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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이 있다.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 없고 볼수록 한없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그런 그림 말이다.
홍수연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캔버스 속으로 조용히 흡수되는 것 같은,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홍수연을 알게된 건 대략 2002∼2003년이었던 듯하다.
뉴욕에 사는 한 친구가 "홍수연 씨 알지?" "홍수연 씨 있잖아…"라는 식으로 자꾸 말을 꺼내서 처음 이름을 들었고, 이미 알고 있는 작가라고 착각하기도 했다.(홍지연, 홍지윤, 홍주희 등 비슷한 이름의 작가들이 꽤 있다.)

그러다 친구가 한국에 올 때마다 함께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대개 미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주로 건강유지법 -_-;;) 다소 '아줌마스러운' 관계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에 한두 번, 만남을 이어갔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림보다 사람을, 미술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 사람의 기호와 스타일을 먼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처음 봤을 때 홍수연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호리호리하고 늘씬한 몸매에 섬세한 얼굴선, 자연스럽게 휘날리는 풍성한 머리카락 등이 한 눈에 확 시선을 사로잡아버리는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이런 타고난 '여신 포스'에 살짝 기가 눌렸지만, 호탕하달 정도로 큰 웃음과 진솔하고 사려깊은 성격에 이내 편안한 대화상대가 되어버렸다.

그의 그림을 '제대로' 본 건 2005년 갤러리 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였다.




이 썰렁한 사진으로는 제대로 느낌이 전해지지 않지만,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오며 숨을 고른 기억이 생생하다. 한 작품 한 작품 모두가 시선을 잡아끌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조화와 리듬, 공간의 확장과 깊이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선 듯한 느낌이랄까. 그림을 마주대하는 순간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지고 작품과 나와의 내밀한 대화가 시작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후 그의 작업실을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 아득한 느낌을 다시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전시장이 아닌 작업실에서도 작품의 우아한 아우라가 그대로일 지 궁금했다.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갤러리 PLANT에서 열린 개인전(11.12∼12.12)에서 그를 만나 후다닥 약속 날짜를 잡고, 하필이면 대설주의보가 내린 지난 8일 오전, 나는 작업실이 있는 미아동으로 쏜살같이 차를 몰았다. 그가 뉴욕에서 돌아와 2003년부터 줄곧 사용했다는 작업실이 건물의 철거 결정에 따라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됐단다.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작업실은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차례 폭풍이 훑고 지나간듯, 살짝 난장 분위기였다. (흠...원래 그런가?^^;;)  아무튼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며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작업실은 꽤 넓었고 창밖으로는 맞은편 건물의 지붕과 멀리 희뿌연 하늘이 보였다.



작업실은 책상과 간이침대, 의자 등으로 3 : 2 정도로 양분되어 있었다.
넓은 구역을 실질적인 작업장으로 하고 나머지는 작품보관이나 휴식 등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에 나가 있어서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작업 중인 작품들이 보였다. 그중 300호 짜리 대형 작품 두 점이 눈에 띈다. 그는 주로 100∼150호 크기의 작품을 하는데, 이건 꽤 크다. 
캔버스의 표면을 단색으로 깨끗하게 칠하고 그 위에 묽은 안료(pigment)를 흘리고 겹쳐 형태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 과정을 이해한다면 저 작품이 엄청난 노동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상해 보라, 300호나 되는 큰 캔버스를 혼자 부여잡고 쉴새 없이 기울이고 균형을 맞추는 모습을. 안료의 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결정해서 모양을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난 힘과 기술을 요한다. 우연인 듯 자연스런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철저한 계산이 필요한 법이다. 또 원하는 색과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안료 테스팅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이런 폴리머(polymer) 성분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테스팅하기도 하고 마치 안료의 '껍질' 같은 것을 만들어 설치하기도 한다. 이렇게.




전시장을 온통 안료 껍데기(?)로 붙여놓은 모습이다. 보통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깨끗이 잘 떼어진다고 한다. 심지어 재활용도 가능하다고.





그림의 재료라면 아직도 수채화 물감과 유화 물감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요즘 회화작가들의 작업실에 가면 대략 이런 아크릴 물감과 도무지 알 수 없는 요상한 화학약품 비스무리한 것들이 사방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너무 다양해져서 작가들도 열심히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때문에 전시장 캡션에 "혼합재료(mixed media)"라고 뭉뚱그려 적어놓으면 관객 못지않게 작가들도 궁금해 하긴 마찬가지다. 

또 투명하게 비치는 얇은 필름지에 해먹(tusche, 물에 녹는 기름성분)을 이용해 이것이 마르면서 표면에 침전되는 느낌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건 안타깝게도 마땅한 사진이 없다.  사진 저 안쪽 벽면에 걸린 작품들이 바로 그것. (보이는지? ^^;;;)

 


세 가지 작업 방식 모두 ‘평면’이라는 회화에 있어 안료와 공간감에 대한 문제를 탐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움직이는 이미지와 고혹적인 색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지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 좋아요. 뭔가 찰나를 살짝 잡아주는 그런 가볍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죠. 마치 발레리나의 토슈즈가 살짝 바닥에 닿는 듯한 느낌 같은. 그래서 작품이 감각적(sensual)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런 그의 관심은 <the widening gyre-night(점점 커지는 소용돌이-밤)>, <sashay-red on  blue(블루  위를 미끌어지듯 돌아다니는 레드)>, <lull-blue(일시적인 고요-블루)><acrobats(곡예사)> 등과 같은 작품의 제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Still life in space-acrobats>



“안료를 흘리고 겹치니까 구조적으로 조각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가 봐요. 배경이 굉장히 절제되어 있기 때문에 형태(shape)가 더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죠. 안료 층이 겹쳐 쌓여 있어서 실제로 무겁기도 하구요. 하지만 일반적인 조각처럼 정지되어 있는 느낌을 주지는 않죠. 캔버스 표면에 굳어있는 안료들이 각각의 질량에 의해 움직임과 방향성을 갖고 있거든요.
보통 서양화에서 여러 개의 초점이 같이 등장하면 배경과 떨어져 보이면서 다양한 공간감을 드러내잖아요. 그런 일종의 착시현상을 이용했다고 할 수 있어요. 결국 안료와 원근감이라는 그림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와 표현기법을 이용해 최대한의 느낌을 뽑아내는 작업인거죠.”





이런 그의 작업방식을 동양화 기법과 비교하면, 먹을 여러번 중첩해 쌓는 적묵법(積墨法)을 떠올릴 수 있겠다. 적묵법은 말 그대로 먹을 겹겹이 쌓아 올려 묵직한 괴량감을 표현하는 준법인데, 주로 바위산이나 깎아지른 절벽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렇듯 보통 안료는 더하고 입힐수록 텁텁해지고 무게감이 생기는 법이건만, 홍수연의 적채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겹겹이 쌓아올릴수록 공간이 더욱 확장되고 가벼워지며 투명하게 빛난다. 깊은 심연을 부유하는 듯 캔버스 표면에 떠오른 안료의 층이 만들어내는 그 무한한 공간감이란. 그의 그림을 볼 때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그의 그림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풍부한 색채감각이다. 어두운 블랙에서 그레이, 블루, 레드, 형광 옐로우 등등... 그가 색을 쓰는 방법은 매우 대담하면서도 노련하다. 신기한건 아무리 어둡고 탁한 색이라도 그가 칠하면 투명한 빛을 머금은 듯 말캉말캉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다른 색의 독립된 작품들이 서로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단독으로 있을 때보다 더 다양한 운율과 공간감을 창조하기도 한다.




색을 쓰는데 ‘크게 겁이 없다’는 그는 같은 색이라도 미묘한 차이를 내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낼 줄 안다. 하지만 색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예전에는 전시의 테마가 되는 색을 일부러 정하기도 했지만, 이번 개인전에서는 거추장스러워질 것 같아 그마저도 생략했다고.

"천천히 보이는 게 좋아요. 그런게 정말 어렵죠. 뭔가를 계속 보게끔 만드는 것.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우라를 만드는 것. 그건 정말 간발의 차이인 것 같아요. (작가에게 잘된 작품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미묘한 차이에서 비롯되지만 작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뽑아낸 것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죠."

"처음엔 우연적인 효과들이 재미있어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런 우연적인 느낌은 사실은 가장 인위적으로 만드는 거죠. 사실, 컨트롤하기 쉽지 않은 형태잖아요. 작품은 단순한 발명품이 아니고, 있는 것 가지고 내 코드에 맞게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한끝 차를 두고 다투는 작업인거죠. 그래서 원하던 것이 제대로 나오면 소름 끼칠 정도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와 이렇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마저 자꾸만 대화가 새나가 평소처럼 신변잡기로 흘렀지만, 어쩐지 그에게 몇 걸음 더 바짝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함박눈이 예쁘게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면서 창문 너머로 보이던 풍경이 뿌옇게 가려지고, 깊고 아득한 공간이 새롭게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그림이 오버랩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리는 눈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가늠하기 힘든 도로를 천천히 달리면서, 캔버스 표면의 안료 층을 통과해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바로 이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P.S. 갤러리 PLANT의 개인전은 공식적으로 지난 11일에 끝났지만 대략 12월 동안 작품을 그대로 걸어놓기로 했단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러보시길. (안국동 윤보선 고택 근처. 02-722-2826) 그마저 놓쳤다면 낙심하지 말고 근처 금호미술관으로 얼른 발걸음을 옮겨보시길. 금호미술관의 <21 and Their Times>(12.1∼2011.2.6)에서 그녀의 초기작과 근작 몇 점을 만나볼 수 있다.


홍수연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국 Pratt Institute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부터 포스코미술관(2001), 금호미술관(2002), 화이트월갤러리(2003), 갤러리인(2005) 등 개인전 9회,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했다. 창동 미술창작스튜디오의 제1기 작가로 참여했다.(200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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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