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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도무지 외우기도 힘들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다. 얼마전까지 나도 '아칫파퐁'이라고 알고 있었을 정도.

이 난해한 이름이 얼마전부터 심심찮게 잡지나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정오의 낯선 물체> <징후와 세기> <열대병> <엉클 분미> 등을 만든 태국 영화감독 이름이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졌고 얼마전 한국을 방문해서 일간지 인터뷰 기사까지 났다.

정성일씨 같은 영화평론가들 입에나 오르내릴 정도로 극소수 애호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아트영화 감독이 이 정도면 인기인이 되었다고 할만 하다. 거기다 태국에 대한 이미지까지 바꿨다.

태국 영화라면 <옹박> 같은 액션물이나 <디 아이> 같은 공포물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낯선 나라였던 태국이 갑자기 이 감독 덕분에 가까이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정작 본인은 이런 관심이 낯선 듯 한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소규모 영화인 자기 영화가 황금종려상까지 받다니 뜻밖이다 팀 버튼 심사위원장이 잘 봐주신 것 같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 영화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통 영화라고 알고 있는 것들과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러티브나 플롯 대신 한없이 긴 침묵이, 일관된 캐릭터 대신 호랑이로 원숭이로 변신하는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의 대사 대신 수수께끼 같은 잠언들이, 화려한 시각효과 대신 끝없는 정글 속 사각거리는 소리가 있다. 배부르고 졸리는 상태에서 극장에 들어갔다간 자다가 깨서 "여긴 어디? 난 누구?"란 소감만 안고 나올 터. 


'현대미술과 극단의 실험들'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면서 왠 영화 이야기? 미술과 관련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핏차퐁은 미술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만들지만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비디오아트 작품도 만든다. 

후자를 보고 싶으면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격년제로 열리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씨티 서울'(2010.9.7-11.17)에 그의 <프리미티브 프로젝트>가 전시되고 있으니까.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 <엉클 분미>와 한 세트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일부인 <나부아의 유령들>은 올 봄에도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다. 아시아 현대미술가에게 주는 '아시안 아트 어워드'(2010.4.8-6.6. 소마미술관)에서 6명의 후보 중 최종 수상작가로 선정되었으니까. 

여하간 미술인들은 이 사람을 영화인이기 이전에 미술가로 알고 있었다. 미술인들은 아핏차퐁 영화 같은 스타일에 익숙하다. 영화라고 보면 너무나 낯설지만 비디오아트라고 보면 딱히 낯설 것도 없는 것이다.

'프리미티브 프로젝트',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에서의 설치광경(2009)



영화계와 미술계을 오가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야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감독의 작품이 전통적인 영화도 전통적인 미술도 아니고 그 두 영역을 다 벗어난 바깥 어디쯤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은 바로 그곳을 자기 집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기승전결의 내러티브가 실종된 영상은 관객이 무작위적으로 들락거릴 수 있는 갤러리 공간의 관람방식과 맞닿고, 냄새와 온도가 느껴지는 화면은 기묘하게 촉각적이어서 필름에 손을 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이미 미술의 영역이다. 아니 '이미 미술의 영역'이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 미술 자체가 계속 달라져왔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미술이 아니고 더 이상 영화가 아니고 더 이상 건축이 아니고 더 이상 문학이 아닌 영역에서 자기 영역을 발견해왔다. 

'no limit'라는 블로그의 제목은 이런 의미에서 붙였다. 그러니 뭔가 확실한(자극적인?) 볼거리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시는게 좋다. 현대미술은 '볼거리'라고 알려져 있는 어떤 안전한 영역을 끊임없이 탈출하면서 자기 이름을 알려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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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