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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익숙함과 낯섦 사이

안정주, T.P.A(트리거, 펄스, 앰플리피케이션),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 안정주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다. 그 새롭고 낯선 것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일은 순간, 곧 익숙해진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쩌다 낯선 상황을 만난다 해도 “이 정도 낯섦쯤이야!” 하고는 과거의 경험을 응용하여 적용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능숙하게 패턴을 발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세상에 새로울 것은 별로 없다.

 

익숙해서 편안하거나 지루하거나. 그 쳇바퀴 안에서 평범한 일생은 흘러갈 것이다. 소소한 개인사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처럼 많은 이들의 삶이 얽혀 있는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점차 무감각해진다. 한번 자리 잡은 ‘익숙함’을 흔드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 안정주는 그 익숙함이라는 표피를 전혀 다른 감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또 다른 질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현실을 재발견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이러했던 작가에게, 굳이 한글을 만들고 굳이 중국과 다른 음의 기준 ‘황종’을 만든 세종대왕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안정주는 세종의 음악적 업적 안에서 음악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선을 다스리고자 했던 한 행정가의 도전을 보았다. 작가는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에서 모티브를 얻어, 비디오 안에서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정간보의 소리기호를 오디오 신시사이저에 입력하면, 소리는 트리거(방아쇠)가 되어 진동을 일으키고, 증폭·변형되면서 자연발생적인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이 음악이 또 하나의 신호가 되어 ‘트리거, 펄스, 앰플리피케이션’의 과정을 거쳐 이미지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소리와 이미지의 익숙하고도 낯선 조응과 변주가 관객을 감싼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역사 속 정간보가 작동하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시스템의 탄생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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