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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잘 잤니

곤 사토시, 잘 잤니(ohayo), 2007, 애니메이션, 1:00 @곤 사토시


이야기는 짧다. 방 안에는 카드며 꽃이며 선물, 빈 술잔 같은 생일파티의 흔적이 있고, 침대에 모로 누워 있던 여성은 알람이 울리자 인상을 찌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음료를 꺼내 마신 후, 칫솔을 들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텔레비전을 켜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맞추고 경쾌하게 인사한다. “잘 잤니.” 그렇게 1분짜리 영상은 끝난다. 단순하다. 주인공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인사하는 순간까지 여럿으로 분리된 채 시간차를 두고 움직였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곤 사토시의 작업에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좀처럼 구별할 수 없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도 어렵다. 환상은 극대화되고 꿈과 현실의 경계도 무의미해진다. 그의 환상 안에서 관객은 내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그의 유일한 단편 애니메이션 <잘 잤니> 속에 담긴 일상의 환영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좀처럼 잠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의 아침을 연상시키기 때문인지 반복 재생을 유도한다.

 

화면 안에는 침대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고, 양치질을 하지만, 이제 겨우 침대를 벗어나 냉장고 문을 여는 내가 있다. 투명해서 배경이 고스란히 비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온전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처럼 휘청거린다. 이 흐릿한 주인공들은 시간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좁은 집 안을 오가는 그들의 동선이 겹치면서 어떤 동작이 앞선 것인지 알 수 없고, 누가 주인공이고 무엇이 그림자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꿈’의 시간에서 멀어져 온전히 잠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들은 하나가 된다. 영혼의 한 조각도 다른 데 흘리지 않고 전날의 피로에서, 잠에서,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잘 잤냐고 인사를 건넬 수 있으니, ‘기상’은 일상의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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