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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한 장면.


젊은 남녀가 등장하는 통속적인 영화는 대개 떠들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디서 첫 키스를 했는지, 언제 사랑이 식기 시작했는지,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지 그 시작과 끝을 낱낱이 이야기하기 바쁘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게루와 듣지 못하는 다카코가 등장하기에 대사가 거의 없다. 게다가 감독은 두 남녀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대신 곁에서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작정한 것 같다. 함께 서핑보드를 들고 가는 둘의 모습을, 시게루가 서핑하는 동안 해변에 남아 그의 옷을 개는 다카코를, 그녀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게루를 떨어져서 보여줄 뿐이다.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시점은, 이 세상에서 오직 둘만 아는 이야기를 대신 떠들 수 없다고, 타인의 삶과 사랑을 속속들이 헤집어 볼 수는 없다고 역설하는 건 아닐까.

 

그 흔하디흔한 섹스신 하나 없이, 끝날 때까지 손잡는 장면조차 나오지 않는 영화는 그동안 타인의 삶과 사랑에서 어디까지 듣고 보며 지냈는지 자문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시게루는 어느 날 갑자기 바다에서 사라지고, 다카코는 남자친구가 남긴 서핑보드에 둘의 기념사진을 붙여 바다로 흘려보낸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기념사진은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할 순 없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둘만 아는 이야기가 존재했단 걸 기억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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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