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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 청중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다.”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남긴 말입니다. 일견 오만하고도 독단적인 이 발언은 특정 경지에 이른 어느 음악가의 독특한 예술관과 확신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는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음악의 이상적 완성만을 고집했고, 이것은 예술가의 정당한 소신으로써 인정받았습니다.

교향악단은 이에 필적할 정도로 확고한 성향과 신념들로 충만한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지성체입니다. 1842년에 창단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7년까지 여성 연주자의 채용을 거부했고, 원전악기의 사용을 고집하며, 상임지휘자 제도를 배제한 채 단원들이 직접 객원지휘자들을 임명하는 관행은, 그러한 행동양식에 담긴 당위성의 존부를 차치하더라도,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을 추구하는 예술관에 대한 그들만의 지독한 확신을 투영합니다.

이와 같은 음악가들의 독립적 가치관의 개진은 테뉴어, 즉 종신재직권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들은 예외 없이 소속 단원들의 종신재직권을 보장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 보스턴, 시카고, 클리블랜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적 자유와 소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자신들의 이상을 관철시킬 수 있는 (설령 그것이 대중이나 비평세력 또는 윗선의 입맛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동력을 확보할 디딤돌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요엘 레비 (출처 : 경향DB)


한동안 이슈가 됐던 KBS 교향악단과 함신익 지휘자 사이의 불협화음은 우선 예술적 소신의 개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원들은 지휘자의 비전이 자신들이 지향하는 음악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예술적으로 적확한 판단이었는지 여부는 우리가 섣불리 평가할 수도, 해서도 안될 사안인지 모릅니다. 교향악단이라는 고도의 집단지성이 스스로 결론내릴 수 있는 고유 권한임을 양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원들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휘자의 임명을 강행한 KBS 사측과의 사이에 일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고 하여서, 문제의 본질을 “꼰대들의 억지” 또는 “밥그릇 싸움” 정도로 단정 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악단의 60년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초유의 저항이자, 단원들의 결집에서 비롯된 진정한 의미의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강조돼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KBS 교향악단 사태는 테뉴어라는 안전장치가 없었더라면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예술적 신념의 발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단원들이 연주수준을 타협해야 할 정도의 위험을 인지한 상태에서조차 아무런 저항 없이 굴복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예술가의 혼을 팔아먹은 비겁행위로 지탄받아야 마땅할 일입니다. 일부 언론보도와 달리 아직도 내홍 중인 KBS 교향악단 사태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향악단을 법인화함으로써 사실상 단원들에 대한 테뉴어의 보장을 철회한 사측과, 이를 복구하기 위해 사법적 쟁송까지 불사한 단원들 사이의 충돌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예술가의 정당한 소신이란 무엇이고, 우리 사회가 이를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다름없습니다.


정우람 |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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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