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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오늘

새로운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좋은 새해가 왔다. 매일 새로운 하루, 매분, 매초가 다시 오지 않을 새로운 시간이지만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그 모든 새로움은 빛을 잃는다.

 

해가 바뀌는 정도는 돼야, 나의 습관을 돌아보고 재정비할 마음이 선다. 명색이 새해인데 목표도 좀 세워야 한다.

 

온 카와라, 오늘, 1966-2014, 혼합재료

 

목표를 향한 집념이 얼마 안 가 흔들리고, 흐려지다가 다음 새해를 다시 기다리는 상태가 곧 온다 해도, 새해니까, 일단 의지를 세워본다.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서면서 맞이한 새해니까, 올해를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1966년 1월4일, 온 카와라는 ‘오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굳이 기억할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 또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특별했을 그 하루를 그리는데 그는 ‘날짜’를 선택했다. 다섯 차례 밑칠을 한 모노톤 캔버스 위에 하얀색 물감을 일곱 번까지 칠해서 산세리프 서체의 날짜를 그려 넣었다. 캔버스 뒷면에는 그날의 신문을 스크랩해서 붙이기도 했다. 당일 자정까지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그 작업은 폐기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말을 한없이 아꼈던 그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기록해 나갔을지는 알 수 없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의 한 부분을 잘라내 호명한 ‘날짜’라는 이름의 시간은 매일 반복적으로 쌓여갔고, 그의 ‘오늘’도 담담하게 쌓여갔다.

 

비슷한 듯 다른 ‘오늘’ 그림은 2014년 7월10일 끝났다. 2만9771일을 산 그는 그해 7월 말 세상을 떠났고, 50년 가까이 진행한 그의 ‘오늘’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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