에 두었지만 그는 아무런 요동 없이 고요했다. 잠시 뒤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낸 노인은 시선이 고인 그 집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단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세상에 남겨졌다. 그에게 어떤 감흥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가 어릴 적 우리 외갓집이라오. 건너편 우리집에서 거의 벌거숭이처럼 뛰어와 바다에서 멱을 감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허허허.” 한결 얼굴이 활짝 핀 노인은 “저 돌담 위에 올라앉아 바다 구경도 하고 해 떨어지는 노을풍경 보던 때가 바로 며칠 전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70여년 전 자신의 모.. 더보기
고향 친구의 전화 고향 친구가 근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온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일이 대부분이다. 종종 낮술 몇 잔 걸치고는 불콰해진 목소리로 보고 싶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할 때도 많다. 내용이 어떠하든 친구의 전화벨이 울릴 때면 반가운 마음에 하던 일도 냉큼 멈추게 된다.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걸쭉한 막걸리 내음이 가득하다. 찐한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올 때마다 소설 속 어린 왕자를 만난 듯 아련하면서도 흥겨운 감흥에 젖어 들게 된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 무리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 들녘을 여기저기 뛰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며 묻지도 않은 고향 소식이 실려 오기라도 하면.. 더보기
마주함으로 회복하다 전시를 하나 준비하고 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아픔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이루어낸 심정적 회복에 관한 전시인데 모두 당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구성하는 중이다. 준비과정 속에서 사진의 치유적 역할을 확인하는 놀라운 순간들을 접하곤 한다. 특히 나는 대면이라는 행위를 주목한다. 사진은 마주함, 즉 무언가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다. 하나의 존재가 또 다른 존재와 만날 때 구현될 수 있고 대부분 어느 하나만으로는 완성의 형질을 갖기 어렵다. 카메라를 든 이가 사람 또는 사물이나 풍경 등 실재하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아 일체를 이루고, 셔터를 눌러 물성화된 결과물을 남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상으로 삼는 피사물은 어김없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존의 형태로 마주하게 되는데.. 더보기
가을에 기대어 가을이 아주 깊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내쉬기를 몇 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파란 하늘이 이내 가슴에 들어와서 눌어붙으니 뻥 트인 가슴에 파란 물이 줄줄줄 흘러넘친다. 품 넓은 가을하늘이 성큼 내 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가만히 두 눈을 감고는 모처럼의 평온함에 몸을 기댔다. 버거운 세상살이에 마침 지쳐 있던 참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시간의 궤적이 잠깐 눈에 밟힌다. 목표를 두었으니 이루려고 매달린 시간이 안쓰럽게 쌓여 있었다. 제대로 성과를 낸 것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했던 날들이다. 더 할 노릇도 안되니까 그만 포기하자는 체념이 한숨으로 토해지는 요즘이었다. 감은 눈에 질끈 힘을 주고는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본다. 짙게 푸른 가을하늘이 그간의 노고를.. 더보기
말 무리 사이에 앉아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하는 동물이 ‘말’이다. 반려로 삼아 직접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TV를 통해서였지만,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들판을 내달리는 모습을 항상 경탄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서부영화나 국내 역사 드라마 등의 전투 장면 중 이 동물이 “히히힝”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안달이 났었다. 단단해 보이는 데다 수려하기까지 한 근육질 자태에 매혹당한 꼬맹이 시절 내내 나는 스케치북이 닳도록 말 그림을 그려댔다. 성년이 되고 사회생활에 절절거리는 오십 대의 나이까지 이른 지금에야 어느 정도 수그러들긴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우연히 말 무리를 본 순간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수십마리의 말들이 땅을 굴려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내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더보기
화려한 꽃송이보다는 승부욕에 빠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학업을 이루는 시기에도 친구들과 경쟁해서 앞서겠다는 생각을 크게 한 적이 없다. 아둔한 머리 탓이기도 하지만 일등이라는 지위 역시 남의 것이라 여길 뿐 피곤하게 거기까지 갈 욕심도 없었다. 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날을 새운 기억도 많지 않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100m 달리기를 해도 악착같은 경쟁심보다는 뜀박질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등수가 뒤처져도 그러려니 했다. 나름 경쟁자들 틈 속에서 뛰어야 했던 직장전선에 있을 때에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천성적으로 남과 승부를 내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싫다. 맨 앞자리보다는 중간쯤이 편하고 조직의 리더보다는 보좌의 역할을 하는 것에 더 만족한다. 그렇다고 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보기
철원역 철원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다.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된 뒤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제국주의 일본이 이 땅을 강점하던 시절 지어져 그들을 위해 쓰였음을 역사는 모르지 않는다. 서울 용산에서 시작해 북녘땅 원산까지 223.7㎞에 이르는 경원선의 중간역이자 금강산 내금강까지 116.6㎞ 철로의 시발점으로 남과 북을 아우르는 교통요지였다. 당연히 그 시기 건설된 모든 철길의 이용목적에 ‘걸맞게’ 철원역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80명에 이르는 역무원들이 종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한반도 전역에서 수탈한 물자들의 반출처이자 일본 본토의 배를 불리는 젖줄기로서 그 역할이 참으로 지대했을 터다. 땅을 빼앗은 이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땅을 빼앗긴 이들은 절망의 눈빛으로 머문 자리. 땅은 되찾았으나 갈라진 반도 한.. 더보기
외로운 골목 지키는 의자 하나 큰길 건너 동네 안 풍경이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신호를 보내왔다. 손으로 휘갈긴 듯 붉은색 글씨로 거칠게 쓰인 현수막들이 한때 이곳의 절박했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서울 우이경전철 삼양역 1번 출구 앞 골목길 초입. 우연히 접한 이끌림의 기운에 응해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고 뒤틀어진 골목길은 미로처럼 어지러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삭막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전제품들, 전깃줄에 흉물스럽게 걸쳐진 전기매트, 자물쇠를 채운 것도 모자라 나무판자에 X자 형태로 못이 박힌 채 봉쇄된 모든 주택과 상가건물들, 벽과 담장 현관문마다 붙여진 출입금지 경고문, 험한 욕설과 이별의 서운함이 담긴 낙서들, 쓰임새를 잃은 채 머루포도 잎새 넝쿨로 완전히 뒤덮인 CCTV 그리고 사람 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