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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의 단련은 하나다. 마음의 수양은 몸의 단련으로 완성된다.

학수고대하던 태권도 수련을 시작했다. 태권도 사범께서 태권도는 발을 움직이는 ‘태(跆)’와 손을 움직이는 ‘권(拳)’으로 길(道)을 연다는 의미라고 했다. 내 손과 발로 길을 연다는 삶의 태도에 도복을 여며본다. 태권도는 개인의 심신단련뿐만 아니라 문화로서 무예(武藝)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무예의 기본은 예의다. 상대방과 정정당당하게 대결하고, 승패에 관계없이 예를 갖추는 삶의 기본을 몸에 익혀본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포스터, 1977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어린 시절 보던 애니메이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 덕분이다. 파란해골 13호가 세계 핵물리학자 회의가 열리는 수중공원을 공격하고, 장박사를 납치해 지구의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민다. 태권동자 마루치와 아라치가 파란해골 13호와 대결해 장박사를 구하고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는 줄거리다.

요즘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한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어쩌면 태권도로 악당을 물리친다는 발상은 단순할지 모르지만, 당시에 애니메이션이 핵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현재 태권도의 수련은 태극 8장으로 태극기와 유래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한국정신의 무예로서 태극을 몸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놀랍다. 태권도는 맨손과 맨발을 기본으로 하고, 그 근원에는 수박희(手搏戱)와 같은 한국의 고대무예가 자리한다. 현란할 정도의 발놀림은 다른 무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것으로 K팝의 리듬감과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최근 무예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쿵푸팬더3> 주인공은 열심히 기를 모으는 수련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는 사람 마음의 어두움을 물리치기 위해 가슴속의 검이 필요하다고 한다. 태권도의 핵심은 무엇일까? 태극의 음양의 움직임을 몸에 익혀서 마음속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철학을 담은 태권도를 소재로 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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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감각이란 세상을 보는 관점이자 힘이다. 나와 관련된 세상이다. 문화인식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문화영토다. 세계인식으로 힘의 균형을 잡고, 문화인식으로 감성의 조화를 기른다. 세계지도는 지리지인 동시에 세계인식을 반영한다. 우리나라가 그려낸 세계지도로 무엇이 있을까?

1402년 조선의 태종은 조선건국 3년차에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이 지도는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에서도 그 중요성이 주목받는다. 이탈리아의 콜럼버스가 아시아의 인도로 가기 위해 탐험을 떠난 것이 1492년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얼마나 일찍 제작된 세계지도인가를 알 수 있다. 15세기 초 조선,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아프리카대륙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아쉽게도 원본은 없고, 15세기의 사본이 일본 류코쿠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그 모본이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류코쿠대학 소장 사본의 모사, 서울대 규장각 소장


이 지도의 상단에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이름이 쓰여있다. ‘혼일강리(混一疆理)’라는 단어는 경계를 하나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글로벌리즘과 상통한다. 조선건국과 동시에 중국, 일본, 중동, 유럽, 아프리카까지 세계인식을 확장한 관점은 한국 글로벌리즘의 역사를 보여준다.

권근(1352~1409)은 서문에서 세계지도 제작경위를 기술했다. 그는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최신 지도를 입수하여 역량이 뛰어난 학자들에게 세계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권근은 “천하는 참으로 광대하다. (중략) 참으로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다. 대개 지도를 보면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알게 되니,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한 도움이 있었다”고 기술한다.

세계인식이 치국에 도움이 된다는 조선건국의 이념을 참고로, 21세기 소프트파워 시대에 국가의 경계영역을 넘어서서 문화영토의 세계지도를 그려보면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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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을 생각한다. 한 서류에 친한 친구 두 명을 쓰는 칸이 있었다. 누구를 쓸까?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과 늘 변함없이 지지해주는 대학선배의 이름을 썼다. 잠시 나는 그들에게 좋은 친구일까라고 아득한 심연에 빠졌다.


논어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감정으로 시작한다. 공부의 기쁨, 우정의 즐거움, 인정받지 못한 노여움이다. 공자는 배우면 기쁘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라고 했다. 기쁨은 나로부터, 즐거움은 우정에서, 노여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우정은 소리를 넘어선 울림이다. 통일신라의 최치원은 선승 무염(無染)을 위해 비문을 썼다. 그는 무염을 회상하며 도연명이 즐겨 말한 ‘줄 없는 거문고’라는 ‘무현의 금’을 인용했다. 우정이란 굳이 소리를 내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기에, 무리가 없어도 좋다는 뜻이다.


신윤복, ‘거문고 줄을 고르는 여인’,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우정은 마음의 울림이다. 퇴계 이황이 47세에 월란암에 머물며 마음공부에 주력하던 때, 낭영대에 ‘아양(峨洋)’의 시구를 덧붙였다. ‘아양’이란 백아와 종자기 고사에서 유래한다. 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고, 종자기는 그의 음악을 잘 들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을 표현할 때, 종자기는 ‘아득하게 높은 것이 태산과 같다’고 응수했다. 백아가 거문고로 흐르는 물을 표현할 때, 종자기는 ‘의기양양 흐르는 것이 황하와 같다’고 대답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렸다는 ‘백아절현’은 상호 교감이 우정에서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준다.

신윤복이 그린 ‘거문고의 줄을 고르는 여인’을 본다. 연주를 위해 거문고의 현을 조절하고 있다. 거문고는 주역의 괘가 6효로 이루어져 있듯이 6현으로 돼 있다. 거문고의 현을 받치는 것은 16개의 괘다. 해죽(海竹)으로 만든 술대로 비단실로 된 현을 치거나 뜯어서 소리를 낸다. 거문고 음악을 들으며, 주역이 말하는 다양한 변화 속에서 사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우정의 소중함으로 나를 돌아본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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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친절할까? 삶의 순간마다 천사들이 나를 돕고 있다. 소소한 행운들을 잘 알아차리는 감성이 행운감수성이다. 금방 도착하는 지하철, 때마침 맑은 날씨,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올 때, 별것 아닌 일들이 사실은 모두 행운이다.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인 삶을 붉게 물들인다. 행운감수성은 작디작은 일마저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점점 운이 좋아지는 특이한 작동원리로 움직인다.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행운감수성은 평범한 나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내 삶에 배경음악을 틀 것인가는 내 몫이다. 불교에서 음악을 관장하는 신인 건달바(Gandhava)는 향을 먹고 살며 할랑할랑하게 나타난다. 천상과 지상의 사이에서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음악을 들려줄 때, 아름다움의 행운을 알아채는 것이 감성이다. 백제 용봉향로에서 음악으로 향을 내보내고, 감은사지의 사리기에서 건물의 사방에 둘러앉아 음악으로 생명을 지켜준다. 조선의 학자 이익은 해동악부의 ‘낭성곡’에서 “삼청의 옥피리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네. 오호라, 가야금 소리 끊이지 않아서, 오늘날까지 향악이 우리나라에 퍼져 있네”라고 했다. 끊임없이 전해진 음악을 듣는 것은 아름다움의 행운이다.

천상의 행운메시지는 지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일지 모른다. 세속의 시공간이 음악으로 물들 때, 차가운 운명마저도 친절하다. 피노키오의 주제곡은 “별에 소원을 전할 때, 당신이 누구인지 상관없어요. 마음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에게 옵니다. 만약 마음에 꿈이 있다면, 어떤 요구도 지나치지 않아요. 꿈꾸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별에게 소원을 전할 때, 운명은 친절합니다.” 때로 운명은 나무로 만든 피노키오가 사람이 될 만큼 친절하다.

작고 작은 일에서도 행운을 알아챌 만큼, 행운감수성이 풍부하기를 바란다. 나의 바람이 하늘에 닿아서, 하늘과 내가 서로 느끼는 천인감응으로 운명은 친절하다. 운명을 알아내는 행운감수성으로 나는 오늘 각종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세상의 천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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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금의 이슬이 소중한 까닭은 삶이 지옥이 아닌 적이 없어서다. 사람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유한한 생명체다. 삶은 생명의 기쁨인 동시에 사멸의 고통이다. 고통이 강할수록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상향을 갈망한다.



감로탱,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감로도(甘露圖)는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하려는 강렬한 자식의 마음이다. 목련존자가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구원의 방법을 물은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엄격한 유교사회 조선에서도 감로도와 같은 불교회화가 허용된 것은 이런 효심 때문일까. 구원의 태도란 어머니를 구하는 마음으로 대중의 고통을 구원한다는 뜻이 숨어있으리라. 18세기에 그려진 감로도는 중앙에 커다란 아귀가 있고, 하단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단에는 구원자가 등장한다. 왜 이렇게 아귀를 크게 그렸을까? 아귀는 탐욕의 상징으로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배가 크지만,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한다고 한다. 과다한 욕망이 채울 수 없는 굶주림으로 고통의 원인이라는 상징이다. 즉, 구원은 채울 수 없는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감로는 욕망의 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는 ‘단 이슬’이다. 욕망의 고통을 버리게 하는 상징이다. 감로마저도 과하면 다시 욕망이다. 궁극의 구원은 스스로의 구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가 하늘과 땅이 서로 화합하여 단 이슬을 내린다면,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고 했다. 궁극적 이상은 명령에 의한 구원보다 스스로 균형 잡기다.

어쩌면 감로의 구원도, 스스로의 균형 잡기도 말처럼 쉽지 않다. 어려움을 견디고 견디어 목이 타들어 갈 듯이 삶이 지옥같이 느껴질 때, 나는 예술이 한 모금의 이슬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그림, 한 소절의 음악, 한 편의 공연, 한 편의 영화가 안식을 선사하여 마음을 풍요롭게 하여, 세속의 욕망을 떨쳐내어,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슬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이슬 같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면서.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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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마음을 합쳐서 같이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지혜가 한국미학이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이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회복탄력성이란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다시 일어나는 힘이다. 심지어 사람은 고난을 겪고 나서 마음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생존과 진화의 원동력이다.


임희지, 난초,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 임희지(林熙之·1765~?)의 난초 그림을 본다. 그는 조선 말 중인 출신으로 중국어 번역을 담당하는 한역관이었다. 그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높은 관직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깨끗한 풍모를 지녔다고 지인에게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서울의 중인들과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의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 동아리인 송석원시사에 참가했다. 그의 행복은 벗들과 함께 나누는 예술 교류에 있었다.

조선 말기의 중인들은 사대부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던 신분적·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심정을 시로 썼다. 중인들의 시가 자포자기의 마음을 토로했더라도, 실은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 예술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바로 어려움이 삶과 예술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회복탄력성으로 난초를 본다. 서양란은 꽃이 화려하지만, 동양란은 잎이 수려하다. 동양란의 잎은 여리고 부드럽지만, 뿌리는 적은 물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강인하다.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향기는 은은하게 만리를 간다. 난초는 바람에도, 가뭄에도 부드럽게 견디어 내는 강인함이 있으면서, 은은한 향이 나는 사람됨의 상징이 되었다. 난초 같은 인품을 갖추는 데 신분의 구별은 없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회복탄력성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람들의 관계성, 바로 ‘금란지교(金蘭之交)’에서 나온다. 주역의 계사전에서 “군자의 도는 나아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침묵하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 수 있고, 마음이 같이하는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한다. 내 마음에 난초의 인품과 금란지교의 우정을 소중히 품어가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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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몇 번이나 모험을 할까. 지금은 고독의 성찰보다 생존의 야성을 되살릴 때다. 강렬한 야성의 활력소는 호기심과 모험심이다. 때로는 역경에 부딪혀 살아남고자 하는 절박함은 생명의지를 선사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모험을 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이라기보다 수직상승을 향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시공사)이라는 책에서 위로만 오르려면 욕망은 결국 지금을 잃어버린다고 경고한다. 신나는 모험은 수직상승보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탐험의 삶이다.



유리병, 신라 5세기, 경주 98호 남분 출토.



신라 5세기 무덤에서 봉황 머리 모양 유리병과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누가 가지고 왔을까?

유리병 모양은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불리는 그리스 로마의 병과 형태가 같다. 소담하게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 같은 몸통을 늘씬한 발목으로 지탱한다. 병 속의 물은 길고 우아한 목선을 따라 천천히 흘러나오다가, 봉황 머리 같은 입구로 이어진다. 천천히 물을 따르려니 손잡이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유리 물병은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서 신라까지 전해졌다. 누가 그 긴 모험의 여정에서도 유리병과 잔을 가지고 왔을까? 한국에서 옥이나 토기에 친근했던 사람들에게 빛을 투과시키는 투명한 유리병은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병으로 보였을 것이다. 무엇을 넣어서 마시든지, 특별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우리 무의식에는 넓은 초원을 가볍게 내달리거나, 철에 따라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 20세기 이후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면서 분단으로 북방 진출이 어려운 지정학적 상황에서 살아간다. 이 작은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안정제일주의가 되어야 한다. 모험심은 위험한 욕구로 억누른다. 안정강박은 무의식적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의 위안을 유토피아로 만든다. 모험보다 도피처를 갈급하는 세상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신기한 유리병이다. 마법의 병을 찾아서 대륙을 횡단하고 바닷길을 건너가보는 모험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싶은 호기심의 탐험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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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디지털 적응 여부로 세대가 나뉜다. 영화의전당 LED 공모전과 광복 70년 대한민국미술축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디지털아트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김성필(홍익대 3학년)에게 4가지를 묻고 배운다.


김성필, WFFuniverse 2015, JAVA 프로그래밍, 2015


-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언제 아름다움을 느낍니까?

“디지털 매체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그리움-그리고 그 그리움에서 파생되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당장은 만질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때 제 작업에 물성을 부여해 현실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움이 제가 상정한 하나의 유토피아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제 작업이 데이터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재미가 있어요.”

- 디지털 세계에서 감정은 어떻습니까?

“감정은 많이 유니폼화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웃는 얼굴은 ^^ 혹은 :) 등으로 추상화돼 있듯이, 디지털 문법상에서 표시되는 공통방식은 존재합니다. 저도 그 방식을 따라가는 편이지만, 개인으로서 감정을 디지털 세계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객체화시키곤 합니다.”

- 디지털 세계에서 가상과 비가상의 구분은 유의미합니까?

“현시점에서 비가상의 영역과 가상의 영역은 분명 구분돼 있다는 점이에요. 이 둘이 같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궁극의 합치가 되기에는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다만 그것을 다이어그램으로 표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항상 변하는 ‘many-to-many mapping’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 디지털 세계에서 어떤 자유를 추구할 수 있습니까?

“디지털에 대한 이해에 비례해 개인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객체는 여러 가지의 재현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 다른 이의 작업결과물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sampling), 네트워크를 통해 동시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자유로움, 언제든지 실현될 수 있는 논리로 구성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의 세계입니다.”

만약 이런 대화가 낯설다면, 바로 지금이 디지털의 감성을 배워가며 응시할 때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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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얼이 담긴 틀이다. SNS에 수많은 셀카 사진들이 올라온다. 예쁜 얼굴사진을 올릴수록 무수한 ‘좋아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얼굴을 보는 것은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조차 얼굴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초상화의 마력 같은 힘은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사람의 내면을 전달하고 그려서 비춰내는 데에서 나온다.

진감여, ‘이제현초상’, 원, 1319년, 국립중앙박물관


얼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다. 얼굴 표정은 상대방과 관계맺기에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외로워요’로 보이면 보호본능을, ‘즐거워요’로 보이면 웃음을, ‘화났어요’라고 보이면 두려움을 느낀다. 얼굴에서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전달받아서, 내 마음이 반응에 들어간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지 않고, 예쁜 얼굴에 집중하는 습성은 관계맺기의 대상을 고르는 본능적 행동이다. 성숙한 관계맺기는 본능적인 집중을 넘어선다. 초상화는 숨겨준 장치들로 그 사람의 마음가치를 배운다. 이제현(1287~1367)의 초상화를 본다. 그는 고려말의 신진 사대부 출신 관료이자 <역옹패설>을 쓴 문학가다. 외교관으로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서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고려의 독립적인 지위를 촉구했다. 외교관 활동 당시 원나라 진감여가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중국 화가의 그림으로 한국 국보로 지정된 특이한 작품이다.

이제현의 초상화를 보면서, 우리는 그의 얼굴에 집중하지 않고 어떤 마음가치를 배우려고 한다. 그림을 통한 성숙한 관계맺기의 시도다. 화가 진감여는 감상자를 위해 이제현의 초상화에 <주역>을 그려 넣었다. <주역>은 음양의 조합으로 다사다난한 사회생활에서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지혜서다. 이제현을 운명에 맡기면서도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균형의 지혜를 찾는 사람이었다고 알려준다.

이제현은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스스로 말했다. “불행은 나 자신이 만든 것이니, 스스로 반성해 보면 어떨까. 못생긴 내 얼굴 그려두면 무엇할까만, 나의 후손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한 번 쳐다보고 세 번 생각하라. 불행이 있을까 경계하며,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노력하라. 구차한 행복을 바라지 마라. 불행을 피하게 되리라.”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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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선물은 꿈이다. 겹겹이 쌓인 마음 깊은 곳의 꿈을 심어두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선물이 있을까? 막상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당황스럽다. 행복이라는 모호함으로 대답한다. 과연 이루고 싶은 꿈이 행복인가?

상상의 꿈이 있다. 백제 무령왕(462~523) 무덤의 출토품은 대부분 왕비를 위한 물건들이다. 왕이 그녀에게 보내는 선물들이다. 무령왕의 팔베개와 같이 그녀를 보듬어준 무령왕비의 베개를 본다. 왕비의 베개는 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주칠을 했다. 금을 가늘게 잘라 붙여서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시키는 육각형으로 구획을 나누었다. 그 안에 해, 달, 봉황, 용 등 갖가지 모티프로 세상을 그려 넣었다. 죽음 뒤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긴 여정을 위해 꿈을 선물한 것이다. 베개 좌우에는 두 마리의 새가 영혼의 여정을 돕는다. 왕비의 베개는 영혼을 꿈꾸는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선물이다.


‘무령왕비 베개’, 백제 6세기, 국립공주박물관 국보 164호



반면 아주 현실적인 꿈도 있다. <삼국유사>의 ‘태종 춘추공편’은 김유신의 막내 문희가 언니에게 비단치마를 주고 꿈을 사서, 김춘추(604~661)의 왕비가 되었다는 일화로 시작한다. 왕비가 되는 꿈은 지금도 유효할지 모르는 여자들의 딜레마다. 자신의 꿈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실현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꿈을 타자에게 의지할 때 생기는 상호의존성은 중독에 빠지기 쉽다. 여자의 꿈이 남자의 성공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때, 중독현상은 갖가지 부작용을 드러낸다. 단적으로 왕자를 만날 때까지 결혼하기 어렵게도 하고, 결혼을 해도 꿈이 타자에게 있는 한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투사할 때, 아이들은 힘들다.

꿈은 내가 꾸는 세계다. 지금까지 세상의 목표를 향해 달렸을 뿐, 자신의 꿈을 꾸기를 보류해 왔다면, 이제 나의 꿈을 품을 시대가 되었다. 내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꿈을 꾸되, 나의 꿈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서로 다른 꿈도 존중하자. 각자 서로 다른 꿈을 존중하는 세상, 서로의 꿈을 돕는 마음이야말로 내가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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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마음을 잡고 하나에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스마트폰 덕분에 수많은 친구가 생겼을까? 도무지 하나에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다. 수많은 대체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무의식을 끌어당겨서 시간을 쏟게 하는 디지털 놀이판에서 노닌다.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뒤쫓는다. 그나마 곁에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이 이미 떠나버린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 떠남조차 무겁지 않게 자유라고 선언했다.

송수남, 붓의 놀림, 2000



한국화의 거두 송수남(1938~2013)의 ‘붓의 놀림’(2000) 앞에 선다. 거대한 하나의 붓결마다 응축된 힘에 마음이 멎었다. 하나, 하나, 붓결을 천천히 본다. 결마다 흔들림 없이 곧게 내려오면서도 강압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붓이 종이에 닿을 때, 먹물이 붓결과 종이결의 사이로 스미며 퍼져가는 기다림을 느낀다. 수도사와 같이 화려한 색도 감추고, 매혹적인 모습도 거둔다. 먹이 퍼져가는 것에만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으로 영원에 닿는다.

하나의 들숨, 하나의 날숨, 숨결마저 멎은 듯하다. 마음의 중심을 감춘다. 글씨와 그림에서 하나의 획마다 붓끝의 중심을 가운데에 놓고, 송곳으로 긋는 것처럼 마음을 집중한다. 마음은 하나하나마다 그 중심에 있지만, 밖으로 현란하게 드러내지도,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는다. 마음에 집중의 시간을 준다. 마음을 하나에 둔다. 하나가 많음의 근원이라는 가치에 마음을 적중시킨다. 마음을 하나에 집중시키려면,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게 된다. 마음을 비운다. 빈 듯한 마음은 넉넉한 품이 되어 근원이 되는 하나가 자유롭게 뛰놀게 한다. 마음을 하나에 집중할 때, 수많은 현상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마음에 주어지지 않은 것을 묻는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세 가지 질문을 한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두 번째 질문에 마음이 쓰인다. 지금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 깨달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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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할 때 멀리 보면 좋다. 산에 오르면 멀리 보이기 때문에 등산이 인기가 많다. 산에 올라 멀리 보이는 풍경을 보면, 마음에 쌓이고 맺힌 응어리들이 풀어지는 듯하다. 직접 산에 갈 수 없다면, 산수도를 편다. 작은 산수도라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산에 오른 듯 마음이 풀어지는 효과를 느낀다. 왜냐하면 멀리 보기 때문이다.

이징(1581~?)이 그린 산수도를 편다. 산수도를 멀리 보는 법은 ‘높게 보기’(高遠), ‘수평으로 보기’(平遠), ‘깊게 보기’(深遠)의 삼원법이라고 부른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처럼 중심점을 모아서 보는 원근법과 다르다. 산수도는 멀리 보는 법을 바탕에 둔다.

‘높게 보기’는 자신을 낮추는 마음가짐이다. 산을 낮은 곳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법이다. 높게 올려다보려면, 나를 낮추어 마음을 겸손히 해야 한다. 그림에서 높은 산을 그리는 것은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시점이다. 높은 산을 보면서, 나를 낮추고 매사에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의 훈련이다.

‘수평으로 보기’는 상대방을 낮추어 보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높은 곳에서 멀리 보는 법이다. 정상에 올라보면 끝없는 정상들이 보인다. 그림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겹쳐 그려서 표현한다. 아무리 정상에 올랐더라도, 무엇도 낮추어 보지 않는 마음훈련이다.

‘깊게 보기’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속을 보려는 마음가짐이다. 곰곰이 헤아려서 보는 태도다. 그림에서는 산의 뒤까지 보이도록 그린다.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사정을 생각하게 된다. 속을 묻지 않지만 헤아려주는 보살핌의 마음훈련이다.

산수를 본다는 것은 나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는 훈련이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을 넘어서 생각하면서 보는 법이다. 마음가짐으로 산수도를 보면, 그림 속에 얼마나 많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산수도를 완전히 나의 그림이 되게 하는 감상법이다. 산수도로 멀리 보는 마음가짐을 떠올리면서, 오늘의 어려움을 잘 풀어가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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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감은 나의 땅에서 나온다. <훈민정음>은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한다. ‘나라’라는 단어로 가장 먼저 시작한다. ‘나라’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와 관계가 있다고 직감한다. ‘나라’는 내가 사는 땅으로서,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터전일 뿐만 아니라, 생각과 느낌이 자라나는 문화적 바탕이다.


다와라 기자에몬, 조선국신사 등성행렬도(부분), 1711, 국사편찬위원회



타자와 다른 나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조선국신사 등성행렬도’는 1711년 조선통신사가 왕의 국서를 가지고 일본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대마도의 번주가 당시의 행렬을 다와라 기자에몬이라는 화가를 시켜 그린 기록화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그림 속에서 조선의 대표사절단임을 보여주는 깃발이 형명기(形名旗)다. 흰색 바탕에 용이 그려진 깃발로 조선의 국왕을 상징해 통신사 행렬의 지휘 깃발이다. 하지만 용을 그린 깃발은 아쉽게도 청나라의 누르하치가 17세기에 통치를 위해 행정적으로 8개로 나눈 팔기군의 깃발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자와 다른 나라의 상징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잘 알려진 격언으로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너를 알고 나를 안다(知彼知己)’는 말도 있다. 유행가에는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라는 구절도 있다. 결국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개인적인 나부터 가족, 사회, 나라 안에서의 내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여성들은 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신사임당처럼 자기가 사는 건물이 자신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누구나 다 이름을 가진 것조차 인류문명의 긴 여정을 거친 성과다.

내가 누구인가를 절감하게 될 때는 외국으로 갈 때다.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방법은 여권이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표시한다. 국경 자체가 실제로 눈에 볼 수 없는 가상의 경계일지 모르지만, 국경을 넘어도 나를 나이게 하는 터전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렇다. 이제 나라의 가치 상징, 나라의 미감을 다시금 생각하고 찾아서, 나의 문화적 자긍심의 바탕을 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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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太極)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태극은 궁극적인 원리와 가치로서 끝없는 무극이다. 태극은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영원성과 무한성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꿈꾸는 무한한 가치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인 사랑이기를 바란다. 태극이 사랑의 극치라는 의미에서 ‘인극(仁極)’으로 부르고 싶다. 역시 사람의 궁극은 사랑이다.

사랑이 무얼까? 조선시대의 작은 백자합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 합에는 태극과 건곤감리가 그려져 있다. 그 문양은 조선시대에 향로나 연적에도 종종 사용되었던 태극과 주역의 상징이다. 그 상징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랑을 묻는다.



‘태극문양합’,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박병래 기증품



사랑은 품이다. 사랑이란 중앙에 음으로 양으로 사람을 아끼는 끝없는 품이 있고, 주변에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우주와 자연이 감싸주고 있다고 상상한다. 사랑의 품은 사람들을 아끼고 아껴서, 자유로운 하늘과 땅에서 춤추게 한다. 끝없는 생명의 힘이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강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잘 지켜주는 품이다.

사랑은 곁이다. 하늘과 땅, 불과 물, 서로 다르지만 아끼고 아끼어 돕는 마음으로 곁에 선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대신 삶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곁에 서서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추울 때는 따뜻한 불이 되어 주고, 목마를 때는 한 모금의 물이 되어 준다. 늘 낮고 소박하게 곁에 있는 것으로, 반드시 위대하지 않기에 곁에 있어 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사랑은 틈이다. 건곤감리의 괘에 틈이 있듯이, 허수룩한 틈이 많은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 마음을 낮추어 소박하니, 다른 사람의 사랑이 끼어들 틈이 있다. 사랑은 가끔 마음에 들쑥날쑥한 감정의 폭풍을 일으키지만, 마음에 틈을 두면 사랑이 돌고 도는 것을 느낀다. 마음 틈새로 사랑을 채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 같은 평정심으로 돌아온다. 틈의 지혜로 사랑은 지속된다.

사랑은 늘이다. 사랑으로 세상을 보면, 언제나 그곳에 있는 것이다. 작은 태극함이 나에게 사랑을 깨닫게 해준 오늘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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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대 문인화의 거두 동기창(1555~1636)이 맑은 가을날을 소재로 ‘강산추제도’를 그렸다. 그가 이 명작을 완성한 것은 한국 종이의 미감 덕분이다. 동기창은 그림에 “거울 표면처럼 부드러운 한국 종이를 구하여 영감을 받아서 이 그림을 그렸다. 만력황제에게 보내는 종이로, 조선 왕실의 인장이 보인다”라는 글을 써넣었다. 그가 조선의 외교사절단이 중국 황실에 선물한 한국 종이를 구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종이는 ‘고려지’라는 국제 브랜드로 인기가 높았다.

‘강산추제도’에는 기운생동을 얻기 위해 “만권의 책을 읽고, 천리를 여행한다”라는 동기창의 깨달음이 담겨져 있다. 동기창이 추구한 문인의 기운은 무엇일까. 어떤 점에서 한국 종이의 미감과 통할까.



한국 종이의 미감은 참을성이다. 한국 종이는 닥나무를 소재로 외발뜨기라는 기술로 상하좌우로 흔들어 만들기 때문에 섬유질이 사방으로 섞인다. 그 결과 한국 종이는 섬유질이 촘촘하게 섞여서, 필선이 목탄과 같이 칼칼하게 그려진다. 필선을 그어 내려갈 때 생각할 시간을 주고, 마음을 조절할 수 있게 한다. 먹의 번짐을 조절하여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이 지나치게 흘러가지 않도록 인내심을 길러준다. 한국 종이의 미감은 질김이다. 한국 종이는 꼼꼼히 방망이질을 해 섬유질의 틈을 줄인다. 사방좌우로 섬유질이 촘촘해지면서 쉽게 찢기지 않고 질기다. 한국 종이는 구겨지면 다림질을 해서 펴도 된다. 오래갈 수 있다는 지속성이다. 글과 그림이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종이는 인류문명의 최고 발명품이다. 종이 덕분에 사람들은 훨씬 더 자유롭고 풍부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이가 없었을 때는 글을 돌이나 금속에 새겨야 했다. 비석은 돌을 쪼아서 글을 새겨야 하는 수고로움으로 기념비적 기록이 주를 이루었다. 금속 도구에는 이름과 날짜와 같은 기본 기록만 남길 수 있었다. 죽간에 글을 쓰기도 했지만, 경전과 같은 글들만 보존되었다.

종이가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자유를 주었을 때, 오히려 우리는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한국 종이의 참을성과 질김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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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릉은 왕과 왕비가 1400년 넘게 세월을 함께한 사랑과 축복의 힘이 강하다. 신라의 황남대총을 보면 부부가 북분과 남분에서 각각 떨어져 세월을 보냈지만, 백제의 무령왕은 벽돌무덤을 짓고 왕비와 한곳에 묻혔다. 무엇이 더 좋은지 알 수 없으나, 역시 무령왕과 왕비의 금슬은 부럽다.





백제 무령왕은 불꽃 같은 힘과 풀꽃 같은 생명력을 준다. 무령왕과 왕비의 금관에는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힘과 풀꽃처럼 피어오르는 생명이 담겨 있다. 백제의 불꽃 같은 아름다움은 신라 금관이 보여주는 나뭇가지의 직선미와 사슴뿔의 힘과 다르다. 백제와 신라의 오묘한 미감의 차이는 우리 문화에 다양한 기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령왕의 금관은 불꽃이다. 금관의 화염이 유연한 곡선미로 솟아오른다. 왕의 금관은 화염이 자유롭게 힘의 흐름을 타고 상승하면서도 전체의 모습은 꽃봉오리처럼 수렴된다. 좌우대칭의 틀에 얽매이지 않지만, 과도하게 벗어나지 않는다. 화염의 결마다 피어난 불꽃들을 작은 금판으로 만들어서 금실로 연결했다. 꽃봉오리처럼 솟아오른 화염은 맨 위에서 세 갈래로 온화하게 마무리된다.

무령왕비의 금관은 불, 풀, 꽃, 새가 어우러지는 생명이다. 왕비 금관도 화염이 솟아오르는 모습이지만, 하단부에 항아리 모양을 두어서 안정감을 추구했다. 항아리 속은 풀잎들이 굵직굵직하게 품어 생명을 기르는 모습이다. 화염의 윗부분에 두 마리의 새가 작은 병 위에 피어난 꽃봉오리 속에 앉아 있다. 왕비의 화염은 엄마새가 꽃봉오리 속의 아기새를 감싸서 보호하는 큰 날개로 수렴된다.

무령왕릉은 불꽃 같은 힘과 풀꽃 같은 생명력을 받는 곳이다.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 그곳에 있다. 국립공주박물관 근무 시절, 매일 무령왕과 왕비의 흔적을 정성으로 돌보았다. 그 결과일까, 나는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큐레이터로 발탁되었고, 수년간 미뤄오던 박사 논문도 탈고했다. 당시 박물관 동료들은 결혼하고, 아기도 생기고, 승진도 했다. 그렇다. 곧 무령왕과 왕비를 만나러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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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 길사에 다녀왔다. 충효당 길사란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의 종가인 충효당에서 종손이 바뀐 것을 조상님께 고하는 제사다. 한 종가에서 종손이 바뀌는 것은 30~40년 만에 한번 있는 종손 교체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로, 각 문중의 어른들이 모였다.



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탔다. 먼동이 트면서 드러난 한국의 산천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류성룡이 보여준 조선의 생각가치는 무엇일까? 그 핵심에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반성적으로 기술한 <징비록(懲毖錄)>이 있다. 그 가치는 지난 상처로 미래를 대비하는 태도다. ‘징비’는 시경의 ‘작은 것을 삼간다는 소비(小毖)’의 첫 구절이다. ‘징비’의 부분을 나름대로 현대어로 쉽게 풀어본다.

“지난날의 상처를 살펴, 앞날의 우환을 대비한다. 벌을 만지다가, 아픈 독침에 쏘인다. 처음에는 뱁새인 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큰 새다. 아직도 집안의 어려움을 다 감당하지 못하여, 아직도 쓰디쓴 풀숲에 모여 있다.”

벌은 간신이고, 새는 충신을 비유하지만, 역시 현실은 쓴 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부터 잘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류성룡은 하회마을의 강 건너 옥연정사에서 징비록을 쓰고, 그 후 은거하여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초고의 글씨는 비장하다. 전쟁을 반성하는 마음의 고통일까? 빠르게 써내려 간 글씨체에 회한이 묻어난다. 어떤 명분이든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게 하는 것에 대한 고통스런 책임감이다.

<징비록>은 비극적인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국내 상황뿐만 아니라 국제정세를 살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조선이 난세를 겪은 이유를 20세기 초 일본 학자들은 당쟁이 문제였다는 올가미를 씌웠다. 한국 사람들마저도 종종 조선문화를 당쟁으로 바라본다. 이제 그 올가미를 벗자. 조선의 생각가치는 당쟁이 아니라, 애민정신의 유학가치에 기반을 둔 생각의 힘과 태도다. 애민정신이 기반이 될 때, 과거의 상처가 미래를 대비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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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수(石獸)야, 너는 백제 무령왕릉의 수호 동물이다. 돌로 만든 동물이라는 의미로 석수라고 부른다. 애칭을 붙여주면, ‘통통 수호 전사’가 어떨까. 1971년 무령왕(462~523)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너도 세상에 소개되었다. 네가 무령왕의 무덤을 지켰으니, 벌써 1500살도 넘었구나.

석수야, 너를 보면 웃음이 난다. 큰 눈이 툭 튀어나오고, 입을 헤벌린 모습은 보는 이를 웃게 한다. 수호 동물은 악귀를 쫓으려고 무섭게 생겼다는데, 너는 반대로 웃긴다. 맞다. 너의 수호전략은 두려움보다 웃음이구나. 그래, 웃음은 적까지 친구로 만들어 버린다.





석수야, 네가 무령왕과 왕비를 지켰구나. 부드러운 능선 속에 감추어진 무덤은 다행히 일제강점기의 도굴을 피했다. 천만다행이다. 네가 무덤을 잘 지켜서 그런 듯하다. 왕비가 참으로 너를 귀여워했겠다.

석수야, 너는 곰나루 태생이다. 백제가 서울에서 곰나루(웅진, 현재의 공주)로 수도를 옮겼던 때 475년부터 538년까지 웅진시대에 만들어졌겠다. 곰나루를 흐르는 금강에는 지금도 여러 가지 곰의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강을 건너는 엄마곰과 아기곰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 그러고 보니 네 스타일이 곰 같기도 하다.

석수야, 코뿔소처럼 이마에 뿔을 달았구나. 앞발과 뒷발 사이에 새겨진 모양을 날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 작은 날개로 하늘을 나는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날 때 몸이 약간 무겁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원래 중국 남조시대에 무덤을 지키던 수호 동물처럼 날렵한 몸매에 이마에 뿔을 단 박견이었다가, 너는 특별수호능력을 가지려고 통통해지는 마법이라도 걸린 것이냐.

석수야, 꽤 무겁구나. 혼자는 들 엄두도 안 나고, 전문가 두 분이 양쪽에서 들어야 했다. 돌의 재질을 연구하는 교수님과 성분분석도 해보았다. 쉽게 말하자면, 너의 재질은 돌솥과 같은 종류의 돌이라고 한다. 같은 돌의 종류가 전북지역에 많다고 한다. 토종이로다.

석수야, 부디 잘 있거라. 곧 너를 보러 다시 가마. 너의 웃음 넘치는 기운을 나누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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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의가 곧 열린다고 한다. 외교가 국가이익의 각축장이라면, 문화는 화합의 열쇠다. 과연 한·중·일이 같은 이상을 품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도원(桃源)’을 보게 하라. ‘도원’은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이다. 그 마을에 한·중·일 정상들의 꿈도 있기를 바란다.

20세기까지 한·중·일은 한자문화권에서 같은 고전을 읽고 생각하는 사고공동체였다. 다시 한·중·일이 공유해온 고전에서 공통의 화두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도원’은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고전적 상징이다. 중국 동진시대에 지방관료였던 도연명(365~427)이 쓴 ‘도화원기’라는 짧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한 어부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 이른다. 배에서 내려 동굴을 통과하니, 남녀노소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마을이 있었다. 어부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지만,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고, 아쉽게도 다시는 그 마을에 가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1500년 이상 ‘도원’을 글과 그림으로 꿈꾸어 왔다. “평화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평화로운 삶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화가 안중식(安中植·1861~1919)은 1915년 ‘도원행주도’를 그렸다. 안중식은 조선의 마지막에 왕의 초상을 그릴 정도의 기량을 갖춘 화가이자 1919년 민족 서화가들 중심의 서화협회(書畵協會)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인물이다.

그는 선비가 ‘도원’에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그렸다. 푸른 산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향의 봄이다. 그가 도달하고픈 마을은 그리지 않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운으로 남겼다. 그가 회복하고자 한 삶은 평화이다. 누가 누구의 평화로운 삶을 빼앗아서는 우리의 ‘도원’은 없다.

보통 사람들은 평화로운 동네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다. 바로 이것이 동아시아의 이상이다. 오늘 다시 도연명의 시집을 펴고, 동아시아의 정상들도 같은 이상을 품으리라 믿어본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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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1924~2015)은 ‘슬픈 전설’과 화려한 작품으로 살아간 20세기 한국화의 전설이다. 그의 부고 역시 전설처럼 세상에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슬픈 전설’을 놓지 않은 삶이다. 천경자의 전설은 20세기 한국에서 예술가로, 여성으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한국의 역사다. 정치사가 한국 근현대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예술과 삶으로 방증한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는 50대에 22살을 기억해낸 자화상이다. 그녀가 22살이던 1945년에서 70년이 지난 올해 ‘슬픈 전설’은 역사가 되었다. 천경자의 슬픈 전설은 <어린왕자>의 뱀과 장미를 떠올리게 한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서울시립미술관



욕망의 뱀. 머리에 뱀 4마리가 오글거린다. 뱀은 어린왕자에게 “사람들이 있어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야”라고 말한다. 그녀의 외로움은 말문을 닫아버리듯 차갑다. 얼굴이 어둡고, 주변에 한기가 돈다. 슬픈 눈길로 다른 세상을 응시한다. 뱀은 “내가 건드리는 사람은 자기가 나왔던 땅으로 돌아가게 돼”라고 말한다. 천경자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뱀으로 자신으로 돌아가려 욕망했을까.

한 송이의 장미. 슬픈 전설의 그녀는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어린왕자는 장미를 떠올리며 말한다. “그 꽃의 대단치 않은 심술 뒤에 애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어.” 어린왕자는 뱀에게 물린 후 죽음을 맞으며 말한다. “나는 꽃에 대한 책임이 있어. 겨우 보잘것없는 가시 네 개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 자기를 지켜나가야 했거든.” 천경자는 장미 같은 꽃의 예술로 세상과 맞서 자신을 지켜나가려 했을까.

우리에게 천경자의 ‘슬픈 전설’이 소중한 것은 한국의 20세기라는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천경자는 작품으로 묻는다. 오늘날 그대들의 전설은 무엇인가? 또 그 전설은 아직도 슬픈가, 그렇지 않은가? 그 대답을 찾으며, 이제 하늘에 작은 인사를 보낸다. 장미처럼 영면하시기를.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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