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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태권도, 내 손과 발로 길을 만들다 마음과 몸의 단련은 하나다. 마음의 수양은 몸의 단련으로 완성된다. 학수고대하던 태권도 수련을 시작했다. 태권도 사범께서 태권도는 발을 움직이는 ‘태(跆)’와 손을 움직이는 ‘권(拳)’으로 길(道)을 연다는 의미라고 했다. 내 손과 발로 길을 연다는 삶의 태도에 도복을 여며본다. 태권도는 개인의 심신단련뿐만 아니라 문화로서 무예(武藝)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무예의 기본은 예의다. 상대방과 정정당당하게 대결하고, 승패에 관계없이 예를 갖추는 삶의 기본을 몸에 익혀본다.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어린 시절 보던 애니메이션 (1977) 덕분이다. 파란해골 13호가 세계 핵물리학자 회의가 열리는 수중공원을 공격하고, 장박사를 납치해 지구의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민다. 태권동자 마루치와 아라치가 파란해골 13호와.. 더보기
낙산돌 대학로와 동대문 일대에 걸쳐 있는 낙산은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전망이 좋다는 건 수고롭게 올라야 할 만큼 높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공원으로도 조성해 등반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어쨌거나 본래 이름은 낙타 모양을 한 ‘산’이다. 그러니 도성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우뚝 솟아 있던 서울의 지리적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변상환은 어느 날 이 낙산 아래 창신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창신동 주민이 되기 전부터도 돌과 친한 작가였다. 그는 우리의 시각 정보에 대한 유쾌한 반전을 꾀하는데 예를 들면 붕어빵이나 고무장갑, 소주잔 같은 익숙한 사물을 시멘트로 굳혀 화석처럼 만드는 식이다. 그에게 연약하고 부식될 것 같은 일상의 물건을 시멘트로 굳힌다는 것은 단단하고 강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과정이.. 더보기
국제감각과 문화영토 국제감각이란 세상을 보는 관점이자 힘이다. 나와 관련된 세상이다. 문화인식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문화영토다. 세계인식으로 힘의 균형을 잡고, 문화인식으로 감성의 조화를 기른다. 세계지도는 지리지인 동시에 세계인식을 반영한다. 우리나라가 그려낸 세계지도로 무엇이 있을까? 1402년 조선의 태종은 조선건국 3년차에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이 지도는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에서도 그 중요성이 주목받는다. 이탈리아의 콜럼버스가 아시아의 인도로 가기 위해 탐험을 떠난 것이 1492년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얼마나 일찍 제작된 세계지도인가를 알 수 있다. 15세기 초 조선,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아프리카대륙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아쉽게도 원본은.. 더보기
동굴 금값이 비싸다. 김익현은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방송을 통해 이 반짝이는 금붙이를 처음 보았다. 나랏빚을 갚겠다고 장롱 속 돌 반지를 꺼내들고 긴 행렬을 이룬 모습은 진풍경이기는 했다. 당시 이 금 모으기를 둘러싼 의견은 분분했는데, 이웃이든 나라든 어려움에 처하면 황금도 기꺼이 내놓는 특유의 미덕이라든지, 나라가 잘못한 살림을 백성이 해결하게 만드는 대국민 이벤트라는 식이었다. 도대체 금이 무엇이기에 빚더미에 빠진 나라마저도 구하는 것일까. 금 모으기 방송을 보고 자란 김익현이 훗날 사진가가 되어 이 반짝이는 것을 향한 욕망의 뿌리를 찾다 도달한 곳은 금은방이 아니라 금을 채굴하던 광산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금광이 많았다. 우리 시대에 금 모으기 열풍이 있었다면 일제강점기는 금광 개발에 미친 시대.. 더보기
멀리서 오는 친구를 가졌는가? 우정을 생각한다. 한 서류에 친한 친구 두 명을 쓰는 칸이 있었다. 누구를 쓸까?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과 늘 변함없이 지지해주는 대학선배의 이름을 썼다. 잠시 나는 그들에게 좋은 친구일까라고 아득한 심연에 빠졌다. 논어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감정으로 시작한다. 공부의 기쁨, 우정의 즐거움, 인정받지 못한 노여움이다. 공자는 배우면 기쁘고,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라고 했다. 기쁨은 나로부터, 즐거움은 우정에서, 노여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우정은 소리를 넘어선 울림이다. 통일신라의 최치원은 선승 무염(無染)을 위해 비문을 썼다. 그는 무염을 회상하며 도연명이 즐겨 말한 ‘줄 없는 거문고’라는 ‘무현의 금’을 인.. 더보기
수건 이 낡은 넉 장의 수건 앞에서 느끼는 숙연함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러 번 빨아서 두께는 얇아졌고, 빨수록 물때가 진해져서 더 이상 깨끗해질 기미란 없어 보이는 초라한 면 헝겊. 그런데도 그것은 몸을 바짝 말린 채, 단아하게 각을 잡고 있다. 애초 내세울 자존심이랄 것도 딱히 없었다는 듯 서로에게 의지해 포개져 있는 모습은 오히려 저마다의 존재감마저 돋보이게 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사물 앞에서 피부가 얇아진 노년의 육신을 느끼거나 그 육신이 거쳐온 시간 따위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까. 수수하면서도 까닭 모르게 눈에 밟히는 이런 사진들을 얻기 위해 김수강은 오랫동안 복잡한 프린트 기법을 고수해왔다. 검프린트라 불리는 이 기법은 판화지 위에 조색한 안료를 바르고 필름에 빛을 쪼인 뒤 물 속.. 더보기
행운감수성 운명은 친절할까? 삶의 순간마다 천사들이 나를 돕고 있다. 소소한 행운들을 잘 알아차리는 감성이 행운감수성이다. 금방 도착하는 지하철, 때마침 맑은 날씨,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올 때, 별것 아닌 일들이 사실은 모두 행운이다.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인 삶을 붉게 물들인다. 행운감수성은 작디작은 일마저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점점 운이 좋아지는 특이한 작동원리로 움직인다. 행운감수성은 평범한 나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내 삶에 배경음악을 틀 것인가는 내 몫이다. 불교에서 음악을 관장하는 신인 건달바(Gandhava)는 향을 먹고 살며 할랑할랑하게 나타난다. 천상과 지상의 사이에서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음악을 들려줄 때, 아름다움의 행운을 알아채는 것이 감성이다. 백제 용봉향로에서 음악으로.. 더보기
싸움 연필 공장을 개조했으나 여전히 창고나 다름없는 건물에서 재수를 하던 늦봄, 친구가 찾아왔다.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친구는 말수 없던 평소와 달리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날 친구는 대화의 절반을 소개팅이 아니라 강경대의 죽음과 그 뒤 이어진 대규모 규탄 집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웠다. 말 속에서 최루탄 냄새가 풍겼다. 친구가 다녀간 뒤로 운동권의 거듭된 분신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신입생이 되어 마주한 대학가에는 단순히 시위만 있지 않았다. 대동제는 1987년 민주화 정신 계승이라는 말로 긴장감이 넘쳤으나 동시에 패배주의와 X세대라는 말도 등장했다. 운동을 하던 선배들이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일도 더는 낯설지 않았다. 신념에 찬 운동권의 등장으로 시작해 애매한 남편 찾기로 막을 내린 은 우리가.. 더보기
지옥과 이슬 한 모금의 이슬이 소중한 까닭은 삶이 지옥이 아닌 적이 없어서다. 사람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유한한 생명체다. 삶은 생명의 기쁨인 동시에 사멸의 고통이다. 고통이 강할수록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상향을 갈망한다. 감로도(甘露圖)는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하려는 강렬한 자식의 마음이다. 목련존자가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구원의 방법을 물은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엄격한 유교사회 조선에서도 감로도와 같은 불교회화가 허용된 것은 이런 효심 때문일까. 구원의 태도란 어머니를 구하는 마음으로 대중의 고통을 구원한다는 뜻이 숨어있으리라. 18세기에 그려진 감로도는 중앙에 커다란 아귀가 있고, 하단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단에는 구원자가 등장한다. 왜 이렇게 아귀를.. 더보기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마음을 합쳐서 같이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지혜가 한국미학이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이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회복탄력성이란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다시 일어나는 힘이다. 심지어 사람은 고난을 겪고 나서 마음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생존과 진화의 원동력이다. 조선 후기 임희지(林熙之·1765~?)의 난초 그림을 본다. 그는 조선 말 중인 출신으로 중국어 번역을 담당하는 한역관이었다. 그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높은 관직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깨끗한 풍모를 지녔다고 지인에게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서울의 중인들과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의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 동아리인 송석원시사에 참가했다. 그의 행복은 벗들과 함께 나.. 더보기
세련된 사람 20년은 묵은 앨범에서 나온 듯한 뿌연 색의 이 사진. 에이라인 스커트에 꽃무늬 스카프, 실내에서도 착실히 고수한 선글라스까지 나름 멋을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 작품 앞에서 기념으로 취한 포즈까지를 포함해 한때 우리는 이런 사진을 얻기 위해 꽤나 노력했다. 한껏 챙겨 입고 나서는 미술관 나들이는 얼마나 모던한 도시의 일상인가. 이런 날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 한 방은 남겨야 도시인의 도리를 지키는 법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진에 찍힌 날짜가 최근이다. 유통 기한이 한참 지난 것만 같은 이 사진은 사실 최근에 생산되었다. 예전에는 날짜가 찍히는 사진기야말로 신식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촌스럽다는 인상을 풍긴다. 발품을 팔아 구한 옛날 옷들로 치장한 채 스스로가 사진 속 모델이 된 전은정은 일부.. 더보기
신나는 모험 삶에서 몇 번이나 모험을 할까. 지금은 고독의 성찰보다 생존의 야성을 되살릴 때다. 강렬한 야성의 활력소는 호기심과 모험심이다. 때로는 역경에 부딪혀 살아남고자 하는 절박함은 생명의지를 선사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모험을 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이라기보다 수직상승을 향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트리나 폴러스·시공사)이라는 책에서 위로만 오르려면 욕망은 결국 지금을 잃어버린다고 경고한다. 신나는 모험은 수직상승보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탐험의 삶이다. 신라 5세기 무덤에서 봉황 머리 모양 유리병과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누가 가지고 왔을까? 유리병 모양은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불리는 그리스 로마의 병과 형태가 같다. 소담하게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 더보기
여기 그리고 저 멀리 매년 11월 둘째주 파리에서 열리는 파리포토는 사진을 거래하는 최대의 아트마켓이다. 예술은 돈과 거리를 둘 것처럼 고상해 보이지만, 사실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상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파리포토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화려하다. 근사한 장소, 감각적으로 꾸며 놓은 간이 전시 부스, 개성 넘치는 사람, 갖고 싶은 작품들. 이 틈에 섞이는 순간 예술이면서도 상품이려고 하는 사진의 이중성으로 인해 마음은 몹시 복잡해진다. 특히나 그런 모순 속에 기대어 사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고상한 분위기 속에서도 불현듯 피로감이 인다. 펜티 사말라티의 사진을 처음 접한 건 수년 전 파리포토의 그 혼돈스러움 속에서였다. 세련된 액자로 장식한 대형 프린트 사이에서 그의 아날로그 사진은 유행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 더보기
[선승혜의 그림 친구]디지털세대의 감성 혁명 21세기는 디지털 적응 여부로 세대가 나뉜다. 영화의전당 LED 공모전과 광복 70년 대한민국미술축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디지털아트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김성필(홍익대 3학년)에게 4가지를 묻고 배운다. -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언제 아름다움을 느낍니까? “디지털 매체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그리움-그리고 그 그리움에서 파생되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당장은 만질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때 제 작업에 물성을 부여해 현실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움이 제가 상정한 하나의 유토피아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제 작업이 데이터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재미가 있어요.” - 디지털 세계에서 감정은 어떻습니까? “감정은.. 더보기
안목의 쪽지 추운 날 뜻밖의 소포가 도착했다. 갖고 싶던 필립 퍼키스의 사진집. 미국 사진가 필립 퍼키스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무렇지 않은 대상을 그가 아무렇지 않게 툭 찍는 순간, 눈길을 거둘 수 없는 끌림의 장면이 탄생한다. 여기에 시어에 가까운 그의 글까지 보태지면, 한 장의 사진은 한없이 편안하면서도 무한대로 빨려 들어가는 사유의 장으로 변한다. 그의 사진집을 낸 ‘안목’은 사진가 박태희가 꾸려나가는 1인 출판사다. 그는 유학 시절 필립 퍼키스에게 사진을 배웠다. 이제 둘은 사제지간을 넘어 서로 같은 길을 걷는 사진가로서 우정과 교감을 나누는 사이다. 전시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필립 퍼키스의 매력을 전하는 이 정갈한 책에 예사롭지 않은 쪽지가 딸려 있다. 쪽지가 들려주는, 증정본을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 더보기
왜 얼굴에 집중할까? 얼굴은 얼이 담긴 틀이다. SNS에 수많은 셀카 사진들이 올라온다. 예쁜 얼굴사진을 올릴수록 무수한 ‘좋아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얼굴을 보는 것은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조차 얼굴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초상화의 마력 같은 힘은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사람의 내면을 전달하고 그려서 비춰내는 데에서 나온다. 얼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다. 얼굴 표정은 상대방과 관계맺기에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외로워요’로 보이면 보호본능을, ‘즐거워요’로 보이면 웃음을, ‘화났어요’라고 보이면 두려움을 느낀다. 얼굴에서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전달받아서, 내 마음이 반응에 들어간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지 않고, 예쁜 얼굴.. 더보기
밀착 사진에서 밀착은 확대기를 쓰지 않고, 인화지 위에 필름을 그대로 얹어 얻어낸 프린트를 말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36컷짜리 필름 한 통을 한 장의 프린트로 보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 모니터가 달려있지 않은 필름 카메라의 특성상 밀착은 촬영한 결과물을 처음 육안으로 확인하는 떨리는 순간을 선물했다. 비용과 시간 절감을 위해서도 밀착은 필수였는데, 사진가가 하루에 36컷짜리 필름 10통씩을 찍으며 한 달 동안 여행을 했을 경우 모든 사진을 제대로 인화해서 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밀착은 초점과 노출은 적당했는지 등의 기본적인 상태 점검에서부터 과연 어떤 사진을 골라 남들 앞에 내놓을지를 결정하는 사진 선정의 필수 단계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다수의 대표작들은 그 전후에 찍힌 수많은.. 더보기
[선승혜의 그림 친구]“꿈을 선물하다”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선물은 꿈이다. 겹겹이 쌓인 마음 깊은 곳의 꿈을 심어두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선물이 있을까? 막상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당황스럽다. 행복이라는 모호함으로 대답한다. 과연 이루고 싶은 꿈이 행복인가? 상상의 꿈이 있다. 백제 무령왕(462~523) 무덤의 출토품은 대부분 왕비를 위한 물건들이다. 왕이 그녀에게 보내는 선물들이다. 무령왕의 팔베개와 같이 그녀를 보듬어준 무령왕비의 베개를 본다. 왕비의 베개는 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주칠을 했다. 금을 가늘게 잘라 붙여서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시키는 육각형으로 구획을 나누었다. 그 안에 해, 달, 봉황, 용 등 갖가지 모티프로 세상을 그려 넣었다. 죽음 뒤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긴 여정을 위해 꿈을 선물한 것이다. 베개 좌우에는 두 마.. 더보기
Yes We Cam 감시와 통제 수단으로서의 사진의 역할은 사진의 발명과 함께 예고된 숙명이었다. 사진 발명 직후인 1840년대 이미 파리 경시청의 알퐁소 베르티옹은 범죄인의 식별과 유형학적 분류를 위해 정면과 측면 얼굴을 촬영하는 ‘머그샷’을 고안했다. 1871년의 파리코뮌은 남북전쟁과 함께 사진이 본격적 기록 대상으로 삼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사진으로 인해 수많은 참가자들이 잡혀간 채증 사건의 원조로 꼽히기도 한다. 파리68혁명 당시에는, 시위대가 구타를 당하는 사진이 ‘파리마치’ 표지에 실리자 경찰은 사진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이 채증 목적으로 사용되자 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억울한 목소리들이 광장에서 쉼없이 퍼지는 요즘, 이 감시의 시선들은 훨씬 견고해졌다. 경찰은 아예 채증팀.. 더보기
[사진 속으로]108인의 초상 처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접한 건 1995년에 개봉한 변영주 감독의 영화 를 통해서였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실명으로 희생자임을 밝힌 이래 위안부의 실상에 대한 낮은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던 무렵이었다. 피해자였음에도 마치 죄인인 것 마냥 조용히 웅얼거릴 수밖에 없던 할머니들의 사연은 낮은 소리이니 오히려 더 주의 깊게 들어달라는 묵직한 요청 같았다. 정말 그랬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로 인생이 끝났다’는 할머니의 고백은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어서 점점 더 크게 자라나곤 했다.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더욱 크고 절박하게 공명을 반복했다. 차진현의 ‘108인의 초상’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록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