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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난센 여권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 그룹 ‘일상의 실천’이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열렸던 ‘난민’에 대한 프로젝트 <난센 여권>에 참여하면서 난민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문장이다. ‘난센 여권’은 난민을 위한 신분증으로, 탐험가이자 해양학자이면서 난민 구제 활동에 힘쓴 프리드쇼프 난센이 국제연맹에 발의해 1922년 도입되었다. 1942년에는 52개국 정부가 난센 여권을 승인해, 국적 없이 떠돌던 난민들이 난센 여권을 들고 원하는 나라로 이주할 수 있었다.


Nansen Passport, 일상의 실천, 2016


한국 사회에도 난민이 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난센 여권>은 사회의 약자인 난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예술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난민들은 자신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색을 선택하고, 그 색을 매개로 자신의 개인사를 꺼내 놓았다. ‘일상의 실천’은 이렇게 전개된 컬러 워크숍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반 대중과의 접점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색의 총합은 빛이 된다는 점을 실마리로 삼아, 개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색과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뜻하는 ‘빛’을 연결시켜 메시지를 전달하는 포스터를 디자인했고, 빛의 스펙트럼을 담은 난센 여권도 제작했다.

전시장 방문객은 난민이 되어 테이크아웃드로잉 1층 난센 여권과에서 자신을 의미하는 색깔을 선택하고 이 색깔을 부착한 난센 여권을 발급받았다. 이 여권 소지자는 국내에서 난민 관련 활동을 하는 14개 단체를 방문할 수 있었는데, 관람자들은 각 기관에 방문해 난민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일상의 실천’은 난민이 재난을 피해 모국을 떠난 사람을 일컫는 단어지만, 한 사회의 주류가 아닌 약자, 이방인 모두를 포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난센 여권은 사회의 소수자가 마주하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점을 공유하며 사회 구성원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과 그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보는 매개가 되었다. 예술가의 작업은 그렇게 사회와 공존한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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