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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낮잠

장리석, 오후의 뜰, 1968, 캔버스에 유채, 97×145.5㎝


분주하다. 세상의 속도는 빠르고, 그 속도를 부정할 용기가 없다면 따르는 게 당연한 세상.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낙오자가 되는 건 순식간일 테니, 초조한 마음이 조급증을 부채질한다. 그래서 바빠지고, 더 바빠지고 새벽부터 밤까지 쉼 없이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휴식을 꿈꾸고, 일탈을 소원하는 건, 그런 바람 자체가 일상의 바퀴를 계속 돌릴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다.

 

한때는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즐기는 일이 당연하던 시절도 있었단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나른한 오후에 낮잠을 즐긴다. 낮잠 권하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과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나, 매일 자는 낮잠이 마음을 깨끗하게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은, 다만 꿈꿀 수 있을 뿐 쉽게 내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운 낮잠에 대한 환상을 키워준다. 혹은, 편하게 낮잠에 빠져들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실향민으로서, 망향의 정서를 화폭에 담아온 장리석은 한 소년이 평상에 누워 단잠에 빠진 풍경을 그렸다. 마당 한쪽에는 정성스럽게 가꾸었을 화단이 보이고 그 앞에는 장독이 보인다. 아파트가 표준 주택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시골집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마당의 풍경이다. 러닝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잠든 소년의 손에는 어디선가 꺾어왔을 열매가지가 쥐어져 있다. 소년은 친구들과 동네 곳곳을 뛰어놀다 돌아온 나른한 오후, 잠시 달콤한 낮잠에 빠졌을 것 같다. 소년의 잠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풍경은 시간마저 멈춘 것처럼 한없이 고요해 보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후의 뜰’은 1968년 어느 여름의 한가로운 공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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