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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 야곱과 천사의 결투(부분), 1854~1861년경, 프레스코화, 생 쉴피스 교회

창세기 32장에는 천사가 야곱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엄마의 명에 따라 외숙부의 집에서 14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앞으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러 오고 있었고, 뒤로는 딸들을 빼앗긴 외숙부에게 쫓기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처했을 때였다. 가족들을 먼저 고향으로 보내고 홀로 있던 야곱에게 누군가 다짜고짜 결투신청을 해왔다.

야곱은 자기에게 싸움을 건 자가 형과 숙부의 첩자가 아닌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음을 깨닫고 천사(곧 하나님)에게 매달린다. “나를 축복하여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갈 수 없나이다.” 위기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깊이 깨달은 야곱은 새벽이 지나도록 간청하고 또 애원했던 것. 이에 지칠 대로 지친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를 쳐 탈골시켜 주저앉힌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 부르라고 명한다. 그 뜻은 바로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것. 기독교에서는 이 내용을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즉 교만을 떨어내고 신께 매달리라는 의미로, 신앙의 기본 덕목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곤 한다.

야곱과 천사가 어깨나 허리를 마주 잡고 씨름을 벌이는 장면은 바로크 미술에서 드물지 않게 다루어졌다.

신성과 인성의 낯선 대결이 보여주는 역동성이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바로크와 연동되는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역시 드라마틱하다. 야곱과 천사는 비슷한 체구를 지니고 있으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야곱은 천사에게 온 힘을 다해 대항하고 있다. 이미 그의 몸은 천사가 포기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

나는 세상일이 시들해질 때, 직업상 심기일전이 필요할 때, 간절히 사랑하고자 하나 힘을 잃었을 때, 이 그림에서 용기를 얻는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유보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오늘 이런 결투를 신청하거나, 결투에 기꺼이 응하라!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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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