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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사실 인간에게는 공감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경험하는 육체적 통증을 나는 느낄 수 없으며, 타인의 행복, 슬픔의 감정 역시 그저 상상할 뿐 정확히 그의 느낌에 닿을 수는 없다. 만일 내 경험이 축적한 느낌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타인의 감정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사치의 ‘느낌’을 찾아냈다면, 그래서 내가 상대를 향해 표현한 공감의 제스처가 타인의 마음에 닿았다면, 그때 우리는 공감했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말 공감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서로의 느낌에 닿지 못한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황수현 연출로 세 명의 퍼포머가 둥글게 모여 앉은 관객 사이에서 1시간가량 펼친 퍼포먼스는 세번째 날의 분위기가 가.. 더보기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여러분, 환영합니다. ‘더 스크랩’은 한국의 창작자들로부터 홍콩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사진/이미지를 전달받아 출력하고 전시합니다.” 2016년, ‘사진을 보는 일, 생산하는 일, 유통하는 일에 대한 고민과 의문’으로 출발한, 일종의 사진 유통 플랫폼 ‘더 스크랩’은 이미지 외에 어떤 정보도 없이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 같은 크기, 같은 재질의 사진 가운데 취향에 따라 사진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예술품 유통의 현실뿐 아니라, 이 시대의 젊은 감각, 청년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문제의식도 이끌어냈던 이 기획은 이제, 서로 교류하고 취향을 확인하는 경험에서 더 나아가 이미지를 통해 각자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고, 세상과 연대하는 경험의 장을 만들면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홍콩 바깥의 우리.. 더보기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펠리체 바리니가 도시 곳곳, 그러니까 건물 바깥의 길, 벽, 지붕, 유리창, 아니면 쇼핑몰이나 사무실 내벽과 천장, 복도에 기하학적인 패턴을 그려넣은 것은, 사람들을 모두 어떤 단 하나의 자리에 세우고, 단 하나의 장면을 목격하게 만들어서 그들의 감탄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물론 작가가 설정해 둔 어떤 위치를 찾아 그곳에 선 자는, 공간 곳곳에 흩어져 있던 페인트 자국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는 꽤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별 의미 없이 조각난 듯 보이던 색면이 마법처럼 하나의 형태로 모이는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관객은 3차원 공간이 그 패턴으로 인해 입체감을 상실하고 평평해 보이는 경험을 한다. 작가는 그렇게 관객들이 건축과 도시를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단다. 그러나, 작가는.. 더보기
기억저장소 이제, 우리의 기억은 대체로 온라인에 있다. 뮤지션 양준일에 대한 정보는, 그가 에 나와 이슈몰이를 하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온라인을 떠다녔고, 사람들은 20년 전 영상 속 그의 모습을 ‘시간여행자’라 호명하면서, 바로 그 시절을 살았던 나의 기억과 시간에 접속했다. 유튜브에서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부틀렉 음원을 발견한 작가 마크 레키는, 1979년 그의 나이 15세, 리버풀의 클럽 ‘에릭’에서 이 밴드의 공연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밴드가 그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날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게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음원은 그의 15세를 환기시켰다. 어느 정도 희미해진 그의 기억들이 온라인에 있었던 셈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반기를 ‘온라인 .. 더보기
미장제색 ‘미장산.’ 그곳에는 나무가 있고, 길이 있다. 물과 바람이 부지런히 산세를 스치니, 봉우리는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우거진 푸른 숲, 길게 솟은 나무며 바위 틈새로 청명한 기운은 고요히 가라앉고, 계곡 위로 시선을 내린 ‘보는 자’는 흐르는 물에 마음을 잃는다. 이제는 ‘숲에 내린 달빛에 가야 할 길을 물을 때’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도로에서 배종헌은 몇 개의 터널을 지났을까. 흙이며 회, 시멘트를 바르는 미장이의 손길이 만들었을 벽, 천장, 바닥, 그 터널의 표면에 들러붙은 ‘먼지’, 시멘트의 균열이 눈에 들어와 풍경이 되던 날, 풍경을 지나 ‘산수’가 되던 날, 어쩌면 그의 눈은 아무것도 안 보았을지 모른다. 뇌는 생각을 멈추었을지 모른다. 뚜렷한 대상을 향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열려 있던.. 더보기
삶은 예술은 바나나 토마스 바움가르텔은 1986년부터 미술관 외벽에 스프레이로 바나나 그라피티를 남겨왔다. 한 예술가의 이 ‘비공식적인 인증’ 행위는 ‘가볼 만한’ 예술공간의 표식으로 인정받으며 퍼져 나갔다. ‘바나나’의 ‘보증력’은 세월이 흐르며 퇴색된 감이 있지만, 덕분에 ‘예술 인증’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의문은 커진다. 1967년 앤디 워홀은 적당히 잘 익은 ‘바나나’ 그림을 넣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재킷을 디자인하고는 ‘천천히 벗겨보시오’라고 적어넣었다. 바나나 그림을 벗겨내자, 그 안에서 핑크빛 바나나 알맹이가 등장했고 그의 작업은 ‘외설’ 이슈를 낳았다. 바나나 가격 폭락의 이유를 알기 위해 그 생산·유통 과정을 추적하던 함경아는, 필리핀에서 바나나 대량재배로 땅이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는 2006년 발표.. 더보기
아직은 헛기술 ‘불안정한 작업환경과 레지던시의 입주로 잦은 이사를 겪으며 점차 도심을 벗어난 외곽지역을 탐색하던’ 이정민은, ‘목적지가 없어야 산책’이라며 소소하게 나선 길,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을 거다. 노트에 옮겨 두었다던 ‘1839년에는 산책 나갈 때 거북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우아해 보였다. 이것은 아케이드를 어떤 속도로 산책했던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발터 베냐민의 문장을 떠올리기 좋았을 거다. ‘내일의 내가 어디에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는 미래로부터 나의 존재를 다른 위치에 놓는 방법’인 산책은 그저 몸만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었다. ‘변변치 못한 공터와 주변의 작은 숲, 덤불들 주위를 걸으며, 도시도 아니고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자연 아닌 것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것도 아닌 주변부의 풍경들이 변.. 더보기
설근체조 혀의 움직임은 당신의 표정을 바꾸고, 턱선을 바꾸고, 얼굴형을 바꾼다. 몸짓을, 말투를, 음색을, 발음을, 어쩌면 마음의 위치를 바꾼다. 유연한 세치 혀라면, 당신 아닌 타인의 마음마저 능숙하게 움직인다. 혀가 제자리에 놓이지 않는다면, 운동성을 과시하면서 어설프게 움직인다면, 그 혀는 당신의 치열을 밀어내고, 구강구조를 망가뜨리고, 숨쉬기마저 방해할 것이다. 그런 혀일지라도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을 보겠고, 말을 쏟아 내겠고, 타인의 마음을 유린할 테지만, 그런 혀는 마침내 당신의 턱관절을 비틀고, 얼굴의 윤곽을, 몸통을 뒤틀고 말 것이다. 어느 날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윤정은 혀뿌리를 움직여보던 중, 혀근육이 턱근육, 심장근육, 전신으로 뻗어 있는 온갖 근육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혀.. 더보기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멕시코만 바다에서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마침내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청새치를 낚아 올렸다.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 가지 않는가 보다. 그는 청새치의 살점을 상어 떼에게 고스란히 뜯기고, 앙상한 뼈만 매단 채 돌아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성공의 기억을 뒤로하고 노인은 피로한 몸을 뉘었다. ‘길 위쪽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작가그룹 무진형제는 나이가 들면 남을 따분하게 만들지 않는 현명한 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으로 적은 것을, 낡은 집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할아버지를 이.. 더보기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 캔버스 천 위를 스치는 화가의 붓질은 또 다른 결을 만든다. 한때, 송현숙의 붓질은 삼베나 모시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아 유화보다 맑고 생생한 색을 낸다는 템페라 특유의 딱딱한 색조가 식물성의 담백한 질감에 닿아 있었다. 이제 그의 ‘획’은 식물의 뉘앙스를 넘어 실크 특유의 동물성 광택마저 담는다.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은 농사를 지으며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는 항아리의 형태가 되었다. 안료를 달걀, 송진, 물과 기름에 혼합하는 시간, 그는 생각을 채우거나 비우기를 반복할 것이다. 곧 마주할 빈 캔버스 위로 기록할 숨결에 의미를 부여하고 걷어내기를 반복할 것이다. 어떤 결정을 마치고 나면, 또 하나의 손처럼 호흡을 맞춰 왔을 크고 납작한 붓을 들고 한 .. 더보기
아무것도 아닌 무엇 연필을 쥔 화가의 손은 우윳빛으로 매끄럽게 비어 있는 폴리에스터 필름 위를 가늠하다,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친 어느 지점으로 내려앉았을 것이다. 가볍게 짧은 빗금을 치고 시작점을 잡은 뒤, 선을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작은 쌀알 모양으로 출발한 선이 형태를 감싸고, 삼박자의 왈츠를 지휘하듯 일그러진 나선형을 그리면서 돌아나간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을 순간, 그의 선은 나선의 회전 궤도를 벗어나 화면을 가로지르고, 가느다란 실처럼 떨어져 멈추었을 것이다. 이제 화가는 검은 물감을 찍어바른 붓을 들어 다음 리듬을 만든다. 먼저 그렸던 선의 흐름은 이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는 처음 필름 위를 살피던 그 시점 그 눈으로 화면을 본다. 이번에 그의 붓은 왼편 위로 갔을 테다. 물감을 흡수하지 않.. 더보기
조울증/사랑/진실/사랑 2m 남짓한 꼭두각시는 정수리, 왼손, 오른발을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앙 다문 이빨을 드러낸 소년의 얼굴을 한 이 인형은 1950년대 미국 어린이들의 폭발적 사랑을 받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의 마리오네트를 닮았다. 트러스의 도르래에 매달린 쇠사슬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인형의 팔이며 다리, 머리가 그에 따라 휘청거린다. 그는 사슬을 밀고 당기는 이의 손길에 따라 일어서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어느 순간, 거꾸로 매달려 허공을 휘젓던 그의 몸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사슬은 쉬지 않고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간혹 마이클 볼턴의 노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가 흘러나오면, 마리오네트의 움직임은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이 툭 끊어지는 순간.. 더보기
감시 자본주의 세상을 향해 열린 눈은, 매 순간, 보았다는 사실마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과 마주친다. 볼거리들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온·오프라인에 차고 넘치는 것들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루틴 안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과 목적으로 정보를 선택하고, 행동하는가. 그 선택은 어떤 영향력을 갖는가. 기술산업이 인간의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특히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통제하는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덴마크 출신 작가 시드넷 마이네케 한슨은 가상세계, 로봇, 포르노 등의 소재를 통해 이 질문을 이어간다. 그의 작품 ‘앤드-유즈드 시티’에서, 모니터 앞에 선 관객은 애니메이션 속 인물의 눈에 비친 상을 본다. 게임 컨트롤러를 사용하여 화면을 클릭하면, 관객은 비로소.. 더보기
불쾌한 계곡의 이모지 인공지능이 인간 세계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 다룬 전시 ‘언캐니 밸류’의 전체 그래픽 디자인을 맡은 ‘프로세스 스튜디오’는 전시의 아이덴티티를 시각화하고 홍보하는 과정 안에 ‘이모지’의 세계를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로봇처럼 인간 아닌 존재에서 인간과의 유사성을 느끼면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그 유사성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호감은 불쾌감과 거부감으로 변한다는 이론 ‘언캐니 밸리’에서 제목을 가져온 이 전시의 메시지에 호응하면서, 그들은 DCGAN(심층 돌림형 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활용했다. 정보 생성자가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그것과 매우 유사하지만 가짜인 정보를 만들고, 정보 감별자가 그것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제와 매우 유사한 대체재를 생산하는 이 독립적인 학습법 DCGAN.. 더보기
높임의 화술 “네에, 그럼 그렇게 하시죠.” 도널드 트럼프처럼 직설적인 ‘말버릇’과 거침없는 태도로 살기에는 손에 쥔 것이 너무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겸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라는 갑옷이다. 힘 있는 자가 겸손한 언행마저 갖춘다면, 그의 화술은 상급 레벨의 처세술로 칭송받을 것이니, 보통사람이라면 이 당연한 태도 위에 세련미와 재치까지 겸비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생존용 교양화술을 갖추었다 할 것이다. 박관택이 종이에 써내려간 화술은, 청유하거나, 이중부정하거나, 모호하게 흐리거나, 계속 호응하거나, 동의하고 동일시하는 식이다. 상대를 은근히 높여주는 이런 화술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실전에서 사용하면 좋을 법하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단한 성공을 바라지 않을 .. 더보기
청각의 기억 2016년 국제앰네스티는 작가 로런스 아부 함단과 함께 시리아 인근 다마스쿠스 북부의 군사감옥 사드나야에서 풀려난 수감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관리하고 있는 이 군사감옥에서는, 2011년 민주화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을 계기로 내전이 발발한 시점부터 2015년 말까지 반정부성향의 수감자 1만3000여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그들에게 사치였다. 폭행과 고문에 시달리며 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지내야 했던 그들에게는 어떤 시각 정보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귀가 정보를 수집했다. 어떤 날에는 쇠파이프에 맞은 동료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어떤 날에는 신체 일부로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는 빠를 때도, 느릴 때도 있었고, 음성의.. 더보기
검열자들 어두운 방, 밝은 모니터 앞에 앉은 이들은 ‘삭제’ ‘무시’라는 명령어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어떤 것은 지워지고, 어떤 것은 살아남는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우리의 사고와 신체를 장악한 현재, 끝없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와 주장이 넘쳐나는 이 플로어는 모든 정보에 열려 있는 ‘해방구’인가. 독재자와 정치인을 희화화시킨 나체 그림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인기를 얻던 일마 고어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묘사한 그림을 게시한 후 페이스북에서 퇴출당한다. 시리아 전쟁의 심각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시리아에서 전쟁 중 사망한 난민 어린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작가 칼리드 바라케의 이미지 역시 페이스북에서 삭제되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어떤 정보들이 꾸준히 지워지고 있었다. 2013년 한 .. 더보기
코가 없다면 모르는 세계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펀지밥의 단짝 친구 패트릭 스타는 백수다. 게으르지만 그런대로 살아가고, 어리석다는 세간의 평을 배반하듯 가끔은 난제를 얼렁뚱땅 해결해 버린다. 어느 날, 불가사리를 닮은 자신의 몸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당연하게 붙어 있는 코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성형수술로 코를 얻었다. 이제 그의 코앞에서 새 세상이 열렸다. 향수와 꽃다발의 달콤한 향기가 후각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향기로운 기쁨도 잠시. 그의 코는 음식냄새, 땀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고통에 빠졌다. 코가 없을 때 몰랐던 그 세계는 달콤하고도 역겨웠다. 그는 이제 코가 알려주는 세계를 포기할지 말지 고민해야 했다. 미카 로텐버그가 양식 진주로 유명한 중국 저장성 주지시의 진주공장에서 마주한 장면은 고통스럽고 매.. 더보기
달리는 혀 살아 있는 자의 혀는 언제까지 질주할 것인가. 그의 혀는 세상에 나온 이래, 인간계의 몸짓을 배우고, 모국어를 배우며 세상과 교류해 왔다. 더 빠른 혀, 더 능숙한 혀를 만나며 더 성장했다. 그러나 이 혀는,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달려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누구의 의지로 달려나가는지 알아차렸는가. 안무가 시오반 데이비스와 영화감독 데이비드 힌톤은 ‘달리는 혀’라는 이름으로 22명의 무용가와, 사운드 아티스트, 애니메이터를 초대했다. 무용가들은 끊임없이 달리기만 하는 여인 ‘헬카 카스키’의 이미지를 받았다. 이제 그들은 프레임 안에 헬카의 인생을 써내려가야 한다. 각자 10초의 시간을 책임졌다. 무용가들은 프레임 안에 다양한 이미지를 콜라주해 넣었고 데이비스와 힌톤은 그들이 제시한 헬카의 .. 더보기
24시간 사이코 하루하루 별일 없이 사는 것이 기적에 가까워 보일 만큼, 세상은 상상 이상의 사건 사고가 넘친다.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들, 잔혹한 결정들, 자기모순이 선명하지만 자신의 허물에는 한없이 자비로운 비열하고 뻔뻔한 존재들에 둘러싸인 채 24시간 생활하다보니 어느 새, 윤리라든가, 상식, 사회질서가 견인하는 ‘올바른’ 가치는 나약한 개인을 통제하고자 강한 자들이 늘어놓은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 앞에 도착한다. 이제 비일상은 일상이, 비정상은 정상이, 사악함은 선함이 되었다. 비상한 속도와 현란한 편집으로 전개되는 세상의 격랑에 휩쓸린 채, 보라는 것을 보고, 들으라는 것을 듣고,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면서 ‘나’를 방치한다.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기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거리가 필요할 텐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