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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원의 살랑살랑 미술산책/작가와 작업실

빛이 머무는 곳, 오지호·오승윤 부자의 아뜰리에

퀴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가의 작업실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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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바로 여기.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275번지에 있는
()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작업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 오지호·오승윤 부자의 작업실이다.
왜냐하면 이 작업실은 1953년 오지호 화백이 지었지만 아들 오승윤(19392006)이 물려받아 줄곧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젤 주변에는 오지호·오승윤 부자가 쓰던 색색의 유화물감이 오랜 세월의 더께처럼 남아있다
.




파스텔 빛 물감은 아버지 오지호
, 조금 진한 색은 아들 오승윤의 것이란다.

사실, 근대 이후 수많은 미술가들이 작업실을 사용했지만, 그들의 사후(死後) 작업실이 온전히 보존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선전으로 약칭)의 최고 스타작가였던 대구출신 화가 이인성(19121950)은 대구 남산병원의 병원장이었던 장인이 병원 3층에 근사한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지만 지금은 사진자료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아예 건물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또 근대기에 활동했던 화가 김두한의 예산 작업실은 당시로는 드물게 2층으로 된 작업실 전용 양옥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노래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남한 땅에 온전히 남아있는 작가의 작업실로는 오지호·오승윤 부자의 작업실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이곳은 1953년 당시 모습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욱 가치가 높다.

 


작업실에 놓여 있는 옛 작업실 사진만 봐도 지붕색만 바뀌었을 뿐
,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업실 안에 있는 물건들은 오지호·오승윤 부자의 것이 섞여 있는데, 이젤은 아들, 의자는 아버지 것이라고.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면, 3대로 이어지는 화맥(畵脈)을 찾을 수도 있다.
커튼 위에 있는 항아리를 그린 그림은 오승윤 화백의 아들 병재 씨가 미술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린 것이라고.

 

 


위 사진에서 커튼 왼쪽이 오지호 화백, 커튼 오른쪽이 아들 오승윤 씨의 사진이다.

대략 6평 정도의 이 작업실은 몇 가지 구조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남쪽으로 난 창문은 두꺼운 커튼을 드리워 완전히 가렸다.
남쪽 빛은 워낙 변화무쌍해서 빛의 간섭이 심하기 때문이다.
대신 채광이 일정한 북쪽 빛을 살렸다.
어두운 낮 시간을 보완하기 위해 커튼 없이 북쪽으로 창을 크게 내고 지붕 일부를 뚫어 450cm 폭의 투명유리를 끼웠다. 북쪽의 큰 창은 반투명 유리를 끼워 빛만 들일 뿐, 내부를 밖에서 볼 수 없게 했다.
과연 빛에 민감한 인상파 화가다운 작업실이라 하겠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지호-오승윤 화백의 수많은 작품들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되었다.
워낙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두 작가의 체온과 손길이 아직도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작업실 바로 맞은편은 3대가 살던 초가집이다.



오지호 가옥(吳之湖 家屋)’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원래 조선대학교의 관사로서,
조선대 회화과 초대교수가 되어 광주에 정착한 오지호 선생이 1949년부터 거처로 삼았다
.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작 남향집(1939)의 배경으로 종종 오인받곤 하지만,남향집은 그가 송도고보 교사 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이 초가집과는 관계가 없다
.)
그의 사후 아들 오승윤이 매입해 현재는 미망인 이상실 여사가 거주하면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
초가집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할 정도로,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과연 뒤뜰의 장독대와 소박한 집 모양새가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

사실 아무리 초가집이라곤 하지만 그 유명한 오지호 화백이 살던 곳인데...’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제작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말 그대로 초가 ‘4
인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더랬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모두 넉넉하게 품어내는 한옥의 신기한 능력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여기서 어떻게 3대가 옹기종기 살았는지, 방문객도 끊이지 않았을 텐데... 조금 의아스럽긴 하더라. 


현재 이곳은 광주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대문 옆에 붙은 알림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인 출입금지다.



나는 다행히 매우 강력한 빽(?)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었다. ^^
제작년 광주비엔날레 취재차 갔을 때 처음 가보고, 이번에도 역시 비엔날레를 핑계로 내려가 
초가집과 작업실을 또 보고 싶다는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이 집 무화과 맛을 잊지 못해서였다
. (이런, 잿밥에 눈이 먼...-_-;;;)

웬 무화과인고 하면, 바로 초가집 뒷편 작은 텃밭에 심은 무화과나무에서 따온 녀석들이다.
꽃이 없어서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맛있는 열매는 정말 염치고 뭐고 없이 자동적으로 손을 뻗게 한다.
술안주로 나오는 달디 단 말린 무화과가 아니라 나무에서 갓 딴 싱싱하고 달콤한 무화과!

 
 



연한 껍질을 살살 벗겨서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흐물흐물 푸짐한 과육이 허물어지면서 입 안 가득 달콤한 여운을 남긴다.  제대로 씹을 겨를도 없이 미끄덩~ 꿀꺽 자꾸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아, 이렇게 품위 있는 단 맛이란~
올해는 먹을 복이 더해
, 말로만 듣던 동부 소를 넣은 모시잎송편까지! 'ㅂ'
정말이지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다과상이었다고나 할까. ㅎㅎ

화가의 오랜 손길이 남아있는 작업실, 따뜻한 숨결과 추억이 깃든 초가집, 그리고 달콤한 무화과와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오지호 화백의 그림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가을 빛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런 평화로운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