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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000미터의 산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고 치자. 누군가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결과는 0이군"이라고 말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올라갔다 내려오느라  힘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선물을 싸들고 누군가에게 갔다고 치자.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이 극구 사양하면서 "마음만 받겠다"라고 딱 잘라 말해서 할 수 없이 그냥 들고 왔다. 이번에도 결과는 0인가? 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산에 올라갔다 온 것에 비해 별로 땀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탈리아 작가 지아니 모티(Gianni Motti)의 작품 <기금전시(Funds Show)>에도 비슷한 종류의 아리송함이 있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단순하다.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작품 제작비를 비롯해서 운송비, 설치비, 인건비 등 여러 항목의 예산이 필요하다. <기금전시>는 전시를 위해 미술관에서 작가에게 지불한 돈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어 돈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전시하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전시장에 돈만 있고 다른 작품은 없다는 것이다. 

모티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렸던 두 전시[Centre d’art contemporain de la Ferme du Buisson / Centre d’art la Synagogue de Delme 30 May – 13 September 2009 (Delme) / 10 April – 7 June 2009 (Ferme du Buisson)]에서 이 작품을 내놓았다. 애초 5천 달러를 받았는데 전시할 때는 환율 변동 때문에 6천4백 달러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돈들을 모두 1달러 짜리 지폐로 바뀌어 전시했다. 전시장 천정에 매달기도 하고 바닥에 뿌리기도 했다. 돈을 빨래처럼 나란히 줄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그리고 전시가 모두 끝난 이후 이 돈들을 미술관에 고스란히 돌려줬다. 그렇다면, 나간 돈이 고스란히 다시 돌아온 것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보면 물론 그렇다. 미술관은 돈 한푼도 들이지 않고 전시를 했다. 작가는 돈을 전혀 쓰지 않고 작품을 전시했다. 결과는 0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작가는 작품을 만들었으며 전시가 끝나고 미술관에 돈을 보태주기까지 했다. 미술관은 전시를 개최했고 돈을 돌려받기까지 했다.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결과는 0이라고 할 수 없다.   
 


투자와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원리에서 보면 들어간 것도 나온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원리를 벗어난 것도 아니다. 보통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무관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전시를 위해 작가에게 돈을 주는 것 역시 투자의 일종이며 작가는 그것을 바탕으로 부를 창출해야 한다. <기금전시>는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혀 위반하지 않고서도 그 시스템의 진실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한다.   

<기금전시>는 지난 21일까지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전시 <트릭스터가 세상을 만든다>(2010. 8. 31 - 11. 21)에서도 다른 버전으로 전시되었다. 이번에는 작품제작비로  800만원이 지급되었고 작가는 이를 8천개의 천원짜리 지폐로 바꾸어 바닥에 깔았다. 달러보다 확실히 더 감이 온다고나 할까. 의의로 천원짜리 8천장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미래의 기억들>(2010. 8. 26 - 2011.2. 13)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작품이 있다. 김홍석의 <카메라 특정적-공공의 고백>과 <영문-공공의 고백>이 그것이다. 이 작품 역시 아주 단순하다. 두 대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고 두 개의 단채널 비디오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왼쪽에는 인물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영문 텍스트가 나온다.

왼쪽 영상의 인물은 어떤 젊은 여성이다. 얼굴이 클로즈업된 채로 등장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 각도가 바뀌지 않는다. 이 여성은 여러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자유의 광장>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고독의 탑>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정작 그 '작품'은 한번도 화면에 비치지 않는다. "<고독의 탑>은 1층은 유리로 되어 있고 지하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습니다..." 등등. 이제나 저제나 작품이 보일까 싶은데 영상은 그대로 끝나버린다.   

이 여성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실은 작가가 스케치한 8개의 공공조각 작품(<공공의 고백>)이다. 여성은 작가가 섭외한 배우이고, 작품을 설명한 '대본'을 준 뒤 연기를 부탁했다. 오른쪽 모니터에 영문으로 나오는 텍스트가 이 대본이다.

조각, 드로잉, 언어, 영상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알면 더 흥미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배경을 모르더라도(아니 어쩌면 배경을 모를때 더욱?), 단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금전시>와 비슷하게, 이 작품은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 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어 속에서만 등장하는 '작품들'은 존재하지 않는걸까, 존재하는 걸까? 그 어떤 물질적 흔적도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걸까.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관객이 언어를 통해 얻었던 느낌이나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니, 언어 그 자체는 무엇일까. 언어 역시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현대미술은 때로 이렇게 '어떤 것이 존재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라는 단순한 말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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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