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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어찌나 모든 것이 아름다운 지, 갈대마저도 비단같아보였습니다.


4월부터 지역 생협에 가입해서 그곳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생산자가 명시된 과일과 육류, 유해 성분이 가급적 들어가지 않은 가공식품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집을 찾아옵니다. 가격도 크게 부담 없고 믿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 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지난번에 감자를 1킬로그램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알이 작고 흠도 있지만 가격이 비싸서 고민했었답니다. 생산자를 찾아보니 제주도 대정읍 상모리 농가의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맛있다는 제주 햇감자로구나, 생각한 것과 동시에 상모리라는 지명에서 다른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상모리는 작년 2월 매서운 바람을 해치며 다녀온 제주 근대문화유산 답사의 주 무대였습니다.

              뒷편 평평한 들판이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입니다. 들어가지 말라고 해서 멀리서 보았습니다.쩝.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가 보이나요? 감자밭에는 둥그런 콘크리트 더미가 19개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지요.



책에 들어갈 마지막 원고의 퇴고를 마치고 약간의 휴식을 누리기 위해 떠난 제주 여행. 하지만 옛 흔적을 찾아 다니던 일년간의 습관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검고 아름다운 비자나무 숲의 풍경과 섭지코지의 거친 바다에 감탄하면서도 남쪽과 서쪽 곳곳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자동차를 몰아대곤 했지요. 답사 후에 작은 지면으로나마 책의 말미에 제주의 흔적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 그곳의 근대의 흔적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전쟁, 그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보기 전, 제주도는 이국적인 풍경, 신기한 문화, 싱싱한 자연의 현장으로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제주의 역사를 다시 더듬어보았던 그 날 이후 제주도는 이전의 제주도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섬, 2차대전의 말기 패망 위기의 일본 본토를 수호하기 위해 최후의 방어선으로 제공된 섬, 깊은 땅굴과 매끈한 절벽을 쑹쑹 뚫어놓은 동굴처럼 전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섬.


역사에서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조금만 전쟁이 길어졌다면 우리나라 국토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는 섬나라는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됩니다.
 

제주의 동백. 저는 동백이 제주를 상징하는 꽃인 것만 같습니다. 피처럼 붉고 자존심강한 사람들처럼 고고한 꽃.

 


아름다운 것 뒤에는 왜 이렇듯 큰 상처가 숨겨져 있을까요?


역설적인 상황으로 인해 역사의 비극성은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숲, 그 바다, 그 바람은 수많은 피와 눈물과 땀, 그리고 죽음을 담보로 하여 그토록 아름답게 승화한 것일까요?


제주는 1920년대 후반부터 일제가 대륙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한 병참기지의 주요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전투기들이 중국의 상하이와 난징을 향해 최단거리로 날아갈 수 있도록 해군과 육군의 비행장 시설이 형성되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일제강점기에 모두 네 개의 비행장이 건설되었습니다. 관광객이 오가는 비행장이 아니라 모두 군사용 비행장입니다.


알뜨르, 정뜨르, 진뜨르라는 향토적인 이름의 비행장이 있었고 1945년 전쟁 말기에 교래리라는 지역에 비밀 비행장이 세워졌습니다.
정뜨르 비행장은 현재 제주국제공항으로 확장되었고, 진뜨르는 활주로를 건설하던 중 연합군에 알려지자 건설을 중단한 후 지금은 밭으로 변했습니다. 교래리 비행장은 현재 비행훈련원이 들어와있습니다.


비행장뿐입니까? 제주 오름의 지하 곳곳에는 개미굴처럼 구불구불한 땅굴이 지금도 가득합니다. 이들 장소는 일제의 참호와 동굴진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찾을수록 계속 발견된다는 동굴진지들은 700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가장 긴 것은 1킬로미터가 넘으며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시설물들이 땅속에 오롯이 숨겨 놓았습니다.

셋알오름 동굴진지, 일출봉 해안 동굴진지, 가마오름 동굴진지, 서우봉 동굴진지, 어승생악 동굴진지, 사라봉 동굴진지를 비롯해서 알뜨르 비행장 지하벙커,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등 20개 이상의 일제 시대 군사시설이 당시를 증언하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송악산 해안 절벽에는 높이가 2~3미터에 달하는 동굴이 열 다섯개가 뚫려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자살폭격 어뢰정을 숨겨두던 곳이라고 합니다.
감탄할 만한 절경 앞에서도 전쟁의 상흔이 느껴지는, 그래서 생명 하나하나가 더 소중한 곳이 바로 제주도랍니다.

 


또한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일제가 미군으로부터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홋카이도와 제주도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아 전투력을 총 결집하는 결호 작전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때는 7만 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제주 전역에 집결하였고 앞서 설명한 수많은 전쟁시설물들이 미친듯이 세워졌습니다.
다행히, 제주도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기 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고 일제는 패망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하기에 우리는 그 다음에 벌어진 동족상잔의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한국전쟁과 제주에서 벌어진 4,3사건, 그리고 수많은 아픔의 역사들……..


잔인한 시기는 지금 우리의 삶과는 비껴갔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과거의 역사와 만나게 됩니다. 그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힌 사람들에게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후손에게 역사를 제대로 알려줄 의무가 있는 것이지요.


                   제주도 남동쪽 해안가에 밀집되어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쟁 유적들.

 


우리가 찾아가 볼 곳은 알뜨르 비행장입니다. 알뜨르는 ‘아랫쪽에 있는 너른 뜰’이라는 뜻입니다. 알뜨르 비행장이 있는 대정읍 상모리 부근 지역은 일본의 후쿠오카와 중국 난징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습니다. 일제는 제주도민을 총동원하여 1926년부터 비행장 건설에 들어가 10년만에 20만 평 규모의 알뜨르 비행장을 완공합니다. 그리하여 알뜨르 비행장에는 지하 군사 벙커를 비롯, 의료시설, 탄약고, 연료고, 정비공장, 어뢰 조정고, 통신실, 발전소 등의 시설이 들어서 전쟁에 대비하게 됩니다.


일본 나가사키에 주둔하던 오오무라 해군 항공 기지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중국을 공격하고 일본으로 귀환할 때 중간 기착점으로 알뜨르 비행장을 활용했습니다. 상하이를 점령한 후에는 그곳에 비행장을 확보했고 알뜨르에는 연습항공대가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지하벙커와 활주로, 비행기 격납고가 남아있습니다.
 

                   비행기 격납고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 3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이 부근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활주로가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넓은 벌판에는 ‘공군에서 보유한 군사지역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라는 푯말만 세워져 있습니다. 구글 어스로 이 일대를 찾아보는 순간,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이 활주로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길게 불어오는 평평한 땅, 거칠 것 없는 넓은 터. 폭격을 받으면 복구가 어려운 콘크리트는 생략한 활주로에 푸릇푸릇 풀들이 한 가득 돋아나있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지금까지 활주로가 그대로 남아있는 비행장이었습니다.
 

                   구글 어스로 찾아보니 활주로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시는지?

좀더 가까이 가볼까요? 경지 구획이 되지 않은 활주로 터는 국방부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알뜨르 활주로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왕 구글 어스를 실행시킨 김에 하나더! 후쿠오카와 난징을 연결하는 직선을 그어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알뜨르 비행장을 지나가는군요.

 


활주로 주변에는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만든 비행기 격납고가 군데군데 들어와있습니다. 모두 20개의 격납고가 있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19개. 널찍한 밭두렁 사이에 둥근 봉분처럼 불쑥불쑥 솟아나 있습니다. 격납고를 처음 보았을 때, 당혹스런 감정이 들었습니다.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어진 격납고는 정면의 길이가 20미터, 높이는 4미터, 내부는 10,5미터 정도의 규모입니다.

         

             너른 밭에 툭툭 떨어진 듯한 격납고들. 카메라 앵글에 모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형태와 규모를 자세히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내부로 좀더 들어가보았습니다. 아직도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지요.

              내부에 들어와서 바깥 풍경을 보았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니 햇빛을 피하기에 좋을 듯합니다.



대형 여객기를 생각했다면 턱없이 자그마한 격납고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보관되었던-혹은 숨겨두었던- 비행기는 아카톰보(빨간잠자리, 고추잠자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일본해군의 중급 비행 훈련기였습니다. 아카톰보가 대체 어떤 비행기인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정식 명칭은 Yokosuka K5Y이며 1939년부터 45년까지 생산되었다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자료사진은 흑백이기 때문에 컬러감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주황빛과 빨강이 섞인 몸체와 날개를 가진 이 비행기가 파란 하늘을 날면 빨간 잠자리처럼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알뜨르의 활주로를 따라 아카톰보가 날아갔겠지요.

                            요것이 아카톰보(빨간잠자리, 고추잠자리)라 불렸던 연습비행기랍니다.

                    격납고에는 요렇게 들어갔답니다. 이 자료 이미지는 뉴스 기사에서 캡쳐했습니다.

 


비행기가 사라진 격납고에는 농사꾼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농기구도 보관하고 수확물도 쌓아두는 그런 곳으로 말입니다. 때로 지친 농사꾼이 해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비를 피해 잠시 숨는 곳으로 말이지요.

 
지금 알뜨르에는 감자 수확이 한창입니다. 지금 내 손에 들려진 감자는 그날 가슴을 쓸쓸하게 만들던 알뜨르의 바람 속에서 자란 것일까요?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부치면서 잠자리 비행기 격납고가 옆에 있건 말건 땅 고르기에 여념이 없던 농사꾼의 둥그런 등을 떠올렸습니다. 격납고의 둥근 지붕 모양처럼 그들의 등도 땅과 가깝게 둥글게 숙여져 있었습니다.

 

다음은 제주 대정읍 언저리에서 찾아낸 근대건축물들입니다. 제주에는 이런 건물들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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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