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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가기 전에 내셔널 트러스트의 후원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한 달에 만원씩 후원합니다. 큰 돈도 아닌데, 여태 망설이고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이런 단체의 중요성이야 두 말할 것도 없고, 그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행동이 생각을 따라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자연과 문화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 훼손 위기에 있는 자연물이나 문화 현장을 회원들이 후원금으로 매입하여 자산으로 만들고 그것을 직접 관리하는 단체입니다. 올 봄에 근대 건축 기행에 대한 책을 쓰면서 내셔널 트러스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친 김에 책 수익금의 일부를 근대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써달라고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12월이 되자, 불현듯, 내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지만 지속적인 관심.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죠.

 
올해 한 해를 돌아보니
, 무척 고단하고 속상한 일들이 많았고 뒤늦은 시행착오를 수습하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그 뿐인가요? 실업 불안, 교육 불안, 먹거리 불안, 건강 불안, 사회 불안, 정치 불안, 안보 불안으로 사회가 뒤숭숭하여 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올해는 잊어버리고 싶은 한 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안하고 피로한
2010. 그냥 보내기가 안타깝더군요. 착한 일 한가지는 해야 나의 2010년이 떳떳하지 않을까? 그래서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기금에 후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쇼핑하는 것보다 기분이 더 좋아지더군요. 조금씩 모여서 큰 힘이 되는 것을 보는 것,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연결되는 것. 그런 일들을 참 잊고 살았던 듯해요. 사람들이 물심양면 서로 도우며 진심에서 우러난 웃음을 보는 것, 참 훈훈하지요. 그런 웃음 찾기가 참 어려웠던 2010, 지금이라도 훈훈하게 웃어보려고 합니다.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입니다. 흰색부분은 후에 덧붙여진 부속건물입니다.


지난 번에 다녀온 개항 박물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개항 박물관은 인천 개항장 근대 건축 전시관에서 길 하나 건너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이라는 문화재 건물을 활용했습니다. 이 은행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지어졌고 일제 강점기의 중앙은행인 조선은행으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정문 위에 朝鮮銀行이라는 글자를 발견할 수 있지요.


박물관은 오픈한지 채 석달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장소입니다
. 건물은 복원 공사가 끝나고도 전시물이 채워지지 않아 오랫동안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외관에서부터 오래된 역사가 느껴지는 건물을 보면서 도대체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게 여겼을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 건물 내부 구경도 하고 전시물도 찬찬히 보면서 인천의 옛 풍경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유물은 많지 않고 전시물이 일관성 없이 나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파편을 통해서 조금씩 그 시대의 흔적을 읽어보고 더듬어볼 수는 있습니다. 1은행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쿵쿵거립니다. 부족한 것들은 지속적으로 채우면 되고 필요한 것들은 추가로 설치하면 되지요. 문을 여는 게 중요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은행 모습입니다. 부속건물은 아직 없을 때네요.


개항 박물관에서 개항의 흔적만 살펴본다면 많은 것을 놓치는 셈입니다
. 먼저 이 건물의 역사를 살펴볼까 합니다. 일본제1은행은 우리나라에 근대 금융의 시작을 알린 은행입니다. 1873년 부산에 가장 먼저 상륙해서 금융에 눈이 어두웠던 조선인들을 현혹했지요. 인천이 개항하자마자 지점을 설치해서 영업에 들어갔고 1899년에 본정통 2정목이었던 현재 자리에 신사옥을 짓고 황금어장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은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제도시였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품들
, 외국으로 나가는 물품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돈과 쌀과 금이 쌓여갔지요. 그 중심에 서 있던 은행이 바로 일본제1은행입니다. 일본제1은행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중앙은행인 조선은행으로 승격되어 화폐를 생산하는 기관이 됩니다. 쭉 은행으로 사용된 건물은 광복 후에 조달청 청사가 되었다가 임대건물이 되었다가 합니다
 


조선은행이라는 글씨가 선명합니다.

 

건물은 화강석으로 육중하게 지어졌습니다. 검푸른 돔이 올려진 석조건물 뒤에는 돈과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던 금고 건물이 따로 붙어있습니다. 이 건물은 일본인 건축가인 니이노미 다카마사가 설계하고 역시 일본 회사가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모래, 자갈 등을 제외한 모든 재료들, 즉 벽돌, 목재, 석재 등을 모두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습니다. 오리지널리 메이드 인 재팬인 셈이죠.


은행 건물은 규모가 크고 워낙 튼튼하게 지어서인지
, 백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 중에도 은행이 꽤 있습니다. 어떤 은행이 있냐 하면, 중앙은행인 조선은행(서울, 인천, 군산) 조선식산은행 (대구, 강경), 일본제18은행(인천, 군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호남은행, 호서은행, 한일은행 등 지방은행들도 몇몇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금고는 2층 높이로 지어졌습니다. 전시실은 윗층이고 아랫층은 공개되지 않는 곳입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수장고쯤 되려나요.


은행은 건물도 단단하게 지었지만 내부에 철옹성 같은 금고가 남아있어 더 흥미롭지요
. 금고는 건물의 안쪽에 깊고 높게 지었습니다. 두꺼운 검은 철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을 것처럼 육중합니다. 포격에도 끄덕 없을 만큼 보완성을 자랑하지요. 건물 옆에는 흰색으로 덧칠한 2층짜리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지금은 부속건물과 뒤쪽 금고까지 길을 연결하여 전시장으로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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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