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요시다 기숙사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최초로 배출한 건 폐망 직후 폐허 속에서였다. 이들은 교토대학교 출신이었다. 1897년 개교 이래 여전히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 4차 산업을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아마 이 대학 또한 미래 지향적인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교토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이색적인 방문 장소로 꼽히는 요시다 기숙사에 들어서면 이 학교의 저력이 전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1913년 처음 운영을 시작한 이 기숙사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기숙사이자, 유일한 목조 건물 기숙사이다. 120개의 다다미방을 갖춘 내부에는 200명 정도의 학생이 살고 있고, 학교 당국의 간섭 없이 기숙사 자치회를 통해서만 운영이 이뤄진다. 그러나 간타 노무라가.. 더보기
장화 장화 한 켤레. 아담한 크기에 영롱한 빛을 발산한다. 제각기 굵기가 다른 빛 알갱이들은 단순한 신발에 신비감마저 감돌게 한다. 이런 걸 어쩌면 사진의 눈속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진은 사소한 것들도 비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시각 놀이에 길들여지다 보면, 점점 사진이 객관적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장화 사진은 정반대로서의 눈속임이자 반전이다. 평범했을 이 장화는 이제는 예사롭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지대에서 주워온 이 신발이 발산하는 빛의 정체는 모두 방사능이다. 방사능에 많이 노출될수록 빛은 훨씬 굵고 찬란하다. 사진가 마사미치 가가야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능 누출의 영향을 추적하는 도쿄대 생물학자 사토시 모리 교수팀에 합류해 사진 기.. 더보기
입과 손가락 대통령 후보들이 TV토론을 합니다. 상대방이 예전에 한 말들, 온라인상에 올린 글들을 끄집어내어 공격을 합니다. 온라인은 무섭습니다. 이제는 입조심 그리고 손가락도 조심해야 합니다. 온라인상의 나의 게시물들은 삭제하거나 수정할 수도 없고 영원히 나를 따라다닙니다. 그것들은 이제 고칠 수도 없는 나의 얼굴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
서울돈화문국악당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삼거리 왼쪽 길모퉁이에 낯선 한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없었던 건물인데 지난해 9월 ‘서울돈화문국악당’이라는 국악 전문 공연장이 한옥의 모습으로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2011년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의 안이다. 출입구를 들어서면 잔디로 덮인 아담한 크기의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잔디마당을 단층짜리 한옥이 빙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행랑채 형식으로 잔디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한옥에는 카페가 자리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선사한다. 잔디마당에서 야외공연이 열리면 마당 쪽의 접이문이 좌우로 펼쳐져 카페 공간은 멋진 객석으로 변신한다. 140석 규모의 국악 전문 공연장은 이 잔디마당 지하에 마련되어 있.. 더보기
정신수양 낙서 -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TV를 켜놓고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누런 봉투에 끄적거려 봅니다. TV를 다 보고 나니 종이에 잡다한 그림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림을 보니 제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이 종이로 다 쏟아져 나온 거 같습니다. 온통 엉망진창 뒤죽박죽 낙서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입니다. 그림으로 정신수양을 한 듯한?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요즘 컬러링북들이 유행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
자크 앙리 라르티그 -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그는 직업은 화가였고 신분은 귀족이었으며, 사진은 취미였을 뿐이다. 일곱 살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나 69세에서야 사진가로 알려졌다. 다만 데뷔 장소가 남달랐다. 뉴욕 현대미술관. 그곳의 사진부장 존 사코우스키가 그의 사진에 반해 첫 전시를 기획한 뒤로, 누구도 사진가로서의 그를 흉내낼 수 없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 19세기 말에 태어나 피카소와 장 콕토 등을 친구 삼아 20세기를 즐겼던 인물. 프랑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서 그가 유년 시절부터 일기처럼 찍은 사진에는 상류 사회의 일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그 모습들은 한결같이 유쾌하고 즐거운 사건사고들로 가득해 그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으며 심지어는 군인으로 참전했다는 사실마저도 잊게 만든다. KT&G 상.. 더보기
홍지문, 비대칭의 조화 세검정에서 다시 홍은사거리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상명대 앞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도로 아래 계곡 쪽에서 불쑥 솟아오른 한옥 지붕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래쪽으로 내려가 차를 대고 홍제천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예전에는 멋진 계곡이었을 이 홍제천 위를 가로지르는 5개의 아치로 구성된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다리와 곧바로 연결된 우진각 지붕을 한 성문이 앞서 궁금해했던 바로 그 한옥 지붕의 건물이다. 조선시대 서울의 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해 세워졌던 성문인 홍지문(弘智門)이다. 성문 옆으로 계곡이 맞닿아 있으니 다리 역할을 하는 성벽이 필요했으리라. 다리 아래는 5개의 아치로 물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렇게 5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라 하여 오간수문(五間水門)으로 불린다. 다리 .. 더보기
미세먼지 방지 봄 방독면 벚꽃, 개나리꽃, 도라지꽃 등등 봄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꽃구경 가고 싶지만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조차 없습니다. 중국은 한술 더 떠서 미세먼지 주범 공장들을 우리나라 가까운 황해 쪽으로 다 이전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미세먼지가 더 심해질 거라 생각하니 걱정입니다. 이번주부터 벚꽃축제 기간입니다. 이번 주말은 깨끗한 공기 속에서 봄꽃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
예카테리나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우크라이나. 이로 인해 섹스 관광에 대한 오명도 적지 않은 이 나라에는 예카테리나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는 오직 여성들만이 산다. 늘씬하고 지적이기까지 하며, 신부 수업까지 마친 이 여성들의 이름은 모두 예카테리나. 사진가 로멩 마데르는 이 이상한 도시에서 신붓감을 찾아 즐기고 방황하다 마침내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난다. 젊은 남자의 욕망에 충실한 이 설정은 물론 가짜다. 그러나 허무맹랑하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다. 예카테리나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로멩 마데르는 진짜 사진가이자 작품 속 주인공이고, 그가 찍은 모든 사진 또한 우크라이나의 현실 세계에서 채집되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35세 미만의 젊은 사진가를 선발해 지원을 해 주는 네덜란드의 사진미술관 폼(Foam)이 올해는 가볍고.. 더보기
세월호 인양 세월호 사건 때 슈퍼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슈퍼 히어로나 최첨단 기술이 있었다면, 하늘이 도와주었다면, 커다란 풍선이 있었다면, 진짜 신이 나타나 모두 구해주었다면…. 그때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이제야 바다 위로 떠 올랐습니다. 슈퍼 히어로도, 최첨단 기술도, 기적도 없었습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무얼 하다가 이제야 하룻밤 만에 뚝딱 인양했는지 세월호에 얽혀있는 수많은 의문들이 어서 밝혀지길 바랍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
특이한 점 파랑 바탕에 노란 점이 박힌 스티커. 이것의 조달이 수월하지 않을 때는 비슷한 모양으로 대체 가능하다. 특이점이 없는 점 하나. 그러나 이 기호의 의미를 아는 순간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특이한 점으로 급부상한다. 이 점 위에는 단 한 사람, 흔히 VIP라 부르는 대통령만이 선다. 완벽한 경호를 위해, 차질 없는 예행연습을 위해, 절도를 갖춘 의전을 위해 이 점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점은 대한민국 최고 통치권자의 압축된 권력이다. 사진기자 김성룡은 해마다 스스로 오답노트를 작성해 왔다. 맞다고 여겼으나 답으로 채택되지 못한 것은 다름 아닌 B컷 사진. 그가 정말 찍고 싶었던 사진은 늘 지면에 실리지 못한 채 오답처리 되었다. 지난해 그의 오답노트 제목은 ‘특이한 점’. 청와대를 출입하거나 대통령 순방.. 더보기
세검정, 도심 속 옛 정취 차를 타고 홍은사거리에서 북악터널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경사로를 오르다 보면 왼쪽 능선으로 상명대학교 캠퍼스가 올려다보인다. 상명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위쪽으로 200m가량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단아한 정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 일대의 지명을 짓게 해 준 ‘세검정’이란 정자다. 홍제천이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정(丁)자형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세검정은 예로부터 멋진 풍광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지금도 홍제천 좌우로 많은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해도 세검정 아래에서 위쪽을 바라보면 여전히 멋진 풍광이 뿜어져 나온다. 세검정(洗劍亭)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 때 이귀, 김유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 더보기
공항 가는 길 비행기는 경계 밖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먼 거리에서는 당연히 여기와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멀리 날아갈수록 낯섦은 깊어진다. 공항 가는 길은 그곳만의 기후, 자연,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러나 정작 공항 자체는 경계에 머문다. 넓은 활주로를 위해 도심에 들어서지 못하고, 엄청난 소음은 주변으로 정착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도 못한다. 공항에 근무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만 있을 뿐, 일상이 축적되지 못하는 곳. 여기와 저기를 잇는 허브이면서도 스스로는 외따로 존재하는 이방인 같은 존재일 뿐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김신욱은 히스로공항을 이용할 일이 잦아지면서 점점 공항을 둘러싼 주변부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오래전 히스꽃이 만발하던 농지의 대다수.. 더보기
봄 개 요즘 뉴스를 보면 화나고 짜증 나고 고구마를 먹은 듯 꽉 막혀 답답합니다. 한숨 참고 고개 돌려 봄을 바라봅니다. 예쁜 꽃다발을 들고 가는 아저씨도 보이고, 벚꽃처럼 연분홍빛 코트를 입은 아가씨도 보입니다. 학교 가는 길에는 벌써 개나리꽃이 보이고 그 옆을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지나갑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
청동 6각 너트 이 사진은 보통 어른의 키를 훌쩍 넘는 180×225㎝ 크기로 전시장에 걸린다. 대형 프린트의 위압감은 본능적으로 이 대상을 육중한 금속성 물질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패너로 조이는 6각 너트란 구경이 밀리미터 단위이거나 커봤자 엄지손가락 마디 정도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물과 그 사물을 확대시킨 사진의 간극은 생각보다 커서, 시각적 긴장감과 함께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찰을 유도한다. 이렇듯 EH(김경태)가 사진가로서 갖고 있는 관심은 어떤 사물이 품고 있는 본연의 물성이다. 대신 사진을 통해 특정 장소나 시간에 얽힌 기억을 얘기하는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서사가 없는 그의 사진은 차갑고 중립적이면서도, 대상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작가에게 사진은 카메라라는 광학 기계와 분리시킬 수 없는.. 더보기
종이학 몸은 여러 가지 현실에 묶여 어디 가지 못하고 그대로 있지만, 머리와 마음속에선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봅니다. 티브이 속에 보이는 외국의 풍경만 보아도 마음이 설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책으로 여행정보를 찾아보며 여행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 마음속 여행을 떠나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
일감호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위치한 건국대에는 대학을 상징하는 넓은 호수가 캠퍼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호수는 그 면적이 약 2만평에 달해 서울에 있는 웬만한 대학 하나를 다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란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말을 키우던 목장의 습지였는데 습지를 정리하면서 그 물들을 모아 넓은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다. 송나라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한시에 나오는 ‘일감(一鑑)’과 ‘활수(活水)’를 따와 ‘거울같이 맑은 호수’라는 뜻의 일감호(一鑑湖)란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지하철 2호선 건대역에서 내려 정문까지 이르는 길목은 58층 높이의 스타시티를 비롯한 복잡한 상업시설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복잡한 거리를 뒤로하고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드넓고 평온한 일감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호수를 둘.. 더보기
꽃 시절 그때도 세상은 어지러웠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59년, 나라 밖에서는 쿠바가 혁명을 완수했고 바비 인형이 태어났다. 미국 우주선 익스플로러 6호가 우주에서 찍은 최초의 지구 사진을 인류에게 선물하던 그해, 그들 또한 역사적이고 의미심장한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꽃 시절에 친우를 부여잡고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실제 꽃 시절에 주름살 없이 단아한 꽃다운 나이의 인생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이른 봄, 배경 속 흙바닥은 아직 버석거리는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사진 한 장 속에서 설레는 봄기운을 맡는다. 사진가이면서 지역의 시각 자료 수집에도 공을 들여온 전북 전주 서학동사진관의 김지연 관장이 그동안 모은 옛 사진들로 ‘꽃 시절’이라는 전시를 연다. 전시를 위해 사진에 글귀가 남아 있는.. 더보기
꽃 아가씨 입학 시즌이라 꽃을 사러 꽃시장에 갔습니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꽃시장 안에는 다양한 봄꽃들이 따뜻한 봄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활짝 핀 노란색 프리지어도 사고 싶고, 이제 봉오리가 생긴 하얀 히야신스 화분도 사고 싶습니다. 고민 고민하다 예쁜 꽃다발을 샀지만, 정작 입학식 때는 깜빡하고 꽃다발을 집에 두고 와 버렸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
정글짐 어릴 때 학교 운동장이나 놀이터에는 저런 정글짐이 있었습니다. 남자애들은 저기에 올라가서 술래잡기를 했는데 겁 없는 녀석들은 철골 사이를 뛰어다녔고, 겁 많은 녀석은 엉금엉금 두 손과 두발로 기어 다녔습니다.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려 뛰어다니다가 철골을 헛디뎌 다치는 친구도 있었고, 무서워 오도 가도 못하고 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했던 놀이기구였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길을 가다 정글짐에서 노는 애들을 보니 어릴 때보다 더 무서워 보입니다. 이젠 몸집이 커져서 아예 저 정글짐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