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제색
‘미장산.’ 그곳에는 나무가 있고, 길이 있다. 물과 바람이 부지런히 산세를 스치니, 봉우리는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우거진 푸른 숲, 길게 솟은 나무며 바위 틈새로 청명한 기운은 고요히 가라앉고, 계곡 위로 시선을 내린 ‘보는 자’는 흐르는 물에 마음을 잃는다. 이제는 ‘숲에 내린 달빛에 가야 할 길을 물을 때’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도로에서 배종헌은 몇 개의 터널을 지났을까. 흙이며 회, 시멘트를 바르는 미장이의 손길이 만들었을 벽, 천장, 바닥, 그 터널의 표면에 들러붙은 ‘먼지’, 시멘트의 균열이 눈에 들어와 풍경이 되던 날, 풍경을 지나 ‘산수’가 되던 날, 어쩌면 그의 눈은 아무것도 안 보았을지 모른다. 뇌는 생각을 멈추었을지 모른다. 뚜렷한 대상을 향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열려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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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근체조
혀의 움직임은 당신의 표정을 바꾸고, 턱선을 바꾸고, 얼굴형을 바꾼다. 몸짓을, 말투를, 음색을, 발음을, 어쩌면 마음의 위치를 바꾼다. 유연한 세치 혀라면, 당신 아닌 타인의 마음마저 능숙하게 움직인다. 혀가 제자리에 놓이지 않는다면, 운동성을 과시하면서 어설프게 움직인다면, 그 혀는 당신의 치열을 밀어내고, 구강구조를 망가뜨리고, 숨쉬기마저 방해할 것이다. 그런 혀일지라도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을 보겠고, 말을 쏟아 내겠고, 타인의 마음을 유린할 테지만, 그런 혀는 마침내 당신의 턱관절을 비틀고, 얼굴의 윤곽을, 몸통을 뒤틀고 말 것이다. 어느 날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윤정은 혀뿌리를 움직여보던 중, 혀근육이 턱근육, 심장근육, 전신으로 뻗어 있는 온갖 근육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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