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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Irving Penn)이 찍은 마르셀 뒤샹, 1948년.

현대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 1위, 20세기 미술 중 가장 중요한 작품 1위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뒤샹과 그의 변기 작품인 <샘(1917년)>이다.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은 개념미술이다!”라는 선언이 나올 정도로 그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앤디 워홀은 물론 데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의 멘토가 바로 뒤샹인 것.

뒤샹은 1년에 회화 한 점만 그려주면 1만달러를 주겠다는 요청을 받는 등 뉴욕에서 더할 수 없는 명성을 얻게 되지만 1923년 겨우 36세의 나이에 일체의 예술 활동을 중단한다. 체스를 두기 위해서다. 그는 도서관 사서와 불어교사 알바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체스에 창조적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렇다고 예술작품을 제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보여주기 위해서나 먹고살기 위해서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작품은 친구들에게 선물로 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훗날 전시를 위해 이 작품들을 다시 빌려와야만 했다.

이처럼 뒤샹은 일생 동안 자신의 예술에 대한 모든 해설이나 논평 같은 것에는 전적으로 무관심했다. 앙드레 브르통처럼 경외심을 표명한 예술가도 많았지만, 다수의 미술인들은 그를 사기꾼으로 취급했다. 뒤샹은 자신의 개인전에도 불참했다. 개막식의 작가는 완전히 뜨내기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첫 개인전이 열렸던 시카고의 아트클럽에도 가지 않았고, 그 이후의 회고전 형식의 전시에도 참여하기를 꺼렸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해탈의 미소를 머금은 관용 있는 노대가가 되어갔다. 그는 일종의 예의를 지키듯이 자신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칩거하듯 살며 반(反)예술인을 자처하던 뒤샹이 사람들 앞에 타협적으로 나설 때가 있었다. 그것은 우정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였다. 동료 화가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던 뒤샹은 후배작가들이 선배인 자신과 함께 전시하길 원할 때, 그 전시의 수준과 상관없이 기꺼이 작품을 내주었던 것이다. 진정한 경계인 뒤샹의 최고의 작품은 바로 ‘우정’이었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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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