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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금의 이슬이 소중한 까닭은 삶이 지옥이 아닌 적이 없어서다. 사람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유한한 생명체다. 삶은 생명의 기쁨인 동시에 사멸의 고통이다. 고통이 강할수록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상향을 갈망한다.



감로탱,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감로도(甘露圖)는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하려는 강렬한 자식의 마음이다. 목련존자가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구원의 방법을 물은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엄격한 유교사회 조선에서도 감로도와 같은 불교회화가 허용된 것은 이런 효심 때문일까. 구원의 태도란 어머니를 구하는 마음으로 대중의 고통을 구원한다는 뜻이 숨어있으리라. 18세기에 그려진 감로도는 중앙에 커다란 아귀가 있고, 하단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단에는 구원자가 등장한다. 왜 이렇게 아귀를 크게 그렸을까? 아귀는 탐욕의 상징으로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배가 크지만,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한다고 한다. 과다한 욕망이 채울 수 없는 굶주림으로 고통의 원인이라는 상징이다. 즉, 구원은 채울 수 없는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감로는 욕망의 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는 ‘단 이슬’이다. 욕망의 고통을 버리게 하는 상징이다. 감로마저도 과하면 다시 욕망이다. 궁극의 구원은 스스로의 구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가 하늘과 땅이 서로 화합하여 단 이슬을 내린다면,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고 했다. 궁극적 이상은 명령에 의한 구원보다 스스로 균형 잡기다.

어쩌면 감로의 구원도, 스스로의 균형 잡기도 말처럼 쉽지 않다. 어려움을 견디고 견디어 목이 타들어 갈 듯이 삶이 지옥같이 느껴질 때, 나는 예술이 한 모금의 이슬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그림, 한 소절의 음악, 한 편의 공연, 한 편의 영화가 안식을 선사하여 마음을 풍요롭게 하여, 세속의 욕망을 떨쳐내어,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슬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이슬 같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면서.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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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