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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잊힐 기억

태극기 아래 대규모 인파가 운집했다. 옹기종기 모여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 떼 같다. 그들은 일제히 중앙에 자리잡은 흰색 연단을 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 것일까?

 

6·25 반공궐기대회에 참석한 서울시민들. 1974·6·25 경향신문사

 

사진을 확대해 보면, 연단에 ‘상기하자 6·25’라고 쓰여 있다. 그 위에 ‘6·25 반공궐기대회’라는 문구도 보인다. 1974년 6월25일 오전 10시, 6·25를 맞아 한국반공연맹 주최로 북한의 대남적화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6·25 반공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여의도 5·16광장에 무려 백만 인파가 몰렸다.

 

이제 남북 정상, 북·미 정상이 차례로 만나서 악수를 나누는 마당에 반공의식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을 반공궐기대회에 강제 동원했던 시절이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에 따르면 “반공백일장을 하고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짓고 반공웅변대회와 반공궐기대회를 하면서 자랐다”고 회상하는 시대다. 또 “옆집에서 오신 손님 간첩인지 다시 보자”라는 당시의 반공표어를 미루어 보면, ‘평범한 시민들이 이웃을 간첩으로 의심하도록 권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반공을 궐기하고, 반공을 권하던 옛 세상은 북한 인공기와 미국 성조기가 보기 좋게 어울리는 시절 앞에서 민망한 기억으로 잊힐 것이다. 아직도 반공으로 표를 모으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어느 정당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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