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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혜의 그림 친구]디지털세대의 감성 혁명 21세기는 디지털 적응 여부로 세대가 나뉜다. 영화의전당 LED 공모전과 광복 70년 대한민국미술축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디지털아트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김성필(홍익대 3학년)에게 4가지를 묻고 배운다. -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언제 아름다움을 느낍니까? “디지털 매체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그리움-그리고 그 그리움에서 파생되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당장은 만질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때 제 작업에 물성을 부여해 현실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움이 제가 상정한 하나의 유토피아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제 작업이 데이터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재미가 있어요.” - 디지털 세계에서 감정은 어떻습니까? “감정은.. 더보기
안목의 쪽지 추운 날 뜻밖의 소포가 도착했다. 갖고 싶던 필립 퍼키스의 사진집. 미국 사진가 필립 퍼키스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무렇지 않은 대상을 그가 아무렇지 않게 툭 찍는 순간, 눈길을 거둘 수 없는 끌림의 장면이 탄생한다. 여기에 시어에 가까운 그의 글까지 보태지면, 한 장의 사진은 한없이 편안하면서도 무한대로 빨려 들어가는 사유의 장으로 변한다. 그의 사진집을 낸 ‘안목’은 사진가 박태희가 꾸려나가는 1인 출판사다. 그는 유학 시절 필립 퍼키스에게 사진을 배웠다. 이제 둘은 사제지간을 넘어 서로 같은 길을 걷는 사진가로서 우정과 교감을 나누는 사이다. 전시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필립 퍼키스의 매력을 전하는 이 정갈한 책에 예사롭지 않은 쪽지가 딸려 있다. 쪽지가 들려주는, 증정본을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 더보기
왜 얼굴에 집중할까? 얼굴은 얼이 담긴 틀이다. SNS에 수많은 셀카 사진들이 올라온다. 예쁜 얼굴사진을 올릴수록 무수한 ‘좋아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얼굴을 보는 것은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조차 얼굴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초상화의 마력 같은 힘은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사람의 내면을 전달하고 그려서 비춰내는 데에서 나온다. 얼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다. 얼굴 표정은 상대방과 관계맺기에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외로워요’로 보이면 보호본능을, ‘즐거워요’로 보이면 웃음을, ‘화났어요’라고 보이면 두려움을 느낀다. 얼굴에서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전달받아서, 내 마음이 반응에 들어간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지 않고, 예쁜 얼굴.. 더보기
밀착 사진에서 밀착은 확대기를 쓰지 않고, 인화지 위에 필름을 그대로 얹어 얻어낸 프린트를 말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36컷짜리 필름 한 통을 한 장의 프린트로 보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 모니터가 달려있지 않은 필름 카메라의 특성상 밀착은 촬영한 결과물을 처음 육안으로 확인하는 떨리는 순간을 선물했다. 비용과 시간 절감을 위해서도 밀착은 필수였는데, 사진가가 하루에 36컷짜리 필름 10통씩을 찍으며 한 달 동안 여행을 했을 경우 모든 사진을 제대로 인화해서 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밀착은 초점과 노출은 적당했는지 등의 기본적인 상태 점검에서부터 과연 어떤 사진을 골라 남들 앞에 내놓을지를 결정하는 사진 선정의 필수 단계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다수의 대표작들은 그 전후에 찍힌 수많은.. 더보기
[선승혜의 그림 친구]“꿈을 선물하다”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선물은 꿈이다. 겹겹이 쌓인 마음 깊은 곳의 꿈을 심어두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선물이 있을까? 막상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당황스럽다. 행복이라는 모호함으로 대답한다. 과연 이루고 싶은 꿈이 행복인가? 상상의 꿈이 있다. 백제 무령왕(462~523) 무덤의 출토품은 대부분 왕비를 위한 물건들이다. 왕이 그녀에게 보내는 선물들이다. 무령왕의 팔베개와 같이 그녀를 보듬어준 무령왕비의 베개를 본다. 왕비의 베개는 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주칠을 했다. 금을 가늘게 잘라 붙여서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시키는 육각형으로 구획을 나누었다. 그 안에 해, 달, 봉황, 용 등 갖가지 모티프로 세상을 그려 넣었다. 죽음 뒤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긴 여정을 위해 꿈을 선물한 것이다. 베개 좌우에는 두 마.. 더보기
Yes We Cam 감시와 통제 수단으로서의 사진의 역할은 사진의 발명과 함께 예고된 숙명이었다. 사진 발명 직후인 1840년대 이미 파리 경시청의 알퐁소 베르티옹은 범죄인의 식별과 유형학적 분류를 위해 정면과 측면 얼굴을 촬영하는 ‘머그샷’을 고안했다. 1871년의 파리코뮌은 남북전쟁과 함께 사진이 본격적 기록 대상으로 삼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사진으로 인해 수많은 참가자들이 잡혀간 채증 사건의 원조로 꼽히기도 한다. 파리68혁명 당시에는, 시위대가 구타를 당하는 사진이 ‘파리마치’ 표지에 실리자 경찰은 사진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이 채증 목적으로 사용되자 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억울한 목소리들이 광장에서 쉼없이 퍼지는 요즘, 이 감시의 시선들은 훨씬 견고해졌다. 경찰은 아예 채증팀.. 더보기
[사진 속으로]108인의 초상 처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접한 건 1995년에 개봉한 변영주 감독의 영화 를 통해서였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실명으로 희생자임을 밝힌 이래 위안부의 실상에 대한 낮은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던 무렵이었다. 피해자였음에도 마치 죄인인 것 마냥 조용히 웅얼거릴 수밖에 없던 할머니들의 사연은 낮은 소리이니 오히려 더 주의 깊게 들어달라는 묵직한 요청 같았다. 정말 그랬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로 인생이 끝났다’는 할머니의 고백은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어서 점점 더 크게 자라나곤 했다.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더욱 크고 절박하게 공명을 반복했다. 차진현의 ‘108인의 초상’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록한.. 더보기
‘빈자의 미학’을 재론하며 나는 건축가가 본업인데도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저자가 되었다. 뜻한 바도 없었고 모두 어쭙잖은 글로 채운 책들이지만 그중 몇몇은 해외에서 번역 출판되는 민망함을 겪기도 했는데, 급기야 나의 첫 책인 도 중국에서 지난달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나온 지 20년도 지난 이 작은 책을 중국에 소개하겠다는 출판사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지금의 중국에 필요한 글이라고 했다. . 서로 모순되는 듯한 두 단어의 나열로 반감까지 가끔 불러일으키곤 하는 이 제목은, 1992년 가을에 개최된 한 건축전시회에서 선언하듯 뱉은 말이다. 나는 한때 신학을 전공하려 했다. 나는 왜 기독교도인가에 대한 의문이 어릴 적 내내 따라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실한 신자임에도 장남이 성직자 되는 것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에게 걸려 뜻을 이루.. 더보기
하나하나의 마음가짐 떠도는 마음을 잡고 하나에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스마트폰 덕분에 수많은 친구가 생겼을까? 도무지 하나에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다. 수많은 대체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무의식을 끌어당겨서 시간을 쏟게 하는 디지털 놀이판에서 노닌다.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뒤쫓는다. 그나마 곁에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이 이미 떠나버린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 떠남조차 무겁지 않게 자유라고 선언했다. 한국화의 거두 송수남(1938~2013)의 ‘붓의 놀림’(2000) 앞에 선다. 거대한 하나의 붓결마다 응축된 힘에 마음이 멎었다. 하나, 하나, 붓결을 천천히 본다. 결마다 흔들림 없이 곧게 내려오면서도 강압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붓이 종이에 닿을 때, 먹물.. 더보기
마지막 버스 지난가을, 어느 그리스 미술관장을 만났다. 의도치 않았음에도 우리의 얘기는 자꾸만 무거운 주제를 맴돌았다. 그리스의 재정난으로 인해 유럽연합의 지원금을 받아 간신히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는 말끝에 그는 하루하루가 공황 상태라고 했다. 아침에 바닷가에 나가면 난민들의 시신을 발견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는 설명과 함께. 그리스와 터키는 IS의 끔찍한 폭력을 피해 유럽으로 넘어오는 난민들의 관문이다. 그러나 서양 문명의 자존심이었던 그리스는 난민을 보듬을 만큼의 여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목숨이 너무 가벼워지는 현실 앞에서 미술관의 미래를 얘기하기에 그는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스의 상황은 유럽의 오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를 상실한 이들의 탈출 앞에서 가난해진 유럽의 국가들은 자국민 보호를 핑계 삼.. 더보기
멀리 보는 마음가짐 마음이 답답할 때 멀리 보면 좋다. 산에 오르면 멀리 보이기 때문에 등산이 인기가 많다. 산에 올라 멀리 보이는 풍경을 보면, 마음에 쌓이고 맺힌 응어리들이 풀어지는 듯하다. 직접 산에 갈 수 없다면, 산수도를 편다. 작은 산수도라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산에 오른 듯 마음이 풀어지는 효과를 느낀다. 왜냐하면 멀리 보기 때문이다. 이징(1581~?)이 그린 산수도를 편다. 산수도를 멀리 보는 법은 ‘높게 보기’(高遠), ‘수평으로 보기’(平遠), ‘깊게 보기’(深遠)의 삼원법이라고 부른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처럼 중심점을 모아서 보는 원근법과 다르다. 산수도는 멀리 보는 법을 바탕에 둔다. ‘높게 보기’는 자신을 낮추는 마음가짐이다. 산을 낮은 곳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법이다. 높게 올려다보.. 더보기
블록 프랑스 이론가 레지스 드브레는 에서 시각 이미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멸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 시대에 보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을 뜻했으며, 그래서 눈을 감았다와 숨을 거뒀다는 같은 의미였다는 것이다.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갤러리 룩스에서 전시 중인 박찬민의 아파트 작업은 시력을 상실해 가는 도심 주거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만하다. 대도시의 삶을 이야기할 때, 아파트는 이제 단골처럼 등장하는 작업 대상이기는 하다. 그만큼 일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박찬민은 아파트 벽에 새겨진 단지명을 지우는 연작을 소개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아파트 벽에 난 모든 창문들을 지워버렸다. 아파트의 이름이나 창문을 제거해 버리는 그 순간, 그곳은 집.. 더보기
나라의 미학 나의 미감은 나의 땅에서 나온다. 은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한다. ‘나라’라는 단어로 가장 먼저 시작한다. ‘나라’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와 관계가 있다고 직감한다. ‘나라’는 내가 사는 땅으로서,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터전일 뿐만 아니라, 생각과 느낌이 자라나는 문화적 바탕이다. 타자와 다른 나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조선국신사 등성행렬도’는 1711년 조선통신사가 왕의 국서를 가지고 일본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대마도의 번주가 당시의 행렬을 다와라 기자에몬이라는 화가를 시켜 그린 기록화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그림 속에서 조선의 대표사절단임을 보여주는 깃발이 형명기(形名旗)다. 흰색 바탕에 용이 그려진 깃발로 조선의 국왕을 상징해 통신사 행렬의 지휘 깃발이다. 하지만 용.. 더보기
언더프린트 언더프린트는 화폐나 우표 밑바탕에 깔리는 희미한 인쇄다. 그림과 사진을 오가며 작업하는 강홍구는 이 언더프린트에 착안한 작품을 최근 원앤제이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는 서울의 재개발 동네부터 고향인 전남 신안까지를 어슬렁거리다 밑바탕이 될 만한 담이나 길바닥을 사진으로 찍은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벽에 직접 그리는 낙서를 대신해 자신이 찍은 벽 사진 위에 낙서를 한 셈이다. 생선 꼬리가 뒹굴던 길바닥 사진 위에는 생선 머리를, 나뭇가지 그림자 사이로는 참새들을 그려 넣는다. 세월호에 대한 풍자부터 명작 패러디나 짜장면 그림까지 낙서의 종류는 꽤 다양하다. 특히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신기한 시골 마을의 방공 문구 중 ‘간첩’이라는 글자가 지워진 자리에는 연두색의 네이버 검색창을 그려 넣은 유머 감각이 .. 더보기
사랑으로 본 태극함 태극(太極)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태극은 궁극적인 원리와 가치로서 끝없는 무극이다. 태극은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영원성과 무한성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꿈꾸는 무한한 가치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인 사랑이기를 바란다. 태극이 사랑의 극치라는 의미에서 ‘인극(仁極)’으로 부르고 싶다. 역시 사람의 궁극은 사랑이다. 사랑이 무얼까? 조선시대의 작은 백자합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 합에는 태극과 건곤감리가 그려져 있다. 그 문양은 조선시대에 향로나 연적에도 종종 사용되었던 태극과 주역의 상징이다. 그 상징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랑을 묻는다. 사랑은 품이다. 사랑이란 중앙에 음으로 양으로 사람을 아끼는 끝없는 품이 있고, 주변에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우주와 자연이 감싸주.. 더보기
가족과 함께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60대 중반의 네덜란드 작가 한스 아이켈붐. 그는 한때 오후 세 시경, 무작정 가정집의 초인종을 누르곤 했다. 그 시간대에는 남편이나 아빠는 일터로 나가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집에 남겨진 나머지 식구들에게 부탁해 그 집 거실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셀프 타이머를 이용한 그 촬영에서 아빠의 자리는 한스 자신이 차지했다. 설명 없이 본다면 단란하기 그지없는 이 가족사진은 여러 장을 함께 늘어놓고 볼 때에야 비로소 동일한 등장인물이 있음을 가까스로 눈치챌 수 있을 정도다. 이 연작의 제목은 ‘가족과 함께’. 소유격이 생략된 이 제목은 사진의 눈속임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작가는 결코 자신의 가족인지, 친구네 가족인지 정체를 말해준 적이 없기에, 우리들의 길.. 더보기
터무니없는 도시, 터무니없는 사회 오래된 서양 도시들, 예컨대 런던이나 파리, 빈, 프랑크푸르트의 원도심은 2000년 전 로마의 군단 주둔지였다. 이 도시들의 중심지역인 시티지역, 시테섬, 그라벤, 뢰머광장 등이 카스트라라고 불렸던 로마군단 캠프가 설치되었던 곳이며, 군단 주둔이 장기화하면서 그곳을 중심으로 도시가 확장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캠프의 중심 공간이었던 포로나 중심 도로인 카르도, 데쿠마누스 같은 공간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장구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 캠프라는 시설은 필요에 따라 쉽게 설치하고 해체해야 하므로 평활한 땅을 고르는 게 우선이다. 오늘날 대도시로 변모한 이 캠프가 설치되었던 평지라는 지형은 결국 서양인들의 도시에 대한 관념에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으로 발전되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봇물.. 더보기
한국 종이의 ‘참을성과 질김’ 중국 명대 문인화의 거두 동기창(1555~1636)이 맑은 가을날을 소재로 ‘강산추제도’를 그렸다. 그가 이 명작을 완성한 것은 한국 종이의 미감 덕분이다. 동기창은 그림에 “거울 표면처럼 부드러운 한국 종이를 구하여 영감을 받아서 이 그림을 그렸다. 만력황제에게 보내는 종이로, 조선 왕실의 인장이 보인다”라는 글을 써넣었다. 그가 조선의 외교사절단이 중국 황실에 선물한 한국 종이를 구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종이는 ‘고려지’라는 국제 브랜드로 인기가 높았다. ‘강산추제도’에는 기운생동을 얻기 위해 “만권의 책을 읽고, 천리를 여행한다”라는 동기창의 깨달음이 담겨져 있다. 동기창이 추구한 문인의 기운은 무엇일까. 어떤 점에서 한국 종이의 미감과 통할까. 한국 종이의 미감은 참을성이다. 한국 종이는 닥나.. 더보기
완행열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 내에서 완행열차는 여전히 요긴하다. 넓은 대륙의 구석구석을 잇기에 완행열차만 한 것이 없고, 주머니가 가벼운 도시 노동자들의 유일한 귀향길 수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징에서 상하이로 가는 1시간40분짜리 고속철도 1등석 요금이면 완행열차로 중국 국토 여행이 가능하다니 기찻삯이 싸긴 싼 모양이지만, 성수기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기도 한다. 에어컨도, 지정 좌석도 없는 이등칸에서 한여름 80시간을 달렸다는 이야기는 무용담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가난하기로는 이 열차 손님 못지않은 무명의 사진가 키안 하이펑은 4년 가까이 중국 내 거의 모든 완행열차에 올랐다. 호텔에서 수리공으로 일하며 벌어들인 40만원이 채 안되는 월급은 죄다 촬영비로 들어갔다. 지난 23일 밤,.. 더보기
불꽃처럼, 생명처럼 백제 무령왕릉은 왕과 왕비가 1400년 넘게 세월을 함께한 사랑과 축복의 힘이 강하다. 신라의 황남대총을 보면 부부가 북분과 남분에서 각각 떨어져 세월을 보냈지만, 백제의 무령왕은 벽돌무덤을 짓고 왕비와 한곳에 묻혔다. 무엇이 더 좋은지 알 수 없으나, 역시 무령왕과 왕비의 금슬은 부럽다. 백제 무령왕은 불꽃 같은 힘과 풀꽃 같은 생명력을 준다. 무령왕과 왕비의 금관에는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힘과 풀꽃처럼 피어오르는 생명이 담겨 있다. 백제의 불꽃 같은 아름다움은 신라 금관이 보여주는 나뭇가지의 직선미와 사슴뿔의 힘과 다르다. 백제와 신라의 오묘한 미감의 차이는 우리 문화에 다양한 기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령왕의 금관은 불꽃이다. 금관의 화염이 유연한 곡선미로 솟아오른다. 왕의 금관은 화염이 자유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