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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낙원의 가족’

이중섭, 낙원의 가족, 1950년대, 은지에 유채, 새김, 8.3×15.4㎝, MoMA 소장


낙원을 상상하는 일은 시공을 초월한 전 인류의 유희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역사 속에 전해오는 낙원에 대한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보면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이라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일은 인간이 현생을 이어갈 수 있는 일종의 동력일 수도 있겠다.

낙원을 다룬 대표적 소설 가운데 도연명이 남긴 <도화원기>에는 전란을 피해 산속 깊이 숨어든 유민이 등장한다. 물고기를 잡으러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다 길을 잃은 어부가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 꽃길을 따라 정처없이 노를 젓던 중 한 마을을 만난다. 잘 가꾸어진 풍요로운 그 마을에, 혼잡한 세상을 등지고 산속 깊이 들어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 유민들이 있었다.

도연명은 전란과 군벌항쟁의 세파 등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되풀이되는 시대에 살았던 인물인데, 당대에는 실제로 혼란스러운 도시를 벗어나 인적 없는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새로운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유민이 많았다. 늘 전원을 꿈꾸었다고 알려져 있는 도연명에게 그들의 선택은 삶을 살아가는 일종의 대안적 방식이고 이상향이었다. 그의 이런 가치관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었다.

작품의 진위를 둘러싼 숱한 스캔들, 행려병자로 이승을 떠난 비극적 말년,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고독과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불살랐다는 예술혼 같은 수식어에 받들어져 ‘신화’의 반열에 오른 이중섭에게도 ‘낙원’은 현실의 행복을 극대화시켜주는 곳, 현실의 고통을 상쇄시켜주는 곳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모마가 소장하고 있는 ‘낙원의 가족’에는 복숭아 꽃과 열매가 탐스럽게 피어 있는 숲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고통이나 갈등은 없고 평화만 가득한 <도화원기`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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