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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북단에는 천주교의 성지이자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는 절두산 순교성당이 있다.

강변북로를 달리며 서강대교에서 양화대교 쪽으로 진행하다보면 우측으로 독특한 형상을 한 절두산 순교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였다. 이 양화나루에는 지형이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과 유사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고 이름 지어진 높이 20m의 언덕이 있었다.

 

양화나루터는 이 잠두봉과 어울려 빼어난 풍치로 이름이 높았다. 이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조선의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은 이곳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고 시를 짓는가 하면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꼭 들를 만큼 유명한 명승지였다.

 

 

그러나 이 언덕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1만명에 가까운 천주교인들이 참수를 당했던 곳이 되어 절두산(切頭山)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던 1967년 이곳에 이희태의 설계로 성당과 박물관이 세워졌다. 절벽 끝에 위치한 성당은 사다리꼴 평면에 원형의 지붕을 얹은 100여석의 아담한 규모이다. 원형지붕은 선비의 ‘갓’을 표현한 것이고, 우뚝 솟아있는 종탑은 천주교인들을 참수할 때 쓰던 칼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그림에서 성당 우측에 길게 놓인 부분이 박물관이다. 역시 갓 모양의 넓은 지붕을 받치는 쌍둥이 기둥들은 발코니에 열을 지어 있는 모습으로 독특한 형태미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우리의 전통 요소가 콘크리트를 통하여 표출된 건축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언덕 아래 강변도로에서 올려다보이는 성당의 모습과 나무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 옛날 선비들이 즐겨 찾던 명승지 양화진이 다시 재연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순교가 서려있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는데 그저 아름답게만 느낄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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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