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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옛 전남도청 앞에서 본 전일빌딩 ⓒ윤성희

 

감은 눈처럼 새까만 창문의 숫자를 세어본다. 아무리 세어봐도 창문에 불빛이 켜질 기미는 없다. 물 먹은 눈처럼 번진 간판의 흔적을 따라 그려본다. 아무리 그려봐도 글자를 읽을 수는 없다. 끝내 불빛이 켜지지 않는 창문은 씁쓸하다. 아무도 기다려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끝내 읽을 수 없는 흔적은 서글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는 건물은 아무 말이 없다. 깊은 밤처럼 점점 어둡게 번지는 쓸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제 몸을 뒤튼다.

 

사진 속의 전일빌딩은 모두 185개의 총탄 흔적을 몸에 지닌 채 광주 금남로에 서 있다. 이곳에서 3차례 조사를 마친 국과수는 총탄 흔적을 분석해 “헬기 사격이 유력하다”고 결론 냈다. 30여년 전 이 건물에서 벌어진 일을 상상할수록 씁쓸하다. 1980년 5월 신군부가 전일빌딩으로 피신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만행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아무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 비극을 증명하는 건물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헐리고 주차타워가 될 뻔했던 사연은 서글프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영영 어두워지는 씁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반짝거린다. 이곳에서 씁쓸하고 서글프게 죽어간 삶을 기억하라는 듯이.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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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