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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깊은 가을, 밤 그림과 함께 명상을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는 대중에겐 꽤 생소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개최된 ‘17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들’전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당대에 인기 없었던 화가는 아니다. 오히려 대단히 인정받았던 작가다. 실제로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를 지냈을 정도다.

라 투르의 그림에 특별히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바로크 미술의 주요 특징인 명암의 대비가 뚜렷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법)와 더불어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종교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의 그림은 단순한 명암법이 아닌 테네브리즘(Tenebrism)에 속한다. 이탈리아어로 테네브라(tenebra·어둠)를 어원으로 하는 테네브리즘은 이탈리아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 작품의 영향을 받아 격렬한 명암대조에 의한 극적인 표현을 하는 것인데, 특히 야경을 배경으로 한다. 아마 1610~16년 사이에 떠난 것으로 보이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카라바조의 작품에 대한 지식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라 투르는 밤 그림의 대가다. 그만큼 밤의 실내를 능숙하게 빛과 어둠으로 표현한 화가는 드물다. 더군다나 어둠 속에 드러나는 단순화된 형태와 섬세하게 관찰된 세부묘사는 놀라울 정도다.

라 투르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이다지도 영적인 종교화를 그렸던 것일까? 귀족 여인과 결혼했고, 아내의 고향인 뤼네빌에서 부유한 일생을 살았다는 것, 전쟁과 약탈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어서 초기 작품이 소실되었다는 것, 유행성 출혈열로 사망했다는 것 등만이 전해진다. 한편으론 상당한 재산가로 고리대금업자였고, 하인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고도 전해진다. 인심을 잃은 까닭에 그의 작품이 오랫동안 묻혀버렸다고도 한다. 라 투르의 밤 그림은 낮 동안의 악행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것일까! 알 수 없는 건 인간!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