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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내 친구의 서울은 무엇인가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가 서울? 적어도 내 주변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근래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내가 아는 외국의 건축가들이 서울을 찾는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오기 힘든 동북아 끝에 위치해 있건만 도쿄나 베이징, 홍콩 온 길에 일부러 들렀다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또한 밖에 나가 그곳 건축가들과 만나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서울에 관한 게 대단히 많아졌다. 전시회나 심포지엄을 해외에서 개최해 보면 전례 없이 많은 현지인들이 모여 서울을 논한다. 전과 확연히 다르다. 한류의 영향?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에 냉소적이기 쉬운 건축가들이 그런 것으로 영향받지 않는다. 서울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옳다. 사실 서울은 그동안 너무도 저평가되어왔다.

건축가들이지만 도시에서 정작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그곳의 생생한 삶이다. 그들은 현대의 첨단건축이 즐비한 강남을 피해 강북의 골목길 풍경에 탐닉한다. 통행 기능만 있는 직선이 아니라 지형과 경사를 따라 불규칙하게 조직된 서울의 골목길에서 그들은 건축의 지혜와 영감을 얻는 것이다. 많은 길들이 지난날 재개발의 광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서울에는 여전히 많은 골목길들이 있다. 대략 2, 3미터 폭, 우리 신체 크기에 딱 적합한 이 길들은 미로의 도시라는 페즈의 답답한 길보다 훨씬 편안하고 밝다. 공간 변화가 무쌍한 서울의 골목길을 걷는 것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좁다가 넓다가 곧게 가다가 휘어지는 이 드라마틱한 공간에는 요즘 상권도 살아나서 예쁜 가게와 깜찍한 카페, 작은 갤러리들도 들어서는 바람에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졌다. 1000만의 인구가 사는 대도시에 이런 디테일이 있다니… 대단히 특별하다는 것이다.

"북촌 개방의 날" 행사 때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한옥 골목길을 걷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역사적 정취가 있는 도시는 건축가에게 중요한 학습현장이어서 늘 경외의 대상이 된다. 물론 서울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서양도시들이 즐비하며 그 흔적이란 게 간혹 지겨우리만큼 전역에 퍼져 있는 곳도 있다. 그에 비해 서울은 흘깃 보면 저급하고 부조화한 현대적 건물들로 급조된 도시 같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 종묘 같은 엄청난 문화유산이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망연자실한다. 게다가 종묘가 얼마나 근사한 건축인가. 동양의 파르테논이라며 건축가들의 방문 목록 첫 번째 줄에 있는 곳이다. 재작년에 빌바오미술관을 설계한 프랑크 게리가 서울을 방문하며 슬쩍 청을 넣은 게, 가능하면 종묘를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방문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하니, 저열하고 소란스러운 도시풍경이라며 서울을 폄하하던 이들에게 종묘가 가진 침묵의 아름다움은 충격이다. 종묘와 이어진 창덕궁을 찾게 하여 오래된 건축과 후원의 조경을 보게 하면, 이 번잡한 대도시 한가운데 존재하는 이토록 특별한 아름다운 풍광, 그들에게는 너무도 비현실적 사건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한양도성은 어떤가? 18킬로미터가 넘는 이 성곽은 세계에 유례 없는 역사유적이다. 평지와 산의 등성을 연결하며 도시를 둘러싸고 이루는 서울성곽 같은 압권적 풍경을 유럽에서는 결단코 보지 못한다.

삶을 즐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건축가들에게 서울의 문화는 대단히 자극적이다. 홍대 앞에 즐비한 재즈카페들은 내로라하는 세계의 뮤지션들과 유명한 셀리브리티들이 소문 없이 찾아와 얼굴을 내미는 곳이며, 길거리마다 세계에서 가장 쿨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365일 내내 파티를 즐기는 축제의 장이다. 대학로의 문화와 어우러진 젊은 풍경, 청담동의 최첨단 패션모드와 혹은 저커버그도 통째로 빌려서 밤새워 놀고 간다는 클럽들… 하다못해 골목길에도 있는 노래방, 그 안에서 목청 돋우며 마이크 잡는 풍경…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이런 다이내미즘은 없다. 그런 첨단의 유행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인들이 새로운 세계라며 눈뜨는 판소리 같은 우리 고유의 소리나 춤사위를 경험하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신명과 한을 알게 되어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서울의 음식은 얼마나 맛있는가?

더 큰 게 있다. 서양의 큰 도시에서 온 건축가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서울의 산이다. 시내 어느 곳에서도 불과 10, 20분 이내에 산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환상적이라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들 관념으로 도시는 평지여야 한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파리나 런던, 빈, 프랑크푸르트 등 모두가 로마군단의 캠프였던 카스트라라는 조직을 원도심으로 가지며, 평지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던 그 캠프시설이 시대를 거듭하며 확대된 게 오늘날의 모습이다. 중세유럽에 유행처럼 번진 이상도시 건설도 기하적 도형을 실현한 결과여서 바탕은 평지여야 했으며, 20세기에 등장한 마스터플랜의 도시들도 평지를 전제로 한다. 녹지의 공원? 물론 평지가 전제다.

그러니 산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떠난 여행에서 만나는 풍경인 것이다. 1000만 인구가 사는 세계의 메가시티 25개 중에서 산을 도시 내부에 품고 있는 곳은 서울이 거의 유일한데, 그게 서울의 정체성이다. 알다시피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까닭은 산 때문이다. 네 개의 산(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과 이를 둘러싸는 또 다른 네 산(북한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 그 사이를 흘러나가는 물줄기들이 이루는 풍경이 서울의 고유한 지리여서, 산은 말 그대로 랜드마크이며 도시는 그 속에 작은 건축들이 모인 집합체였다. 인공의 랜드마크가 없어지면 정체성도 사라지는 평지 도시의 운명과 다르다. 지난 시절, 우리가 미숙하여 서양 도시를 흉내 내느라 억지 랜드마크를 세워 자연과 역사와 부조화한 풍경을 만들긴 했어도, 산이 존재하는 서울은 그 고유 풍경을 회복할 원점이 있으므로 아직도 희망적이다.

부디 북악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시라. 잘생긴 산들이 겹쳐진 풍경과 곳곳에 모여 있는 삶터들, 그 사이로 흘러드는 한강이 이루는 서울의 모습은 내가 아는 한 세계 최고다. 특히 봄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오른 지금, 서울의 성곽과 골목길들을 걸어보시라.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요즘의 희한한 나라꼴로 인해 우리 속에 가득 찬 우울과 분노를 맑게 씻을 수도 있을 게다.


승효상 | 건축가·이로재 대표