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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상하이로 간 디즈니 보드리야르가 실재보다도 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세계로 디즈니랜드를 꼽은 지 오래다. 이미지의 시대에, 이 가상의 공원으로 들어가면 동화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직원들은 모두가 친절하고 어느 구석진 곳을 돌더라도 마치 나의 출현을 기다렸다는 듯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만화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곳은 깨어나기 싫은 꿈속 공간이다. 보드리야르는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이런 허구의 소비 사회인데도, 디즈니랜드로 인해 오히려 나머지 세상은 사실적이라고 믿게 된다고 꼬집는다. 이 가상 세계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중국 상하이에 상륙한 지 반년이 지났다. 700명의 디자이너가 설계하고 6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했다는 자랑에 힘입어 이미 560만명이 다녀갔다. 하루 평균 3만명의 방문.. 더보기
쿠델카의 집시 1968년 소련이 탱크를 몰고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진입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꿈꾸며 개혁을 펼치던 체코 지도자 둡체크의 노력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탱크에 맞서 싸웠지만, 그들 손에 들린 화염병과 돌멩이로는 역부족이었다. 당시의 절망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담은 이는 요세프 쿠델카였다. 그 스스로가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있다’라고 말했듯,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사진가의 사진은 위태로운 상황을 몹시도 시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가족을 향한 보복이 두려워 서방 세계에 그 사진들을 공개할 때, 체코 사진가라는 의미의 이니셜 CP를 써야 했을 만큼. 그해는 마침 그가 자신의 첫 대표작 ‘집시’를 전시로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전업 작가.. 더보기
무명 경제성장이 요동치는 중국에서도 길거리의 전광판이나 광고판 사용료는 비싸다. 영세한 사업자나 불법 자영업자에게는 당연히 그림의 떡. 대신 그들은 전봇대나 벽에다 낙서처럼 광고를 남긴다. 임대 안내는 얌전한 편이고 성매매나 무기 거래, 불법 시술처럼 은밀한 거래를 알리는 광고도 적지 않다. 당연히 공무원들은 이 광고를 지우는 데 혈안이다. 다만 어떻게 지울지에 대해서는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물걸레나 긁개를 사용해 말끔히 제거도 하지만, 그렇게 공들이면 품이 많이 드니 페인트로 아예 낙서를 덮어버리는 식이다. 정보는 사라졌지만, 벽 위에는 더 요란하게 흔적이 남는다. 채 지워지지 못한 전화번호와 몇몇 단어들이 페인트 아래에서 오히려 시선을 끌기도 한다. 벽 색깔과 맞추기 위해 흰색이나 회색을 주로 쓰.. 더보기
아트스쿨 프로젝트 박희자는 교환 학생으로 체코의 예술학교에 머물렀다. 또 다른 경험을 택해 떠나왔지만 적응은 쉽지 않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생기 넘치는 표면적인 관계를 거둬내고 나면 두렵고 무기력한 자신이 있다. 낯선 환경, 처음 접하는 수업은 그것들에 익숙해 보이는 학생들과 스스로를 더욱 구분 짓게 만든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것들은 도대체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예술이란 도대체 무얼까. 작업에 대한 부담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일상에서 예술을 둘러싼 현란한 수사나 비장한 결심은 덧없을 뿐이다. 그래서 박희자는 예술 자체가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미대의 작업실. 학교라는 공적 공간 안에 놓인 창작자들의 사적 공간의 경계는 예술만큼.. 더보기
탈 혹은 지하왕국 1991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의 사진 집단 땅당스 플루(Tendance Floue)는 프랑스어로 ‘흐릿한 경향’을 뜻한다. 흐릿하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의 불확실성일 수도 있고, 그 세계를 담아낸 자신들의 사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망설임은 세상의 이면과 사진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서 오히려 진솔하다. 그런 땅당스 플루 사진가들이 한국을 드나들며 촬영한 작업을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서구 사진가들이 바라본 한국에서는 당연히 분단과 샤머니즘과 음주와 성형 등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사진가 12명은 자기만의 변주와 해석을 가미해 소재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있다. 알랭 빌롬이 한국에 왔을 때는 메르스가 빠르게 번지던 시기였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의 .. 더보기
좀녜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오로지 맨몸으로 바닷속을 터전 삼는 흔치 않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문화재가 그렇듯 무형의 문화유산들은 경이롭되 현실에서는 점점 시들해져 간다. 실제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많은 문화들이 사라질 위기에 있어 유네스코는 보존이 필요한 문화들의 목록을 별도로 관리할 정도다. 유네스코의 이번 지정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해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면서도 혹시 화석화될지 모를 그네들의 미래를 보는 듯해서 두려운 건 이 때문이다. 다행히 김흥구의 ‘좀녜’는 이런 조급함과 불안감을 조금은 누그러뜨려 준다. 좀녜는 해녀의 제주도 방언인데, 최근 갤러리 류가헌에서 김흥구의 좀녜에 관한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만들고 전시.. 더보기
K76-3613 포토저널리스트 아녜스 데르비. 프랑스 작은 도시에서 양부모의 외동딸이자 그 동네의 유일한 동양 아이로 자랐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녀가 한국에서 자신의 생모를 찾아나선 건 3년 전. 출생의 비밀을 아는 일이 생모와 자신에게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으나 과연 한국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을 수나 있을는지도 미지수였다.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가 자신의 입양 서류를 뒤지는 한편, 여러 가지 사연으로 자식을 입양시킨 채 평생 부채감에 시달려온 어머니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 분주함 사이로, 문득 거리에서 엄마와 아이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눈에 밟혔고, 과거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딛고 훌쩍 발전해 버린 한국의 풍경이 낯설어지기도 했다. 발길을 멈추게 한 그 순간들 또한 즐겨 쓰는 낡은 롤라이 필름 카메라에 담겼.. 더보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모텔이 복합적인 인상을 풍긴 지 오래다. 호텔보다는 저렴하지만, 여관보다는 촌스럽지 않은 곳. 여기에 세심하게 준비한 성인 용품과 주차장 가림막에 힘입어 모텔이라는 말 앞에는 늘 ‘러브’가 생략된 것처럼 여겨졌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모텔 밖에서는 동침이 불가능한 이들이 찾아오는 욕망의 해방구 혹은 사랑의 도피처. 요즘에는 모텔도 진화해서 혼텔족이 찾는다거나 친구들끼리의 파티가 가능한 이색 공간이라는 수식도 따라붙는다. 이렇든 저렇든 모텔은 넓지만 정작 내가 소유한 공간은 없는 갈 곳 없는 대도시에서 사생활이 보장된 하룻밤짜리 사적 공간인 셈이다. 이색 모텔 문화는 대만도 예외가 아니다. 수첸첸은 체크아웃이 끝난 직후의 모텔 방을 수년 동안 기록했다. 대부분은 방값이 꽤 비싼 러브 모텔이다. 숙박업체의 투.. 더보기
북극곰 프로젝트 수컷 북극곰의 평균 몸무게는 500킬로그램. 그 육중한 몸으로 빙하 위를 헤엄치듯 가볍게 달려 물범을 포획하는 지구상 최강의 포식자다. 영하 40도 극한의 온도에서 번식이 가능한 유일한 육식 동물을 야생에서 눈앞에 마주한다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에 가깝다. 동물원에서 북극곰이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건 아마도 이 역설 때문일 것이다. 가장 두려운 대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호기심. 동물원의 격리 시설이 북극곰의 공격성을 차단하는 순간, 관람객들에게 이 포식자는 한없이 순하고 느긋한 지구상 최고의 귀염둥이로 둔갑한다. 사진가 로성원은 유럽과 중국의 동물원과 수족관 25곳을 찾아 북극곰이 인공적으로 서식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모순에 집중했다. 동물원은 갇힌 북극곰에.. 더보기
공기와 사진 문화예술가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캠핑촌을 운영하고 있다. 캠핑촌 입주 작가로 변해 연일 노숙을 하고 있는 사진가 노순택이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렸다. 신영복 선생의 제자인 보리 이상필 선생이 문화촌으로 변한 그곳에 참여했다가 써준 붓글씨. 사진이 일상이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분단과 공기와 사진을 동일선상에 놓고 나니 그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공기야 없으면 살 수가 없고, 분단이야 사라져야만 더 잘 살 수 있으나 사진의 역할은 그 간극 사이에서 과연 뭘까. 공기가 돼버린 분단처럼 실체는 있으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든 가시화시켜내는 게 사진의 몫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에는 가장 쓰임이 많은 표현 매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사진은 권력.. 더보기
놓다, 보다 매일 다녀서 발길이 빠삭한 숲에서도 예기치 않은 일들은 일어난다. 인적이 없어 나만의 숲 같지만, 누군가에게도 그곳은 비밀의 화원일 터. 다음날 와보면 그사이에 다녀간 이들이 내려놓고 간 흔적들을 자양분 삼아 숲은 한 움큼 더 웃자라 있다. 어느 날엔가 그 숲 나뭇가지에 빨강 넥타이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진녹색을 배경으로 매달린 빨강 천, 제멋대로 자라는 식물과 격식의 상징인 타이, 양복 차림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등장과 실종.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물 하나가 더해지자 숲은 수많은 이야기의 단서를 제공하는 무대로 돌변했다. 그때부터였다. 김지연이 무언가를 숲에다 놓은 것은. 그러고는 찬찬히 그것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행위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어머니에 관한 유.. 더보기
꿀잠 잠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잠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하고 평등하다. 그것은 죽음 다음으로 생명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완전한 멈춤의 순간이다. 다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 필수적인 몸과 마음의 정지 상태. 생을 이어간다는 의미의 생계는 달리 말하면 밥과 잠을 챙기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생계가 망가진 이들에게 잠잘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질 리가 없다. 쪽잠이나 한뎃잠은 가능할지 몰라도 편한 잠은 사치에 가깝다. 64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은 늘 이 생계의 위험에 시달린다. 그들이 요구하는 고용의 안정은 복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삶의 조건으로서 밥과 잠인 셈이다. 2009년 용산 참사 때 시작한 후로, 사진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 온 ‘빛에 빚지다-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의 201.. 더보기
사이드 B 이민지가 아르바이트를 간 곳은 토익 시험장이었다. 전공을 바꿔 사진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고, 딱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눌 수 없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길목에서 그도 일자리가 필요했다. 시험장으로 쓰인 어느 교실, 수험표에 알알이 박힌 증명사진들은 마치 취업 원서까지를 겨냥한 듯 반듯했다. 검은색 정장에 깔끔한 머리 모양은 개성 없이 복제된 청춘들 같았다. 토익이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능력을 점수화시키는 방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험에 몰두하는 얼굴들은 증명사진보다는 훨씬 다채로웠다. 그 순간 자신을 포함해 그 공간에 있는 수험생과, 또 그들과 엇비슷한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작업 제목은 ‘사이드 B’. B급 인생, 중심이 아닌 변방으로서의 ‘Beside’ 등 알파벳 B로 시.. 더보기
떠도는 나날들 바슐라르가 말했다. 집은 인간 존재 최초의 세계라고.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집이 온전치 않으면 인간의 존재가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승훈도 그랬다. 어쩌다 보니 서울에 살면서 유년 시절을 포함, 18번의 이사를 겪었다. 자발적인 이주가 아니라 떠밀리는 표류에 가까웠기에 그는 ‘겪었다’는 표현에 방점을 찍는다. 우연히 살던 동네에 들렀다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곳에서 향수를 넘어 일종의 당혹감을 느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서울에서 재개발의 바람조차 비껴간다는 것은 무능력과 소외의 다른 표현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동네는 그대로여도, 그곳 낡아가는 건물에는 사람들이 들고나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곳을 나와서는 새집으로 옮겨가는 데 성공했을까. 이승훈이 18곳의 좌표를 찍어 보니.. 더보기
키스 이 장면은 낯익고도 낯설다. 서양 미술의 오랜 전통 속, 사랑에 빠진 두 남자의 한순간인가 싶다가도 쉽게 들어설 수 없는 누군가의 집, 비밀스러운 일상을 목격하는 듯한 주춤거림을 갖게 한다. 사진의 흐릿하고 부드러운 입자는 몽환적이고도 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쩌면 본디 사랑이란 이 흐릿함만큼이나 유약하고, 그래서 더욱 갈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벽에 걸린 그림 속 여인은 고통이자 기쁨인 사랑의 모순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연인끼리의 입맞춤을 애잔한 연민의 시선으로 지켜볼 뿐이다. 그 순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섞이고, 사랑을 둘러싼 통속적인 금기도 허물어져 내린다. 김미현은 1985년부터 파리에 살고 있는 사진가다. 정물부터 풍경, 다큐멘터리까지 그녀의 사진들은 부드러운데도 묘하게 .. 더보기
이것은 옷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옷이 아니다. 옷은 모든 입체감을 상실한 채 스스로 배경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면 배경이 옷을 집어삼켜 스스로 옷이 되려는 매트리스적 찰나라고 해야 할까. 옷의 환영 혹은 옷의 변장은 이 옷을 걸쳤을 누군가의 존재감을 옅게 만든다.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서의 옷은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채 도판처럼 나열될 뿐이다. 시각 놀이와도 같은 이 착시를 위해 양호상은 1950~1980년대의 옷 천 벌을 수집했다. 복고풍을 택한 건 유행 또한 시대가 요구한 소비의 방식이었음을 드러내고 싶었던 탓이다. 개성은 때로 유행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인정받는다. 작가는 촬영한 옷의 배경을 지우고, 대신 옷의 패턴을 복사해.. 더보기
오 캐나다 행동파 사진가 나오미 해리스. 16년 동안 캐나다를 떠나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럴수록 캐나다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깊어져 갔다. 그것은 진지한 조국애라든지 어두운 자국의 역사를 파헤치려는 냉소적 책임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만약 책임감이 있었다면, 미국의 다양한 문화적 단면을 기록하는 떠돌이 사진가로서 한번쯤은 자신의 나라를 순례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촬영기는 이베이에서 구입한 중고차의 미터기가 드넓은 캐나다 땅을 4번 횡단한 만큼의 숫자를 기록했을 때에야 끝이 났다. 얼핏 보기에 대장정의 결과물은 흥미로운 여행 과정만큼이나 경쾌하다. 가죽 재킷과 터번 차림의 시크교도 모터사이클 클럽부터 얼음 여왕으로 선발된 긴 망토 옷의 백인 할머니까지 아무.. 더보기
기호 1번 선거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책 싸움이 맞긴 한 것일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미국 대선의 전개 과정은 선거의 당락이 사회 교과서의 가르침처럼 순진하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대권가도를 향한 파렴치한 권력의 움직임을 다룬 영화 만 봐도 선거는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두뇌 싸움이자 심리전이다. 그 전쟁의 가장 표면에서는 2 대 8의 가르마와 파란색 넥타이로 상징되는 이미지 메이킹과 홍보 전략이 작동한다. 최대한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모습으로 비치기 위해 후보들은 머리 모양과 옷 색깔은 물론이고 미소 짓는 입의 크기까지 신중을 기해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이제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었다면, 유권자들의 눈에 가장 효과적으로 많이 띄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고도.. 더보기
TV가 나를 본다 오늘도 텔레비전이 눈을 유혹한다. 솔직히 딱히 뭘 보려고 한 건 아니지만 텔레비전에서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튀어나와 내 눈을 꼬셔주면 좋겠다.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널브러질 수 있을 텐데. 그 생각 없는 순간을 비집고 고민거리도 잠시 들어왔다 나가며 정리가 되고, 무작정 바라보던 화면이 점점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워져서 몰입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 그사이 앉아 있던 내 몸은 점점 무너져 내려 마침내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과 잠 사이를 오락가락할지도 모른다. 만약 텔레비전에 눈이 달려 그런 나를 바라본다면, 텔레비전은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따분하다고 생각할까. 대략 지구 인구의 60% 정도가 텔레비전을 본다 하니 전 세계 40억명은 그런 내 모습과 얼마만큼 닮아 있을까. 프랑.. 더보기
도쿄 앵무새 감각적인 색감과 구도로 짧은 시간 빠르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젊은 사진가 미즈타니 요시노리. 그가 처음 도쿄에 살기 시작했을 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대도시의 문화나 사람이 아니라 앵무새였다. 빨강 주둥이에 연두색 몸을 한 앵무새 떼가 집 앞 나무와 전깃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앵무새가 머무는 하늘만 본다면 그곳은 도쿄가 아니라 히치콕 영화 속의 장면이거나 열대 지방이어야만 했다. 이 새들이 풍기는 야릇한 분위기에 홀려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기를 1년, 은행잎의 빛깔이 녹색에서 노랑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포착한 것은 물론 그는 앵무새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비밀도 알아냈다. 저녁이면 다 같이 둥지로 날아와 밤을 보낸 뒤, 아침이면 무리를 나눠 움직이는 이 앵무새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