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선승혜의 그림친구

[선승혜의 그림 친구]‘부드러움의 힘’ 한국문화에서 ‘곱은옥’은 부드러움의 상징 원형이다. ‘곱은옥(曲玉)’은 누에고치가 살짝 구부러진 듯한 모습으로 옥을 깎은 꾸미개다. ‘곱은옥’은 길을 상상하게 한다. 곱은옥은 아시아대륙 가운데 한국, 만주,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다. 곱은옥은 한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를 풍미했다. 중국의 홍산문화에 ‘C’자형 옥기가 있지만, 곱은옥과 모양도 크기도 다르다. 손에 쥐면 쏙 들어오는 크기는 이동하는 사람들의 상징적 표시물로 어울린다. 긴 이동의 여정에서 곱은옥을 가진 자가 우리의 지도자라는 상징 같다. 곱은옥으로 연결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에서 아시아의 고대 미감을 상상해본다. 곱은옥의 모양은 부드러움이다. 비정형 윤곽선은 각지지 않고 흐르듯 부드럽다. 표면은 부드러운 촉감을 위해 정성껏 갈려 있다. 손에 .. 더보기
“붉은 먼지와 황금빛” 문화는 빛으로 이어진다. 빛은 한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시대의 빛이다. 빛은 먼지투성이의 세상마저 붉게 단장시켜, 빛으로 물든 속세를 ‘붉은 먼지(홍진·紅塵)’라고 부르게 한다. 빛은 볕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로애락으로 뒤엉킨 응어리를 녹여내 영원에 닿게 한다. 빛은 마음속에 곱디고운 비단결을 보는 순간을 선사한다. 빛의 아름다움은 붉은 먼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성스럽다. 각 시대의 빛은 세속의 홍진과 어우러져 제 빛깔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금귀고리’, 신라 6세기, 경주 합장분 출토, 국보 90호 10월에는 경주로 가자. 신라로 가자.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은 빛을 찾는 순례다. 신라의 황금빛은 권력의 군림이 아닌 자연과 사람, 성과 속의 연결빛이다.. 더보기
당문화는 다시 깨어나는가? 역사는 순간마다 문화기억을 축적하고 되살린다. 최근 중국은 당나라의 문화기억을 부활시키고 있다. 한국인에게 당나라는 정치적으로 신라의 나당연합으로, 인물로는 당에 조기유학을 가서 외국인 과거시험에 합격한 최치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21세기 더 다양하고 복잡한 국제관계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시야에 당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다. 당의 수도였던 시안(옛 이름 장안)은 무왕이 통치한 주나라의 서주,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 한나라의 전반부인 전한, 당나라까지 1000여년 동안 수도였다. 시안은 20세기 중국이 수도를 정하는 투표에서 베이징과 경합해, 한두 표 차이로 베이징에 수도를 내어주었다고 할 만큼 중요한 도시다. 현재 시안은 신(新)실크로드의 핵심도시로서 시진핑 주석이 주목하는 지역이다. 시안은 당문화를 주제로.. 더보기
혼자가 아니다 김홍도가 ‘취한 다음 꽃을 본다(醉後看花)’라는 글을 쓴 그림이다. 무엇에 취해 꽃이 보일까? 송나라의 시인 임포가 서호에서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아 혼자 살았다는 은유를 그리면서, 친구도 그려 넣었다. 조선시대에 작은 집에서 친구 한둘과 이야기를 즐기는 ‘은일’은 지혜의 문화였다. ‘은일’은 고립이 아니다. 은일은 나만의 시공간을 가져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방법이다. 은일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산은(山隱), 시은(市隱), 조은(朝隱)이다. 은일은 어디서든 가능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정치의 격돌에서 틈새 시간을 이용한 마음의 은일이다. 한·중·일의 은일은 강조점이 다르다.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복잡한 권력투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정치적 은일이 발달했다. 일본은 .. 더보기
한 조각 조각 이 땅의 문화 오세창(1864~1953)은 ‘삼한일편토(三韓一片土)’(1927)로 문화란 이 땅에서 한 조각 한 조각 무명(無名)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록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삼한의 한 조각 흙’이라는 ‘삼한일편토’는 상단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와당 탁본을 오려서 콜라주처럼 붙이고, 하단에 촘촘하게 해설을 쓴 작품이다. 글의 마지막에 삼한의 한 조각의 와당, 그 흙이 우리 땅의 보배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병상에서 약탕 화로를 곁에 두고, 먹을 갈고 탁본해 겨우 그 형태를 보존하고 그 연유를 기록한다고 썼다. 탁본을 오려서 운율감 있게 배치하고, 어울리는 인장으로 강약을 더해준 조형감각이 세련되다. 오세창은 시대전환기에 한국미학의 정초자로서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인물이다. 조선말 중인의 역관으로, 일제강점.. 더보기
오아시스의 마음가짐 둔황(敦煌)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곳으로 사막지대의 오아시스 도시다. ‘모래가 우는 산’(鳴沙山)과 ‘초승달 샘물’(月牙泉)의 오아시스를 가진 둔황은 깨달음의 가치공간으로 시간을 초월한다. 돈독한 빛이라는 지명은 상징적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막고굴(莫高窟)이라는 수많은 굴을 파고,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몇몇이 모여서 명상과 담론으로 마음의 가치를 잃지 않았던 태도가 둔황을 만들었다. 막고굴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지친 이에게 쉼을, 여행을 다시 떠나는 이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화해의 장소다. 둔황은 나와 너의 경계가 없다는 점에서 탈경계를 경험한 곳이다. 21세기 국경을 넘어서서 신(新) 실크로드의 부활을 도모한다면, 그 시작은 인본가치여야 한다. 미래형 비단길은 오아시스의 길로 부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