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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시각과 사각

군데군데 찌그러졌다. 드문드문 빨간 도색도 벗겨졌다. 각질처럼 허옇게 일어난 타이어 표면은 심하게 마모됐다. 둥근 휠 가운데 호랑이 엠블럼은 작지만 눈에 박힌다. 범퍼 밑에는 물먹은 주황빛이 반짝인다.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들여다봐도 왜 찍었는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Red car by the river fig 9 ⓒ목정욱

이처럼 목정욱의 ‘Car’ 연작(2006~2017)은 어떠한 이야기도 담지 않은 파편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산산조각 난 앞 유리창, 먼지와 때가 잔뜩 낀 헤드라이트, 절연 테이프로 칭칭 감은 사이드 미러 등이 담긴 사진을 보며 알 수 있는 건, 피사체가 자동차라는 것뿐이다. 작가의 프레이밍은 형태와 색의 윤곽을 선명하게 묘사하지만, 어떤 정보를 제공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전체를 가늠할 수 없고, 특정한 형태와 색을 가득 채운 클로즈업은 묘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끝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촬영자인 작가 본인조차도 왜 찍었는지 똑 떨어지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동차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추려 전시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애써 말로 할수록 궁색해진다. 그건 어쩌면 언어의 논리가 아닌 망막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은 아닐까. 말하자면 어떤 대상을 찍는 이유를 먼저 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선 눈을 따라 움직이고, 그 결과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망막에 왜 맺히게 됐는지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건 자동차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과 자동차밖에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사각을 동시에 역추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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