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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고요

 

한정식, 고요 연작 중 충청북도 단양, 1998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정식의 ‘고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팔순을 맞이한 그의 사진 세계는 추상 사진을 향한 질문과 답 찾기의 연작이었다. 어떤 대상이 지닌 구체적 지시성을 걷어낸 채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려는 사진적 시도는 꽤 골칫거리다. 대상에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기계 이미지가 어떻게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의 초기 연작 ‘나무’와 ‘발’은 각 대상이 지닌 구체적 형상에서 전혀 다른 형태를 발견하려는 시도였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댄 식물이 아니라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에로틱한 신체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신체로서의 발은 피부의 질감과 다양한 곡선을 통해 또 다른 신체 기관을 연상시키며 지시성을 탈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형상을 찾아내는 것이었을 뿐 완벽한 추상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은 아니었다. 작가가 훗날 ‘쓸모없는 짓이자 헛된 짓’이라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철학이 집약된 ‘고요’ 연작은 이 일련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다. 대상에게서 다른 조형성을 발견하려는 시도 또한 추상이 아닌 또 다른 의미를 덧입히는 과정이라 판단한 그는 대상 자체를 관조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는 점에서 초기의 작업보다 훨씬 주관적이기도 하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은 대상에 ‘고요’를 발견하고자 했던 한정식의 작업에서 시각이 아닌 청각과 미각의 세계를 접목한다. 고요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자 맑고 순한 담(淡)의 경지다. 모든 자극적인 요소들을 걷어낸 그 단계에서 이르러 비로소 대상의 본질이 보이는 추상의 미학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유독 리얼리즘 사진의 경향이 강했던 우리나라 사진 풍토를 감안하면, 한정식이 추구해온 사진의 형식에 대한 집요한 실험은 대상의 본질뿐만 아니라 사진의 본질을 향한 확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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