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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50년 동안의 약속 눈빛은 사진집을 내는 작고 오래된 출판사다. 원래 순한 사람들이 사고를 치면 꽤 집요하고 대책 없는 법이다. 책 만드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중년의 이규상 대표는 이런 축에 든다.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귀한 자료를 발굴해 책으로 엮어내는 우직함이 대단하다. 특히 다큐멘터리사진의 기록성에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눈빛이 북콘서트를 열었다. 11권의 사진집과 함께 눈빛작가선 10권을 내놓은 올 한 해의 결실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이날은 출판사 대표보다도 더 고집스러운 한 분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원로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 마침 이날은 선생의 대표작 사진집의 출판 기념회 자리이기도 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 미나마타시의 질소 공장에서 배출한 수은에 마을 주민들이 중독된 사.. 더보기
미친 사람을 그린다는 것? 낭만주의의 기본적인 정조는 ‘동경’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상상적인 것, 무한한 것, 먼 곳에 대한 동경을 모토로 한다. 현실감은 좀 떨어지고, 이국적인 것, 관능적인 것, 악마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탄생한 낭만주의는 천재와 광기의 예술가 개념을 만들었다. 통상 예술가를 생각할 때 과도한 감정, 자유와 방종, 괴팍함, 혼돈을 떠올린다면 낭만주의자로서의 예술가를 염두에 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의 먼 곳에 대한 사랑 혹은 동경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시간적으로는 중세와 바로크 시대, 공간적으로는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같은 근동과 인도와 중국, 일본 같은 극동에 대한 향수를 가진다. 낭만주의자들이 하렘의 여자들과 말을 탄 모로코인과 같은 근동지방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도 그 .. 더보기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선비 복장을 한 가수 싸이가 조선 팔도를 여행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긴 하나 시점은 다양하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의 시선에서 기록한 유적지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김일성광장 앞 인민군 행렬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의 손에는 대한제국이 만든 로켓이 들려있고, 그 옆에는 레이디 가가가 찬조 출연을 한다. 작품 한쪽에는 싸이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불렀을 법한 랩풍의 가사들이 적혀있다. 북한의 선전 문구 같기도 하고, 시조 한 소절 같기도 한 문장들은 시대 풍자와 한탄으로 가득하다. 사진가 이상현이 트렁크 갤러리에서 최근에 선보인 전시 제목은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얼핏 산만해 보이는 이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의외로 명료하다. 구한말 우리가 로켓을 가질 만큼 강력했다면 식민지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며.. 더보기
‘불란서 미니 2층집’과 ‘마당 깊은 집’ 건축역사에서 주거의 변천양식을 일반 건축처럼 구분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집은 마찬가지라는 것인데, 냉난방이나 자동화 시스템 등 현대기술의 덕택으로 주택의 편리함이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고 해도 건축의 본질인 공간의 구조에는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지역의 특수한 조건을 받아들여 지을 수밖에 없는 민간주택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예컨대 대략 9000년 전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었던 차탈휘위크의 집단 취락지 풍경은 지금의 터키 민간주거와도 비슷한 모습인 데다가, 놀랍게도 중국 허난지방에도 그 비슷한 형태의 주거가 있어 건강한 삶을 지금도 산다. 또한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우르에서는 부자와 빈자가 서로 섞여 산 것이 분명하다. 큰 집과 작은 집들이 흙벽들을.. 더보기
여성 화가로 산다는 것 19세기에 여자가 화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남성들과 대등하게 지적, 사회적, 정치적 경험 속에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안정을 모토로 하는 중산층 가문의 여자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자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대면하는 일이었다. 인상파 최초의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그랬다. 모리조는 집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화가에 입문했고, 재능에 있어서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예술과 결혼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갈등했다. 결혼을 거부할 만큼 화가로서의 인생을 살고자 했지만 작품은 아마추어의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즉 서사적 맥락과 극적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취약해 보였다. 모리조의 작품은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보기
팔 굽혀 펴기 이제 막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변화의 바람은 문화 예술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10년 사이 중국에는 수준급 사진 행사가 꽤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지메일은 연결이 쉽지 않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차단된 사회다. 통 크다는 얘기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행사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지만 한편으로는 내로라하는 작가나 기획자들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미심쩍은 검열이 존재한다. 작가들은 이 예민한 부분에 대해 어디까지 저항을 감행할까. 그리고 정부는 이런 작가들과 어떤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주고받을까. 이 대목은 중국 예술에 대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사진가 오지항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저항하는 경우다. 패션사진가이자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나체 퍼포먼스다. 그의 사진은 얼핏 보면 .. 더보기
미로와 미궁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포세이돈이 자기를 위한 제물로 쓰라고 보낸 흰 황소를 왕비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신에게 바치지 않았다. 이에 모욕을 느낀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을 벌주기 위해 파시파에 왕비가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왕비는 몸이 달아 명장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나무로 된 가짜 암소를 만들게 하여, 그 속에 몸을 감춘 채 황소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 후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났고, 미노스왕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게 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고, 해마다 아테네 출신의 처녀 총각 각 7명을 먹이로 주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제물로 바쳐질 희생자들에 끼어 크레타로 왔다.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 더보기
무리 쓰레기로 작업하기. 영국 사진가 맨디 바커를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녀는 태평양의 일명 거대 쓰레기지대에서 끌어올린 쓰레기를 하나하나 촬영한 뒤 포토샵으로 재배치해 전혀 다른 모양으로 조합해 낸다. 이 쓰레기들은 대개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다. 그녀의 작업은 얼핏 보면 몹시 아름답고 신기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바닷가에 버려진 우리 삶의 찌꺼기와 마주하는 모순된 시각 체험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이 버려진 사물에 대한 단상 또한 느낌을 달리한다. 예를 들면 북위 33.15도와 동경 151.15라는 태평양 바닷가 한가운데서 건져진 쓰레기 더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과 하와이 사이에 있는 그곳은 쓰나미를 겪은 후쿠시마의 해안가 쓰레기들.. 더보기
깊은 가을, 밤 그림과 함께 명상을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는 대중에겐 꽤 생소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개최된 ‘17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들’전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당대에 인기 없었던 화가는 아니다. 오히려 대단히 인정받았던 작가다. 실제로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를 지냈을 정도다. 라 투르의 그림에 특별히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바로크 미술의 주요 특징인 명암의 대비가 뚜렷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법)와 더불어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종교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의 그림은 단순한 명암법이 아닌 테네브리즘(Tenebrism)에 속한다. 이탈리아어로 테네브라(tenebra·어둠).. 더보기
본다는 것 이탈리아의 조르지오 디 노토는 ‘본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의심하는 젊은 사진가다.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목격 혹은 기록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더 크게는 본 것을 기억하고 본 것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윤리적인 태도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사건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이 이 말에 유독 민감하고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가는 것과 보는 것의 연관성은 어떻게 될까. 반드시 현장에 가서 본 것만이 진정성을 지니는 것일까. 가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혹시 습관처럼 사건을 ‘채집’하려고 가는 것은 아닐까. 조르지오는 ‘아랍의 봄’ 때 그곳에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혁명의 열기와 상처, 절박한 외침을 인.. 더보기
위험을 무릅쓴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그림 마크 로스코의 실물 회화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체험을 쏟아놓는다. 명상의 깊은 세계로 인도하는가 하면, 펑펑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진정 로스코의 추상회화는 망막을 혼란시키는 동시에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그림에 속한다. 그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자살했기 때문일까? 색면화가인 로스코는 소위 드리핑(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흩뿌리는 기법) 화가인 잭슨 폴록과 더불어 추상표현주의의 독보적 존재이다. 추상표현주의란 무엇인가? 형식은 추상이지만, 내용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태어난 추상표현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미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중에서도 색면 화가들은 전쟁의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해 실존적 입장에서 좀 더 근원적이고 강렬한 색면.. 더보기
코트디부아르 미장원 머리 모양이 첫인상의 70%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정확한 수치는 아니더라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나 아버지가 아프리카 태생인 에밀리에 레그니에의 무용담을 듣다 보면 흑인 여성이 곱슬머리에 대해 가지는 애증이야말로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빗지 않아도 찰랑거리는 금발이었는데, 캐나다 학교에서 유일한 흑인 아이였던 에밀리에의 곱슬머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어서 그녀는 늘 번개처럼 뻗친 머리를 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최근 촬영차 코트디부아르에 갔다가 미장원에서 반가운 풍경을 목격했다. 탈색으로 머리칼 색깔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모양의 가발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비욘세 같은 외모를 .. 더보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리고 헤테로토피아 이상향으로 번역하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지은 소설책의 제목이었다. 그는 그리스어 두 단어를 합성해서 이를 만들었는데, 그 뜻이 이중적이다. Topia는 장소, 땅이라는 분명한 뜻을 갖지만 U는 뜻이 모호하다. 그리스어 eu, ou는 다 같이 ‘유’로 발음되는데, eu는 좋다라고 하는 뜻이며 ou는 아니라고 하는 뜻이라 e와 o를 빼고 그냥 ‘u-topia’라고 하면, 좋기는 좋은데 이 세상에 없는 곳이 된다고 한다. 즉 상상할 수는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도시가 유토피아인 셈이다. 그 책 속에는 유토피아를 그린 그림이 있다. 그림 속 유토피아는 위쪽에 그려진 육지로부터 떨어진 섬이어서 이곳을 가려면 배를 타고 하나의 입구에 도달해야 한다. 모든 출입을.. 더보기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소경들의 행진이 불안하다.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소경이 넘어지자 그를 믿고 따르던 소경도 앞으로 쓸리며 넘어지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소경들은 곧 자신이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눈치다. 다양한 표정의 얼굴에는 무지에서 오는 천진함까지 엿보인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실제 맹인의 처지는 더 이상 신의 기적을 증거하기 위한 상징적 존재가 아닌, 동정조차 받을 수 없는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그림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성서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마태복음 15장14절, 누가복음 6장39절). 이 말은 원래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우매함을 지적한 말에서 유래하는데, 지도자가 잘못되면 따르는 사람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 더보기
아직 여기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금 육체적으로 소멸해 가고 있다. 아무런 기력도 없이 그러나 또렷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숨이 거두어질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그가 머무는 방 안으로는 여전히 햇살이 일렁이고 마당의 나무는 싱그러우며 거실 안으로는 간간이 벌들이 찾아들어온다. 그는 아마도 이 시들지 않는 자연들 품으로 곧 돌아갈 것이다. 그의 감긴 눈과 파인 주름, 성긴 머리칼은 지켜보기에 고통스럽지만 희미한 생명의 상징으로서 한없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가 느리게 내뱉는 숨은 예순에 얻은 딸과 스물네 살 연하의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다. 그는 가족들에게 시간과 자연의 엄숙함에 대해 온몸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의 딸, 리디아 골드블라트는 이 모든 것들을 그저 조용히 목격한다... 더보기
유혹의 메타포, 세이렌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신화 속 존재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세이렌은 가장 유혹적이고 환상적인 존재다. 고대의 세이렌은 여인의 머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중세의 세이렌은 아름다운 여인의 몸에 물고기 꼬리를 한 좀 더 에로틱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신비한 바다생물체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다. 이것으로 남자들을 유혹했고, 유혹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런데 유혹당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으니, 오디세우스였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유혹당하고 싶어 했고, 유혹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바로 귀향길에 억류되었던 섬의 마녀 키르케가 알려준 비법 때문이었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의 섬을 지날 때 밀랍을 이.. 더보기
짧은 행복 영국자연사박물관은 매년 ‘올해의 생태사진가’ 상을 제정해 수상작을 전시한다. 지난 화요일 이 상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상식과 함께 전시도 막을 올렸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가 수여하는 대상은 생태사진가 마이클 닉 니콜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위해 세렝게티국립공원의 사자 무리를 2년 동안 추적 관찰했다. 사진 속 풍경은 자신들의 왕국에서 편안히 잠든 사자 떼처럼 보인다. 사자들이 널브러진 바위 둔덕 옆으로는 물 웅덩이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 뒤편 저 멀리 신의 축복처럼 늦은 햇살이 쏟아진다. 궁금한 것은 마치 거실 소파 위 고양이들처럼 사자 떼가 코앞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점이다. 닉과 촬영팀은 트럭에 몸을 숨긴 채 사자가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발치까지 .. 더보기
아스파라거스에 얽힌 화가와 컬렉터 그림 그 자체보다 그림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를 반추하는 일은 그림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오늘날처럼 예술가에 대한 에피소드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더욱더 그런 스토리가 그리워진다.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로 유명한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아스파라거스’에 얽힌 에피소드가 꼭 그렇다. 어느날 한 컬렉터가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 그림을 사갔다. 그런데 그 컬렉터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200프랑을 더 얹어주었다. 모두 깎으려고만 하는 세상에 그림이 좋다고 기분 좋게 웃돈을 더 얹어주다니, 참으로 드문 일이 일이 아닌가! 이럴 때 수집가는 예술가보다 한 수 위인 예술가가 된다. 그러자 마네는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만 있는 그림을 따로 그려 보내면서, “선생님이 사 가신 그림에서 한 줄기가.. 더보기
창세기 세바스티앙 살가두는 움직임이 굵직한 사진가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극한의 노동을 감행하는 ‘노동자’와 전쟁과 기아로 터전을 등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민’ 연작으로 인류에 관한 대서사시를 사진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웅장한 구도를 지닌 흑백 사진은 슬픔과 고통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시각적으로 빨려들게 하는 힘이 있다. 이로 인해 비극마저도 너무 아름답게 묘사하는 사진가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런 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10년 전쯤 처음 봤다. 당시 그는 인간의 삶의 조건을 넘어 이제는 자연의 위대함을 다루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삐딱한 마음 탓일까. 인간의 고통에서 시작해 자연의 숭고함으로 끝나는 것은 너무 기독교적인 발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필 새 .. 더보기
너무 닮아서 낯선 극사실 회화가 있듯이 극사실 조각이 있다. 마치 영국의 밀납박물관 ‘마담 투소’에 가면 볼 수 있는 유명스타들의 인형이 바로 극사실 조각에 해당한다. 그곳에 가면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클린턴에서 부시에 이르기까지 유명스타 인형들이 진짜처럼 우리를 반긴다. 어찌나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지 정말 기이하고 섬뜩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인형들을 예술작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예술적 맥락 안에 놓여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예술은 모방 혹은 재현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호주 태생의 론 뮤엑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형을 기막히게 잘 만들어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 사사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어린이 대상 TV와 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