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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전과는 확 달라진 모습에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나의 얼굴과 나의 날개는 당분간 뒤로 숨겨두겠습니다. 지금은 밝은 미소와 예쁜 목소리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얼굴이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접어버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은 이렇게밖에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나의 얼굴을 자신있게 내놓고, 나의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그날을 위해 당분간 참고 있겠습니다. 더보기
분산되어 사라지는 도시 일견 복잡하게 보이는 도시계획의 단순 명쾌한 핵심은 ‘과밀의 질서를 얼마만큼 쾌적한 상태로 조직하는가’에 다름 아니다. 지금껏 많은 건축가들은 보다 크고 많은 건물들을 기반시설이 제공된 한정된 영역의 ‘도시’ 속에 최대로 넣기 위해 애써왔다. 기능이라는 이름하에 곳곳을 용도지구로 구분하고 위계에 따라 ‘○○중심’ 같은 인위적 질서를 부여하였다. 밀도가 답답해지면 광장이나 공원을 삽입하여 숨통을 틔운다. 이러한 집중과 과밀에 대한 숭배는 오늘날 환경 및 사회적 차원에서 다양한 도시문제를 야기하며 점차 그 유효성에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게 한다. 이러한 방식과 대조적으로 현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그의 말년인 1935년 제안한 이상도시 ‘브로드에이커 시티(Broadacre City): 새로운 공동.. 더보기
돌하르방의 프로토타입 창세기의 에덴동산이 실제로 존재할까. 굳이 찾는다면 가장 유력한 곳 중 하나가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로 꼽히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상류다. 이곳에 인류 최초의 신전이라 불리는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가 있다. 해발 760m 언덕 정상에 묻혀 있던 괴베클리 테페는 1963년 미국과 터키의 공동조사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유적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연대(年代)다. 괴베클리 테페는 약 1만5000년 전부터 기원전 8000년까지 유지되었는데 이 시기 인류는 수렵채집에서 농경문명으로 전환되었다. 유적에서 야생동물의 뼈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본래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을 것이다. 유적 곳곳에 약 200개의 T자형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큰 것은 높이가 거의 6m다. 돌기둥을 세우기.. 더보기
줄타기 “왜 그 일을 했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범죄’를 저지른 뒤 곧바로 체포된 퍼포머 필리프 프티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다다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하고는, 멈출 수가 없었을 뿐이에요.” 24세의 프랑스 곡예사 프티는 1974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뉴욕 쌍둥이빌딩 양쪽 꼭대기에 케이블을 걸치고는 그 줄 위를 걸었다. 417m 건물 아래로는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다. 그가 손에 쥔 평행봉만이 그의 걸음을 도왔다. 난간 너머의 줄 위에 한 발을 올린 그는, 건물 위에 무겁게 남겨진 나머지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무게중심을 줄 위의 왼발로 옮기자, 미지의 것으로 가득하지만 사실은 텅 비어 있는 그 구름 속으로 그의 몸이 움직였다. 약 .. 더보기
똑같은 하루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루 종일 쉴 틈도 없이 뛰어다녔지만, 일은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일이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온몸을 하얗게 불사르고 나서야 하루의 일이 끝났습니다. 지친 몸을 지하철 의자에 눕히고 음악을 들으며 퇴근길 한 시간의 꿀잠을 자봅니다. 집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예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매일 똑같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하루 같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일할 곳이 있어 행복하고, 가족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더보기
자영업자 2016년 초부터 전주를 비롯한 몇몇 도시의 자영업자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 왔다. 이때만 해도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던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은 위태위태한 상태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실직을 했거나 은퇴가 앞당겨진 사람들이 모았던 자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임대료는 올랐다. 인테리어를 위한 큰 비용 투자는 쉽게 가게를 접을 수 없는 위협적 요인이었다. 처음 사진작업을 시작할 때 자영업자의 어려운 처지를 이슈화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자영업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고 싶었다. 이들은 종업원을 고용하기도 어려워 가족끼리 장시간 쉬는 날 없이 일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몇십 년을 이어온 곳도 있고 개업한 .. 더보기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학예실장을 바라보는 시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단순한 계약직 공무원이 아니다. 동시대 미술의 비전을 제시할 전시 계획에서부터 소장품 구입, 교육, 공공프로그램 등에 관한 연구 기획, 출판 운영까지 총괄하는 미술관의 핵심 요직이다. 그 자리에 최근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김준기씨가 내정됐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를 거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한 인물로, 서류상의 경력만 놓고 보자면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민중 색채 짙은 전시 이력이 민중미술계열 대표 인사인 현 윤범모 관장과 겹치는 데다, 이들의 남다른 친분 때문이다. 각종 행사와 전시에 바늘과 실처럼 이름이 등장하고, 심지어 윤 관장의 학교 정년퇴임 전시기획에 참여한 것도 김씨이니 호형호제인 양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편향적 경향.. 더보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말을 할까요? 고민만 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직설적이진 않을까? 너무 돌려 말해서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닐까?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좀 더 기다렸다가 말하는 게 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말할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때 바로 말했어야 했는데,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습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의 말들은 점점 쌓여만 가고, 이것들을 언제까지 담아둘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말해야 하는데… 오늘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더보기
건지산 옆에 살아요 전주의 ‘건지산’ 근처로 이사 온 지 십년이 훌쩍 넘었다. 거의 매일 이 길을 밟다보니 숲의 들숨 날숨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솔길이 정답고 ‘오송제’라는 저수지를 품고 있어 품이 넉넉하다. 편백나무 숲 건너로는 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동물원이 있고, 산 끝자락에는 의 작가 최명희의 묘지가 있다. 도시 풍경 너머 숲으로 가는 중간에 대지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봄이 오면 매화를 시작으로 복사꽃이 피고 아카시아 향기가 숲 전체를 휘감는다. ‘오송제’에 연꽃이 한창일 때면 소낙비가 자주 온다. 무성한 나무 그늘에서 비를 피하며 젖은 시간을 바라본다. 가을이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무게를 느낀다. 겨울에는 누군가의 묘지에 눈이 덮이고 배롱나무.. 더보기
존재하지 않는 퍼포머 “당신이 두려워하는 미래를 보라.” ‘우리가 미래에 관해 기대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영국 드라마 의 등장인물 베서니는 몸을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육체를 벗어나고 싶은 그는 부모에게, 뇌를 다운로드해 클라우드에 보내는 시스템을 설명했다. 그것이 자살을 뜻하는 게 아닌지 묻는 부모에게 “다시 돌아가지. 흙으로”라고 답변한 베서니는 데이터가 되어 삶과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했다. 부모는 그녀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작가 카럴 판 라러가 퍼포머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선택한 것은 베서니가 벗어버리고 싶었던, 일종의 비어버린 육체였다. 무대 위에 함께 올라선 최면술사가 카럴의 의식 스위치를 꺼버리면, 최면에 빠진 그의 몸은 4명의 무용수에게 주어.. 더보기
지금 여기 고백건대, 관객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기는 늘 어려웠다. 관객을 모시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에 온갖 콘텐츠를 끊임없이 올려야 했다. 전시 자체의 기획보다 전시로부터 파생되는 프로그램 기획이 중요했고, 온라인에 노출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가공하는 일이 중요했다. 조명발 좋은 전시장은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었다. 오프라인은 마치 온라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도대체 전시장에서 전시를 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고민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의 경험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신앙 같은 믿음으로 전시장을 꾸리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그때도 온라인의 힘이 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터넷이 오프라인을, 보완이 아니라 대체하려는 모양을 보니, 이 상황이 장기화되더라도 인류의 삶은 약간의.. 더보기
소리 질러 목이 터져라 소리쳐 본 적은 언제였을까요? 침이 마르도록 누군가와 말해 본 적은 또 언제였을까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말보다는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더 편해져 버린 시절입니다. 불쑥 전화하기보다는 먼저 문자로 물어본 뒤에 전화를 하는 것이 예의가 되었습니다.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손가락은 점점 더 바삐 움직입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 목소리도 기억 못하게 될 거 같습니다. 햇살 좋은 날 어디 한적한 산속에라도 가서 그동안 안 쓰던 목을 활짝 열어젖히고 야호~ 한번 소리라도 질러 보아야겠습니다. 더보기
엄마의 새 봄이 오니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새소리도 하늘 밖으로 튀고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 사이로 움직임이 훤히 드러난다. 산까치, 물총새, 꾀꼬리, 뻐꾸기가 저마다 힘찬 소리로 지저귄다.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니 멀리 달아난다. 그들의 날갯짓이 마치 바다에서 물고기가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익산에서 자수공방을 하는 미나 엄마는 일흔넷인데 칠십이 다 되어서 딸의 어깨너머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손에 익기 시작했단다. 흔희들 할머니들은 수놓는 일에 익숙한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소질 여부도 있겠고 자식들과 먹고사느라고 바느질을 잊고 살아온 경우가 많다. 돋보기를 써도 눈이 가물가물해져서 일찍이 포기를 한다. 요즘처럼 디자인이 세련되고 상품성이 있는 자수는 엄두도 못 낸다. 그이의 자수는 배.. 더보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반전 1972년 7월15일 오후 3시32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멀쩡한 대형 아파트단지 프루이트 아이고는 다이너마이트 폭발음과 함께 한순간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지어진 지 17년밖에 안 된 이 건축은 뉴욕 무역센터를 설계한 당시 최고의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에 의해 공모로 선출되었다. 다양한 인문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모든 질서가 치밀하게 계획된 최첨단 시설로 공동주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과 함께 각종 건축상을 휩쓸었다. 약 7만평의 땅에 총 33개동 2762가구를 질서 정연하게 배열하고 단지 내부를 기능과 효율에 따라 세밀하게 구획하였다. 그러나 칼로 자른 듯 과도한 질서는 거주민을 은연중 억압하고 분절시켜 갈등을 유발하였고 결국 단지 전체가 인종차별과 각종 범죄의 소굴이 되고 만다. 자연스레 빈집이.. 더보기
바닷가의 두 여인 에드바르 뭉크의 개인사는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의 중요한 근거로 언급된다. 그가 5세였을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14세였을 때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사망하고, 여동생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였지만 가족을 살리지 못했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도 뭉크가 26세 되던 해 사망했다. 6년 뒤 남동생이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이제 그의 가족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태어난 여동생뿐이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광기의 씨앗을 물려받았다. 나의 요람을 지켜보고 있던 것은 병과 광기와 죽음의 검은 천사들의 무리였다. 그들은 그 후에도 줄곧 나의 생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류머티즘, 불면증으로 고통받았던 그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 더보기
서귀포 당근 밭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스님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이라고 얼른 생각했다. 광대무변의 바다 같기도 한 이 풍경을 보고 스님이 떠오른 것은 이 모습이 마치 구도의 자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지” 혹은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쉽게 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장사하는 것’과 ‘농사짓는 일’일지도 모른다. 박사, 의사, 판검사 되기가 힘든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웬만한 환경에서 공부만 힘써서 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장사’는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는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더구나 농사는 온전히 자연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더보기
봄을 기억합니다 봄을 잊지 않으려고 봄을 수집해 봅니다. 두꺼운 책 하나를 옆에 끼고 햇살 좋은 봄날 공원으로 나가 봅니다. 예쁜 색의 꽃들과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 그리고 기분 좋은 꽃향기가 눈과 귀와 코를 즐겁게 해 줍니다. 바닥에 떨어진 예쁜 꽃들과 잎을 고르고 골라서 두꺼운 책 속에 하나씩 잘 펴서 꾹 눌러 줍니다. 나중에 꽃들이 잘 마르면 책을 펼쳐 아이들과 어떤 꽃인지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이렇게라도 마음껏 즐기지 못한 2020년의 봄을 기억해 보려 합니다. 내년에는 두꺼운 책 속에 기억된 봄이 아닌 진짜 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온라인의 도전에 직면한 전시환경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신 위기 이후의 새로운 환경이 언급된다. 그렇다면 생활방역이 일상화된 이후 미술 전시 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미술의 존재방식에 관한 담론을 거쳐야 하는 과정의 지난함이 놓인 현실과 개념 및 표상, 시각과 정신을 한 몸으로 삼는 게 미술이기에 확언하긴 어렵지만 ‘온라인화’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보인다. 실제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미술장터인 ‘아트바젤 홍콩’은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개최가 무산되자 곧바로 온라인 뷰잉룸을 열어 상업적 가능성을 타진했다. 의외로 성과는 좋았고, 오프라인 페어의 대안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우저 앤 워스와 같은 대형 갤러리들 또한 본격적으로 온라인 플랫폼 구축에 나서며 인터넷을 이용한 작품.. 더보기
인류 최초의 문자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라스코 동굴 깊숙한 곳에 묘한 그림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토트(지혜의 신)처럼 몸은 사람인데 머리는 새인 반인반수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의 형식이다. 다른 벽화는 대상의 모습을 다소 상세하게 묘사했는데 이 그림은 몇 개의 선으로 단순하게 그려졌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가장 중요한 의미요소만 남은 상태랄까. 약 1만5000년 전 그려진 터라 이 그림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얼 그리고자 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올림픽의 픽토그램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아이콘처럼. 픽토그램과 아이콘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학자 오토 노이라트에 의해 처음 시도됐다. 디자인 역사에서 이를 ‘아이소타입(Isotype)’이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노이라트는 글자를 모.. 더보기
연결 1975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얀 보의 개인사는 극적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통일정부가 들어선 후 불어닥친 격랑을 피해 그의 가족은 작은 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했다. 1979년의 일이다. 덴마크 선박이 거대한 바다에 떠 있던 이 보트피플을 구해준 덕분에 얀 보의 가족은 덴마크에 정착했다. 북유럽에 자리 잡은 동남아시아인들이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경험하며 놀라고 좌절했을 세월은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상황,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돌아봐야 하는 일상 안에서 성장한 덕분에 얀 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눈과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부서진 오래된 조각상, 굴러다니는 돌멩이, 낡은 상자. 그의 눈은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사물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