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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선승혜의 그림친구

국제감각과 문화영토

국제감각이란 세상을 보는 관점이자 힘이다. 나와 관련된 세상이다. 문화인식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문화영토다. 세계인식으로 힘의 균형을 잡고, 문화인식으로 감성의 조화를 기른다. 세계지도는 지리지인 동시에 세계인식을 반영한다. 우리나라가 그려낸 세계지도로 무엇이 있을까?

1402년 조선의 태종은 조선건국 3년차에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이 지도는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에서도 그 중요성이 주목받는다. 이탈리아의 콜럼버스가 아시아의 인도로 가기 위해 탐험을 떠난 것이 1492년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얼마나 일찍 제작된 세계지도인가를 알 수 있다. 15세기 초 조선,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아프리카대륙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아쉽게도 원본은 없고, 15세기의 사본이 일본 류코쿠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그 모본이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류코쿠대학 소장 사본의 모사, 서울대 규장각 소장


이 지도의 상단에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이름이 쓰여있다. ‘혼일강리(混一疆理)’라는 단어는 경계를 하나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글로벌리즘과 상통한다. 조선건국과 동시에 중국, 일본, 중동, 유럽, 아프리카까지 세계인식을 확장한 관점은 한국 글로벌리즘의 역사를 보여준다.

권근(1352~1409)은 서문에서 세계지도 제작경위를 기술했다. 그는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최신 지도를 입수하여 역량이 뛰어난 학자들에게 세계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권근은 “천하는 참으로 광대하다. (중략) 참으로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다. 대개 지도를 보면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알게 되니,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한 도움이 있었다”고 기술한다.

세계인식이 치국에 도움이 된다는 조선건국의 이념을 참고로, 21세기 소프트파워 시대에 국가의 경계영역을 넘어서서 문화영토의 세계지도를 그려보면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