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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2. 화가들 상인을 겸하다-최초의 화상은 화가 2. 화가들 상인을 겸하다-최초의 화상은 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1475~1564)가 시스틴 성당에서 천지창조를 그리는 과정을 그린 영화 (The Agony and the Ecstasy, 1965)을 보면 그림을 주문한 율리우스 2세와 다투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다툼의 원인은 돈 때문이었다. 작업에 필요한 대금을 계약대로 주지 않고 지급일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인문학이 절정에 이르고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과 후원이 가장 융성했던 르네상스 기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화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다음 소장가나 컬렉터를 찾는 대신 당시의 화가들은 주.. 더보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해발 1000미터의 산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고 치자. 누군가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결과는 0이군"이라고 말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올라갔다 내려오느라 힘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선물을 싸들고 누군가에게 갔다고 치자.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이 극구 사양하면서 "마음만 받겠다"라고 딱 잘라 말해서 할 수 없이 그냥 들고 왔다. 이번에도 결과는 0인가? 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산에 올라갔다 온 것에 비해 별로 땀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탈리아 작가 지아니 모티(Gianni Motti)의 작품 에도 비슷한 종류의 아리송함이 있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단순하다.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 더보기
어떻게 '아닌 것'이 '아닌 것이 아닌 것'이 되는가 얼마전 막을 내린 광주 비엔날레. 막시밀리아노 지오니라는 스타 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아서 맥락 풍부한 세련된 전시를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서구 미술계의 이른바 '핫한' 스타 작가들이 꽤 참여해서 관심을 끌었는데, 기획자로도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올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서른 네 살의 나이로 대대적인 개인전을 연 독일 작가(정확히 말하면 인도-독일 작가) 티노 세갈(Tino Sehgal)도 그런 작가들이다. 이 두 작가를 특별히 묶어서 거론하는 건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두 작가의 작품이 같은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산전수전 다 겪은 관객들도 당황시킨 상당히 묘한 매치였다. 우선 이것. 텅 빈 바닥에 티셔츠.. 더보기
빈 공간은 비어있지 않다 경복궁역 근처 원서동에 있는 공간화랑 건물은 붉은 벽돌색 외장재가 멋들어진 곳이다. 이곳이 특이한 것은 내부벽도 붉은 벽돌로 마감돼 있다는 것. 넓지는 않지만 들어서는 순간 운치가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곳에 작품을 설치하는 건 흰 벽의 보통 갤러리보다 훨씬 더 까다롭지만, 성공할 경우 아우라도 더 상승한다. 이곳에는 중견 조각가들의 좋은 개인전들이 많이 개최된다. 올 봄에 열렸던 김기철의 역시 그 중 하나다. 어둑하게 조명이 밝혀진 갤러리에 들어서면 단촐한 비주얼이 펼쳐진다. 정면 깊숙한 곳에 놓여 있는 둥근 원통, 그리고 벽에 걸린 두 개의 직육면체 상자 같은 것들. 나무색의 원통과 직육면체 상자 표면에는 작은 검은색의 사각형과 원형이 보인다. 하지만 그 외에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볼거리는.. 더보기
덕수궁 중명전-그날 중명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중명전. 덕수궁에 속해있는 궁궐 건물이다. 한자 명자는 날일(日)이 아니라 눈 목(目)자를 썼다. 더 밝게 보겠다는 의지가 들어간 이름이라고 한다. 길고긴 복원의 시간이 끝나고 중명전이 문을 열였다. 유난히 무덥던 올해 여름이 채 가시기도 전인 8월 말의 일이었다. 나는 중명전이 문을 열기를 꽤 고대했던 사람이다. 를 쓸 때 꼭 보여주고픈 건물이었건만,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라 먼 발치에서 사진만 찍었던 그 건물. 중명전. 중명전은 대한제국 시기의 중요한 역사를 목격한 장소다. 1899년 왕실 도서관으로 문을 연 중명전은, 1904년 원인 모를 화재가 나서 덕수궁의 전각 대부분을 태웠을 때부터 정치 무대의 중심에 섰다. 온통 서양식으로 꾸며진 중명전에서 외교관을 맞아들이며 임금과 그의 측근들은 나라의 앞날.. 더보기
백남준이 바이올린을 부순 까닭은? 백남준 하면 흔히 미술관이나 대기업 로비에 설치돼 있는 비디오 설치작품을 떠올린다. 여러 대의 모니터가 쌓여 있고 스타카토 같은 영상이 번쩍거리는 그런 작품들 말이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들도 백남준의 이름은 알고, '백남준 스타일'이 이렇다는 건 안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돌아서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백남준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 유명한 미술가라는 건 알겠는데 작품이 그냥 쉬워 보이고 어떤 점이 대단한지 모르겠다는 거다. "당신이 미술을 모르니까 그렇지!"라고 일축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일단, 업계 비밀(?)을 좀 누설하자면, 실제로 백남준 작품 치고는 범작인 것들이 있다. 어디 있는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런게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미켈란젤로나.. 더보기
no limit - prologue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도무지 외우기도 힘들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다. 얼마전까지 나도 '아칫파퐁'이라고 알고 있었을 정도. 이 난해한 이름이 얼마전부터 심심찮게 잡지나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등을 만든 태국 영화감독 이름이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졌고 얼마전 한국을 방문해서 일간지 인터뷰 기사까지 났다. 정성일씨 같은 영화평론가들 입에나 오르내릴 정도로 극소수 애호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아트영화 감독이 이 정도면 인기인이 되었다고 할만 하다. 거기다 태국에 대한 이미지까지 바꿨다. 태국 영화라면 같은 액션물이나 같은 공포물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낯선 나라였던 태국이 갑자기 이 감독 덕분에 가까이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정작 본인은 이런 .. 더보기
1. 들어가며-화가와 화상, 그 애증의 관계 1. 들어가며-화가와 화상, 그 애증의 관계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화가들과 사조들이 명멸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름이 붙어있는 많은 화가들과 사조들이 미술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미술사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미술가 무리를 넘어선 자들만 우선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우리 곁에 남았을 뿐이다.고흐가 생전에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던 시절, 당시 사람들은 그림을 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고흐의 동생 테오가 형의 작품을 단돈 100프랑에 팔던 시절 같은 화랑에서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드 뇌빌(Alfred de Neuville, 1852~1941)의 그림은 15만 프랑에 팔렸다. 화가들의 경제적, 세속적 성공은 그가 살아있.. 더보기
일타홍의 노래를 들어라 -인천 아트 플랫폼에서 근대 가요를 듣다 “오빠는 풍각쟁이야~”라는 노래가 있다. 여가수의 새침한 목소리 속에 앙탈과 애교가 가득 묻어있다. 가사를 보면 이렇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잉 난 몰라잉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이면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시려잉, 난 시려잉 내 편지 남 몰래 보는 것 난 시려 양취자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 때면 엄벙띵허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뭐 오빠는 모주꾼이야 뭐 난 몰라잉 난 몰라잉 밤 늦게 술취해 오는 것 난 시려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 더보기
글쓰는 이에 대한 짧은 소개 최예선(1974~) 작가. 카피라이터, 에디터. 신문방송학과를 1997년에 졸업하고 1999년부터 건축전문지 와 문화교양지 등 잡지사 에디터로 일했다. 2003년 프랑스로 건너가 리옹 제2대학 미술사학과를 마쳤다. 유학 시절, 유럽 도처의 문화재와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옛 풍경 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기억을 더듬으며 지금도 우리의 옛 풍경을 찾아 불쑥 길을 떠나곤 한다. 연남동의 작은 작업실에서 미술, 건축, 여행, 문화 등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작업실의 이름은 '달콤한 작업실'. 홍차를 마시며 근대 문화 유산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장소다. 지은 책으로 가 있다. e-mail: lena_choi@naver.com blog: 마담고치와 무슈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