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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산 보광사 의정부에서 북한산 외곽을 돌아 고양시로 이어지는 39번 국도로 겨울길을 달린다. 장흥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용미리로 이어지는 78번 국지도가 이어진다. 이 국지도에서 다시 갈라지는 367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달리면 우측으로 일주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령산 보광사’라고 씌어 있어 국지도에 바로 붙어 있는 사찰이 있음을 알려준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조금 올라가면 우측으로 넓은 주차장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부터 산사까지는 걸어 올라가라는 뜻일 게다. 걸어 올라가야 할 시작점에는 ‘해탈문’이라고 쓰인 또 하나의 자그마한 일주문이 보인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사찰의 경내임을 알려준다. 보광사의 주산인 고령산(622m)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어서 사찰의 진입로.. 더보기
고양이 요즘 반려 동물들을 많이 키웁니다. 그중에 애교 많고, 대소변 잘 가리고, 공간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고 키울 수 있는 고양이가 가장 인기가 많은 듯합니다. 온라인상에는 고양이 이미지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들이 달립니다. 그러나 차가운 현실에서는 길 고양이들이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어젯밤 아직 엔진 열기가 남아 있는 차 밑에 있는 아기 고양이를 보았습니다. 현실에선 사람이나 동물이나 여전히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화가와 모델 미술관 큐레이터, 동료 작가, 이웃, 가족 등 주변 지인의 초상을 평생 화폭에 담아온 앨리스 닐은 모델과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혼을 포착하는 화가’라는 수식어는 그냥 얻은 게 아니었다. 모델들은 그 과정이 불편했지만, 화가는 그 시간을 통해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잡아냈다. 모델을 향한 화가의 통찰력과, 화가를 대면한 모델의 친밀하기도, 불편하기도 한 시선이 캔버스 위에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형태를 만들었다. 작가의 며느리였던 지니는 종종 앨리스의 모델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발랄했던 젊은 날의 하루, 아이를 안고 있는 행복한 순간이 작품으로 남았다. 80대의 노화가 앞에 지니는 다시 앉았다. 제비꽃 색 원피스를 입고 .. 더보기
숲속에서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때문에 목은 아프고 숨은 막힙니다. 이럴 때 숲속의 맑고 깨끗한 공기가 그립습니다. 쌉쌀한 풀냄새와 은은한 꽃향기 그리고 차가운 바람과 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쨍한 햇빛까지. 그러나 지금은 축축한 마스크 속에서 힘겨운 숨을 내쉬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더보기
영혼의 무게 21그램. 영혼의 무게로 불린다. 임종 직전과 직후에 그만큼의 몸무게가 차이나는 탓이다. 서울 용산 4구역 남일당의 부서진 망루 주변에 하얀 연기가 나타난 노순택의 사진을 보며 떠올린 것은 영혼의 무게였다. 쪼그라든 망루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1그램은 5센트 5개의 무게,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초코바 하나의 무게와 같다. 그렇다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 그들의 영혼은 5센트 30개, 초코바 6개의 무게와 같을까.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들이 남일당 건물을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했다. 진압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경악스러운 대참사였지만, 누군가 쫓겨나는 장면은 그 어디선가 늘 되풀이되는 일이기도.. 더보기
반구정 무술년 연초.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쌀쌀한 겨울바람을 가르며 나의 운전대는 파주 임진강가에 위치한 반구정으로 향한다. 임진각 직전에 위치한 당동IC를 빠져나와 2차선 도로로 1㎞ 정도를 더 가면 ‘방촌 황희선생유적지’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널찍한 주차장이 나를 반긴다. 고즈넉한 한옥담장과 한옥으로 지어진 매표소는 이곳이 잘 정돈된 유적지임을 암시한다. 이곳이 고려말에서 조선조 세종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나라의 살림을 맡았던 청백리 황희 정승(1363~1452)이 말년을 보냈던 데이다. 티케팅을 하고 한옥대문을 들어서면 널따란 정원이 오른쪽에는 방촌기념관, 그리고 왼쪽에는 영당(影堂) 영역으로 나누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기념관에서 정승의 일대기를 살펴본 후 영당 쪽을.. 더보기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그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룬 미르자 특유의 사운드 비트와 이미지가 혼성되어 있는 공간을 지나가야 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전기를 잡아내 전기가 흐르는 과정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드러내 보이곤 했다. 특정 속도로 깜박이는 불빛, 스크린의 영상, 잡음 같기도 한 소리로 드러나는 전류는, 흩어져 있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 다양한 모드로 복잡하게, 하지만 그 나름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룬 미르자가 조율한 빛과 소리의 파장 안으로 진입한 몸은 곧 그가 연출한 전류의 관계망과 동기화된다. 그 몸은 하룬 미르자의 세상에 안착하는, 아니면 포섭당하는 기분을 맛보곤 한다. 현란한 공간 너머에는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이라 명명한 밀실이 있었다. .. 더보기
들리지 않는 눈물 세상에 순한 아이는 없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예민함을 지녔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예민함을 표출한다. 이 아이는 소리에 예민해 소리를 지르고, 저 아이는 잠자리에 예민해 잠투정하며, 또 어떤 아이는 음식에 예민해 음식을 뱉는다. 어쩌면 그래서 더 힘주어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는 순하다고, 착하다고. 그러나 각자 타고난 예민함은 달큰한 말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이를 먹고도 마냥 아이처럼 유난스럽게 예민함을 티낼 수 없기에 스스로 자신을 억누르는 요령이 생길 뿐이다. 소리 없이 울거나 억누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내면에 잔존할 것이다. 젊은 작업자 이옥토의 사진을 보면서 그.. 더보기
추운 날 오늘 날이 춥습니다. 너무 추우니 따뜻한 계절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더운 계절엔 또 오늘의 추운 날을 생각하겠지요?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그 날씨를 즐겨 봅니다. 더운 날엔 시원한 수박, 탁 트인 바닷가, 가벼운 옷차림, 달달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추운 날엔 푹신하고 보드라운 이불, 뜨거운 커피 한잔,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손 등등.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한겨울 추위를 즐겨 보아야겠습니다. 더보기
오늘 새로운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좋은 새해가 왔다. 매일 새로운 하루, 매분, 매초가 다시 오지 않을 새로운 시간이지만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그 모든 새로움은 빛을 잃는다. 해가 바뀌는 정도는 돼야, 나의 습관을 돌아보고 재정비할 마음이 선다. 명색이 새해인데 목표도 좀 세워야 한다. 목표를 향한 집념이 얼마 안 가 흔들리고, 흐려지다가 다음 새해를 다시 기다리는 상태가 곧 온다 해도, 새해니까, 일단 의지를 세워본다.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서면서 맞이한 새해니까, 올해를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1966년 1월4일, 온 카와라는 ‘오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굳이 기억할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 또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특별했을 그 하루를 그리는데 그는 .. 더보기
황금 개띠 올해가 ‘황금 개띠’의 해라고 합니다. 올해는 돈을 많이 벌면 좋겠습니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고, 돈에 신경 안 쓰며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면서 즐겁게 살아 보고 싶습니다. 세계여행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며 빈둥빈둥 놀아보기도 하고, 그림도 마음대로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도 새롭게 시작해보고…. 돈이 얼마나 있어야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그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할까요? 더보기
엄마는 24시간 한 손에는 별금당이라고 적힌 장바구니를, 허리에는 포대기를 한 여인이 서 있다. 그 옆에는 예닐곱 살 아이가 영화 의 포스터 속 키스 장면에 정신이 팔려 있다. 오른쪽에 버스 정류장 표지판인 것 같은 쇠기둥이 보인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짐작되는 여인의 얼굴에는 오늘의 고단한 외출이 그대로 묻어 있다. 어디 오늘뿐이었을까. 어제도 내일도 두 아이를 챙기며 생활을 꾸려야 하는 엄마의 무게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함석판에 붙은 영화 포스터 속 여인의 웃음은 엄마의 검은 얼굴을 더욱 수척하게 만든다. 그 절묘한 대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사진가(고 권태균)는 놓치지 않고 화면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결코 영화 제목처럼 ‘나인 투 파이브’할 수 없는, 끝내 퇴근이 없었던.. 더보기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 1호선 전철의 종착지 소요산역 두 정거장 전에 위치한 보산역에 가면 이색적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린다. 고가의 전철역사 옆으로 길게 드리워진 저층 상가들의 모습에서 이국적인 풍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형형색색의 현란한 건물들과 외국어 일색의 간판들은 외국의 한 소도시 모습이다. 교각 밑은 플리마켓 등 다양한 거리축제가 가능한 산뜻한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1980~1990년대 음식점, 클럽 등 많은 점포들이 길 건너에 주둔하던 미2사단 2만여명의 미군들을 상대로 크게 성업했던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군들이 평택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곳 상권은 급속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동두천시는 침체된 상권을 살리고자 이곳을 외국인 관광특구로 지정하였다. 건물의 외관을 현란한 그라피티로 덧입히고 다양.. 더보기
머릿속 생각들 생각들이 분수처럼 머릿속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정말 멋진 그림들, 재미있는 이야기들, 정확한 미래의 계획들 그러나 눈 깜빡할 사이에 종이에 메모할 틈도 없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아 정말 멋진 계획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려 머리를 짜내어 보지만, 생각들이 다 날아가 버렸는지 머릿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더보기
깊은 구멍 사진 속의 장면을 파악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차근차근 보아도 잘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환과 향, 병풍이 있는 영안실은 왜 난장판이 됐을까. 도대체 무슨 연유로 벽에 구멍까지 뚫린 것일까. 1991년 5월7일, 의문사를 당한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영안실에 백골단이 침입했다. 그들은 물대포를 쏘아대며 시신 사수대를 폭행했고, 해머로 벽을 뚫어 시신을 탈취해 강제로 부검했다. 이러한 정보를 얻은 후에도 사진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 담겼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돌 스타의 자살 그리고 제천 화재 참사를 둘러싼 몇몇 보도를 접하며, 구멍 뚫린 영안실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이돌 스타의 비극적 죽음을 다루는 기사는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고 집요했다. 유서부터 자살 방.. 더보기
세 얼굴 사이에 부엌과 거실로 이어지는 자리에 엄마가 앉아 있다. 엄마의 무릎을 베고 큰아들이 누워 있다. 엄마의 손은 아들의 가슴 위에 살포시 놓여 있고, 두 사람의 단단한 입매가 서로 닮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하는 엄마의 얼굴에도, 눈을 지그시 감은 아들의 얼굴에도 청량한 빛이 은은하게 감돈다. 사진가 박현성의 ‘찬란’ 시리즈는 어머니와 형의 일상을 따라간다. 꽤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진을 면밀히 바라보면서 연출된 장면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중년의 엄마와 청년의 아들 사이에서 무릎베개가 왠지 흔치 않은 일인 것 같고, 두 얼굴을 감싸는 빛의 기울기가 우연이라 하기엔 절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업이 가족을 향한 기록이기에 앞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족 사이에 솟아난 공백을 더듬는 몸짓이기에 그렇다. 아버지를.. 더보기
거짓말 산타 산타가 정말 있나요? 친구들은 산타는 없고 아빠가 선물을 주는 것이래. 아냐, 산타는 정말로 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산타가 꼭 선물을 주실 거야. 그런데 산타는 어떻게 내가 원하는 선물을 딱 알고 주시는 걸까? 다행히 올해도 산타는 선물을 주고 가실 거 같습니다. 그런데 내년에는 이 거짓말이 통할 수 있을까요? 내년에도 산타가 꼭 오시기를 기대합니다. 더보기
10원의 가치 2015년 미얀마 시장 골목에서 이원호는 한 상인의 좌판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빛바랜 동전이 무심히 쌓여 있었다. 동전 더미를 뒤적이다 익숙한 한국 동전을 발견한 그는 어디서 여기로 굴러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동전들을 끄집어내 쌓으며 가격을 물었다. 500원은 400원이기도 했고, 100원이기도 했으며 10원은 300원이기도 했다. 상인은 여러 개를 묶어 사면 깎아주겠다고도 했다. 2017년 작가는 인도 거리에서 한국 동전을 발견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환율과 무관하게 거래되는 동전 가격을 흥정했다. 상인과의 흥정 여부에 따라, 거래는 성사되기도, 안되기도 했으며 그는 이익을 보기도, 손해를 보기도 했다. ‘통화’의 역할을 부여받고 탄생한 ‘동전’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상황에서 손해와 이익을 판단하는 것.. 더보기
그들만의 영광과 굴욕 1979년 12월14일, 보안사령부에서 군인들이 카메라 앞에 도열했다. 12·12 쿠데타의 주역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촬영 이틀 전 정권을 찬탈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한 그들은 자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만의 영광은 사진으로 기념됐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되기에 뒷줄 맨 우측의 백운택 준장은 따로 편집해 붙이기까지 했다. 1996년 12월16일, 그들은 서울고등법원 법정에서 다시 카메라 앞에 도열했다. 흑백사진에서 앞줄 중앙에 보였던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등은 컬러사진에서도 역시 전두환, 노태우와 함께했다. 군복 대신 수감복을 입고, 별 대신 번호표를 단 주역들의 모습은 늙고 지쳐 보인다. 그들만의 굴욕이 찍히는 순간, 그들만의 영광 때문에 많은 이들이 .. 더보기
돼지꿈 돼지꿈을 꾸었습니다.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 하루 종일 기대하며 웃으며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좋은 일 있냐며 물어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언제나 똑같은 하루일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루 종일 좋은 일을 기대하며 웃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게 좋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