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의 한 장면.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1995)은 아버지와의 불화를 그린다. 영화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폴은 자신의 오르가슴 순간을 촬영할 만큼 에고가 강하다. 그런 그에게 오랜 시간 연이 끊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누나에게 이끌려 억지로 병원을 찾지만 아버지와 마주한 그는 도망친다. 그리고 몰래 다시 병실을 찾아 혼수상태의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복수라도 하듯이 죽어가는 얼굴과 몸을 마구 찍어댄다.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하던 그는 아버지가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사진에서 자신에게 향했던 아버지의 눈을 도려낸 뒤 그 사진을 마스크처럼 쓴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포개진 자신을 거울 앞에 비춘다. 얼마 후 장례식에조차 나타나지 않은 폴에게 누나가 아버지의 유품인 작은 상자를 건넨다. 그 안에서 아버지가 어린 폴을 안고 다정하게 입맞춤하는 사진이 나온다.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폴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내가 모르는 내 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는 당신이 나오지만, 정작 ‘언제-어디서-왜’ 찍혔는지 모를 것이다. 당신의 기억이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유년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주로 앨범 앞부분에 꽂힌 그 사진들을 당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건 누군가 대신 기억하고 이야기해줬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 카메라를 향하며 조금씩 알게 되었듯이, 폴 또한 아버지를 원망하던 카메라가 아이에게 향할 때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해피엔딩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모르는 내 사진’ 속 장면과 순간을 나 대신 기억하는 누군가 있다는 걸 무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에 남은 사진이 나를 살뜰히 기억했다는 표시로 반짝인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준비  (0) 2017.08.21
85번의 절망  (0) 2017.08.11
119시45분  (0) 2017.08.04
승자의 손  (0) 2017.07.28
내가 모르는 내 사진  (0) 2017.07.21
스피릿, 오퍼튜니티  (0) 2017.07.14
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