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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열풍이 가요계를 넘어 다른 분야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신문 잡지에 배우, 소설가, 발명가에 이르기까지 '나는 -다'란 제목으로 실린 가상 오디션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띠는거 보면. '나가수'를 모르면 대화에 끼기 어렵다 싶을 정도다.

신인급도 아니고 기성 가수의 노래에 순위를 매길 수 있느냐는 의문부터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의 문화버전이라는 질타까지 비판도 많았다. 이 지적들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가수라는 직업의 본령에 주목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능이 있다. 그러니까 노래부르는 사람을 '가수'라고 부르고 그 능력과 정체성을 한번 되짚어보자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거다. 

'나가수'는 언제부터인가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듯한 '한 길을 파는 전문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이것저것 다하는 '만능 예능인'이 아니라 '가수'에 대해 묻는다. 가수는 노래부르는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짚어줌으로써 "그럼, 노래를 잘부른다는 건 뭐지?'란 질문을 새삼 던지게 만든다. 노래 좀 부른다는 쟁쟁한 가수들이 종종 나가수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하거나 나가수를 언급하는데서 그 파급효과를 알만 하다. 물론 '노래 잘 부른다'는 것을 '고음으로 내지르는 것'과 동일시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듯하지만 적어도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과 못해서 안하는 것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나가수'의 미술 버전을 만든다면 뭐가 좋을까? 모델을 세워놓고 단시간에 똑같이 그리게 하는 거? 미대 입시도 아니고 너무 단순하고 재미없다 싶긴 하다. 물론 '똑같이 그리는 것'에 대한 로망과 경탄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있었기에 인기는 끌지 않을까 싶지만. 뒤러나 다 빈치의 정밀 소묘가 다다른 경지를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생각보다, '똑같이 잘 그리는 것'은 미술가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고음으로 못올라가는 것과 안올라가는 것의 차이가 있듯이, 묘사 능력도 있으며서 안하는 것과 없어서 못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똑같이 그리는 것'은 단순 테크닉이 아니라 두뇌와 손의 협업이 잘된다는 증거이며 미술가의 창의력과 무관하지 않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거다. 

딴 소리 같지만 미술가들이 명사수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사격 역시 두뇌와 손의 협업 능력을 보여주는 분야다. (필자가 아는 모 작가는 어두운 전시장에서 삼각대도 없이 전혀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찍는 재주가 있는데, 왈, 군대에서 사격왕이었다는 거다. 또 한 작가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찾곤 했던 실탄사격장에서 사격 종결자였다고...)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대로 그리기는 재미가 없다. 그렇다면 "거장의 옛 그림에 대한 창의적 재해석"이란 미션은 어떨까? 남이 작곡한 노래를 자기 것으로 발표하면 표절이지만 레전드 음악가들에게 바치는 노래를 잘 만들면 창의적 재해석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창의력은 생각보다 과거와 대화를 잘한다. 이 주제를 놓고 미술가들의 '가상' 콘테스트를 지어낼 필요도 없는게, 이미 많은 미술가들이 이런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 몇몇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관건은, 과거의 작품들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했는가가 아니라 옛 작품의 맥락을 이어받으면서도 얼마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라는 글  제목이 이제야 나온다. 고야의 이 유명한 에칭 작품은 몇 세기에 걸쳐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797년작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라는 고야의 판화 시리즈 중의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계몽주의에 의해 억압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려는 낭만주의적 세계관의 표현으로, 또는 스페인을 침공한 나폴레옹 군대의 학살행위를 비판한 정치적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다양하게 해석된 바 있다. 역사적 무게가 가볍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 강렬한 비주얼이 선뜻 이 작품을 차용해서 작업하길 망설이게 만든다. 1988년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Bill Viola)가 이 어려운 과제에 도전했다. 



제목부터 <이성의 잠(Sleep of Reasn)>인 비올라의 작품에서 관객이 먼저 만나는 것은 빈 방처럼 꾸며진 전시장이다. 꽃병과 스탠드가 놓인 갈색 나무 테이블 위에 작은 흑백 모니터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잠자는 중년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음이 들리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단순하다. 이게 다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조명이 꺼지면서 전시장이 암흑으로 변한다. 소음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테이블을 둘러싼 삼면 벽에 수수께끼같은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불타는 건물, 울부짖는 개, 밀려드는 파도, 커다랗게 날개짓하는 올빼미의 영상 등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조명이 다시 켜진다. 고야의 작품이 보여준 정지된 악몽의 이미지들이 여기서는 점멸하는 시간적 차이와 공간적 경험, 사운드의 효과 속에서 입체적으로 펼처진다. 스케일이 켜졌지만 요란한 화려함보다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효과가 돋보인다. 거장의 작품에 도전할 만한 솜씨다.


http://www.sfmoma.org/media/features/viola/BV03.html
(비디오 클립을 감상할 수 있는 사이트)



다음으로 나이지리아 출신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Yinka Shoibare)의 2008년 작품을 보자. 이 작가는 입체 작업을 주로 하는데 이번엔 사진이다. 고야의 원작을 거의 똑같이 재현한 눈썰미와 솜씨가 놀랍긴 하지만 오히려 너무 똑같아서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원작의 주제를 이어 받으면서 자기 식으로 변형한 부분은 눈여겨 봐야한다. 고야의 원작과의 차이는 중앙에 앉아서 자는 사람의 화려한 복장과 흑인과 백인 한 쌍으로 구성한 세팅 방식이다. 한 쌍을 이루는 두 작품의 제목은 각각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아프리카)>와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유럽)>이다.

쇼니바레는 아프리카 출신 미술가로서 서구 제국주의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비틀고 비판하는 작품을 주로 해왔다. 하지만 단지 일방향적인 비판만은 아니다. 피식민지인이 식민지 서구 문화를 모방해온 방식 역시 그의 비틀기 대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위의 작품처럼 종종 옛 서구 거장들의 작품을 패러디하는데,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에 전통 아프리카 문양을 넣어서 비슷하면서도 생경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가 사용하는, Dutch Wax라고 불리는 이 직물 자체가 서구 제국주의와 아프리카 문화의 혼성이 낳은 산물이다)

서구문화의 도상들에 강렬한 색채와 문양이 들어간 아프리카 문화를 충돌시키는 쇼니바레의 작품은 생생한 꿈처럼 기묘한 현실성과 환상성을 함께 지니면서 문화란 것 자체의 근본적인 '뿌리없음'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쇼니바레의 작품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고야의 원작이 갖는 정치적 뉘앙스를 다른 방식으로 잘 살려내었기 때문이다.


(번외로 게스트 작품 한 점을 더 소개한다. 로리 립튼(Laurie Lipton)의 드로잉 작품이다.) 

 


다음으로는 이른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의 작가로 불리는 19세기 영국 작가 존 에버릿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오필리어>(1852)에 도전한 선수를 보자. 미국 작가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이 다음 도전자이다.


우선 원작을 살펴보자. 밀레이의 <오필리어>는 화사한 색채와 정교한 묘사,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그림이다. 라파엘 전파는 이름 그대로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내세운 일군의 젊은 영국 작가들의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중세 초기의 밝은 색채와 섬세한 세부묘사를 이상으로 삼은 이른바 복고풍 작품을 그리고자 했는데 묘한 것은 결과물이 중세풍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19세기 사실주의와 중세지향이 믹스된 신상품이 되었고 그 독특한 분위기가 20세기에 와서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도전작 역시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했다. 
<무제(석양의 오필리아)(Untitled (Ophelia from Twilight)>(2001)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구도는 원작과 거의 같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아름다운 여인의 낭만적인 죽음이 꽃과 이파리들이 우거진 연못의 환상
적인 풍경과 어울렸던 원작과 달리, 크루드슨의 사진 작품은 헐리웃에서 만든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자세히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동시대 서구 중산층 가정의 거실이다. 그러나 거실엔 물이 가득 차 있고 속옷만 입은 젊은 여자의 시체가 떠 있어서 마치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이 집을 휩쓸고 간 듯한 그로테스크함이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 크루드슨의 이 작품이 밀레이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크루드슨은 밀레이나 라파엘 전파 자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헐리웃 영화, 드라마 등 미국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도상들을 빌려와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러나 기괴하고 생경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 하나가 꼼꼼하게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묘한 느낌이 드는 세부묘사만큼은 밀레이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어쨌거나 여인의 죽음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다른 문화 코드 속에서 다르게 변주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다음 미션은 '미스터 빈' 영화에 나와서 유명해진 19세기 미국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의 <회색과 검정의 배열 : 화가의 어머니의 초상>(1871)에 대한 재해석이다. 화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미국 최초의 어머니날 기념 우표에 실리기도 했다. 그만큼 이 그림 속의 어머니는 미국의 '국민 어머니' 급으로 대접받아왔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어머니의 초상'이기 이전에 '회색과 검정의 배열'이다.  회색-검정-흰색으로 이어지는 무채색의 색채와 단순한 모양이 이 작품의 간결함과 소박함을 구성하는 정체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을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모델이기 이전에 구성과 색채 그 자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성지연 작가의 사진 작품 <뜨개질 하는 여인>(2006)은 구도와 모델을 바꾸었지만 작품의 핵심 성격을 따온 경우이다. 뜨개질하다 말고 어딘가 다른 곳을 쳐다보는 젊은 여자의 모습은 휘슬러의 어머니와는 다른 인물이고 여자의 치마에 수놓인 꽃무늬가 작은 변화를 주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작과 똑같은 태도를 갖고 있다. 그것은 불필요한 치장은 모두 없애고 미술작품의 본질을 이루는 것들만 남겨놓겠다는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강한 태도이다. 깊이가 없는 듯한 추상적 공간이 지극히 사실적인 소재를 묘하게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바꾸는 것도 비슷하다.  


그 다음으로는 도전작 역시 원작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경우를 하나 보자.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Le Bar aux Folies-Bergere)>(1981-2)을 재해석한 캐나다 작가 제프 월(Jeff Wall)의 <여성을 위한 사진(Picture for Woman)>(1979)이다. 

      



19세기말의 파리. 공연과 술, 사교의 장소였던 캬바레 겸 카페 '폴리 베르제르'의 실내를 소재로 그린 마네의 그림에서 중앙의 여자는 이 술집의 여급이다. 유니폼을 입고 스탠드 뒤에 서 있는 이 여급 앞뒤로는 샹들리에와 조명등, 공연을 보면서 담소를 나누는 세련된 옷의 사람들, 술과 과일, 유리잔이 뒤섞이는 화려하면서도 시끌벅적한 술집 실내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여급의 모습과 그 뒤의 실내 광경은 모두 거울에 비친 광경이다. 여급 오른쪽에 그녀의 등과 어떤 신사의 모습이 비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원근법의 각도상 이런 식으로 여자의 등이 보일 수는 없으며 더욱이 신사의 실재 모습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네가 포착한 것은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정도로 술과 분위기에 취한 파리 밤문화의 한 단면이며 시대의 풍속도이다. 여급의 지치고 공허한 표정에서 그녀는 이 장면에서 소외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마네가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 그점은 아니었다.  


제프 월은 마네의 이 그림만이 아니라 들라크루아나 세잔느 같은 옛 거장들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차용해서 작업을 많이 한 작가로 유명하다. <여성을 위한 사진>은 마네가 잠시 뉘앙스만 풍기고 넘어 갔던 젠더 정치학(gender politics)을 작품의 주된 테마로 삼았다. 다시 말해, 사진찍히는 수동적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사진찍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남성이라는 권력구도를 거울을 이용한 교묘한 구도를 통해 역전시켰다. 마네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지친 표정의 여급을 그린 장소에 월은 거울 속에 비친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능동적인 여성 모델을 배치했다. 카메라와 연결된 셔터 줄을 잡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남성 작가는 오히려 왜소하고 수동적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은 현대에 와서 남성 작가의 위치가 카메라로 대표되는 기계에 의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월의 작품은 이런 내용만이 아니라 마네의 시대와 현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사진이라는 매체, 광고판 형식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의 관계, 독창성과 모방성의 관계를 재검토하는 일종의 기호학적 유희이다. 외형적으로는 원작과 크게 비슷하지 않고 핵심 주제로 다르지만, 원작이 갖고 있는 작은 부분을 확대시켜 자기 작업에 적용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작가 안정주의 도전을 살펴보자. 지금까지의 도전작들이 대체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한 것들이 많았던 데 비해, 이번에는 영상이다. 안정주 작가가 도전 대상으로 삼은 원작 역시 특이하다.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 43''>(1952)이 그것인데, 이 작품은 '미술'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케이지의 이 작품은 4분 33초 동안 연주자가 아무 것도 안하고 악기 앞에 앉아있는 것으로 구성된다.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David Tudor)에 의해 이 곡이 초연되었을 때 청중들은 수근수근대었으며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케이지에 따르면 청중들의 이런 반응도 곡의 일부이다.이 곡은 '소음과 침묵조차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케이지의 주장을 실현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도전하는 안정주의 작품 <4' 33''>(2006)은 4분 33초 짜리 싱글채널 영상이다. 작품은 단순하다. 둥근 시계가 하나 보이며, 분침과 초침이 4분 33초 동안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이다. 케이지 작품의 아우라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고?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케이지의 원작 역시 극도로 단순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안정주의 작품은 시간의 경험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질문을 순하지만 위트있게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시계바늘의 움직임이 약간 점프하는 지점이 있다. 영상의 시간 자체는 4분 33초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시계바늘은 불연속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상을 보는 사람은 그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그냥 시간이 가는구나, 하고 느낄 뿐이다. 시간을 보는 것은 시간을 느끼는 것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이 간격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각일까 믿음일까? 




http://dl.dropbox.com/u/2538340/home/html/video_433.html
(비디오 클립을 볼 수 있는 곳. 작가 홈페이지 http://www.anjungju.com/의 일부)


이상과 같이 도전자들의 작품을 살펴봤다. 누가 우승자이고 누가 탈락자일까가?
글머리에서 말했듯이, 사실 무한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는 예술이나 문화와 맞지 않다. 그래서, 순위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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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발생한지 80일째. 한동안 방사능 비를 피해야 하니 일본 농수산물을 먹으면 안되니 하더니 언제냐 싶게 비도 맞고 생선도 사먹는다. 플루토늄이 흘러나오고 멜트다운이 일어나도 해는 뜨고 삶은 계속된다. 일본인들의 놀라운 침착함 뒤에 의도적인 침묵과 희생을 강요하는 일본 정부와 일본 문화가 있다는걸 알고 내뱉었던 아연실색의 소감도 이제 점차 무디어진다.

하지만 그건 딴 나라 사람인 우리 이야기고 당사자들에겐 시간이 흘러도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다. 바다 건너의 시청자에 불과한 내가 텔레비전의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외상후 스트레스 중후군에 육박하는 충격을 받았는데 직접 당한 사람들은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겐 말 꺼내기도 미안한 일이지만 한동안 극심한 충격과 우울에 시달렸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무의미하고 부질없어질 정도로. 원전 사태가 심각해진다는 뉴스가 연달아 나올 때는 이대로 지구가 멸망하는게 아닌가 싶었다(멸망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도 사태가 심각한건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아이티에서도 스촨성에서도 큰 지진이 일어났었는데 유독 이번 지진이 이렇게까지 큰 충격을 준 건 왜일까. 물론 원전 사태라는 가공할 재앙과 역사상 4번째의 지진이라는 엄청난 강도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충격은 방사능 누출 소식 이전부터 생겼던 걸 보면 플러스 요인이 분명 있다. 아마도 일본의 발달한 매스미디어가 그 요인이 아니었을까? 지진과 쓰나미의 생방송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피해 지역을 찍은 놀랍도록 신속한 보도 사진들이 눈을 의심케 하고 현실감각을 마비시켰다.


시커먼 파도가 제방을 넘어 집과 자동차를 쓸어버리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건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레고블럭 같은 것들이 흩어져 있는 듯한데 알고보니 흙 속에 쳐박힌 컨테이너들이다. 비행기들이 어린아이가 갖고 놀다 버린 장난감인 양 폐허가 된 활주로를 제멋대로 굴러다닌다. 원폭을 맞으면 이렇게 될까 싶게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전무한 마을 사진도 보았다. 이 장면들에 비하면 영화의 상상력은 얼마나 초라한가. 현실은 그 모든 상상력의 산물을 압도하고 모든 코멘트를 앗아가버린다.


(다시 보고싶지 않은 이미지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올렸다)

이 영상과 사진들의 힘을 이미지의 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 이미지는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속한다. 매스 미디어의 이미지들이 실재를 대체해버린 허구라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은 이 압도적인 현실감앞에서 힘을 잃는다.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보드리야르의 명제는 이 앞에서 지탱되기 어려운 한가한 가설로 변한다.


이 영상과 사진들은 우리를 허구의 그물망 안에서 유희하도록 붙잡아두는 게 아니라 그 그물망을 찢고 더 이상 어떤 도피처도 없는 심연과 직접 맞닥뜨리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이미지들은 파국의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의 파국을 보여주는 반(anti) 이미지이다. 이런 종류의 이미지를 전에도 본 기억이 있다. 10년전, CNN에서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부딪혀 불타는 여객기를 보았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큰 재난이 일어났어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쇼크 불면증 우울증 같은 증세가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지의 힘이란 그만큼 강렬하다. 한 장의 사진이 열 마디의 말보다 오래 남는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이 공개된다면 그 처참한 모습에 미군의 잔인함에 대한 규탄과 빈 라덴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수도 있을테니까.

이미지의 힘은 정서적 충격을 주는 힘이다. 그렇다면 그 힘을 치유에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지를 직접 만드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하고 그래서 마음 속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한국의 한 미술치료사가 일본 미술치료사들과 함께 동일본 지진 재해 지역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미술치료 활동을 하고있다. 정은혜씨가 그 분이다. 이분은 페이스북에 compassion art project Japan이라는 그룹을 개설해 미술계 사람들에게 갖고있는 미술재료들을 기부해달라고 했다. 필자는 갖고있는 미술재료가 없어서 크레파스 붓 등을 사서 보내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서 재료가 꽤 모였다. 이 재료들은 일본의 Japan Creative Arts Therapy Center (J-CAT-C) 소속 미술치료사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이들은 복잡한 철차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공식 구호품 수송루트를 타지 않고 직접 재해 지역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내온 미술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후쿠시마현의 어린이들.

얼마전 내한하여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던 도쿄 거주 미술가 나카무라 마사토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갤러리 3331(
http://3331.jp)의 장기 프로젝트 '동일본대지진 부흥지원 arts action 3331'(http://action.3331.jp)에 참가한 미술가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전시를 열어 수익금을 재해 지역에 기부하는 것과 재해민들을 치유하는 이미지를 함께 만드는 작업이 그것이다.

후자의 사례를 몇 개 들어보자. 이이지와 코스케의 '벛꽃net 도호쿠'는 재해 지역의 사람들이 벛꽃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작가가 프린트해서 전시하는 프로젝트이다.(http://exuok.exblog.jp/) 히비노 가츠히코의 'heart mark veiwing'(
http://heartmarkviewing.jp/)은 재해민들과 하트 모양의 장식물을 함께 만들어 건물을 장식하는 활동이다. 무라야마 슈지로의 'green line project'는 사라져버린 도호쿠 지방의 녹색 산과 들을 실제 식물에서 추출한 재료로 그리는 벽화 작업이다.(http://plantart.exblog.jp/14658647/)(http://action.3331.jp/000006.html)


'아트 치요다 3331'에서 운영하는 '동일본대지진부흥지원 arts action 3331' 프로젝트의 사이트 메인 사진. 

이런 프로젝트들은, 공공미술과 민중미술의 선례가 보여주었듯이, 나이브한 활동이 아닌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예술성'의 차원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예술가들은 예술성 이전에 이미지의 정서적 힘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한다. 정신적인 상처는 어떤 의미에서는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가지만, 잘 눈에 띠지 않고 그래서 자칫 가장 덜 돌보게 되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부분을 돌보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은 이미지의 정서적 충격과 또 그 힘에 대해 느끼고 있는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한 장의 사진이 위안이 될 수 있고 한 가닥의 선이 마음에 힘을 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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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얼마전 아이패드를 샀다. 기본적으로 작고 가벼운 컴퓨터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 피씨에 없는 여러가지 기능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앱이다. 여러가지 앱 찾아보고 다운받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 중 꽤 유용한 것이 여행정보나 지도 관련 앱이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만 심각한 방향치인 필자에게는 꽤 도움이 된다.


아이패드나 각동 스마트폰 지도앱들의 특징은 실시간 인터랙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중 어떤 앱은 단순히 작동시키기만 해도 현재 위치를 자동적으로 알려준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할머니 같은 소리가 나올법한 기능들이다.


GPS 기능이 있는 이런 지도를 쓰면서 필자는 종종 이것은 우리 시대의 독특한 풍경화라는 생각을 한다. 18세기의 네덜란드 풍경화와 19세기 영국 풍경화가 그 시대 문화의 하나의 아이콘이었듯이, GPS적 풍경화는 현대의 아이콘인 것이다.


그런데 GPS 적 풍경화는 전통적인 풍경화와는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준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풍경은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풍경의 일부이다.


풍경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풍경의 일부인 이런 상황은 일찍이 발터 벤야민이 전통적인 것과 구별되는 현대 특유의 것이라고 말한 지각방식과 통한다.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에서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시가 군중을 묘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그의 시는 대도시의 군중에 대한 것이라고 썼다. 보들레르 자신이 이미 대도시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군중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살았던 19세기 중엽의 파리는 현대 도시문화가 자리잡아가는 곳이었다. 유리와 철골로 만든 아케이드 상점가, 그곳을 어슬렁거리는 산책자들, 거리에 물결치는 광고간판, 신호등과 자동차의 불빛들은 벤야민의 표현대로 인간의 지각방식을 '충격'으로 재구성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충격으로서의 지각은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이다.
그것은 어떤 고정점에 머물면서 대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대상의 내부를 '스캔하는' 지각방식이다.


벤야민은 20세기 초에 활동한 이론가이지만 그의 글은 예언적인 것이어서 21세기인 오늘날 오히려 더 잘 이해되는 면이 있다. 동시대의 미술작품 속에서 종종 이와 관련된 관점을 읽어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수의 <메탈리카> 시리즈도 그 중 하나다. 화려한 형광색 선과 빛의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한편으로는 추상화가 아니다. 자세히 보면 대각선으로 뻗은 선들이 한 곳으로 수렴되면서 삼차원의 깊이가 있는 공간의 느낌이 만들어진다.





환각적인 공간감은 철골과 유리로 된 도시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여준다. 아니 보여준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볼거리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화면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선들이 수렴되는 가상의 소실점이 그 맞은편에 있을 우리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뿐이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빛의 궤적들은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선 같은 역할을 한다.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시에 대해 말한 것처럼, 여기서 우리는 풍경 '속에'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작가 김성수는 루브르 미술관의 유리 파사드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도시의 화려함이 유럽보다 더 번쩍거리게 된 것을 것을 목격한 이후 이 모티브는 연작으로 발전했다. 그의 <메탈리카> 시리즈는 도시 안에서 볼 수 있는 무엇에 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도시 안에서의 뱡향찾기 혹은 방향상실에 대해 말해주는 작품이다.


김성수의 작품이 보여주듯이, 현대 도시의 풍경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네온사인이나 서치라이트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빛 그 자체를 이용해서 실제 삼차원의 공간 속에 구현되는 작품을 하나 감상해보자. 멕시코 출신 작가 라파엘-로자노 해머(Rafael-Lozano Hemmer)의 <vertical elevation>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2000년 멕시코시티의 조칼로 광장을 시작으로 더블린 등 다른 몇 도시에서 실현되었다.





여기에도 전통적인 의미의 '볼거리'는 없다. 단지 밤하늘을 수놓으며 여러 각도로 교차하면서 변화하는 수십개의 서치라이트 불빛들이 있을 뿐이다. 이 불빛을 디자인한 것은 작가 자신이 아니라 작가가 개설한 웹사이트를 방문한 수많은 일반인들이다. 방문자들이 웹사이트에 서치라이트의 각도와 시간 등을 입력하면 그 결과가 실제로 반영되는 것이다.


일반인이 웹사이트를 통해 작품에 참여한다는 컨셉 자체는 흔한 것이지만, 그것을 '광장'에서 구현되는 일종의 공공미술로 만들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포인트이다. 밤하늘을 캔버스 삼아 실제의 공간이 하나의 풍경가 된다. 이 풍경화는 서치라이트 불빛이 가로지르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인 동시에 웹사이트를 통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풍경화 역시 우리 앞에 놓인 이미지는 아니다.


독일 작가 디륵 플리이쉬만(Dirk Fleischmann)의 <My Empire> 역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공간을 풍경화로 변형시키는 작품이다. 관객이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갤러리의 한 벽면을 꽉 채우며 거의 실제 크기로 투사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다.



얼핏 사진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이 풍경은 사실 한 건물 옥상에 작가가 설치한 웹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이는 실제 독일의 도시풍경(프랑크푸르트)이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듯 하지만, 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바람소리도 들리고 구름이 흘러가는 것도 보인다.


관객은 허구의 이미지가 아닌 실제 공간을 앞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곳은 웹캠이라는 장비를 통해 가상의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이다.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수만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이 점이 이 작품의 공간을 기묘한 것으로 만든다.


이 작품은 필자가 2005-6년에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한 전시에 소개되었다. 한국과 독일 사이의 8시간의 시차 때문에, 오전에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밤의 도시를 보게 된다. 오후에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일출과 아침노을을 목격하게 된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눈 내리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아마도 프랑크푸르트에 살고있는 사람이 깨닫기도 전에 그 도시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나의 제국' 이라고 일컬은 것은 지금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실제하는 곳이지만 또 어디에도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 작품 속에서 전통적인 '이미지로서의 풍경'은 사라디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전체와 바꿔치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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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화제가 된 영화 중에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있었다. 필자는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열혈팬이었지만 비위가 약해서 폭력이 난무한다는 이 영화를 끝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잡지들에 실린 논쟁은 열심히 들여다봤는데 찬반 양론이 격심했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영화를 안봤으니 어느 쪽이건 편을 들 수는 없었지만, 영화가 폭력적이고 잔인하다는 비판에는 수긍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현실이 영화보다 더 끔찍하기 때문에" 폭력 묘사가 정당화된다는 시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옹호론은 사실 자승자박이다. 이 말은 영화가, 아니 예술이 현실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폭력이 아무리 끔찍해도 영화는 가짜고 현실은 진짜다.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는 없다. "현실의 폭력이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면 왜 구태여 영화를 통해 폭력을 경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것은 영화가 폭력적이어는 안된다는 말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영화가, 예를 들어, 폭력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현실과 대결한다면, 미술은 어떤 지점에서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영국 작가들로 구성된 그룹 블래스트 티오리(Blast Theory)의 <율리케와 이아몬의 순응(Ulrike and Eamon Complaint)>(2009)을 예로 들어보자.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것도 아니고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도 아니다. 관객이 직접 참여해야만 완성되는 '라이브' 작품이다.   



관객이 누군가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는 방 안에 들어서면 방 안에 핸드폰과 선글러스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버튼을 누르면 '작품'이 시작된다. 핸드폰 속의 목소리가 선글라스를 끼라고 지시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아몬 콜린스(1999년 살해된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멤버)와 율리케 마인호프(테러조직 적군파[REF]의 멤버였던 독일 저널리스트) 중 누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 관객이 선택하면 목소리는 관객을 방 밖으로 이끌어낸다.      


Ulrike and Eamon Compliant from Blast Theory on Vimeo.


관객은 목소리가 지시하는대로 움직이며 거리를 걸어다니다 어떤 교회의 방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율리케 혹은 이아몬으로서 인터뷰 대상이 되는데,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웁니까?"라는 질문이 처음 주어진다. 이어서 "누군가 당신 영역으로 들어와서 당신의 친구와 이웃들을 죽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관객이 이 인터뷰를 끝내고 나면, 처음 출발점에서 보았던 인터뷰 영상이 이 장소를 촬영한 것임을 알게 된다. 다음 인터뷰이가 들어오면 그의 인터뷰 모습을 지켜보게 되며 그후 교회 밖으로 나가면 '작품'이 끝난다.



필자는 처음에는 이 작품이 꽤 흥미로웠는데 어떤 작가가 "무한도전 같았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는 갑자기 팍 식어버렸다. 무한도전이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무한도전 꽤 즐겨본다), 듣고 보니 과연 그랬기 때문이다. ㅋ 요컨대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미로 따지자면 무한도전이 몇 수 위 아닌가! 현실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의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 거리를 걸어다니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현실과 미술의 긴장관계를 드러내는 데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이런 작품은 현실의 강렬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설픈 역할극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전위적 실험인일까?   


평가를 미룬다 하더라도, 이 작품이 강한 인상으로 남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작품의 컨셉 그 자체가 아니라 작품의 어떤 한 순간 때문이다. 몇 개의 다리를 건너서 인터뷰 장소인 교회로 들어가기 이전, 핸드폰 속의 목소리는 참여자를 벤치에 앉히고 묻는다. 지금 그만두고 싶다면 전화를 끊고, 계속 하고 싶다면 들고 있으라고. 목소리가 현실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참여자가 계속 하기를 선택했을 때, 그는 진정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필자는 이아몬 콜린스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적군파와 율리케 마인호프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적군파를 모르고 그에 대해 아무런 정서적 감흥도 없는 사람들이 이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그 내용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작품을 스스로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에 있었다. 왜냐하면 이 순간에 현실과 예술 사이의 틈이 벌어지고, 그 틈 사이로 어떤 스파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은, 블래스트 티오리 같은 작업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작가 앨런 캐프로(Allan Kaprow)의 1969년 작품 <Pose>를 재연한 아래 동영상에도 있다. 캐프로는 자신이 '해프닝'이라고 불렀던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갤러리 공간에서 벗어나 '예술과 일상의 통합'을 꾀했던 아티스트였다. 로스 엔젤레스에 있는 현대미술관(LA MoCA)은 2008년 봄에 캐프로의 회고전을 열면서 당시의 해프닝을 재연했는데, 다음의 동영상은 그 재연 장면 중 하나이다(캐프로는 해프닝을 거의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영상물은 남아있지 않다). 해프닝은 역시 관객 참여로 실현된다. 처음에 간단한 디렉션이 주어지고, 관객은 그 내용을 지키는 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 내용을 실현한다.



http://www.moca.org/kaprow/
(전시 사이트)

필자는 지난 학기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이 동영상을 보았는데, 어떤 학생이 "저 해프닝은 경찰의 허락을 받고 했을까요?"라고 물었다.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에 가져온 필자는 "그러게요, 나도 궁금하네"하면서 같이 봤다. 영상의 3분의 2 정도 지난 부분(4분 57초부터)에 보면 그 답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필자가 장영혜 중공업의 <삼성>을 떠올린 것은 우연일까. 플래시로 구성된 간결하면서도 파워풀한 웹 작업으로 미술에 큰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장영혜 중공업은 삼성(그 삼성 기업 맞다)에 유난히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작가로 유명하다(?). 물론 삼성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아이콘으로서의 삼성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의 아이콘을 난데없이 에로틱하고 염세적인 뉘앙스로 녹여내는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은 '삼성'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단어가 예술작품 속에 등장했을 때 얼마나 생경한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시니컬하게 보여준다(장영혜중공업은 예전에 삼성 사옥 옥상에 몰래 올라가 설치작업을 하고 내려오는 작품을 한 적도 있었다). 

http://www.yhchang.com/SAMSUNG_KO.html
(<삼성>)



예술이 현실과 경쟁하는 헛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현실에 이미 있는 것을 가져와서는 안된다. 현실에 없는 것, 현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을 가져와야 한다. 현실이 망각하고 있는 것, 그것은, 예술은 현실과 통합될 수 없으며 다만 현실과 부딪힐 수 있을 뿐이라는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은 성공적이다.  





왼쪽: 블래스트 티오리 ( 이 그룹의 홈페이지에도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많다.)
오른쪽:  1961년 한 갤러리의 뒷마당을 낡은 타이어로 가득 채우고 있는 앨런 캐프로. 작품 제목은 <Yar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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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초보자는 낯선 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여행 고수는 낯선 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자는 낯익은 곳에서도 낯설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진정한 낯설음’을 체험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여행정보를 얻으려고 인터넷에 들어가면 너무 많은 자료가 쏟아진다. 물론 여행 자료와 실제 여행은 다른 것이니 자료가 많다는 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많은 자료들, 특히 사진들이 상상의 여지를 축소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장소라서 첫 만남이 중요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래서 필자의 한 친구는 "사진도 스포일러"라면서 인터넷 검색할 때 사진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사진만 빼놓고 검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뿐인가. 텔레비전을 틀면 수많은 여행 프로그램들이 도처에 출몰해서 한번도 못 가본 곳이 마치 많이 가본 곳인 양 느껴지게 만든다. 바야흐로 더 이상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이 사라진 듯한 시대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새로움의 소멸”이라는 이런 현상이 현대 문화 특유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이나 놀이동산 등으로 대표되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가상인 시뮬라크르가 실재를 대체해서 이제 더 이상 실재와 가상의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실재와 가상만이 아니라 참과 거짓, 내부와 외부, 과거와 미래도 구별불가능해졌다. 과거와 미래가 구별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역사라는 것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현대인이 느끼는 무기력함의 이면에는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여행에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할인 항공권을 구해보려고 검색을 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여행만 하고 사나 싶을 정도로 티켓이 귀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행은 출발의 시뮬라크르일 뿐 진정한 출발이 아니다. 현대의 새로운 유행인 '여행'은 출발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에 출발의 제스처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시뮬라크르로서의 여행은 '관광'이란 이름을 갖는다. 이 장르는 19세기에 와서 생겼다. 그 이전에 여행은 귀족들의 교양수업의 일환이었을 뿐 관광의 개념은 아니었다. 관광으로서의 여행은 출발이 불가능한 시대의 여행 방식이다.

 
예술가들은 대체로 여행을 좋아한다. 자기의 집에서도 낯설음을 느끼는 것이 여행자의 조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가 역시 그렇다.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산 랭보, 북아프리카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플로베르, 알제리의 태양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낭만주의의 자양분을 발견했던 들라크루아나 남태평양의 섬에서 여생을 마친 고갱의 행로는 그들의 인생만이 아니라 작품의 방향을 결정했다.


고갱의 시대까지만 해도 '출발'에 대한 환상이 가능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그 환상이 깨졌더라도 적어도 출발할 때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 건너편의 일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에 여전히 여행에 대한 환상이 가능할까? 혹은 관광이 아닌 여행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떤 작가들은 여행이 관광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역이용하고, 어떤 작가들은 여행의 불가능함이라는 명제 그 자체로 맞선다.


한국과 영국 작가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의 서울 투어스(2010)는 전자의 경우이다. 서울투어스 프로젝트는 "서울 사람도 잘 모르는 서울"을 슬로건으로 내거는 도시 리서치 작업이다. 인터넷으로 '관광단'을 모집해서 서울을 구경다니고 그 과정을 아카이브(사진, 영상, 텍스트, 지도 등) 구성한다.
 

코스를 선택하는 기준은 서울의 예전 모습이 남아있는 동네와 개발논리에 휩쓸린 동네를 함께 묶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앙시장-황학동 벼룩시장-황학동 롯데 캐슬 아파트(청계천 개발때 황학시장 일부와 노점상을 철거하고 지은 아파트)의 코스, 인왕산-영천시장-교남동 뉴타운 예정지로 짜여진 코스 등이다.


'관광객'들은 시장에서 기념품도 사고 맛집에서 점심도 먹으면서 이 코스를 걸어서 둘러보는데, 반드시 각 장소 앞에서 전형적인 관광 기념사진 풍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프로젝트는 일상의 공간을 낯설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공간 속에 숨은 정치적 의미를 드러낸다. 노점상을 철거하고 지은 명품 아파트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이 상투적인 제스처는 거꾸로 일상에서 우리가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얼마나 상투적인가를  드러낸다. 보통 관광할 만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짐짓 관광사진을 찍는다. 이 행동은 일종의 연극이지만, 또 아니기도 하다. ‘투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이 여행에서 참여자들이 어떤 의미를 얻어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민경, 장윤주의 <차이나타운에서 가져온 정물>(2009)도 여행이 관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이용한다. 이들이 '여행'한 곳은 인천 차이나타운이다. 이들이 이 곳에 간 것은  한국의 화교들이 받아온 차별 문제와 다문화 사회의 이슈들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문제를 목소리 높여서 주장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화교들의 삶을 모르지만 우리는 안다”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대신 이들은 “우리 역시 어차피 그들을 모른다” 라는 시각을 갖는다. 아무리 이해하다고 해봤자 자신들 역시 타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행객의 위치를 자처하면서 풍경을 '수집'한다.



이 수집품들은 차이나타운을 거닐면서 찍은 사진들과 길거리에서 주워온 사소한 물건들이다. 낡은 장갑, 시계, 과자상자, 빈 캔 병 등을 주워와서 '정물’을 구성한 다음,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린다. 말 그대로 ‘정물화’를 만드는 것이다. 정물화는 여행객의 시선과 닮았다. 원래 그 장소에 있던 물건들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구성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정물화의 대상이 된 물건들은 딱히 ‘중국적인’ 느낌이 나는 것들도 아니다. 슬라이드 사진에 담긴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간간히 보이는 중국어와 붉은 색 등을 제외하면, 평범한 뒷골목과 가게들이다. 보는 사람이 이 정물화와 풍경을 이국적으로 느낀다면 그것은 차이나타운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국성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이 작품의 주제는 차이나타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을 보는 여행자의 시선이다. 이곳을 ‘이국적으로’ 만든 것은, 그리고 타자화해온 것은 우리 자신인 것이다.   


후자, 즉 여행의 불가능함이라는 명제를 던지는 사례 중 하나는 40여 년 전 만들어진 작품이다. 미국의 대지미술 작가 로버트 스미드슨<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1971)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갤러리 공간이 아니라 실제 자연 공간 속에 설치된 작품이다. 유타 주 솔트 레이크의 로젤 포인트라는, 찾아가기  힘든 후미진 곳이다. 1971년, 스미드슨은 주변의 돌과 흙6천5백여톤을 이용해 이곳에 지름 15피트의 소용돌이 모양의 방파제를 만들었다. 트럭 두 대, 트랙터 한 대, 로더 한 대가 동원되어 6일이 걸린 큰 공사였다.

이 작품은 호수의 수위 상승 때문에 30년 동안 물에 잠겼다가 1993년 다시 떠오른 후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 작품을 보러가는 것 자체가 여행이다. 하지만 이 여행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여행이다. 가는 길이 험하다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여정은 힘들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불가능한 것은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는 것이다.
 
방파제가 물에 잠겨 있었을 때는 물론 작품을 볼 수가 없었다. 물 위로 솟아오른 이후에도, 이 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육안으로 전체 모양을 식별할 수가 없다. 방파제의 소용돌이 형태는 비행기의 시점에서만 온전히 보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물 위로 얕게 솟아있는 불규칙한 돌멩이들과 거기에 끼여 있는 소금 결정체들(솔트 레이크는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곳이라 염분의 농도가 높다)로 만들어진 구부러진 길 뿐이다. 방문객들은 이 길 위를 걸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난관 역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면 해결된다. 항공사진을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전체를 볼 수 있다. 진정으로 ‘불가능’한 것은 이 작품에 포함된 시간을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다.


스미드슨은 이 작품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지게끔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지질학적 풍화작용 속에서 몇 만 년의 시간이 흐르면 방파제는 물론 호수도 소멸할 것이고, 작가가 염두에 둔 것은 그런 광대한 시간 그 자체이다.


‘소멸’이 가능하다면, ‘시간’도 가능할 것이다. 이 작품은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간의 불가능성’을 색다른 방식으로 반박한다. 시간은 가능하다. 하지만 단지 소멸 속에서만, 경험의 한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설 속에서, 여행의 ‘불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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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큰 경기 할때만 열올리는 냄비 축구팬이지만, 축구를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축구가 무식한 경기처럼 보여서 관심이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잘 하는 플레이를 본 적이 없어서였던 거 같다. 2002년 월드컵 때 불현듯 축구의 매력을 발견한 후 죽 축구팬을 자처하고 있다.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펼치는 경기에는 한 편의 발레 같은 우아함이 있다. 그것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수단인 몸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라 핵심을 꿰뚫는 것 같은 간결함과 깊이를 동반한다. 

얼핏 보면 축구는 폭력적이고 무질서해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숨겨진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 더 매력적인 건, 그 질서는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매순간 실현되면서 드러나는 질서라는 거다. 

축구는 공을 차는 경기가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경기이다. 하지만 축구가 창조하는 '공간'은 형체를 가지고 고정돼 있는 공간이 아니라, 순간적으로만 창조되고 다음 순간 사라져버리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축구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익숙해 있는 우리들에게 변화, 움직임, 리듬의 차원이 있다는 걸 드러내준다. 앞에서 축구의 우아함이라고 썼는데, 우아함은 기본적으로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우아한 이미지라는 말은 좀 이상하지만 우아한 움직임이라는 말은 어울리는 건 이 때문이다. 

축구가 미술과 닮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니 어쩌면 축구는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걸 이미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대미술의 지향점 중 하나가, '이미지를 통해서 이미지화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말이다. 

이런 점 때문일까. 축구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이 종종 있다. 독일작가 하룬 파루키(Harun Farocki)의 <딥 플레이(Deep Play)>(2007)도 그 중 하나다. 필자는 이 작품을 2007년의 카셀 도큐멘타 12에서 봤는데, 최근 한국에서도 전시되어서 반가웠다(플랫폼 2010:프로젝티드 이미지, 아트선재센터, 2010, 11.3-11.19). 미술이 무슨 소재인들 못다루겠냐만은 축구와 미술의 관계는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필자의 개인 취향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딥 플레이>가 축구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다. 어쩌면 월드컵이라는 전세계적 이벤트의 스펙터클한 성격을 해체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을 보면 오히려 지루하다는 것이 필자의 소감이다. 현대사회, 미디어, 스펙터클, 이런 것에 대한 비판은 새롭지 않다. 보이는 것 사이의 '틈'과 '리듬'이라는 면에서 감상하는 게 더 흥미롭다. 

<딥 플레이>는 2006년 7월 9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이탈리아 대 프랑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승부차기를 포함해서 장장 두 시간 15분에 걸친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작품을 다 보자면 두 시간 15분이 소요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티비에서 봤던 그대로의 중계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열 두 개의 영상이 전시장 벽면에 투사된다. 하나의 경기를 열 두 개의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한 화면에는 월드컵 공식 중계 화면이, 다른 화면에는 작가가 개인적으로 촬영한 화면이, 또 다른 화면에는 경기에 대한 3D 시뮬레이션 화면이 보여지는 식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축구 감독만을 찍은 화면도 있고, 각 선수들의 순간 스피드와 이동량을 도표화해서 보여주는 화면도 있으며, 경기장 출입구 폐쇄회로 카메라를 보여주는 화면도 있다. 

 
 Harun Farocki, <Deep Play>(2007)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발생한 사건을 이 처럼 열 두 개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우리가 '지각한다'는 것에 내재한 맹점이나 틈을 드러내준다. 그 누구도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없다. 열 두 개의 영상을 모아놓은 전시장에서도 관객은 그 모든 영상들을 동시에 지각할 수 없다. 이 영상들 사이에는 기승전결의 깔끔한 내러티브 같은 것이 없으며, 하나를 볼 때 다른 하나를 놓치는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곳은 영상들 사이의 관계, 틈 속인 것이다. 


2006년 월드컵 결승전은 유난히 승부차기에 약한 이탈리아가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점에서도 흥미진한 경기였지만,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이 자신의 은퇴경기가 될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 선수 마테라치의 가슴팍을 머리로 들이박고 그대로 퇴장당한 초유의 사건으로 유명한 경기이기도 하다. 새벽에 이 경기를 라이브로 본 필자 역시 이 장면을 목격하고 헉 하고 말았다. 


이후 지단의 행동을 둘러싸고 분분한 논란이 일었고 필자는 침을 튀겨가며 지단을 변호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변호라는 게 의미가 없었다 싶지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던 건 지단은 필자에게 아주 특별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축구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지단 덕분이었으니. 그의 플레이는 축구가 어떻게 예술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는가를 더 이상의 설명없이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축구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들이 유난히 지단을 많이 등장시키는 것도 지단의 플레이에서 필자가 받았던 특별한 느낌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멋대로 짐작해본다. <딥 플레이>만이 아니라 더글러스 고든과 필리페 페리노(Douglas Gordon & Philippe Parreno)의 <지단 : 21세기의 초상(Zidane, un portrait du 21e siècle)>(2006) 역시 지단이 나온 경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Douglas Gordon & Philippe Parreno, 'Zidane, un portrait du 21e siècle', 96min, 2006 (still image)

         

<지단, 21세기의 초상>(제목은 솔직히 좀 구리다)는 열 두 개의 영상으로 축구를 분해한다거나 애니메이션을 동원한다거나 하는 장치도 없이, 있는 그대로 지단의 플레이를 따라가면서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스페인 축구리그인 프리메라리가로 카메라를 돌려서 2005년 4월 23일에 열린 레알 마드리드 대 비야 레알의 경기를 96분에 걸쳐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 역시 작품을 다 보려면 96분이 소요된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페스티벌 봄>(2009. 3.27-4.12)에서 이 작품을 보았다. 당시 이 작품은 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다큐멘터리라는 성격상 이렇게 보는 것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갤러리에서 흘끗흘끗 보는 것보다 이렇게 집중해서 보는 것이 더 힘들다. 일단 극장에 들어가면 도중에 뛰쳐나올 수도 없고 끝까지 봐야 한다. 

작품을 감상하는데 힘들다는둥 뛰쳐나온다는 둥 하는 하는 말이 왜 나오는가 싶겠지만, 작품이 특수하다보니 그렇다. 축구 경기를 볼 때 96분의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하지만 이 작품이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이 작품은 사실 축구 경기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어느 팀이 이기고 있는지, 누가 패스했고 누가 슛을 쐈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고성능 카메라가 오로지 지단만을 뒤쫓는다. 그것도 아주 밀착해서. 땀방울 하나 하나가 보이고 숨소리 하나 하나가 들릴 정도로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많다. 거의 편집증적이다. 스코틀랜드 그룹 모과이(Mogwai)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지단이 한 말들(인터뷰 내용)이 자막으로 깔릴 뿐, 다른 어떤 시청각적 장치도 없다. 

 
Douglas Gordon & Philippe Parreno, <Zidane, un portrait du 21e siècle>, 96min, 2006 (일부) (주의! 구린 화질)

있는 그대로의 액션만을 촬영한다고 하는 행위가 여기서는 그 극단에 이르러 오히려 거꾸로 초현실적인 효과에 진입한다. 

<딥 플레이>가 열 두 개의 영상으로 보여준 '지각경험 사이의 틈'이 여기서는 영상 하나를 통해 감지된다. 이 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틈이다. 카메라가 지단의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할수록 거꾸로 관객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게 된다. 몸으로 본다고 말해야 할까. 어쩌면 더 이상 본다는 말은 적절치 않고, 느낀다 혹은 감지한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해체되고 시간은 정지되고 움직임의 리듬 그 자체만 수수께끼처럼 명멸하는 이 경험은 96분의 시간을 무사히(?) 견딘 관객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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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000미터의 산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고 치자. 누군가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결과는 0이군"이라고 말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올라갔다 내려오느라  힘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선물을 싸들고 누군가에게 갔다고 치자.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이 극구 사양하면서 "마음만 받겠다"라고 딱 잘라 말해서 할 수 없이 그냥 들고 왔다. 이번에도 결과는 0인가? 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산에 올라갔다 온 것에 비해 별로 땀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탈리아 작가 지아니 모티(Gianni Motti)의 작품 <기금전시(Funds Show)>에도 비슷한 종류의 아리송함이 있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단순하다.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작품 제작비를 비롯해서 운송비, 설치비, 인건비 등 여러 항목의 예산이 필요하다. <기금전시>는 전시를 위해 미술관에서 작가에게 지불한 돈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어 돈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전시하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전시장에 돈만 있고 다른 작품은 없다는 것이다. 

모티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렸던 두 전시[Centre d’art contemporain de la Ferme du Buisson / Centre d’art la Synagogue de Delme 30 May – 13 September 2009 (Delme) / 10 April – 7 June 2009 (Ferme du Buisson)]에서 이 작품을 내놓았다. 애초 5천 달러를 받았는데 전시할 때는 환율 변동 때문에 6천4백 달러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돈들을 모두 1달러 짜리 지폐로 바뀌어 전시했다. 전시장 천정에 매달기도 하고 바닥에 뿌리기도 했다. 돈을 빨래처럼 나란히 줄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그리고 전시가 모두 끝난 이후 이 돈들을 미술관에 고스란히 돌려줬다. 그렇다면, 나간 돈이 고스란히 다시 돌아온 것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보면 물론 그렇다. 미술관은 돈 한푼도 들이지 않고 전시를 했다. 작가는 돈을 전혀 쓰지 않고 작품을 전시했다. 결과는 0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작가는 작품을 만들었으며 전시가 끝나고 미술관에 돈을 보태주기까지 했다. 미술관은 전시를 개최했고 돈을 돌려받기까지 했다.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결과는 0이라고 할 수 없다.   
 


투자와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원리에서 보면 들어간 것도 나온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원리를 벗어난 것도 아니다. 보통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무관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전시를 위해 작가에게 돈을 주는 것 역시 투자의 일종이며 작가는 그것을 바탕으로 부를 창출해야 한다. <기금전시>는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혀 위반하지 않고서도 그 시스템의 진실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한다.   

<기금전시>는 지난 21일까지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전시 <트릭스터가 세상을 만든다>(2010. 8. 31 - 11. 21)에서도 다른 버전으로 전시되었다. 이번에는 작품제작비로  800만원이 지급되었고 작가는 이를 8천개의 천원짜리 지폐로 바꾸어 바닥에 깔았다. 달러보다 확실히 더 감이 온다고나 할까. 의의로 천원짜리 8천장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미래의 기억들>(2010. 8. 26 - 2011.2. 13)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작품이 있다. 김홍석의 <카메라 특정적-공공의 고백>과 <영문-공공의 고백>이 그것이다. 이 작품 역시 아주 단순하다. 두 대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고 두 개의 단채널 비디오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왼쪽에는 인물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영문 텍스트가 나온다.

왼쪽 영상의 인물은 어떤 젊은 여성이다. 얼굴이 클로즈업된 채로 등장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 각도가 바뀌지 않는다. 이 여성은 여러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자유의 광장>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고독의 탑>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정작 그 '작품'은 한번도 화면에 비치지 않는다. "<고독의 탑>은 1층은 유리로 되어 있고 지하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습니다..." 등등. 이제나 저제나 작품이 보일까 싶은데 영상은 그대로 끝나버린다.   

이 여성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실은 작가가 스케치한 8개의 공공조각 작품(<공공의 고백>)이다. 여성은 작가가 섭외한 배우이고, 작품을 설명한 '대본'을 준 뒤 연기를 부탁했다. 오른쪽 모니터에 영문으로 나오는 텍스트가 이 대본이다.

조각, 드로잉, 언어, 영상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알면 더 흥미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배경을 모르더라도(아니 어쩌면 배경을 모를때 더욱?), 단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금전시>와 비슷하게, 이 작품은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 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어 속에서만 등장하는 '작품들'은 존재하지 않는걸까, 존재하는 걸까? 그 어떤 물질적 흔적도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걸까.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관객이 언어를 통해 얻었던 느낌이나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니, 언어 그 자체는 무엇일까. 언어 역시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현대미술은 때로 이렇게 '어떤 것이 존재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라는 단순한 말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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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막을 내린 광주 비엔날레. 막시밀리아노 지오니라는 스타 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아서 맥락 풍부한 세련된 전시를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서구 미술계의 이른바 '핫한' 스타 작가들이 꽤 참여해서 관심을 끌었는데, 기획자로도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올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서른 네 살의 나이로 대대적인 개인전을 연 독일 작가(정확히 말하면 인도-독일 작가) 티노 세갈(Tino Sehgal)도 그런 작가들이다.

이 두 작가를 특별히 묶어서 거론하는 건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두 작가의 작품이 같은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산전수전 다 겪은 관객들도 당황시킨 상당히 묘한 매치였다.  

우선 이것. 텅 빈 바닥에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젊은 여자가 누워서 춤 비슷한 걸 추고 있다. 아니, 말이 춤이지 바닥의 먼지를 죄다 휩쓸면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아니 경련을 일으키면서 굴러다닌다고 해야 할까. 



살아있는 사람의 움직임이라고 보기에는 몸동작이 너무나 기묘하게 딱딱 단절적으로 끊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라 내부 회로가 고장나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로보트나 인형 같다. 눈앞에 보고 있는 모양새가 너무나 이상하다보니 거의 모든 관객들은 그 앞에서  "정말 살아있는 사람 맞아?"하고 질문한다. 심지어 여자의 몸을 쿡 찔러 보기도 하고, 사람이냐 아니냐를 두고 설전까지 벌인다. 


이 작품을 본 뒤 고개를 다른 편으로 돌리면 여기엔 결코 덜 기묘하다고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이번엔 흰 옷을 입고 갈색머리를 한 젊은 여자의 등이 보인다. 벽에 매달린 큰 관처럼 생긴 나무틀 안에 마치 예수처럼 손에 못이 박힌 채 매달려 있다. 손목과 팔목, 허리께엔 나무 부목 같은 것이 덧붙여져서 이 여자의 몸을 허공에 고정시키고 있다. 못박힌 손바닥이나 축 쳐진 머리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핀이 꽂혀 있는 표본실의 나비 같은 느낌이 든다. 


관객들은 이 앞에서 "이거 진짜 사람은 아니지?"라는 질문을 또 한번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세히 보면 못박힌 손바닥이 실제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여저 있지만, 그런 것에 안심하기에는 전체적인 모양새가 너무나 살아있는 사람 같기 때문이다. 늘어진 맨발에 실감나게 때까지 끼어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첫번째 작품이 티노 세갈, 두번째 작품이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다. 세갈의 작품은 정확히 말하면 바닥을 뒹구는 여자가 행하고 있는 몸짓 그 자체이다. 여자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현대무용 전공 학생이며, 세갈의 작품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카텔란의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이, 진짜 같이 만든 극사실 조각이다. 

엄밀히 말하면 두 작품은 서로 연관이 없다. 다만 큐레이터에 의해 이렇게 쌍으로 배치된 것 뿐이다. 이 두 작품을 같은 작가의 것으로 착각한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들 본인은 이런 혼돈스러운 배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큐레이터로서의 경험상 많은 작가들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묘한 것은 이렇게 나란히 놓으니 별도로 감상했을 때보다 확실히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 두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똑같이 "이거 진짜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던진다. 같은 질문이지만, 거기 담긴 의미는 사실 거의 정반대다. 세갈의 작품은 사람이 아닌 것 같고, 카텔란의 작품은 사람인 것 같은 거다. 두 작가 차이가 뭔지 더 알아보자. 
 
세갈의 작품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아니 오로지 사람만을 필요로 한다. 그의 작품에 다른 물질적인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작품을 구현하는 퍼포머가 있을 뿐 그 어떤 오브제도 없다는 거다. 작가는 심지어 전시 카탈로그도 만들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는다. 모든 작품은 오로지 사람의 몸을 이용한 행위 그 자체일 뿐이다. 

 

그의 다른 작품, 예를 들어 <이것은 무척 현대적이다(This is so Contemporary)>을 보자. 미술관 전시 도우미들이 관객이 오면 "이것은 무척 현대적이다, 현대적이다, 현대적이다.."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 그러다 언제 그랬는가 싶게 다시 도우미들로 돌아간다. 다음 관객이 오면 또 똑같은 행위를 한다. 

작품이 행위 그 자체라는 점에서 해프닝의 창시자 앨런 캐프로 같은 1960년대의 실험적 작가들의 유산을 이어받은 듯 보이지만, 그들과의 차이점은 세갈의 작품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관객참여를 고무하자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팔리는 오브제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갈은 자신의 작품을 태연하게 판매한다. 이 경우도 그 어떤 서류나 물증이 오가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공증인과 작가, 컬렉터 세 명이 만나서 작품을 구현한 후 그 자리에서 현찰을 지급하고 공증인이 이 거래를 인정하는 절차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세갈의 작품은, 어떻게 '아닌 것'(그의 작품의 모든 면면은 "-이 아니다"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이 '아닌 것이 아닌 것', 즉 '어떤 것'이 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부정의 극단에서 어떻게 긍정이 생산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생산하기의 다른 방식에 관심이 있다"라는 작가 자신의 말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런 점에서 세갈의 작품은 정치적이다.    

반면 카텔란의 작품은 꽉 차 있다. 무형의 것도 아니고, 비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너무나 꽉 차 있어서 그 생생한 현존이 부담스럽고 기괴하게 느껴지는 지점에 진입한다. 카텔란이 즐겨 만드는 도상들은 말이나 쥐 같은 동물들에서, 히틀러, 교황 등의 알려진 인물, 단순히 익명적인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미술관의 흰 벽에 머리를 쳐박은 말을 설치하거나, 나무 위에 목매단 듯한 세 명의 어린이를 걸어놓는 등, 카텔란의 작품들은 세갈의 그것만큼이나 센세이션을 일으켜왔다. 


이 조각들은 실제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섬찍한 닮은꼴들이지만 또 자세히 보면 머리 크기가 너무 크다던가 하는 만화 같은 과장이 곁들여져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느낌이 가시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에는 육체적 고난을 담은 종교적 이미지나 폭력성의 흔적에 묘한 유머가 곁들여져 있는데, 광주 비엔날레 작품처럼, 많은 경우에 죽음의 느낌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번도 살아있어 본 적이 없는 인형들에 죽음의 느낌이 담겨 있다는 것은 기묘하지 않은가?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죽어 있고, 한번도 움직여본 적 없는 것들이 지치고 고단한 육체를 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카텔란의 작품은 세갈의 그것과 정반대편에 있다. 세갈의 작품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인가가 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무엇인가가 꽉 차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광주 비엔날레에서 두 작가의 작품을 한 방에 배치한 큐레이터의 감각은 상당히 재치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미술이 가고 있는 반대방향의 두 극단을 비교체험하게 해준 것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두 작가의 작품이 한 방에 있지 않았다면, "정말 살아있는거냐"란 질문이 이렇게 절박하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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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근처 원서동에 있는 공간화랑 건물은 붉은 벽돌색 외장재가 멋들어진 곳이다. 이곳이 특이한 것은 내부벽도 붉은 벽돌로 마감돼 있다는 것. 넓지는 않지만 들어서는 순간 운치가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곳에 작품을 설치하는 건 흰 벽의 보통 갤러리보다 훨씬 더 까다롭지만, 성공할 경우 아우라도 더 상승한다. 이곳에는 중견 조각가들의 좋은 개인전들이 많이 개최된다. 올 봄에 열렸던 김기철의  <화양> 역시 그 중 하나다.


어둑하게 조명이 밝혀진 갤러리에 들어서면 단촐한 비주얼이 펼쳐진다. 정면 깊숙한 곳에 놓여 있는 둥근 원통, 그리고 벽에 걸린 두 개의 직육면체 상자 같은 것들. 나무색의 원통과 직육면체 상자 표면에는 작은 검은색의 사각형과 원형이 보인다. 하지만 그 외에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볼거리는 없다. 공간은 텅 비어 보인다. 하지만 이 공간에 실제로 들어가본 관객은 여기에 사진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꽉 차 있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빗소리이다. 작지만 성능좋은 스피커들을 통해서 쏟아지는 빗소리는 정육면체와 원통형의 주변을 꽉 메운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전시실이 있는데 관객이 들어가면 센서가 작동해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옆 전시실의 소리들까지 겹쳐저서 이제 소리는 공간 속에 입체적인 레이어를 만든다. 소리의 예술, 이른바 사운드 아트이다. 소리가 무슨 미술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현대미술이 이 영역 역시 자기 것으로 끌어당겨왔으니. 게다가 미술에서 다루는 소리는 음악에서의 소리와 다르다. 미술에서 소리는 어떤 식이건 공간성 혹은 물질성과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와 미술은 일찍부터 관련을 맺어왔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라고 말하면서 음악적 요소들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칸딘스키 작품의 춤추는 듯한 리듬과 다양하게 변주되는 색채는 '음악의 상태'의 표현이다. 몬드리안은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라는 작품을 통해 흥겨운 재즈의 리듬을 크고 작은 네모칸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런 작품이 시각적인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리를 표현한 것이라면, 직접 소리를 이용한 작품도 있다. 엄밀한 의미의 사운드아트는 이 경우를 가리킨다. 소리와 시각적인 것과의 이른바 공감각적 관계를 다루는 작업도 여기 속한다. 위에 소개한 <화양>에서는 그런 면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김기철은 예전에 소리를 눈에 보이는 음파로 변형하거나 드로잉이 소리가 되어 나오는 작품을 한 적이 있다. 

소리와 시각적인 것의 상호번역 혹은 공존. '비주얼 뮤직'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경향의 작품은 오늘날 사운드아트의 주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작가 히라카와 노리미치(Hirakawa Norimich)의 <a circular structure for the internal observer>(2008)이나 미국 작가 신디 버나드(Cindy Bernard)의 작품 <projections+sound>(2005)이 여기에 속한다. 노리미치의 작품은 관객이 특정한 장소에 서면 컴퓨터에서 나오는 노이즈가 시각화되어 스크린에 투사되는 작품이다. 

 

신디 버나드의 작품에서 관객은 스크린 앞에 앉아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각각의 곡의 이미지에 매치되는 색채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어떤 형상이 아니라 그냥 추상적인 색채의 스크린만 등장하는 것이 작품의 포인트다. 특정한 형상이 등장하면 오히려 고정된 이미지에 의해 공감각적인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사운드아트에서 시각적인 것은 종종 이렇게 최소한도로만 다루어진다. 앞에서 이야기한 김기철의 작품도 마찬가지. 

하지만 작품이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이상 시각적인 것이 아예 없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이 지점에서 작가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그냥 심심하니까 장식으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꼭 필요한 요소로서 시각적인 것이 배치될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니 나아가, 시각적인 것만이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걸까? 공간을 채우는 다른 수단은 없을까?

여기서 궁극의 사운드아트의 가능성이 나온다. 이 가능성이란, "소리는 청각적인 것만이 아니다"란 명제에서 나온다. 소리가 청각적인 것이 아니라니? 이상한 말 같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소리는 궁극적으로는 음파, 그러니까 물질적인 진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있다. 초음파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인 20kHz(킬로헤르츠)보다 주파수가 커서 '들리지 않는' 소리이다. 

 
소리가 그 자체로 물질적인 것이라면, 사운드아트를 전시장에 설치하기 위해 구태여 시각적인 것을 함께 배치할 필요가 없다. 김기철의 <화양>에서 빈 공간을 채우는 빗소리는 그런 종류의 사운드아트이다. 여기서 관건은 소리가 얼마나 정말로 물질적으로 감각에 작용할 수 있는가이다. 소리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파동적인 성격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운드 아트는 종종 노이즈 아트(Noise art)의 형태로 나타난다. 작년에 내한한 즈비그뉴 칼콥스키(Zbigniew Karkowski)의 작업도 그 중 하나다. 노이즈 아트는 사운드 아트의 일종으로(때로 노이즈 아티스트는 자신들의 작업이 사운드아트가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말 그대로 '소음'을 다루는 분야이다. 그런데 이 소음의 극단은 더 이상 청각적인 것이 아니다.

작년, 칼콥스키가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Number Crunching>을 공연했을때, 장내를 가득 메운 관객의 삼분의 일 정도가 시작한지 1분도 채 안돼서 도망나온 사건(?)이 있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소음이 거의 물리적 고문의 수준으로 귀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필자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귀를 막아가며 겨우 참고 있었는데, 앉아있는 동안 바닥과 벽이 계속 떨려서 그 진동이 몸에 전해져 왔다. 힘든 시간(!)이 끝나고보니 방 안의 유리 파티션 일부가 깨져 있었다. 여기서 소리는 청각적인 영역을 은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넘어선다. 소리는 신체에 와 닿고 신체를 압박한다.

그런데 공간을 채우는 물질적인 소리라는 이 아이디어는 사실 21세기의 발명품이 아니다. 이미 1960년대에 독일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은 공연장 여기 저기에 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관객들에게 '방향과 움직임이 있는 소리'를 들려주고자 했다. <소년의 노래>가 그것이다. 원래 슈톡하우젠은 다섯 대의 스피커를 천정에도 매다는 등 다양하게 배치할 생각이었지만 초연때 기술적인 문제로 무대 주변에 늘어놓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소년의 노래>는 실황 공연으로만 온전히 감상할 수 있으며 인터넷 파일 같은 걸로는 절대 뉘앙스를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유투브 링크를..) 이것이 이 곡이 음악이면서도 음악이 아닌 이유이다.

이 곡은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곡인데, 여기서 소년들이 부르는 노래는 전자음과 혼합된 채 조각 조각 해체되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독일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해체돼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은 흩어지고 모이는 입자들처럼 공중으로 분해된다. 사운드아트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소리, 인간의 언어 역시 물질적인 차원을 갖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질로서의 소리가 차 있는 빈 공간은, 비어있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미술이 공간의 문제에 개입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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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하면 흔히 미술관이나 대기업 로비에 설치돼 있는 비디오 설치작품을 떠올린다. 여러 대의 모니터가 쌓여 있고 스타카토 같은 영상이 번쩍거리는 그런 작품들 말이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들도 백남준의 이름은 알고, '백남준 스타일'이 이렇다는 건 안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돌아서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백남준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 유명한 미술가라는 건 알겠는데 작품이 그냥 쉬워 보이고 어떤 점이 대단한지 모르겠다는 거다.

"당신이 미술을 모르니까 그렇지!"라고 일축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일단, 업계 비밀(?)을 좀 누설하자면, 실제로 백남준 작품 치고는 범작인 것들이 있다. 어디 있는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런게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도 범작이 있는데 이 정도야 그럴 수도 있다.

근데 그런 것을 넘어서, '익숙함'의 문제일 수도 있다. 미술작품이란 걸 처음 접하던 순간부터 우리 머리 속에는 '백남준 스타일'이 입력돼 있어서, 그걸 너무 당연한 걸로 받아들인다는거다.

따지고 보면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살인 인파를 뚫고 <모나리자> 앞에 서 본 사람도 비슷한 감상을 내뱉는다. "뭐가 그렇게 대단하지?"

하지만 우리가 만약 다 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색의 윤곽을 흐릿하게 하여 은은한 음영 효과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만들어내기 전에 살았다면, 그림이 이런 신비한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마찬가지로 백남준 이전에는 그 누구도 '티비 모니터와 그 속의 영상이 미술작품의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건 콜럼부스의 달걀이다. 
 

W. J. T. 미첼의 말대로 "언어는 차이에 의해 작동하고, 이미지는 동일화에 의해 작동한다." 어떤 이미지를 볼 때 우리는 항상 "어디서 봤더라..."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는 거다. 우리 기억 속에 저장돼 있는 어떤 이미지와 재빨리 맞춰보고 익숙한 걸 골라낸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미지를 다루는 미술가들이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건 참 어렵다.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인 것이다.

더군다나 '못보던 이미지'를 만드는 걸 너머 '못보던 예술'을 만들려고 하는 작가라면 고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못보던 예술'이란 결국 이미 있는 예술로 설명될 수 없는 예술, 말하자면, '출발지점에 선 예술'이다. 백남준은 누구보다 더 '출발'을 화두로 삼았던 작가였다.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들이 익숙함에 의해 많이 희석되었다면, 좀 덜 익숙한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좀 덜 알려져 있는 사실 중 하나는 백남준이 원래 미술학도가 아니라 음악학도였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백은 도쿄대학에서 쇤베르크 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쇤베르크를 더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간다. 거기서 '플럭서스'라 불리는 일련의 전위예술가들을 만나서 함께 여러 가지 실험적 작업을 하게 된다. 

플럭서스는 서구 부르주아 문화의 엘리트주의에 반대하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모토를 내걸었던 운동이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예술에 반대되는 거라면 뭐든지 했는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퍼포먼스였다. 플럭서스엔 백과 마찬가지로 음악적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퍼포먼스는 일종의 '콘서트'로 간주되었다. '악보'도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음악 콘서트는 아니다. 그들의 공연은 '음악의 출발'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그것은 '소리'다. 어떤 소리가 음악인가? 전통적인 음악에서는 음악이 될 수 있는 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백남준과 플럭서스 멤버들은 이 위계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바이얼린 솔로를 위한 하나(One for Violin Solo)>(1962)도 이런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백남준이 한 일이라고는 바이얼린을 오분간 높이 들었다가 내려치는 것 뿐이다. 저 사람이 뭘하나 궁금해하며 기다리던 청중들은 바이얼린이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지는 순간 화들짝 깨어난다. 
 


이 순간, 음악이 탄생한다. '바이얼린이 부서지는 소리'라는 음악.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바이얼린이 부서지면서 오분의 시간이 끝난다. 이 순간, 침묵 속에서 흘러간 시간 그 자체가 음악의 시간이 된다. 행위를 통해 시간을 절단하는 작업, 그것이 전통적인 음악이 망각하고 있었던 음악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작업은 전통적인 음악이 관습적으로 음악이라고 불렀던 어떤 '상상의 시간'을 실재의 시간으로 절단내는 행위를 보여준다.  

플럭서스에 큰 영향을 준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는 세상의 모든 소리들, 심지어 소음과 침묵조차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남준은 한술 더 떠서 연주자와 청중의 행위조차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이지가 음악을 '시간 속에서의 소리의 지속'으로 정의했다면, 백은 연주자와 청중의 행위라는 요소를 통해서 '음악을 공간화'시켰다(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도 또 다른 방식의 음악의 공간화 혹은 시간의 절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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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특징은 누구나 연주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백남준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 작품을 연주할 수 있다. 바이얼린을 들고 있는 시간이나 내려치는 강도를 자기 맘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이 곡을 새롭게 작곡할 수도 있다. 아래 동영상은 동시대 독일의 실험음악가 마크 로렌츠 키셀라(Mark Lorenz Kysela)가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실험음악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 집에 바이얼린이 없으면 아무 거나 집어들고 하면 된다. 단 값이 덜 나가는 물건이 권장된다. 가히 '음악의 출발'에 대한 곡이라고 할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곡의 단점은 자꾸 하면 걸오사형 말대로 습관된다는거다. 또 다시 익숙함이라는 놈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니 2010년의 우리가 '출발'을 꿈꾼다면 백남준이 하지 못했던 것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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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도무지 외우기도 힘들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다. 얼마전까지 나도 '아칫파퐁'이라고 알고 있었을 정도.

이 난해한 이름이 얼마전부터 심심찮게 잡지나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정오의 낯선 물체> <징후와 세기> <열대병> <엉클 분미> 등을 만든 태국 영화감독 이름이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졌고 얼마전 한국을 방문해서 일간지 인터뷰 기사까지 났다.

정성일씨 같은 영화평론가들 입에나 오르내릴 정도로 극소수 애호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아트영화 감독이 이 정도면 인기인이 되었다고 할만 하다. 거기다 태국에 대한 이미지까지 바꿨다.

태국 영화라면 <옹박> 같은 액션물이나 <디 아이> 같은 공포물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낯선 나라였던 태국이 갑자기 이 감독 덕분에 가까이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정작 본인은 이런 관심이 낯선 듯 한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소규모 영화인 자기 영화가 황금종려상까지 받다니 뜻밖이다 팀 버튼 심사위원장이 잘 봐주신 것 같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 영화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통 영화라고 알고 있는 것들과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러티브나 플롯 대신 한없이 긴 침묵이, 일관된 캐릭터 대신 호랑이로 원숭이로 변신하는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의 대사 대신 수수께끼 같은 잠언들이, 화려한 시각효과 대신 끝없는 정글 속 사각거리는 소리가 있다. 배부르고 졸리는 상태에서 극장에 들어갔다간 자다가 깨서 "여긴 어디? 난 누구?"란 소감만 안고 나올 터. 


'현대미술과 극단의 실험들'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면서 왠 영화 이야기? 미술과 관련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핏차퐁은 미술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만들지만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비디오아트 작품도 만든다. 

후자를 보고 싶으면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격년제로 열리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씨티 서울'(2010.9.7-11.17)에 그의 <프리미티브 프로젝트>가 전시되고 있으니까.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 <엉클 분미>와 한 세트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일부인 <나부아의 유령들>은 올 봄에도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다. 아시아 현대미술가에게 주는 '아시안 아트 어워드'(2010.4.8-6.6. 소마미술관)에서 6명의 후보 중 최종 수상작가로 선정되었으니까. 

여하간 미술인들은 이 사람을 영화인이기 이전에 미술가로 알고 있었다. 미술인들은 아핏차퐁 영화 같은 스타일에 익숙하다. 영화라고 보면 너무나 낯설지만 비디오아트라고 보면 딱히 낯설 것도 없는 것이다.

'프리미티브 프로젝트',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에서의 설치광경(2009)



영화계와 미술계을 오가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야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감독의 작품이 전통적인 영화도 전통적인 미술도 아니고 그 두 영역을 다 벗어난 바깥 어디쯤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은 바로 그곳을 자기 집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기승전결의 내러티브가 실종된 영상은 관객이 무작위적으로 들락거릴 수 있는 갤러리 공간의 관람방식과 맞닿고, 냄새와 온도가 느껴지는 화면은 기묘하게 촉각적이어서 필름에 손을 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이미 미술의 영역이다. 아니 '이미 미술의 영역'이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 미술 자체가 계속 달라져왔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미술이 아니고 더 이상 영화가 아니고 더 이상 건축이 아니고 더 이상 문학이 아닌 영역에서 자기 영역을 발견해왔다. 

'no limit'라는 블로그의 제목은 이런 의미에서 붙였다. 그러니 뭔가 확실한(자극적인?) 볼거리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시는게 좋다. 현대미술은 '볼거리'라고 알려져 있는 어떤 안전한 영역을 끊임없이 탈출하면서 자기 이름을 알려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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