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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의가 곧 열린다고 한다. 외교가 국가이익의 각축장이라면, 문화는 화합의 열쇠다. 과연 한·중·일이 같은 이상을 품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도원(桃源)’을 보게 하라. ‘도원’은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이다. 그 마을에 한·중·일 정상들의 꿈도 있기를 바란다.

20세기까지 한·중·일은 한자문화권에서 같은 고전을 읽고 생각하는 사고공동체였다. 다시 한·중·일이 공유해온 고전에서 공통의 화두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도원’은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고전적 상징이다. 중국 동진시대에 지방관료였던 도연명(365~427)이 쓴 ‘도화원기’라는 짧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한 어부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 이른다. 배에서 내려 동굴을 통과하니, 남녀노소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마을이 있었다. 어부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지만,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고, 아쉽게도 다시는 그 마을에 가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1500년 이상 ‘도원’을 글과 그림으로 꿈꾸어 왔다. “평화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평화로운 삶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화가 안중식(安中植·1861~1919)은 1915년 ‘도원행주도’를 그렸다. 안중식은 조선의 마지막에 왕의 초상을 그릴 정도의 기량을 갖춘 화가이자 1919년 민족 서화가들 중심의 서화협회(書畵協會)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인물이다.

그는 선비가 ‘도원’에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그렸다. 푸른 산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향의 봄이다. 그가 도달하고픈 마을은 그리지 않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운으로 남겼다. 그가 회복하고자 한 삶은 평화이다. 누가 누구의 평화로운 삶을 빼앗아서는 우리의 ‘도원’은 없다.

보통 사람들은 평화로운 동네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다. 바로 이것이 동아시아의 이상이다. 오늘 다시 도연명의 시집을 펴고, 동아시아의 정상들도 같은 이상을 품으리라 믿어본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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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