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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피로도가 고점을 찍는 순간, 회의감, 환멸감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한 설득의 과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된다.

 

기록매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당대의 정서와 호흡하지 못한다고, 잊을 만하면 끌려나와 사망선고를 당하는 회화는, 당위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사실은, 회화 매체로 작업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붓을 들고 싶은 자기 자신이었다.

 

빌헬름 사스날, 무제, 2010, 캔버스에 유화, 200×220㎝ ⓒ 빌헬름 사스날, 안톤 컨 갤러리

 

예술가가 되기 전 건축을 전공한 빌헬름 사스날은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그는 1972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불어닥친 ‘격변’의 시대에 20대를 보냈다. 황량한 세상을 목도하며, 전쟁, 선전선동, 자본주의의 폐해, 부패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는 작업도 했지만, 그는 사실 회화에 ‘선전 선동’의 힘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회화가 가지고 있는 돌풍의 반경은 너무 작다. 세상 모두가 ‘큰 그릇’이 될 필요는 없으니, 마이크로 스케일은 거기에 맞는 대화법을 쓰면서 살면 된다.

 

그래서 그의 화면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흰색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맨발로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처럼 소소하다. 그렇다고 ‘거대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엉망진창 그대로의 상태에 머물고 싶고, 때로는 나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심을 긍정하고 싶을 뿐이다. 사소하고 진부해져도 무엇인가는, 누군가는, 때때로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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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