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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대통령 경기도 김포의 모심기 참석. 1980년 5월 28일. 정부기록사진집 11권.

 

논 옆에 밀짚모자를 쓰고 바지를 걷어붙인 남자가 걸어간다. 농부라고 하기에는 밝은색 점퍼 안에 입은 셔츠와 뿔테 안경이 어색하다. 아무리 봐도 농부가 아니라 관료에 가까운 남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모심기에 참석했다. 매년 봄 신문에 등장할 만한 사진으로, 특별한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촬영된 날짜를 살펴보면 모멸감이 치밀어 오른다. 1980년 5월28일, 5·18민주화운동이 진압된 다음날이다. 27일 새벽 3시 광주에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진입했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애절한 가두방송이 채워지고, 오후 4시10분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들에게 사격했다. 무려 2만5000여명의 군인이 투입되어 오후 5시10분 진압 종료가 선언되었다. 5월29일 망월동에서는 129구의 장례식이 일제히 진행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또 수많은 시민들이 슬픔에 빠졌던 27일과 29일 사이 국가의 수장은 모심기에 참석했다. 모를 심으면서 정종택 농수산부 장관에게 전남 및 광주의 모내기 작업 현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날의 모습은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이 단 한 장도 수록되지 않은 정부기록사진집에서 1980년 5월의 시간을 대신 차지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모멸감은 사진에 보이는 현실보다 숨겨진 현실, 사진에 기록된 장면보다 배제된 장면에서 비롯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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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