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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마 위 사람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 발버둥을 쳐보지만 도마 위 생선처럼 우리의 마지막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즐겁고 아름답게 살고 싶어 이렇게 열심히 몸을 움직여 봅니다. 더보기
첫눈 내리는 허브빌리지 지난 11월20일 월요일. 이날은 연천에 있는 허브빌리지를 방문하겠노라 그곳의 팀장과 약속을 일찍이 잡아 놓았던 날이다. 그날 오후. 쌀쌀한 날씨에 하늘도 잔뜩 찌푸려 한바탕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첫눈이 펑펑 쏟아졌다. 첫눈 치고는 꽤 많은 눈이 내렸다. 휴대폰의 내비는 목적지를 큰길이 아닌 좁은 산길로 안내한다.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었던 탓에 도로에는 주행이 만만찮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첫눈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다소 긴장한 상태로 조심조심 산길을 넘었다. 다행히 큰길을 만나 잠시 중단되었던 첫눈에 대한 감상에 젖어본다. 그사이 어느덧 차는 목적지인 허브빌리지에 도착한다. 눈이 많이 와서인지 허브빌리지를 찾는 관광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덕분에 팀장과 여유있게 .. 더보기
소멸을 생각하는 일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가. 건축가 조성룡은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며 ‘집’이라고 했다. 집 없이도 어디선가 살기야 하겠지만, 집이 없다면 불안한 기억은 그저 사라진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거나 지우고 싶은 걸까.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여관이던 시절의 흔적을 폐허처럼 유지하고 있는 예술 공간 ‘보안여관’에서 열린 ‘소록도’ 전시는 ‘기억하는 일’에 대해 질문한다. 지난 5년간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 구성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하면서 진행한 작업은 ‘은폐된 섬’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과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다. 이제는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을 폐허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보안여관에 펼치니, 세상 모든 사.. 더보기
둘을 위한 기념사진 젊은 남녀가 등장하는 통속적인 영화는 대개 떠들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디서 첫 키스를 했는지, 언제 사랑이 식기 시작했는지,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지 그 시작과 끝을 낱낱이 이야기하기 바쁘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게루와 듣지 못하는 다카코가 등장하기에 대사가 거의 없다. 게다가 감독은 두 남녀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대신 곁에서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작정한 것 같다. 함께 서핑보드를 들고 가는 둘의 모습을, 시게루가 서핑하는 동안 해변에 남아 그의 옷을 개는 다카코를, 그녀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게루를 떨어져서 보여줄 뿐이다.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시점은,.. 더보기
빨강 고래 하늘을 나는 고래가 있습니다. 고래가 뿜은 물줄기가 구름이 되어 하늘에 구름마을이 생겼습니다. 둥실둥실, 살랑살랑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구름마을에서 고래와 같이 세상 구경을 해봅니다. 더보기
잘 잤니 이야기는 짧다. 방 안에는 카드며 꽃이며 선물, 빈 술잔 같은 생일파티의 흔적이 있고, 침대에 모로 누워 있던 여성은 알람이 울리자 인상을 찌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음료를 꺼내 마신 후, 칫솔을 들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텔레비전을 켜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맞추고 경쾌하게 인사한다. “잘 잤니.” 그렇게 1분짜리 영상은 끝난다. 단순하다. 주인공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인사하는 순간까지 여럿으로 분리된 채 시간차를 두고 움직였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곤 사토시의 작업에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좀처럼 구별할 수 없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도 어렵다. 환상은 극대화되고 꿈과 현실의 경계도 무.. 더보기
연천 ‘조선왕가’의 설경 경기 의정부에서 동두천을 지나 연천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는 연천 시내로 들어가기 직전 우측의 2차선 도로와 만난다. 재인폭포로 이어지는 이 도로를 따라 약 4㎞를 달리면 도로 왼쪽으로 여러 채의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쪽으로 펼쳐져 있는 널찍한 평야는 가슴 시리도록 시원함으로 다가온다. 평야 앞쪽으로는 한탄강이 크게 굽이쳐 흐르고 뒤쪽에는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있어 이 한옥은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가’라는 이름을 가진 한옥 호텔이다. 겉으로 봐서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데 왜 조선왕가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 북쪽에 조선왕가와 무슨 연고가 있기는 한 걸까? 내용은 이러했다. 원래 이 한옥들은 현재 명륜동에 있던, 고종의 손자 이근이 살았.. 더보기
잘 지내 “사랑은 재앙입니다.” 서로 다른 속도로 타오르거나, 미묘한 감정의 엇박자 속에 식어 버리거나, 혹은 습관인 양 유지하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 소피 칼의 진심을 알 길은 없다. 출장길에서 남자친구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의 e메일을 받았을 때, 소피 칼은 행간에 녹아 있는 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며, 이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문장으로 끝맺는 ‘이별 편지’가, 완전한 이별의 선언인지, 계속 만나고는 싶다는 뜻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여주면서 해석을 부탁했다. 그 이후 작가는 좀 더 많은 여성,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더보기
겨울 준비 -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가을을 느끼기 전에 벌써 겨울이 와버렸습니다. 단풍 구경은 해보지도 못하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꺼내어 입었습니다. 아직 마무리를 짓지도 못했는데 올해가 끝나갑니다. 시간은 갈수록 빨라만 집니다. 더보기
웃는 남자 -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얘야, 사진 한 장 찍자”고 했을까, 아니면 “엄마, 사진 찍어요” 했을까?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가을 햇볕이 환해서, 노란 국화가 탐스러워서 카메라 앞에 섰을 것 같다. 사진 찍고 싶을 만큼 햇살이 좋았던, 국화가 예뻤던 그날은 두 사람의 소박한 모습으로 동결된다. 어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기념사진이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다. 저기 해맑게 웃는 청년이 바로 이한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한열 열사가 저리도 예쁘게 웃는 아이였단 말인가. 내가 사진으로 기억하는 이한열은 1987년 6월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이종창에게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모습뿐이다. 그렇기에 단 한.. 더보기
전시인가, 과시인가 “처음 루브르박물관에 들어서던 순간을 기억한다. 에스컬레이터를 가득 메우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파도. 스펙터클은 루브르가 아니라 그 군중이 이미 만들어내고 있었다. (…) 미술관의 관람객은 볼거리에 집착한다. 소비한다. 거대 미술관은 약탈한 수집품으로 가득 찼고, 그 소장품을 다시 약탈하는 군중이 가득하다.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약탈하는지, 너무나 사랑해서 탐하는 건지. 스냅샷을 날린다. 나는 뷰파인더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군상을 주목한다.” 김홍식의 관심사는 현대 도시가 겪고 있는 변화와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탐구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도시 산책자가 되어 이곳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지켜보고, 그 현상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관찰하면서 의미를 추적한다. 그 산책의 발길이 ‘미술관’에 닿.. 더보기
낯선 얼굴들 어떤 얼굴이 진짜일까요? 편안하게 미소 짓는 얼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얼굴, 활짝 웃는 얼굴, 피곤하고 짜증이 나 있는 얼굴, 멍하니 딴 세상을 보고 있는 얼굴? 문득 거울을 보면 낯선 얼굴이 나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거울 속에서 점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고 있습니다. 낯선 그와 대화를 해보면 다시 비슷해질까요? 더보기
의미의 시차 어느 작가는 자신의 전시회 때 도슨트 프로그램에 몰래 참여한다. 관객 사이에서 자기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니 왠지 짓궂다. 도슨트 입장에서 원작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건 민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발화자(주체)가 아닌 청자(객체)의 위치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건 작가에게 유의미하다. 작품의 의미가 청자에게 어떻게 (오)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슬기의 ‘Sub/Ob-Ject’ 시리즈를 보며 이미지를 둘러싼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교란하거나 역전시킨다는 측면에서 앞서 말한 작가의 행위가 떠오른다. 기슬기는 외국인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얻은 단편적인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이미지를 제작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 발화와 청취의 시차, 기록과 기억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 더보기
고려의 제례공간 숭의전 동두천을 거쳐 연천으로 가기 전 전곡에서 파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를 접어들면 연천의 유명한 전곡 선사유적지를 지나게 된다. 유적지를 지나 잠시 차를 달리면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임진강변으로 고려시대의 종묘인 숭의전(崇義殿)에 다다른다. 차에서 내려 왕건이 물을 마셨다고 전해지는 ‘어수정(御水井)’에서 물을 한잔 마시고 홍살문이 있는 언덕길을 오른다. 경사진 언덕길을 잠시 오르면 우측의 절벽 저 아래로 크게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조선조 태조는 새 왕조를 건설하면서 전통적인 예법에 따라 전 왕조의 위패와 왕릉을 보존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곳에 왕건의 전각을 세웠고 정종 때는 왕건 외에 고려왕 7명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세종 때에는 제후는 5묘를 세워야 한다는 .. 더보기
터널 뒤늦게 찾아봤던 드라마 에서 터널은 ‘운명과 시간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던 형사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터널을 통해 미래로 가고, 그곳에서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면서 범인을 추적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내용. 진실에 닿기 위해 필요한 건 시간여행인 걸까. 시간은 종종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익숙한 주변 풍경에 낯선 기운을 불어넣는 데 탁월한 피터 도이그가 화면에 담은 터널은 무지개색이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알 수 없는 기묘한 화면의 톤 덕분에 사람들은 피터 도이그의 그림을 통해 몽환적인 상황을 만나곤 한다. 토론토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이 터널에 무지개가 뜬 건 1972년의 일이다. 노르웨이 출신 베르그 욘슨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구를 애도하는.. 더보기
웃는 연습 웃는 연습을 해봅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한껏 웃어 봅니다. 즐거워지는 연습을 해봅니다. 머릿속에 행복한 생각들을 가득 넣어 봅니다. 이렇게 웃는 연습을 하고 이렇게 즐거워지는 연습을 하면서 웃음 가득한 재밌는 그림을 그려 봅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릴 때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더보기
시각과 사각 군데군데 찌그러졌다. 드문드문 빨간 도색도 벗겨졌다. 각질처럼 허옇게 일어난 타이어 표면은 심하게 마모됐다. 둥근 휠 가운데 호랑이 엠블럼은 작지만 눈에 박힌다. 범퍼 밑에는 물먹은 주황빛이 반짝인다.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들여다봐도 왜 찍었는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이처럼 목정욱의 ‘Car’ 연작(2006~2017)은 어떠한 이야기도 담지 않은 파편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산산조각 난 앞 유리창, 먼지와 때가 잔뜩 낀 헤드라이트, 절연 테이프로 칭칭 감은 사이드 미러 등이 담긴 사진을 보며 알 수 있는 건, 피사체가 자동차라는 것뿐이다. 작가의 프레이밍은 형태와 색의 윤곽을 선명하게 묘사하지만, 어떤 정보를 제공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전체를 가늠할 수 없고, .. 더보기
삼대의 모국어 엄마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엄마의 모국어는 아랍어다. 이후 엄마는 프랑스로 이주해 딸 지네브 세디라를 낳았다. 프랑스어를 쓰며 성장한 그는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다. 딸은 영어로 말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삼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네브 세디라는 자신의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정체성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3채널 영상 작품 ‘모국어’를 완성했다. 작가와, 그의 엄마, 딸, 세 여성은 서로서로 대화를 나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서 화면을 마주한 관객들은, 영상을 통해 각자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 정도만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영상의 소리는 헤드폰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소리가 없기 때문.. 더보기
어두운 섬광 적막한 새벽, 칠흑처럼 먹먹한 어둠 속에서 플래시가 강하게 터진다. 창백한 섬광을 마주한 병사의 헬멧과 얼굴 그리고 요대의 버클이 부러질 듯 딱딱하게 빛난다. 그 옆에는 90㎜ 주포를 장착한 M48A2C형 패튼 탱크가 어둠의 물결에서 차갑고 육중한 몸체를 뒤척인다. 프레임 끝과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탱크와 병사가 그려낸 평행선이 기묘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 안에서 어깨를 맞댄 어둠과 밝음의 선명한 대비가 눅눅한 불길함을 자아낸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1979년 10월27일 새벽에 찍힌 장면이다. 오전 4시 비상계엄령이 선포됐고 수도경비사령부 소속의 계엄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몰고 중앙청을 점거했다. 뚜렷하게 보이는 탱크와 그 뒤로 어렴풋한 중앙청 건물 그리고 승용차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보기
사랑 “사랑은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행복한 일입니다. 사랑을 좀 다르게 그려보고 싶었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은 하는 것도, 그리는 것도 어렵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