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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십년 동안

안개와 서리 15, 2011 ⓒ강홍구


흔적만 남은 중앙선 그리고 굵은 금이 간 아스팔트. 그 허름한 2차선 도로에는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전깃줄에 몸이 뚫린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피처럼 뚝뚝 떨군다.

 

강홍구의 개인전 <안개와 서리-10년>(원앤제이갤러리, 9월7~30일)에는 희미한 안개와 함께 사라진 살풍경이 적막하게 펼쳐진다. 10년 전부터 경기 고양시 오금동과 신원리 일대에서 찍은 재개발 풍경이다. 흥미로운 것은, 재개발 현실을 눈앞에 둔 작가가 그 풍경을 가장 현실적으로 담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도 이미지를 비현실적으로 다룬 점이다. 색과 구도를 뒤틀고, 사진과 사진을 이어 붙이며,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한다. 그의 말처럼 ‘사진을 현실에서 최대한 멀리 떼어 놓는’ 셈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주목한 안개는 모든 것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소설 <무진기행>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안개는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그렇게 현실에서 떼어 놓은 사진을 바라보며 작가는 스스로 묻는다. ‘십년 동안 나는 뭘 했나?’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애를 나아 키웠고, 이사를 다녔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처럼 현실에서 멀어진 사진을 바라보며 오히려 자신의 현실과 가까워지는 10년의 지난한 여정은 섬뜩하게 쓸쓸하다.

 

그러나 10년 동안 함께 안개와 서리를 맞았던 풍경은 사라졌지만, 자신은 견뎠다는 작가의 자각이 묘한 울림으로 남는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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