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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714건

  1. 2018.07.09 뾰족한 상대성
  2. 2018.07.06 장면의 단면
  3. 2018.07.06 생각 그리고 행동
  4. 2018.07.05 양주향교
  5. 2018.06.29 지지와 규탄
  6. 2018.06.29 휴가
  7. 2018.06.22 날다
  8. 2018.06.22 빌보드 별곡
  9. 2018.06.21 가나아트파크
  10. 2018.06.18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11. 2018.06.15 잊힐 기억
  12. 2018.06.15 내 마음 깊은 곳
  13. 2018.06.11 분노
  14. 2018.06.08 시선의 갑질
  15. 2018.06.08 외모
  16. 2018.06.07 장욱진미술관
  17. 2018.06.04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18. 2018.06.01
  19. 2018.06.01 분노의 거리
  20. 2018.05.28 형세

10여년 전, 기술 덕분에 아주 빠른 속도로 정보, 지리, 경제, 문화, 정치의 벽이 무너지고 있으므로, 세계는 평평할 뿐 아니라 더욱 평평해질 거라고 한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그는 평평한 세계에서 경쟁자들은 공평한 기회를 획득하고, 가치는 수평적으로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 분야의 경쟁은 평등해질수록 치열해질 테니까, 개인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어떤 학자들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세상의 면면을 언급하면서 세계는 둥글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하다고 했다.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상대성, 1953, 판화, 282×294㎜

 

130여년 전, 에드윈 애벗은 2차원의 납작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플랫’한 세상 속에 사는 이들은 직선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신분이 높을수록 오각형, 육각형 등 더 많은 각을 갖고 있었고, 신분에 따른 꼼꼼한 차별이 플랫랜드 전역에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위치는 상승해도 여전히 작동하는 경직된 계급사회의 프레임 안에서 갑갑증을 느끼던 이들은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희망을 꿈꾸었다. 하지만 자신이 갇혀 있는 ‘차원’에서 벗어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60여년 전, 에셔는 3개의 공간 차원과 1개의 시간 차원을 가진 시공간 구조를 상상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납작한 화면에 그려 보았다. 여러 개의 중력장이 공존하는 평면 안에서, 누군가에게는 수직이 누군가에게는 수평이 되는 장면을 프레임 밖의 이들은 조망한다. 평면 속에서 각자의 중력에 기대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를 알아차릴 수 없을지 모른다.       

 

에셔의 ‘상대성’에서,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세상, 다름이 공존해야 하는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이들의 목소리는, 납작한 스크린들과 함께하느라 우리의 세상이 사실은 요철투성이임을 깜박 잊곤 하는 나에게 뾰족한 가르침을 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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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오래된 것이 허물어지고, 순간 새로운 것이 자리잡는 도시의 역사는 깊다. 그러한 변화의 파도에 따라 순간 오래된 세대가 밀려나고, 순간 새로운 세대가 밀려드는 도시의 층위는 넓다. 이처럼 깊고 넓기에 인간의 맨눈으로 도시의 역사와 층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얇고 납작한 사진의 표면 안에 도시를 가둘 때, 그렇게 기계의 눈을 빌리면 깊고 넓은 도시의 단면이 한눈에 잡히기도 한다. 물론 찍은 사람도 보는 사람도 도시를 면밀하게 관찰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뉴타운 시리즈, 2014~2015 ⓒ이재욱

 

사진가 이재욱의 ‘뉴타운’(2014-2015) 연작 중 한 작품은 도시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경에는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드는 건설 현장이 보이고, 그 뒤로는 오래된 주택가의 저층 건물이 보인다. 또 뒤로는 십수 년 전쯤 건설되었을 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최근에 지어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보인다. 마치 겹겹이 싸인 퇴적층에서 각기 다른 시대의 화석을 발굴하듯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도시를 이루는 서로 다른 역사와 층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찍은 이의 면밀한 관찰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은 보는 이 역시 함께 관찰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관찰은 사유를 촉발시킨다. 그동안 지나쳤던 장면의 단면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가 알던 또는 몰랐던 도시에 관하여.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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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27×14㎝)

 

머릿속에선 항상 생각을 합니다. 멋진 아이디어가 막 떠오릅니다. 기억해 놓기도 하고, 메모해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놓고 귀찮아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생각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 저거 내가 생각했었던 건데 저 사람이 먼저 해버렸네….” 늘 후회만 합니다. 머릿속 생각들을 가지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면, 전 지금 유명하거나 부자가 되었을 거 같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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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양주시청에서 파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98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1.5㎞ 정도를 달리면 우측에 양주시가 자랑하는 문화유산 세 곳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로 최근에 복원을 마친 양주관아가 도로에서 곧바로 눈에 띈다. 나지막한 담장 가운데 누각이 있는 커다란 외삼문이 양주관아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두 번째는 관아 우측에 위치한 국가무형문화재인 양주 별산대놀이 놀이마당이다. 둥근 지붕 위로 마스트들이 뾰족뾰족 올라와 있는 독특한 조형을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이 놀이마당의 우측에 위치한 양주향교이다. 450년이란 긴 세월을 지켜온 커다란 느티나무와 이 나무 가지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전통건축물의 모습이 멋진 구도를 연출해 낸다.

 

 

조선시대 이 지방의 중등 교육기관이었던 양주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01년)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이후 1610년에 재건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또다시 소실되자 유림들의 노력으로 지난 1984년에 옛 모습이 복원되었다. 입구의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너른 뜰 중앙에 팔작지붕을 한 명륜당이 자리하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강학공간이다.

 

대체로 명륜당 좌우에는 유생들의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양주향교에는 동재와 서재가 없다. 그 대신에 수령 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좌우에 한 그루씩 대칭으로 자리 잡아 배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명륜당 뒤쪽에는 제향공간이 있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공간구성이다. 제향공간을 출입하는 내삼문은 문 3개가 서로 떨어져 있어 일반적으로 3개의 문이 하나로 되어 있는 형식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제례가 있을 때 사람들은 혼이 다니는 문인 중앙문은 이용하지 않고 동쪽 문으로 들어가서 서쪽 문으로 나온다. 닫혀 있는 내삼문 옆쪽의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안쪽을 둘러본다. 안쪽 끝 중앙에 맛배지붕 형식의 대성전이 위엄있게 자리 잡고 있다. 여러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이 향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대성전 앞쪽에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는 건물인 동무와 서무가 좌우로 대칭으로 배치되어 제향공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명륜당으로 눈을 돌리니 문들이 활짝 열려 있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홍보자료를 보니 주말마다 이 공간에서 다도와 전통을 익히는 강좌가 이루어진단다. 문득 무더운 여름날 오후 고목들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서 차 한잔을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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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지지자들 근처를 행진하는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 참가단. 1987·12·12 ⓒ박용수

 

1987년 12월12일, 앰배서더 호텔과 태극당이 보이는 동국대학교 정문 앞 도로. 사람들의 행렬이 줄지어 있다.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사람들은 같은 무리로 보이지만, 크게 두 부류로 갈라진다. 한쪽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종필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 그리고 다른 쪽은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 참가자들로 김종필 후보의 유세 활동을 방해했다.

 

당시 13대 대통령 선거전 초반에 12·12 사태가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12·12는 노태우를 비롯한 일부 정치군인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혀 일으킨 반국가적, 반민주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그런데 12·12의 전철은 5·16이며, 김종필은 5·16의 주역이기 때문에 규탄의 대상은 노태우와 김종필이 서로 겹쳐진다. 한 장의 사진 안에 김종필을 지지하는 이들과 그를 절대 지지할 수 없는 이들이 공존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한 인물을 향한 상반된 반응은, 지난 23일 김종필 별세 후 논란 중인 서훈 문제의 입장 차이를 상징하는 것 같다. 흔히 김종필에게도 분명한 공과가 있고,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부당하게 훔친 권력에 기반했다면, 공이든 과이든 장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장물이 좋다고 해도 훈장까지 줄 수는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으로 무엇을 했는가보다 권력을 어떻게 획득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5·16과 12·12 같은 군사 쿠데타는 반복될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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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28×56㎝)

 

휴가를 떠납니다. 일상에서의 복잡한 생활은 잠시 멈춰두고 재충전을 위하여 떠나봅니다. 그러나 재충전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낯선 환경과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더 피곤을 느끼고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떠나봅니다.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또 다른 나를 찾으러 떠나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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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연필(25×25㎝)

 

내 곁에 있었던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날아봅니다. 장난감 병정과 뒤뚱거리는 로봇, 그리고 푹신한 곰돌이 인형까지.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마음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훨훨 날아봅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바람 따라 날아봅니다. 그렇게 날아가다 보면 지구는 둥그니까 온 세상 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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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가, 도로에서 운전 중에 스쳐지나가는 옥외광고판은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 풍경의 한 부분처럼 자리잡았다. 언제나 도시 풍경 속에서 배경처럼 묻혀 있던 옥외광고판이 카메라 앞에 정면으로 나타나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빌보드 별곡, 서울, 2015 ⓒ조재무

 

사진가 조재무의 연작 ‘빌보드 별곡’은 전국 각지에서 옥외광고판을 촬영한 것이다. 지하철 입구의 작은 광고판에서 거대한 빌딩 옥상의 대형 광고판까지 각양각색의 옥외광고판을 모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모두 광고가 없는 빈 광고판이라는 것이다. 텅 빈 여백만 가득하거나 ‘광고 문의’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남은 옥외광고판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왠지 초라해 보인다.

 

옥외광고는 고대 이집트에서 노비매매를 위한 공고로 사용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 간판광고로 추정되는 것이 발굴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기금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평균 20% 이상 성장을 지속했던 옥외광고는 경제 불황과 매체효과에 대한 근거자료의 부족으로 기피하게 되었다. 이처럼 경제 호황과 고성장의 상징이었던 옥외광고판이 불황과 저성장의 지표로 전락한 장면은 씁쓸하다. 옥외광고판을 증명사진 찍듯 담아낸 ‘빌보드 별곡’은 침체된 우리 현실의 증명사진이기도 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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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양주시 장흥 골짜기 초입에 들어서면 ‘장흥문화예술특구’라는 커다란 도로표지판이 시선을 가득 채운다. 특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문화예술시설들 가운데 이 골짜기의 정체성을 결정짓게 한 곳은 초입에 있는 가나아트파크일 게다. 1984년 가나아트파크의 전신인 토탈미술관이 문화예술공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골짜기에 자리 잡았다. 이 미술관은 1980년대에 많은 젊은 연인들이 기차를 타고 장흥역에서 내려 즐겨 찾던 곳이다. 다양한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커피숍에서 마음에 드는 머그컵을 골라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빈 머그컵을 자신이 가지고 오는, 재미있는 추억을 간직하게 하는 교외의 미술관이었다. 2006년 이 미술관을 가나아트센터가 인수하게 된다. 가나아트센터는 이 미술관 명칭을 장흥아트파크로 바꾸고 일본인 건축가 우치다 시게루에게 마스터플랜과 건축물들의 디자인을 맡겼다. 또한 주위에 있는 모텔들을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개조했다. 평창동 가나아트와 인사아트센터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장 미쉘 빌모트의 손을 빌려 리모델링한 2개의 아틀리에에 많은 작가들을 입주시켜 창작활동을 지원해 왔다. 이러한 아트파크의 노력은 양주시로 하여금 이 골짜기에 시립장욱진미술관이 들어서게 하고 모텔을 리모델링해 작가들의 스튜디오로 개조한 ‘777레지던스’도 탄생케 했다. 아트파크와 양주시의 노력으로 문화예술공간들이 주변에 더욱 늘어나면서 2008년에는 이 골짜기 전체가 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된다. 2015년 장흥아트파크는 가나아트파크로 다시 명칭이 바뀌었는데 결국 토탈미술관과 가나아트파크가 이 장흥 골짜기 전체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정착시키는 핵심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골짜기로 이어지는 2차선의 도로 왼쪽에 있는 흰색 별모양의 텐트구조물이 시선을 끈다. 파크로 들어서면 유명 조각 작품들이 너른 잔디 마당 곳곳에 펼쳐져 있다. 녹음이 짙게 깔린 잔디와 숲을 배경으로 흑색, 청색, 적색, 노랑색, 그리고 야외공연장의 백색 구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오방색을 연상케 하는 색상의 건축물들이 조각 작품처럼 세워져 있다. 극도로 절제된 직육면체 형태에 원색의 색채로 의미를 함축한 미니멀리즘 그 자체다. 건물의 용도는 다양한 어린이 미술관이나 어린이 놀이터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이 찾는다. 반 시게루가 디자인한 텐트 구조인 야외공연장의 별모양 형태가 모더니즘의 건축물과 멋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기차 레일 위에 열을 지어 있는 머리 없는 인체 조각들과 원색의 입방체 건축물이 묘한 조화를 보이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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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생명을 위협하는 날. 건물이 허물어지는 날. 다리가 무너지는 날. 배가 가라앉는 날. 그런 날들이 올 것을 누가 알았을까. 전조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균열은 사소하게 출발하고, 균열은 마치 처음인 양 반복되었다. 부조리를 인내하는 날들의 끝에 있는 것은 절망이었다.

 

송주원,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2017, 댄스필름

 

2016년 겨울을 광화문에서 보내며 송주원은 인간의 안일한 태도가 이 사회에 큰 사건과 상처를, 위험과 공포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는 가운데,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시인 김수영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작가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나의 삶에서 ‘반성이라는 것’을 언제 했던가. 제대로 한 적은 있던가.

 

절망의 날들을 보내던 그해 겨울, 작가는 이 질문을 안고 작업을 시작했다. 김수영의 시 ‘절망’의 시구를 모티브로 한 여성의 하루를 풀어놓은 댄스 필름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은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조망하여 일상의 반성과 절망에 대한 질문을 몸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이었다.

 

한없이 ‘일상적’인 하루 일과 속에, 귀신과 함께하는 판타지적인 순간들이 섞여 들어가는 가운데, 작가는 주인공이 퇴근 후 식탁에 앉아 마시는 와인병에 ‘킬러’를 써넣고, 곳곳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TV에서는 이제 탄핵된 대통령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에 미소 지으며 인터뷰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주인공은 손으로 삶은 계란을 부수며 ‘분노’를 표출했고, 주인공과 ‘동거’ 중인 귀신들은 정신없이 달력을 찢어 넘기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때만 해도, 세상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작가는 절망의 끝에서 ‘구원’의 순간을 만난 이들 앞에, 끝까지 반성하지 않을 이들 앞에,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현실의 절망과 희망의 역설을 내놓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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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아래 대규모 인파가 운집했다. 옹기종기 모여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 떼 같다. 그들은 일제히 중앙에 자리잡은 흰색 연단을 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 것일까?

 

6·25 반공궐기대회에 참석한 서울시민들. 1974·6·25 경향신문사

 

사진을 확대해 보면, 연단에 ‘상기하자 6·25’라고 쓰여 있다. 그 위에 ‘6·25 반공궐기대회’라는 문구도 보인다. 1974년 6월25일 오전 10시, 6·25를 맞아 한국반공연맹 주최로 북한의 대남적화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6·25 반공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여의도 5·16광장에 무려 백만 인파가 몰렸다.

 

이제 남북 정상, 북·미 정상이 차례로 만나서 악수를 나누는 마당에 반공의식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을 반공궐기대회에 강제 동원했던 시절이다. 유시민의 &lt;나의 한국현대사&gt;에 따르면 “반공백일장을 하고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짓고 반공웅변대회와 반공궐기대회를 하면서 자랐다”고 회상하는 시대다. 또 “옆집에서 오신 손님 간첩인지 다시 보자”라는 당시의 반공표어를 미루어 보면, ‘평범한 시민들이 이웃을 간첩으로 의심하도록 권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반공을 궐기하고, 반공을 권하던 옛 세상은 북한 인공기와 미국 성조기가 보기 좋게 어울리는 시절 앞에서 민망한 기억으로 잊힐 것이다. 아직도 반공으로 표를 모으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어느 정당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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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61×72㎝)

 

겉모습은 이제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내가 있습니다. 힘들 때, 즐거울 때, 그냥 생각이 날 때, 한 번씩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꺼내 봅니다. 이런저런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어 갑니다.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엔 내가 원하면 언제나 찾아오는 행복한 내가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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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이유는 감정이 아니라 참여의 의지라고 했다. 분노를 단념하지 않아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분노해야 행복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일상의실천,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2016, 파이프 설치, 1500×1500×3600㎜ ⓒ일상의실천

 

그는 아낌없이 분노했다. 운전기사, 경비원, 가사도우미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쏟아내며 분노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병명을 내세우니 그들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그는 포스터 속 여성의 눈빛에 분노했다. ‘더럽고’ ‘개시건방지고’ ‘찢어버리고 싶은’ 눈빛을 파내니 그들이 분노했다. 그는 계산하는 편의점 직원에게 분노했고, 느리게 가는 장애인에게 분노했고, 뛰어노는 어린이에게 분노했다. 단식하는 정치인에게 분노했고, 토론하는 도지사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그는 최저임금 인상에 분노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인은 분개했다. 설렁탕집 주인에게, 야경꾼에게, 이발장이에게 분개하고 반항했다. 이내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문장으로 시를 지었다. 

 

디자이너 그룹 일상의실천은 김수영의 이 시구로 조각을 만들어 한옥 마당 한가운데에 세웠다. 시구는 식수와 오물이 동시에 관통하는 배수관으로 만들었다. 파이프를 절단하고 다시 이어 붙여 만든 시구의 미로 속으로 분노의 명분과 배설의 쾌감이 뒤엉켜 흐를 터였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조그마한 일’에 분노한다고 했다.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분노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 배수관에 부조리한 사회를 향하지 못하는 ‘외적 분노’와 ‘내적 자조’를 동시에 실어 나르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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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된 선거 포스터의 원본이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를 찍은 이 사진은 패션 사진가 김현성이 촬영했다. 이 사진 위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문구를 더하고 배경을 녹색으로 바꿔 선거벽보가 완성됐다.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당당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는 호응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불편하다는 시선도 있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벽보에 사용된 사진. ⓒ김현성

 

그중에서 박훈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격렬한 반응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진” “찢어 버리고 싶은” 등의 표현을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만 놓고 보면, 그런 격한 반응이 수긍될 정도로 도발적이지 않다. 상반신에 반측면 얼굴을 담은 전형적인 인물사진으로, 우리가 평소 자주 접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선거벽보 사진은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기 위해 친근감과 자신감을 어필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이 비춰지는 포즈나 눈빛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진 또한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사진을 두고도 각자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에 대고 공손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탐탁지 않다. 왜 사진마저 공손해야 하는가? 사진 속 인물이 어린 여성 후보이기 때문에? 또는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이 중년 남성 변호사이기 때문에? 전자라면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시선, 후자라면 시선의 권력에 의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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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24×32㎝)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모두들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씁니다.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한 일상이 매일 올라옵니다. 커피를 마시고, 쇼핑한 것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 사진과 멋진 휴양지 사진을 올립니다. 멋지게 꾸미고 연예인처럼 사진을 찍습니다. 모두들 부러워하며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사람을 현실에선 만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자기 자신을 현실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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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도로 송추IC에서 내려와 고양시 방향으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우측에 장흥계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난다. 잠시 직진을 하면 ‘장흥문화예술체험특구’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판이 도로 위로 불쑥 드러난다. 이름에 걸맞게 청암민속박물관, 장흥아트파크, 송암스페이스센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흥조각공원, 장흥조각아틀리에, 장흥자생수목원 등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1984년 이 골짜기 초입에 지금의 가나아트파크의 전신인 토탈미술관이 처음 자리를 잡았다. 전원에 넓은 부지를 활용한 토탈미술관의 조각공원 덕분에 장흥은 단순한 계곡을 낀 유원지 차원을 넘어 예술과 낭만이 넘치는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를 찾으면서 주변에는 다양한 카페와 먹거리, 즐길거리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에 편승하여 모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자 이곳은 점차 예술적 이미지가 퇴색되어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아들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의식있는 사람들과 양주시에서는 아름다웠던 1980년대의 향기를 되살려 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모텔들을 매입해 작가들의 스튜디오로 개조하고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 시설들을 이곳으로 유치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08년 장흥은 문화예술체험특구로 지정되었고 2014년 건립된 시립장욱진미술관은 이 문화예술특구의 거점공간이 되었다.

 

골짜기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장욱진미술관은 화가 장욱진(1917~1990)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욱진은 박수근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이다.

최-페레이라 건축(최성희, 로랑 페레이라)에서 설계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디자인하였다 한다. 건물의 내외부가 모두 백색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지상에서 보면 극도로 절제된 형태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다보면 길다란 2개의 매스가 사선으로 서로 엉켜 꼬여있는 추상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예각과 둔각을 사용한 절곡된 평면은 외부에서 보이는 잔잔함과는 대조적으로 강한 역동성을 불러일으킨다.

 

2014년 ‘김수근 건축상’, 영국 BBC ‘2014 위대한 8대 신설(new) 미술관’, 한국건축가협회의 ‘2014 올해의 베스트7’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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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뉴욕에 체류하고 있었던 대만 출신 작가 테칭 시에는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살고 있던 맨해튼 아파트에 출퇴근 기록기를 설치한 뒤 매시 정각에 출근카드를 찍고, 기계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잿빛 유니폼 차림이었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기록하던 이 기계는 예술가의 예술 활동을 냉정하게 관리 감시한 끝에 예술 작품이 되었다.

 

테칭 시에(Tehching Hsieh), 일 년의 퍼포먼스 1980~1981, 편지, 사진, 시계, 16㎜ 필름, 유니폼 ⓒ 테칭 시에

 

이 퍼포먼스는 1980년 4월11일을 시작으로 1년간 이어졌다. 365개의 펀치 카드, 365개의 필름 스트립이 쌓였다. 삭발한 채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그의 머리는 장발이 되었다. 1년간 그는 50분 이상 아파트를 떠날 수 없었다. 50분 이상 잠들 수 없었다. 1년은 8760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133장의 순간은 기계의 오류로, 인간적인 오류로 놓쳤다. 그가 기록한 1년의 초상은 6분의 타임 랩스로 정리되었다.

 

테칭 시에는 거대한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대던 시시포스를 언급했다. 형벌처럼 반복되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 출근카드를 펀칭해야 하는 다음 시간을 기다렸다. 1초의 어긋남도 없이 정해진 임무를 마친 후 곧바로 다음 시간을 준비했다. 그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단조로운 노동을 반복하며 그는 철저하게 시간을 소비했다.

 

열심히 살든, 게으름을 피우든, 창의적으로 사고하든, 진부한 패턴을 반복하든 시간은 흘러갔다. 그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시간이 멈출 일은 없었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없었다. “나는 예술계가 나에게 기대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출구, 이것이 나의 자유다.” 그는 이렇게 말했지만 시간을 낭비한 끝에 그는 ‘예술 작품’을 완성하고 말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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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의 생각그림

나무에 아크릴펜(34×25㎝)

 

모두들 자기만의 집을 원합니다. 초록 잔디가 깔린 마당에 높다란 지붕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들. 그리고 일층은 거실과 부엌, 이층은 침실과 작업실, 천장에 달린 창문으로 하늘이 보이는 다락방은 아이들 방, 넓은 앞마당에선 아이들과 강아지가 뛰어놀고, 뒷마당엔 다양한 채소가 자라고 있는 집. 상상만으로는 참 멋진 집이지만, 현실에서는 모두들 학군과 교통, 환경 좋은 곳에 있는 집을 원하고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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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다. 어느 한국인이 프랑스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열심히 일했다. 누구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스스로 야근까지 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몸에 밴 습관 탓이리라. 이를 지켜보던 동료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얻어낸 우리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어.”

 

민주노조 인정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울산의 거리를 가득 메운 현대그룹 7개 계열사 노조원들. 1987·8·18 경향신문사

 

 

프랑스 동료의 말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날 ‘1일 8시간’ 노동 환경이 마련되었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 덕분에 지금 당연하게 요구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실현된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법 개악이 매우 씁쓸한 이유는 그동안 치열한 투쟁으로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가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노동자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파인텍 노조원들은 굴뚝 위에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며,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장 일가의 횡포에 맞서 촛불을 들고 있다. 또한 KTX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이 달린 재판이 정권을 위해 거래됐다는 의혹도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또 다른 한편에선 악화 중인 노동 환경을 목격하면서 묵직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울산에서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가두시위를 벌인 그들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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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피슐리·다비드 바이스(Peter Fischli and David Weiss), Der Lauf der Dinge(The way things go), 1987, 16㎜ 컬러, 필름 ⓒ이카루스 필름

 

인간계는 복잡하다. 쉬운 길을 어렵게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찌나 얽혀 있는지, 하나의 에피소드가 엉뚱한 곳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미국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1883~1970)는 아주 간단한 일도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다룬 만화로 인기를 끌었다. 생김새도, 작동원리도 한없이 복잡하고 심오해 보이지만, 결국 하는 일은 냅킨을 흔들거나, 우산을 펼치거나, 등을 긁는 정도다. 효율성 제로의 ‘골드버그 장치’를 고안해, 복잡하게 머리 굴리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풍자한 그는 원자폭탄의 위협을 다룬 카툰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가 고안한 비효율적 기계는 “최소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비판하면서 등장했지만, 그의 의도는 살짝 빗나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간들은 단순한 목적을 위해 복잡하게 움직이는 장치들을 만들었고, 골드버그 장치 구현 대회까지 열어 자신의 ‘창의력’을 과시했다.

 

골드버그 장치는 예술가에게도 작업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듀오 작가 피슐리와 바이스는 골드버그 장치처럼 작동하는 작품 ‘상황이 흐르는 방식’을 발표했다. 실을 따라 타들어가던 불꽃이 타이어를 잡고 있던 선에 닿자 그 선이 툭 끊어지며 타이어는 앞으로 굴러간다. 타이어는 드럼통을 치고, 드럼통은 초를 건드리고, 촛불이 바닥에 쏟아진 기름에 닿고, 기름의 불길이 짚단을 태운다. 무대에 오른 사물들은 마치 스스로 동력을 가진 양 구르고 뒤틀리고 넘어지고, 불타오른다. 작가는 작은 불꽃에서 출발한 일련의 연쇄 작용을 통해 시스템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상황을 풍자했다. 작가의 의도는 그랬지만, 의도가 빗나갈지도 모른다는 건 예측가능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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